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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07월
  • 2017.07.27
  • 3562

변영주를 요약하다

변영주 회원/영화감독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사진. 김경희 미디어홍보팀 간사

 

변영주


조금 먼저 깨달은 자 
그녀는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지지선언을 했다. 2012년 총선 때까지는 진보신당에 있었고 당의 이름이 노동당으로 바뀐 뒤 2016년에 탈당계를 냈다. 당적 없이 얌전히 지내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뉴스를 보는데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에서 농성중인 사업장 하나를 해결해서 자기네들이 장미꽃을 꽂는 행사를 하는 거예요. 그걸 보다 저도 모르게 울었어요. 아, 저런 일을 돕고 싶다, 저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바로 온라인으로 민주당에 가입했죠. 폄하하는 건 아니고, 저는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지지세력이 윤리적인 고민을 많이 하는 리버럴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한국사회에서 그러한 정권교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적어도 당장 내일 희망이 없는 사람들한테 어떤 지도 한 장씩은 줄 수 있지 않는가라고 생각하는 거죠.”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의 일부로 그녀는 지금의 정권을 선택했다. 그 선택에 후회는 없는지 물었다. 
“토론회 때 동성애 문제에 대해 선명하게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한 건 바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말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건지 물론 전 잘 알아요. 총선 때 소위 차별금지법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진선미 의원이나 이런 사람들이 지역구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그 흉악한 폭력을 직접 봤거든요.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고, 근데 전 진심으로 문 대통령 임기 내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거라고 믿어요. 그것의 첫 시작은 종교인 과세일 거고. 성소수자 차별 금지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다고 해서 우리의 힘이 강해지는 건 아니잖아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설득해내는 것이 중요한 거죠.”


그녀는 그것을 ‘먼저 깨달은 사람의 의무’라고 불렀다. 어쩌다 운 좋게 기회를 만나 먼저 깨달은 게 있다면 그건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이지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비난할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라고, 그녀는 내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그 눈빛의 강렬함이 그녀가 가진 사유의 유연함을 더 돋보이게 했다.
“마흔 살 이전엔 정말 말을 못되게 했구요, 주로 선언적으로 말했어요. 근데 지금 나한테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주의자인가가 아니라 특정 사안에 대한 나의 생각은 무엇인가예요. 그리고 굳이 갈등하는 나를 막으려 하지 않아요. 이를 테면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터무니없는 범죄자를 볼 때는 저런 인간은 그냥 정리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게 갈등하는 나한테 솔직해져야 사형제 폐지에 대해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들,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들과 정제되

 

그물에 걸리지 않은 자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훑어본다. 1993년 아시아의 국제매매춘을 다룬 다큐영화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으로 데뷔했으니 20년이 넘는 세월을 감독으로 산 셈이다. 그 긴 세월 때문에 더욱더 도드라지는 숫자가 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일, 2017년 5월 8일. 한 달하고 14일 된 회원의 변명(?)을 들어보자. 
“그날, 김덕진(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씨가 술자리로 불러서 나갔어요. 가보니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우르르 앉아 있더군요. 안진걸 사무처장이 회원가입서를 주는데 그때 참여연대에 아직 후원을 안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약간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고, 그 자리에서 참여연대랑 다산인권센터랑 몇 군데를 동시 가입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술 먹다 가입서 주길래 이름을 썼다? 안진걸 때문에 쓴 거 아닙니다. 그걸 꼭 밝혀주세요. 누구였어도 했을 거라고.”


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조합, 지성과 위트. 그녀의 농담에 긴장으로 팽팽했던 내 배의 근육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영화작업을 안 하실 때는 주로 시민운동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지는 않구요. 그 정도로 시민운동이 널널하고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부탁받는 일은 사회를 봐 달라, 강연을 해 달라 이런 건데 이건 시민운동하는 데서는 일도 아닌 것 같거든요. 전 그저 비정규적인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은 사람? 그래서 부탁이 들어오면 돕는 거죠.”

 

남는 시간엔 쌍용자동차 농성장에서 사회를 보거나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 고공시위 현장에 가는 감독. 그런 그녀의 입에서 이 사회의 엄청난 부조리 하나가 폭로된다. 

“근데 저 블랙리스트에 없어요. 하하하.”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지적해야 할 것은 이전 정권의 무능인가, 관료조직의 한계인가.

“블랙리스트가 2012년도에 문재인 지지선언 한 사람부터 시작되었잖아요. 생각해보니까 전 지지선언을 안 한 거예요. 그때 한창 유세장에서 지원유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지서명을 받는지도 몰랐어요. 세월호 때는 제가 서명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한 사람 중에 한 명으로 이름이 들어가 있어서 직접적인 서명은 안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줄 알았으면 박근혜정부 4년 동안 뭐라도 받아두는 건데, 아쉽죠.”

