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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10월
  • 2017.10.01
  • 178

새 대법원장에게 건네는 
‘이용훈 코트’의 선물 보따리

권석천 JTBC 보도국장 

 

글. 박유안
기웃기웃 번역가. 알트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는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이며, ‘쟌 모리스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밤엔 주로 땅고 추며 논다. 맘 놓고 춤 출 수 있는 좋은 세상을 염원한다.
사진. 박영록

 

 

원고 마감 즈음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문재인 정권 사법개혁의 리더가 될 그는 어찌 보면 행운아다. 국회에서의 처리과정이 그랬고, 지난 개혁정부에서의 사법개혁 실험을 속속들이 보여주는 선물보따리가 준비되어 있는 점에서도 그렇다. 


대법원장은 사법부 수장으로서, 법관 3천여 명과 법원공무원 1만 3천여 명에 대한 인사권을 지니고 대법관 13명에 대한 임명 제청권,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한 지명권을 행사하는 큰 권력의 자리이다. 지난 노무현 정권 때 그 자리에 올랐던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이하 ‘이용훈 코트’)을 다룬 책을 법조전문 베테랑 기자가 써냈다. 모든 법관에 대한 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을 지닌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관료화된 사법부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재판을 개혁하고자 했던 이용훈 대법원장과 이른바 ‘독수리 5남매’(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를 취재한 책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는 재판을 통한 사법개혁 실험과 그 좌절의 역사를 당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전한다. 책의 저자인 권석천 JTBC 보도국장을 만나 책 이야기를 나누며, 사법행정의 관료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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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반응이 뜨겁다.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 즉 ‘이용훈 코트’에 대한 책인데, 어떻게 쓰게 된 건가?
논설위원일 때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책을 준비 중이란 얘기를 들은 게 촉매가 되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77세 정도의 나이인데, 책도 책이지만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본인의 기억을 자료로 남겨둬야 한다고 설득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실 처음에는 독수리 5남매 얘기를 쓰려고 했는데, 그러면 판결 부분만 나온다. 대법관들은 판결에만 참여할 뿐, 대법관 제청 같은 다른 부분에서 충돌, 갈등 등 정치적이고 행정적인 내용은 대법원장만이 안다. 그래서 아예 이용훈 코트를 다루고, 독수리 5남매 얘기를 거기에 넣자 싶었다. 

 

오랜 법조 기자 경력의 논설위원이셨는데, 이 책은 회사 일로 취재한 게 아니라 개인 프로젝트로 시작하신 건가? 
개인 프로젝트였다. 이 책의 태동에는 기자로서의 자괴감이 작용했다. PD수첩 수사 등 큰 판결들이 나올 때 법조팀장이었는데, 기자들이 진보, 보수 매체 할 것 없이 다들 너무 도식적으로 기사화하는 게 아쉬웠다. 결론으로 나온 판결에 대해 진영논리로 접근해 유불리만 따지는, 결론만 가지고 매일매일 속보처럼 써버리는 기사들이 좀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판결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나 맥락을 취재해야 하는데 말이다. 

 

법조 기자들의 속보 중심 기사화 행태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은 어떻게, 어느 무렵에 생겨났는지?
경력기자로 중앙일보 입사하면서 ‘객관적인 거리’ 같은 게 생겼다. 새로운 조직, 새로운 문화에 들어간 거다 보니, 주류가 아니라는 생각, 전문성을 가지고 승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렇게 기자들의 모습을 조금 더 객관적인 위치에서 보면서 나름의 문제의식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책에서, 이번에 퇴임하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이 아닌 그 이전의 이용훈 코트에 주목했다. 
이용훈 코트의 시도나 실험들이 왜 중요한지 말하고 싶었다. 일단 현 체제인 양승태 코트에 대한 비판을 책 도입부에 실었다. 그런 비판을 통해 이용훈 코트의 실험들을 현재화할 수 있겠다 싶었다. 즉 이용훈 코트의 일이 2005~2011년까지로 끝난 옛날 얘기가 아니라 지금의 얘기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 

 

양승태 코트를 거치며 대법원이 보수화 상태로 되돌아간 것처럼, 공교롭게도 그때의 노무현, 지금의 문재인, 그때의 우리법연구회, 지금의 국제인권법연구회, 2003년 사법파동, 지금의 블랙리스트 파문, 사법개혁 저지 논란 등 비슷한 점이 굉장히 많다.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다.  

 

법원의 관료화 과정에 대해 국민들이 알기란 쉽지 않다. 오랜 법원 출입 기자로서 보건대, 법원은 어떤 과정을 거치며 관료화된 건가?
멀리 보면 1972년 유신 때부터다. 그래도 유신체제 이전엔 법관회의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유신체제가 들어서며 대법원장에게 권한 몰아주기, 대법원장을 통한 대리통치 체제가 탄생했다. 5공화국 들어 이 체제는 더욱 강화됐다. 직위와 기수문화로 서열화되고, 대법원장이 한마디 하면 판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위계질서 체제가 김대중 정부까지 이어졌다. 


