월간참여사회 2015년 09월 2015-08-31   818

[여는글] 질병은 체질적 운명, 사고는 재수 없는 우연이 아니잖아요!

 

질병은 체질적 운명, 
사고는 재수 없는 우연이 아니잖아요!

 

 

글. 정강자
참여연대 공동대표. 태어날 때 세상을(鄭) 편안하게(康) 살아갈 놈(子)이라고 얻은 이름인데 아닌 것 같아 분한 마음이 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줄곧 일상의 재구조화를 꿈꾸며 사나보다.

 

낡은 사무실서 마주한 시커먼 사연들
1985년 둘째 아이를 낳고 서너 달 천장만 바라보며 눈을 껌벅이다가 시작한 첫 작업은 산업재해에 대한 글쓰기다. 후에 ‘산업재해와 직업병 그 문제와 보상’이라는 제하의 단행본으로 출판된바 있는, 일하다 다치고 병들었다면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산업재해보상법에 대한 해설이다. 그 죄로(?) 한동안 산재상담이 주된 일과였던 세월도 있었다. 그때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네 가장, 남성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종로 3가 허름한 사무실 책상 앞에서 나와 얼굴을 맞대고 앉아 시커먼 사연들을 풀어냈다. 태백, 거제, 또 하늘을 날아 리비아까지 흩어져 일하다 다치고, 병을 얻어 이제 인생의 막장 앞에 서게 된 사람들…. 그들은 만신창이가 되고 때론 목숨까지 던져질 처지가 되어 어디서건 죄지은 듯 어깨를 펴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들도 나도 암울했다. 그리고 때때로 화가 치밀었다. 상담을 끝내면서 나는 지을 수 있는 가장 험악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그렇게 하시려면 다음엔 오지 마세요!” 그렇게 격해졌던 이유는 세 가지다. 언제든 일이 터질 수밖에 없는 노동현장, 산재를 부인하는 회사와 노동부의 완벽한 입맞춤, 냄비랑 담요랑 싸들고 들어가 산재인정을 받을 때까지 사무실 바닥에 누워야 한다고, 그렇게 하겠다고 주고받았던 나와의 약속은 삼켜버리고 말 한마디 못하고 막걸리만 퍼마시고 내 앞에 선 그와 그의 처진 어깨!

한동안 지지고 볶으며 그 일을 계속하다가 ‘일하다 얻게 된 경견완증후군은 직업병’이라는 인정을 받아낸 모방송국 사무직여성노동자였던 최00 씨 상담을 끝으로 손을 놓았다. 표면상의 이유는 보건의료·노동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서는 것이 옳다는 것이었지만 기실은 ‘이제 다시는 (못하겠다)’이었다.

 

참여사회 2015년 9월호 (통권 226호)

 

건강은 온전과 안녕에 이르는 것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지난해 겨울, 김지형 전 대법관으로부터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에 참여해 달라는 제안이었다. 나는 그대로 빨려들었다. 그렇게 빠른 결정을 하게 된 것은 ‘아픔’과 ‘반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추운 겨울에 시작한 조정위 활동은 숨 막히는 여름에 끝났다. 조정안이 나왔지만, 흔쾌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직 난항 중이다. 여름을 넘기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접고, 모두에게 상처를 덜 남기고 또 다른 불행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완성하기 위해 조심스러운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인간에게 건강이란 무엇일까? 1946년 세계보건기구가 출범하면서 내린 정의는 이렇다.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육체적·정신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온전한 상태이다.” 

한 학자는 여기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건강은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함이 있고 없는 이분법적 상태가 아니라, 다양한 차원에서 온전하고 안녕에 이르는 상태다. 안전도 마찬가지다. 안전은 단순히 사고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사고가 배태하고 있는 전 과정을 포괄하고 있다. 질병은 체질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아니고, 사고는 재수 없어 일어난 우연이 아니라는 인식의 변화는 그 원인과 과정을 사회적으로 관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건강과 안전은 ‘지속가능성’을 요구한다.”
맞는 말이다. 최근 우리는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기막힌 사건들을 겪으며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 ‘온전하고 안녕’인 상태에 이르는 방안을 찾고자 힘을 모으고 있다. 허망하고 고달픈 영혼을 우리 함께 보듬어야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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