 

정리하자면, 더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거물들이 오히려 그물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 이 웃픈 일화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크게 사고치는 게 낫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영화나 문화예술계에서 블랙리스트로 힘들었던 사람들은 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독립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이나 연극을 하시는 분들 혹은 부산국제영화제처럼 정부나 지자체의 자금이 투입돼야 하는 쪽에 계셨던 분들이에요. 재정적으로 가장 취약한 이들을 먼저 흔들고 나서는 거죠.”

 

권력이 휘두르는 주먹에 가장 먼저 매를 맞는 사람들. 그들의 뒤편에 서 있어 지금은 아닐지라도, 언젠간 우리들 중 누군가의 차례가 올 것이기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는 시혜의 문제가 아닌 호혜의 문제다. 

 

출세하고픈 자 
인터뷰 중간 중간 그녀는 자신이 운이 좋은 사람, 좋은 선택을 많이 해 온 사람이란 말을 했다. 나이를 잘 먹은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다. 

“아, 이 질문 어렵다. 개인적으로 저는 저한테 자주 반해요. ‘대단한데, 잘했어!’ 이렇게. 인간으로서도 그런데, 감독으로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을 때 반하죠. 그런 순간이 <낮은 목소리> 1편과 3편 그리고 <화차> 이렇게 세 번 정도 있었던 같아요. 영화 개봉 후 첫 6개월은 타인의 평가가 중요하구요, 1년이 지난 후엔 스스로의 평가가 중요하죠. 그 이후에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면 다음 작품을 시작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 영화 <낮은 목소리>. 처음엔 ‘저 할머니들이 뭔데 나를 쫓아내지?’하는 억울함에서 시작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작업, 그것이 그녀의 영화 인생의 시작점이었기에, 그녀의 젊음은 시간을 두고 성장할 수 있었다.

“영화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더 잘 만들도록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한 편을 완성하고 났을 때 내 상태가 산산이 재가 되어 있는 정도가 아니면 그 뒤에 꼭 후회가 생기죠. 그래서 평소에도 일상을 규칙적으로 꾸리려고 노력해요. 감독은 영화의 주인공 옆에서 같이 숨 쉬는 사람이 되어야지, 주인공을 창조하겠다고 하늘로 올라가는 순간 영화는 날아가 버리고 말죠.”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제어하고 강박하는 걸 좋아한다. 그 힘이 외부에서 올 때도 스스로가 동의할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얘가 시키는 건 다 해야지’ 하며 그녀가 동의한 외부세력들, 시인 송경동,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진숙,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동민, 인권운동가 박래군,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박진…. 이들의 숫자가 제발 두 자리를 넘지 않았으면 한다고 그녀는 절규하듯 말했다. 

“인터뷰에 쓰면 되게 웃길 것 같긴 한데, 가끔 더 출세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니까 변영주가 어떤 집회에 가면 확실히 도움이 된다, 이런 차원에서요. 사회적 영향력이라고 말하면 되게 멋있게만 들리니까, ‘출세’라는 말이 훨씬 더 나를 얍삽하게 표현하는 것 같아서 좋아요.”

 

 “제가 집회나 농성장 같은 곳을 다니며 이런 저런 일을 하는 것도 사실은 내 일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에요. 제가 쌍용자동차 농성장에서 사회를 보면서 했던 말이 있어요. 결국 영화 하는 사람들이 잘되려면 사람들이 극장에 많이 와야 하잖아요. 금요일 밤에 가족들끼리 혹은 친구들끼리 영화 한편 보고 밥 먹을 정도의 여유가 모두에게 있다면 극장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겠죠. 삼성 이재용도 극장 올 때 영화표 1장을 사고 평범한 이들도 1장을 사는데 그렇다면 우리한테 중요한 건 평범한 사람 100명이 금요일 밤에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는 삶의 조건인 거예요. 그런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게 곧 영화 산업에도 도움 되는 일인 거죠.”

 

여기까지 쓰고, 남은 녹취록 분량을 체크했다. 총 13장 중 4장을 정리했으니 남은 건 9장. 그 안에 담긴, 겉보기와는 달리 눈물 많고(국가행사를 보고도 운다), 늘 구체적 사안 안에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현재의 자신에 대해 선명하려 애쓰며 때론 쿨하게 사과하는 게 더 멋지다고 생각하는 변영주의 이야기를 대체 어디다 풀어 놓을 것인가….

 

변영주 요약본
하여, 남은 9장을 무식하고도 엣지 있게 요약해보겠다. 

