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7월 2016-06-29   1412

[통인] 조들호 이후, 로봇이 키운 인간

조들호 이후, 로봇이 키운 인간

만화가 해츨링

글. 박상규 전 오마이뉴스 기자. 회사를 그만둔 지금은 지리산 자락에서 사는 백수지만, 여전히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다. 
사진. 박영록

이후가 기대되는 사람이 있다. 지금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괜찮은 실력에 좋은 철학까지 겸비한, 게다가 성실한 발까지 가져 훗날 사고를 칠 것 같은 사람.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이하 조들호)의 원작 만화 작가 해츨링(김양수)이 그렇다. 

지난 6월 20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1층 카페 통인에서 그를 만난 이후 자꾸 생각나는 건, 그의 얼굴을 적신 땀방울이다. 날이 더운 탓에 그의 얼굴에선 연신 땀이 흘렀다. 현실의 한국 사회에서 만나기 어려운 조들호라는 캐릭터를 만들기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지 짐작이 갔다.

한국에서 의학, 법학 등 장르 만화를 만나는 건, 곤란한 일에 빠졌을 때 정의로운 동네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것만큼 난망한 일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해츨링은 이상한 사람 취급받으며 사법연수원 홈페이지 드나들고, 현직 변호사의 ‘빨간줄’ 학습을 받으며 만화 법정물 장르 만화를 독자 앞에 내놨다. 

가만히 앉아 만화만 그리는 행복한(?) 처지도 아니었다. 일주일에 2~3일을 공장에서 일하며, 남들보다 늦은 서른둘의 나이에 데뷔했다. 데뷔작이 방송까지 탔으니 어깨에 힘을 줄 만도 한데, 천성적으로 그런 성정이 아닌 듯했다. “먹고 살려고”, “남들이 안 그려서”가 조들호 출생의 비밀이었다. 멋있는 멘트를 기대했던 사람에겐 맥이 풀어지는 말이었지만, 해츨링은 자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인 듯했다.

하마터면 독자들은 해츨링을 종교계와 농업계에 빼앗길 뻔했다. 해츨링은 목사를 하려다가 만화가로 돌아섰고, 만화를 그리다가 다시 사과 농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조들호>가 히트를 쳤으니 한동안 해츨링의 외도는 없을 듯하다. 

운이 좋으면 독자들은 조만간 사이보그가 아이를 키우는 희대의 육아일기를 통해 ‘인간은 언제부터 인간다워 지는지’, ‘인간 사회에서 인간 답게 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고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듯하다. 

해츨링은 또다시 낑낑거리며 알파고를 분석해야겠지만 어쩌겠는가. 작가가 고통스러워야 독자가 행복한 걸. 부디 알파고 학습에는 영어가 그리 필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해츨링의 말을 직접 들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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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조들호> 이후 취재하는 일이 좀 편해졌겠다.
아니다. 취재가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만화가로서 정식으로 고료 받고 생활한 지는 3년 됐는데, 예나 지금이나 취재는 쉽지 않다.

    현재 서른다섯 살이면, 이전에 다른 직업이 있었나?
그걸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주일에 2~3일은 공장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조들호>를 그린 계기는? 
예전에 시사주간지 <시사인>에서 봤는데, 경기도 의정부에 ‘동네변호사 카페’라는 걸 만든 변호사가 있더라. (<시사인> 241호 – 커피 한잔 하듯 들르는 ‘동네 변호사’ 사무실) 2층은 카페, 3층은 변호사 사무실로 만들어 누구나 쉽게 변호사를 찾을 수 있게 했다. 그 변호사가 처음 수임(?)한 사건이 강렬했다. 전 재산인 전세금 500만 원 중 300만 원을 떼일 뻔한 할머니의 일이었다. 동네 변호사의 전화 한통으로 일이 해결 됐고, 할머니는 골뱅이와 화장품으로 수임료를 줬다고 하더라.
‘법조 카르텔’이란 말이 있잖은가. (법조인들이) 조폭처럼 자기들만의 세상을 공고히 했다는 건데, 그 동네 변호사는 문턱을 낮춰 법률 자문이 필요한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조들호>의 컨셉은 그 동네 변호사에서 따왔다.

