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8월 2016-08-01   1299

[특집] 왜 지금  기본소득인가?

특집1_조건 없이, 모두에게, 기본소득

참여사회 2016년 8월호(통권 237호)

 

왜 지금 
기본소득인가?

 

 

글.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최근 한국 언론에서도 ‘기본소득’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기본소득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지난 4.13 총선에서는 녹색당과 노동당이 기본소득을 정책공약으로 내걸었고,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나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도 기본소득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는 2016년부터 연 50만 원의 적은 금액이지만, 만24세 청년들에게 ‘청년배당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기본소득’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은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정치공동체(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조건 없이 받는 소득’이다. 재산이나 소득이 많든 적든, 노동을 하든 하지 않든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받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황당한 얘기쯤으로 취급받았을 기본소득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시대적 상황 때문이다. 날로 심해지는 불평등과 자동화·정보화·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줄어드는 일자리, 그리고 기후변화와 같은 생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 바로 기본소득이기 때문이다. 

 

비노동소득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자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기본소득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기본소득이 비非노동소득이라는 것이 큰 이유이다. 기본소득은 노동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보장되는 소득이기 때문이다. 비노동소득으로서의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연령대별로 느끼는 차이가 크다. 어느 나라든 젊은 층은 기본소득에 대해 찬성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구해서 먹고 살아라’가 아닌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이가 많을수록, 그리고 본인이 힘들게 일하고 있다고 생각할수록 기본소득에 대한 거부감은 더 크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를 냉철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과연 지금 사회에서 비노동소득을 얻고 있는 사람들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부동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임대료의 형식으로 막대한 비노동소득을 얻고 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부동산을 샀는데, 뭐가 문제냐?’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높은 부동산 가격은 노동의 대가라기보다는 투기와 거품의 영향이 크다. 

금융자산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도 비노동소득을 많이 벌어들이고 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경우에는 주식배당으로만 1년에 2천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 중에는 정경유착과 부패, 투기의 몫이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최상위층에 있는 사람들은 많은 비노동소득을 받고 있는데, 정말 소득이 필요한 사람들은 ‘기본소득’이라는 비노동소득을 받으면 안 되는 것일까? 

 

참여사회 2016년 8월호(통권 237호)

기본소득은 시민 자격으로 받는 배당금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기본소득은 시민 자격으로 받는 배당금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다른 말로 ‘시민배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공유자원에 대해서는 누구나 지분이 있기 때문에 배당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1982년부터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모든 주민들에게 매년 배당금을 지급해 왔다. 1982년에 알래스카에서 태어난 사람이 있다면, 그가 주정부로부터 매년 받은 돈을 합쳤을 때 우리나라 돈으로 5천만 원이 넘는다. 

석유는 본래 누구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공유재이기 때문에 알래스카주는 이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석유만 공유재인 것은 아니다. 토지를 비롯해 천연자원, 물, 공기, 햇빛, 바람, 아름다운 풍광 등 자연적 공유재는 주변에 널려 있다. 그런데 이 자연적 공유재를 이용하여 특정한 기업이나 개인들만이 돈을 벌고 있다. 

자연적 공유재뿐만 아니라 인터넷, 금융시스템, 방송주파수 등 사회 공동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 공유재들도 많다. 고소득자가 벌어들이는 소득 역시 온전히 자신의 ‘잘난 능력 덕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회공동체가 있고, 과거로부터 축적된 지식과 정보가 있는 덕분에 ‘잘난 개인’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은 개인이 버는 소득의 90%는 그 사회공동체가 가진 공통의 자산 덕분이라고 보고, 소득의 70%는 세금으로 걷어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았다. 이처럼 사회의 공유자원을 활용해서 시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자는 것이 기본소득이라는 생각의 뿌리이다. 

 

기본소득과 최저임금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
최근 국회 앞에서 최저임금 1만 원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이 있었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과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보완하고 지지하는 관계에 있다. 제임스 미드 같은 경제학자는 일찍부터 ‘일자리가 줄어들수록 비노동소득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면 노동자들은 협상력이 약화되고 더욱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노동자들은 임금 외의 안정된 소득원을 갖게 되고, 부당한 노동조건에 대해 싸울 수 있는 ‘비빌 언덕’이 생기게 된다. 무노동-무임금 원칙 때문에 파업도 하지 못하는 비정규·저임금 노동자들에게 기본소득은 실질적으로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현재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산업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행위에 대해 탄소세 같은 세금(또는 부담금)을 물리고, 그 돈을 시민들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하자는 아이디어가 추진되고 있다. 그럼으로써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쪽으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 개인들은 물가가 올라가더라도 배당금을 받기 때문에 이런 제도에 동의할 수 있다. 실제로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럼비아주가 2008년부터 작은 규모로 이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재원 마련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조세개혁과 예산개혁을 단행하면 충분히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부담률(조세+의무적 사회보장기여금)은 OECD 평균에 비해 GDP 대비 10% 정도가 낮다. OECD 평균수준으로만 세금을 걷고, 토건사업으로 낭비되는 예산만 줄여도 전국민 기본소득이 가능하다. 한꺼번에 시행하기 어렵다면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법도 있다. 

기본소득은 꿈같은 얘기가 아니다. 이제부터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라면 기본소득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보다 많은 시민들이 최저임금 1만 원과 함께 기본소득을 요구하게 될 때,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특집. 조건 없이, 모두에게, 기본소득

1. 왜 지금 기본소득인가?    하승수
2. 세계는 기본소득 실험 중    김동환
3. 제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강남훈
4. 한국에서도 기본소득 가능할까?    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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