2003년 사법파동은 그에 대한 반발이었다. 진보적인 인물도 대법관이 되어야 한다는 등 개혁운동이 일어났고 그 결과 10기수 가까이를 건너뛴 기수파괴를 하며 박시환, 김지형 대법관이 임명되었다. 그렇게 등장한 독수리 오남매가 보수일색이던 대법원 13인 체제에서 어엿한 소수파를 형성했다. 그에 맞춰 보수 쪽 의견들도 조금은 더 진일보한 쪽으로 움직였다. 그런 선순환이 이뤄지던 시기였다. 


그러다 2011년 9월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하고 2012년 초부터 서기호 판사의 재임용 탈락, 이정렬 판사의 중징계 등 판사들의 표현의 자유를 크게 침해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판사 사회가 위축되고, 서열 중심의 대법관 인사가 재개되고, 답답한 상황이 닥쳤다. 민일영 대법관이 퇴임 후 “선배들 힘들게 하는 판결 하지 말라.”는 말을 사법연수원에 가서 판사들에게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는 게, 눈에 보이는 관료화의 징표 아니겠나.

 

대법원장을 통한 정권의 사법부 대리통치, 국정원이 이일규 대법원장의 집을 턴 의혹 등 정권의 통제 시도는 끊임이 없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한 법원 내부의 문제제기는 없었나?
외부로부터의 통제 시도란 게 모두 테이블 밑에서 진행된다. 외부로부터의 압박은 암암리에, 일대일의 은밀한 관계로 진행되는 거라 알기 어렵다. 대법원장을 통한 대리통치가 여의치 않으면, 정권과 법원행정처나 지방법원의 주요 보직 판사들 사이에 직거래가 이뤄진다. “정권 바뀌면 대법원장이 30명 생긴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거다. 신영철 대법관 사태 때도 여러 외부압력 행사의 정황들은 불거져 나왔지만 조사가 제대로 안 이뤄지고 그저 월권이었다, “사법행정권이 판사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했다.” 정도의 경고로 끝났다. 사실은 그 배경에 무엇이 있었는지가 밝혀져야 한다. 쉽지가 않지만. 

 

문제의식을 지닌 언론인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겠다. 이번 책을 두고, 일선 판사들이 이러려니 했던 부분을 육성증언으로 밝혀주었다고, 판사들도 즐겨 읽는 책이 되었다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어렴풋이 알던 걸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반응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명박 정권 들어 대법관 제청하며 갈등하고 고민하는 내용들은 일선 판사들은 물론이고 대법관 자신들도 몰랐을 거다. 


또 이 책에서는 판결의 비밀주의를 좀 넘어서고 싶었다. 법원조직법에 따른 ‘합의 비공개 원칙’이 그간 금과옥조였다. 이 책에서는 약 20개의 판결을 두고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판결이 나왔는지를 밝혔다. 대법관들도 아마 ‘아, 그 판결이 저렇게 해서 나왔구나’란 걸 비로소 알게 되었을 거다. 


적어도 대법원의 판결이라면 다수의견, 소수의견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려져야 한다. 이용훈 코트 초기에는 대법원 심의과정을 녹음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10년, 20년 뒤에 공개하는 걸로 해서 말이다. “그러면 말을 마음대로 못한다.”는 반대 의견이 나왔다는데, 실은 너무 맘대로 말하는 게 문제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법 논리로 말하는 게 아니라, 국가보안법 사건이 올라오면 “얘네들 미군철수 주장하는 애들 아냐?” 그런 식의 비논리적 정서가 담긴 발언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내가 만난 한 지방법원 판사의 말이 참 옳다. 그는 “20년 넘게 판결만 한 내가 법원행정처에서 판사 생활의 절반 가까이를 보낸 대법관보다 더 오랜 기간 재판을 했다. 그런데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의 법 논리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13:0이라는 숫자로 깨버리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하소연했다. 사실 그런 경우에는 토론이 필요하다. 1심, 2심, 3심이 각각 법 논리를 가지고 질문하고 응답하고 토의해야 하는데, 3심 즉 대법원이 판결하면 ‘이게 결론’이라는 식으로 던져버린다. 그런 점에서는 대법원 판결과정을 가린 베일도 벗겨야 한다. 

 