    왜 하필 법정물을 그렸나?
먹고 살려고 그렸다. 화려하게 그리고 치밀한 스토리를 쓰는 작가들이 있는데, 나는 그럴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하고 싶었다. 메디컬(의학) 만화를 하려 했는데, 거긴 영어가 너무 많더라. 나는 영어를 못한다. (웃음) 그나마 국어로 된 걸 하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법정 만화를 선택했다.

    영어는 아니어도, 법정물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대학 기독교 동아리에서 같이 활동했던, 법학 대학원에 입학한 친구와 함께 하면 되겠지 했는데, 너무 쉽게 생각했다. 당연히 대학원생은 (검사, 변호사 세계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르더라. (웃음) 그래서 <다음> 아고라, 사법연수원 홈페이지 등에 글을 남겼다. 
‘만화가를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변호사 취재에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정식 만화가로 데뷔할 수 있지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 돈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나는 큰 마음 먹고 글을 썼는데 (연수 측에서) ‘여기에 장난 글 올리면 안 된다’고 반응이 왔다. 다행히 아고라 통해서 박진희 변호사(법률사무소 소호)랑 연결이 됐고, 그 분이 지금까지 자문을 해준다.

국내 최초 법정 만화 <동네변호사 조들호>. 최근 KBS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조들호> 취재를 하면서 법의 부조리함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일명 ‘테이크아웃드로잉 사태’도 취재했었는데 많이 놀랐다. 합법적으로 용역업체 직원이 (세입자의 집에) 창을 깨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충격이었다. (세입자와 용역업체 직원이 충돌하면) 경찰은 ‘민사니 알아서 하라’고 하고. 당연히 법은 약자를 보호하고, 법 집행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취재를 해보니 법 자체가 문제더라. 어이가 없고, 이게 정말인가 싶었다.
법률 서비스는 공정하고,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릴 복지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누구는 천문학적인 돈을 이용해 죄가 있어도 가벼운 처벌로 잘 빠져 나가고, 반대로 누구는 무거운 벌을 받고…. 이런 게 답답하고 안타깝다. 

   그런 답답한 마음이 조들호 캐릭터를 만들 때 많은 영향을 줬나?
욕심이 과했는지, 여전히 내 만화에 불만이다. 의미는 참 좋은데, 사람들이 많이 안 보는 사례가 있다. 이유는 하나다. 재미가 없으니까. ‘내 창작물이 너무 통속적이고 속칭 ‘싸 보이면 어쩌나’ 하고 두려워하는 분들이 있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 산업이 아프리카를 어떻게 피폐하게 하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는 잘 생긴 배우가 나오고, 액션, 야한 장면도 있다. 통속적인 장면으로 영화적 재미를 주면서 사회적 메시지도 놓치지 않는 작품이다. 
<조들호>를 통해 사회적 의미를 던져야 하고, 독자들 역시 그런 이야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만화가로서, 대중 만화를 그리는 사람으로서 먼저 생각할 것은 ‘재미’라고 본다. 좀 더 재밌게 그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점에서 좀 불만이다.

    20대 청년 시절에도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 
그때는 목사가 되려했다. 당시에는 만화잡지 시장이 크게 줄었고, 한국 만화를 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작가들 잘못이 크다. 독자는 CSI 등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수준이 높아졌는데, 만화가들과 잡지 제작자 등 만화시장을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여전히 독자를 애 취급했다. 일본 만화를 거의 그대로 베끼기도 했다. 만화가 지망생 처지에서 그런 문화에 환멸을 느끼고, 직업으로서의 만화가에 회의감도 들었다. 
그때 종교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진지하게 목사를 생각했다. 종교계에 변화를 일으키고 싶었고, 대안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목사를 하는 것보다 좀 더 소박한 개인의 꿈을 실천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게 낫겠다 싶어 만화가를 준비했다.