 

변영주는, 
① 자신이 좋아하는 일(그게 영화든 데모든)만 하고 있기에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 보다 자신이 더 편하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 복잡해야 마땅하고 피곤해도 마땅하고 경제적으로 불안한 건 당연한 거고 그게 공평하다.  
② 이젠 술을 마셔도 더 이상 취하지 않는다. 취하기도 전에 먼저 체력이 끝나버리기 때문에 과로로 인한 강제 귀가가 이뤄진다. 해장음식도 필요 없다. 약이나, 링거라면 모를까.  
③ 2020년도에 찍기로 한 영화계약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때까지는 잘 살아야 한다.  
④ 이젠 누군가에게 반해도 ‘아, 반했다. 끝.’ 나이는 결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기에, 때론 반하는 것도 귀찮다.  
⑤ 우아한 노인네 말고 용감한 꼰대가 되는 게 훨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의 잘못도 인정해야 하지만 젊은 세대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 정신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전 재산을 줄 건 아니잖아? 그렇담, 그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함께 의논해 줄 수 있는 꼰대가 돼야한다.  
⑥ 독립영화 진영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을 위한 생계지원펀드를 만들고 싶다. 먹고사는 걸 지원해준다면 그 친구들이 더 불행해질 수 있지 않을까? 딴 생각 안하고 미래가 없는 이 일에 계속 매달릴 테니.
⑦ <화차>를 찍느라 송경동 시인이 희망버스에 함께 타자고 전화했을 때 같이 가지 못했다. 그날 밤, 침대를 놓고 부러 바닥에서 잠을 잤다.  
⑧ 드디어 희망버스에 올랐던 날, 크레인 위의 김진숙과 통화를 하다 눈물 콧물 쏟아가며 대성통곡 했다. ⑨ 자신이 모르고 지나가는 어떤 일이 있을 까봐 고민한다. 영화판에 성차별이 그다지 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내 경험의 한계 때문은 아닐까? 어느 날 무심코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꼰대가 되는 건 아닐까, 늘 긴장하며 산다.  
⑩ 다큐와 상업영화는 제작비와 장르 차이밖에 없다. 전자는 내가 지켜봐야 하는 것, 후자는 내가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  
⑪ 모든 걸 다 갖고 싶어 할 때 사람은 병신이 된다. 나의 장점은 뭘 안 가질 건지부터 결정하는 데 있다. 그로 인해 스스로가 즐거운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3년 동안 같은 옷만 입고 다닐 자신도 있다.  
⑫ 요즈음 다음 영화 <조명가게>를 준비 중인데, 이게 현재 가장 하고 싶은 영화다.

변영주 감독 대표작 

 

낮은목소리밀애

> 낮은 목소리 3부작 (1995~1999) > 밀애 (2002) 

 

발레교습소화차

 

> 발레교습소(2004)                    > 화차 (2012)

 

영화를 보는 어느 금요일 밤
먹구름이 나타났다. 하늘 저 끝에서부터 컴컴해져 오더니 어느새 온 동네가 진한 어둠에 휩싸인다. 기분 나쁜 바람이 길목을 돌며 음산한 신음을 토해내고 이내 우울한 회색의 도시 위로 거친 빗줄기가 쏟아진다. 베란다 창문을 닫던 나는 유심히 날씨를 살피며 아이들을 향해 말한다. 얘들아, 이런 날씨엔 말이지…. 녀석들이 내 말을 자르며 대꾸한다.
“알아, 알아, 공포영화 보기에 쥑이는 날씨라고?”
나한테 삶은 날씨와 연관이 있으며 날씨는 영화와 연관이 있다.
 
“제가 집회나 농성장 같은 곳을 다니며 이런 저런 일을 하는 것도 사실은 내 일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에요. 제가 쌍용자동차 농성장에서 사회를 보면서 했던 말이 있어요. 결국 영화 하는 사람들이 잘되려면 사람들이 극장에 많이 와야 하잖아요. 금요일 밤에 가족들끼리 혹은 친구들끼리 영화 한편 보고 밥 먹을 정도의 여유가 모두에게 있다면 극장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겠죠. 삼성 이재용도 극장 올 때 영화표 1장을 사고 평범한 이들도 1장을 사는데 그렇다면 우리한테 중요한 건 평범한 사람 100명이 금요일 밤에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는 삶의 조건인 거예요. 그런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게 곧 영화 산업에도 도움 되는 일인 거죠.”

 

신화학자 나카자와 신이치의 <카이에 소바주(야생적 사고의 산책)>시리즈 5권은 ‘인간은 곰이고 곰은 인간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주 안의 모든 것이 그렇다. 굳이 대칭성인류학이니 무의식에서 발견하는 대안적 지식이니 떠드는 어렵고 지루한 책을 다섯 권씩이나 읽지 않아도, 나는 감독 변영주의 삶이 해고노동자 고동민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나의 삶이 타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할 때, 사람은 병신이 된다. 내가 이런 거친 표현을 지면에다 쓰는 것도 다 내가 변영주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밖엔 오랜 가뭄의 끝을 알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영화를 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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