헌법재판소장 부결 사태가 있었고, 대법원장 임명 절차가 남아 있다. 기대와 우려가 없을 수 없겠다. 
헌법재판소는 하부조직이 없다. 헌법재판관 아홉 명을 위한 단순한 조직이다. 이 조직의 수장이 누가 되는지는 대법원장 인선만큼 중요한 일은 아니다. 대법원장은 3천여 명 판사들에 대한 인사권, 사법행정권을 지닌 자리다. 전원합의체 회의를 주관, 진행하고, 임명제청권을 지녀, 대법관들이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야말로 ‘제왕적 대법원장’이다. 대법원장은 법관의 독립을 지켜주되, 대법원장 자신의 권한은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외부로부터의 압력은 막아주고, 지난 양승태 코트의 보수화, 관료화를 수술하는 일도 해야 한다. 김명수 후보자가 법관의 독립이나 보수화 수술 쪽에서는 잘할 거 같지만, 우려도 있다. 그야말로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지고 국민을 위한 판결들이 나오려면, 보수적인 판사들에게 요구하고 설득해야 할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런 일은 쉽지 않을 수 있다. 판사들을 위한 대법원장에 그치지 않고, 국민을 위한 대법원장이 되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악전고투할 모습이 훤히 내다보이는가 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하면 함께 전원합의체 재판을 할 대법관들은 대부분 선배들이고, 양승태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다. 변화는 더디고 저항이 많을 것이다. 행정처와 일선 법원에도 양승태 코트에 맞는 신념을 지닌 고위 법관들이 이 많다. 이들을 설득하고 새로운 변화로 끌고 나갈 시스템을 만들기란 게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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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내부에서 그런 개혁의 과정이 잘 자리 잡으려면 결국 국민을, 사회를 쳐다보게 해야 한다. 그런데 국민들은 법원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기존 언론이 법원의 개혁에 대해 국민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언론에 대해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언론의 습성이 그렇다. ‘대립’, ‘충돌’ 운운하며 갈등 부각시키고, ‘싸움은 붙이고 흥정은 말리라’는 ‘갈등 프레임’으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대부분이다. 시끄러운 게 기사가 된다고 보니까,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해 가중치를 부여하는 식의 접근이 거의 없다. ‘갈등 프레임’의 기사들을 계속 접하면 국민들도 “이거 뭐 이렇게 시끄럽게 바꾸나?” 그런 생각에 젖어버린다.


가령, 이용훈 대법원장의 경우 검찰이나 경찰의 밀실에서 작성된 조서나 수사기록이 아니라 법원에서 구술로 진실을 가리자고 강조한 게 “민사재판,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 라는 발언이었다. 결국엔 언론의 ‘갈등 프레임’ 보도 탓에 검찰 대 법원의 갈등만 부각되고, 개혁 동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언론도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 와중에 국민들은 점점 더 흥미를 잃어갈 테고…
밥그릇 싸움 얘기 나오면 “에이, 둘 다 나쁜 놈들” 그러기 십상이다. 양쪽의 갈등 보여주는 걸로만 그치면 언론은 편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나아지는 게 없다. 기자는 누구 밥그릇이 더 중요한지, 어느 쪽 밥그릇 논리가 더 얘기가 되는지 고민하고 판단해서 써야 한다. 무조건 경마식 보도만 하고 할 거 다 했다고 생각해서는, 그게 중립적인 거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이번 책이 후배들에게 자극이 되어 가치 판단과 연구에 바탕한 기자들의 탐사보도나 책 작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판사도 그렇고 기자도 그렇고, 자존심이 중요한 직업이다. 양승태 코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판사들의 자존심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선배 힘들게 하는 판결, 하지 말라.”는 말이나 13:0이라는 숫자로 말이다. 이용훈 코트 때는 판사들 자존감은 지켜줬다. 재임용 탈락, 징계 등으로 판사들의 자존감이 무너지면 재판상 독립이 흔들린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유능한 인물로 평가되며 승진가도에 오른다. 각 재판에 맞게 당사자의 목소리 듣지 않고 대법원 판례에 맞춰 판결하는 거 쉽다. 힘든 일이긴 하지만 조금 더 파고들면 다른 이야기, 특별한 사정이 있는데, 그걸 간과하고 편한 데로 우회하는 건, 국민을 위하는 게 아니다. 재판 잘하는 거보다는 판결문 잘 쓰는 게 유능한 게 되고…. 고리를 끊어야 한다. 

 

 

고리를 끊어야 할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새 대법원장의 개혁 드라이브는 아직 그 면면을 드러내기 전이다. 권 국장이 책에서 이용훈 코트에 주목한 이유는 오직 하나, 그때는 5명의 소수의견 덕분에 ‘논쟁다운 논쟁’이 벌어졌고, 그에 따라 판례가 바뀌고 사회가 바뀌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사불란 상명하달은 군대에서는 제격이지만, 재판상 독립이 보장된 사법부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 근대 대한민국에서 직업관료제를 처음 들여온 세력이 웨스트포인트로 유학 갔던 엘리트 직업군인들임을 상기하자면, 그들이 정권을 잡은 유신체제 때 법원의 관료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는 지적 앞에서 혀를 차게 된다. 


시키는 대로 하다가는, 가만히 놔두어서는, 이 땅의 정의는 훌쩍 사라진다. 논리로 맞서 싸우고 논쟁하며 새 시대의 변화를 담으려고 해야, 정의를 지킬 수 있다. 책장을 덮으며, 이 땅의 정의를 논쟁으로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법관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 과정을 ‘방향성 프레임’으로 국민들에게 알려주는 기자들, 시끄럽지만 생산적인 개혁의 과정에 박수를 보내는 정치권과 시민들의 모습도 떠올려본다. 사법행정의 관료화 고리를 두루 끊어낼 개혁은 법 논리의 용호상박으로 좀 많이 시끄러워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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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_재판을 통한 개혁에 도전한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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