    어떤 목사가 되고 싶었나.
노동하는 목사가 되고 싶었다. 개신교의 문제 중 하나가 과도하게 쏟아져 나오는 목사 인력이다. 사회 복지나 정의를 위해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기독교 측은) 성도 수가 더 많아지길 기원한다. 그런데, 기독교인인 내가 봐도 요즘 기독교는 매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목사는 많아지고, 또 목사는 수입을 전적으로 성도들의 헌금에 의존하지 않나. 그러다보니 돈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노동으로 밥벌이를 스스로 하는 목사가 되고 싶었다. 사실 말이 좋아서 ‘성도’지, 다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힘들게 일터에서 일하고, 일요일에 잠시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지 않나. 나는 일을 하면서 성도들의 삶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말을 들어보니까, 평소의 생활과 철학 속에서 <조들호>가 탄생한 것 같다.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냥 밥벌이를 하면서 살고 싶었다. 나는 다른 작가들보다 늦게, 32살이 되는 해 3월에 데뷔했다. 버스가 하루 한 번 들어오는 안동의 시골이 고향인데, 사과 농사가 잘 되는 곳이다. 데뷔 직전인 2월까지 고향에서 사과 농사를 해볼까 많이 고민했다. 
실제로 어머니, 아버지가 고향 사람들에게 연락해 ‘우리 아들이 갈 거 같은데, 혹시 일꾼 필요하냐’라고 묻기도 했다. 바쁘게 살다보니까, 내 자신에 대해서 ‘내가 이런 인생을 살았지’ 하는 생각 자체를 못 했다.

    조들호 이후에는 몸값이 올랐을 것 같은데.
또래의 사람들처럼 자동차, 집 등에 관심이 없다. 게임이나 장난감 소비에는 관심이 많지만. (웃음) 얼마 전까지 내가 얼마를 버는지 몰랐다. 통장에 잔고가 좀 있으면, ‘다행히 이번 달엔 밥 먹고 살 수 있겠네’ 하면서 살았다. 여자친구 만나면서 정신을 좀 차리고 있다. 운이 좋아서 그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으니, 요즘 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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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가를 준비하면서 어떤 투자를 많이 했나. 
20대 중반에는 그림을 예쁘게 그리면 그냥 만화가 되는 줄 알았다. 그림을 그려도 결국은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데, 딱히 스토리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대학에서 시각다지인을 전공했는데, 수업 잘 안 들어가고, 다른 학과 수업 듣고, 만날 도서관에서 책 읽고 그랬다. 그래서 교수님과도 좀 싸우고. 사실 20대 중반이면 어른인데, 학교에서는 애 취급을 하더라. 그때는 오기가 있어서, 일부러 교수님들이 절대 모를 것 같은 걸 찾아서 공부하기도 했다.

    그때 읽은 책들이 많은 자산이 됐을 것 같다. 
솔직히, 수업 안 들어가서 다행이지 싶다. 그때 좀 더 책을 많이 읽을 걸, 그러면 좀 더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느 작가를 좋아하는가. 
최규석 작가. 직접 뵌 적은 없고, 멀리서만 봤다. 감히 말도 못 걸었다. 최 작가는 스스로를 ‘노골리즘 작가’라고 하는데, 나도 어디에 가면 ‘노골리즘(주제와 문제의식을 에둘지 않고 직접 이야기하는 것)’을 따라서 이야기한다. (웃음) 최 작가와 좀 더 같은 부류의 사람이 되고 싶다. 같이 뛰는 러너, 함께 트랙을 뛰는 주자라는 생각에서 다른 여러 작가들도 존경하고 동료애를 느낀다. 

    왜 최규석 작가를 좋아하나. 
만화가 너무 재밌다. <송곳>은 정말, 명언 제조기다. 이분은 명언을 공장에서 납품 받아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최 작가의 실력이 너무 좋다. 만화 자체를 잘 만든다. 장작을 차곡차곡 잘 쌓고, 마지막에 불씨까지 잘 던지는. 사실 대부분의 작가는 장작을 못 쌓거나, 너무 성급하게 불씨를 던져서 일찍 불을 피운다. 그런데 최 작가는 장작을 잘 쌓고 마지막에 불씨도 멋있게 던지는 사람이다.

    말대로 차곡차곡 잘 쌓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사이보그가 사람의 아기를 키우는 만화. 굳이 따지면 ‘인조인간 육아심리물’ 같은 거다. 최근에 알파고, 세월도 참사와 그 이후의 일을 보면서 ‘도대체 사람은 언제부터 사람일까’가 궁금하더라. 로봇이 아기를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만화를 그려서 그런 문제 의식을 독자와 나누고 싶다. 귀여운 아기가 나오고 귀엽게 미소 짓는 선에서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동심리학이나 발달심리학을 배운 사람들과 함께 협업을 해서 ‘인간은 언제부터 인간다워지는지’, ‘인간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조들호>가 데뷔작인데, 3년째 그리다 보니 바람 피고 싶은 마음도 있다. 현실적인 만화보다 SF 작품을 그려보고 싶다. 좀 더 호쾌한 액션도 나오고, 그래서 <네이버> 상위권에 진입하고 싶기도 하고.(웃음) 독자로서 32년 살았다. 작가 이전에 독자의 마인드로, 독자라면 이런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다.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 같다. 
최대한 재밌고 쉽게 그리는 만화가가 되고 싶다. 사람은 모두 다르고 저마다의 세계가 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나는 서로의 세계를 연결하는 나룻배 같은 만화가를 희망한다. 다른 세계에 닿고 싶지만, 기회가 없고 시간도 없어서 닿을 수 없는 서로의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사람. 작가가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건 거짓말이다. 기존에 축적된 세계 속에서 새로운 걸 보여줄 뿐이다. 100% 창작? 말도 안 된다. 기존의 세계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나룻배의 사공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 

  만화가의 삶이 무척 힘 들 것 같은데.
현재 치질을 앓고 있다. 혼자 종일 방에서 팟캐스트 틀어놓고 끊임없이 그린다.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가끔 편의점에 가는데, ‘얼마 나왔습니다’라는 편의점 직원의 말이 반가울 때가 많다. 고독하고 힘들어서 혼자 소리 지른 적도 있다. 팟캐스트를 틀어놓는 건 마치 누군가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보통사람의 삶을 지향하면서, 사회 주변부 인물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인기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걸 얻기 위해 이상한 노력을 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휴대폰 싼 거 찾다가 열 받아서 휴대폰 가게 차렸다’는 말처럼 <조들호>를 그리게 됐다. 법정 만화를 찾아보니 없어서 속이 상하고 화가 났다. 
취재해서 그리고 쓰는, ‘취재형 만화’를 하는 작가들이 많았으면 한다. 다른 작가들에게 제안하기도 하는데, 많이 어려워한다. 작가 혼자의 머리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세계, 여러 사람의 협력으로 작품을 만드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한국 만화계에 불만이 많다. 왜 아직까지 법정물이 없었나. 왜 메디컬 만화는 여전히 없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장르 만화가 나와야 한다. 작가가 편한, 자기만족을 위한 만화를 그리면 한국 만화계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독자 잃고 콘텐츠 힘 자체가 약해진다. 앞에서 메디컬 만화를 이야기했는데, 나중에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의사들을 그리고 싶다. 병원이라는 고정된 공간이 아닌 전쟁터나 분쟁 지역 등에서 활동하는 의사를 통해서 여러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거 같다. 이걸 꼭 나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좋은 작가가 먼저 만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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