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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12월
  • 2017.12.04
  • 42

서촌역사기행 2

서촌, 다양성이 존중된 땅의 이름들!

 

글.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동洞 이름에는 역사와 자연환경이 담겨있다 

우리나라 오래된 도시에는 다양한 동 이름이 있다. 특히 종로의 동 이름은 매우 다양한데, 사람들은 그 작은 마을에 동 이름이 너무 많다고 의아해한다. 일제강점기, 행정 편의적으로 수탈과 감시체계를 잘 구성하기 위해 큰 규모로 이름 지어진 동에 살다 보니 작고 특색 있는 다양한 동 이름에 적응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그중에서도 ○○1동, ○○2동, 심지어 15동까지 있는 것은 편의만을 추구한 최악의 구분이라고 생각한다. 또 학교에서 1반부터 10반까지 반을 구분하고 학생들에게 개인 번호를 부여하는 것도 모두 관리와 통제의 편의를 위해 틀 속에 가두고 훈육하려 했던 일제의 교육방식이다. 주민등록증도 물론 마찬가지다. 

 

옥인동, 통인동, 체부동의 유래 

그렇다면 서촌에 있는 다양한 동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먼저, 옥인동은 조선 시대 ‘서울시’라고 할 수 있는 한성부의 북부 준수방(俊秀坊)에 속하였으며, 1894년 갑오개혁 당시 인왕동과 옥동(玉洞)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인왕동과 옥동이 통합되어 옥인동이 되었으며, 1936년 4월 동명이 일본식 지명으로 바뀌어 옥인정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이 동(洞)으로 바뀔 때 다시 옥인동이 되었다. 따라서 ‘옥인’이란 지명은 옥동과 인왕동의 이름에서 연유한다. 

 

통인동 역시 조선 시대 한성부 북부 준수방에 속하였다. 통곡, 사포동, 옥동 등의 옛 마을이 있었으며, 조선 시대의 관청인 내시부, 사포서(司圃署)①가 있었다. 일제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북부의 통곡, 사포동(司圃洞), 옥동 등의 일부가 통합되어 통인동이 되었다가 앞서와 마찬가지로 1936년 4월 동명이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됨에 따라 통인정이 되었고, 1946년 다시 통인동이 되었다. ‘통인’이란 지명은 통곡(通谷), 현 신한은행 자리과 인왕산(仁旺山)의 이름에서 연유한다.

 

통인동 137번지 일대는 세종의 탄생지인데 오늘날 종로구청이 그토록 강조하는 ‘세종 마을’이 여기서 유래한다. 그러나 서촌 일대는 세종뿐만이 아닌 영조와 그 외 역사와 문화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많은 인물들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거주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불리고 이름 지어진 마을 지명을 특정 왕으로 상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한편 체부동은 1894년 갑오개혁 때 한성부의 하패계(下牌契) 구곡동(九曲洞)·체부동(體付洞)·누각동(樓閣洞) 등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는데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하패계 구곡동·체부동과 누각동 일부가 통합되면서 체부동이 되었다. 구곡동, 누각동 등의 자연마을과 다리인 금천교(禁川橋)가 있었다. ‘체부’란 지명은 체찰사부(體察使府)② 또는 체부청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하며 ‘구곡’이란 명칭은 마을이 아홉 굽이나 꾸불꾸불한 곳에 있다는 데 연유한다. 금천교는 고려 시대 충숙왕 때 가설된 적선동(積善洞), 통의동, 내자동 등으로 통하는 십자로에 있던 돌다리였는데 지금도 경복궁 옆 먹자골목을 ‘금천시장’이라고 불리는 것에 그 이름이 남아있다. 

아름지기

영조가 태어난 창의궁터(통의동 35번지 일대)가 발견되어 발굴하는 모습. 발굴 후 아름지기 사무실이 들어섰다. ⓒ황평우

 

필운동, 누상동, 누하동의 유래 

필운동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 개편 때 내수사계 도가동(都家洞), 사직동계 사직동, 수성궁계 송목동(松木洞)·도가동·남정현(南征峴), 분선공계 전정동(塡井洞)·필운대·구동(龜洞)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1914년 4월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도가동, 사직동, 송목동, 도가동, 전정동(塡井洞), 필운대, 구동, 대구도가동(大口都家洞) 등이 통합되어 필운동이 되었으며, ‘필운’이란 지명은 필운대③에서 연유한다. 필운동 안에는 구동(일명 거북골), 남정동, 도가동, 대구도가동, 송목동 등의 옛 마을이 있었다. 거북골은 거북 모양의 거북바위가, 남정동은 남정문이, 도가동은 물건을 제조·판매하는 도가집이, 대구도가동은 대구를 파는 도가집이, 송목동(일명 소나무골)은 소나무가 많았다는 데서 명칭이 유래한다.

 

누상동과 누하동은 한성부의 누각동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누각(樓閣)은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문과 벽이 없는 집을 말하며, 건축적으로 루(樓)는 경회루, 광한루 등과 같은 2층을 의미하며, 각(閣)은 단층을 말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누각동의 일부가 누상동이 되었으며, 1936년 4월 동명이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됨에 따라 누상정이 되었다. 1943년 4월 구제區制 실시로 종로구 누상정이 되었다가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이 동洞으로 바뀔 때 누상동이 되었다. 누상이란 지명은 누각동 위쪽에, 누하동은 아래에 있다는 데 유래한다. 

 

인왕산의 곡성(曲城, 일명 곱은성)에 부석(浮石, 일명 뜬바위), 부처바위, 다리바위, 백련바위, 범바위 등이 있으며, 필운동, 누하동, 옥인동 일대를 포함한 지역에 인경궁(仁慶宮), 백호정(白虎亭), 사당인 와룡당 등이 있었다. 인경궁은 1676~1682년 사이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인조반정으로 중단하였다가 1692년에 일부를 철거하여 창경궁 건립에 사용하였으며 나머지 전각들은 효종 때까지 있다가 숙종과 영조 때 없어지고 그 자리에 민가들이 들어섰다. 와룡당은 제갈량을 신봉하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말기에 폐지되었다. 부처바위는 부처처럼, 백련바위는 연꽃처럼, 범바위는 호랑이처럼 생겼다는 데 유래한다.

 

필운대

배화여고에서 바라본 서촌. 그러나 필운대 바로 앞에서는 배화여고에 가려져 서촌을 바라볼 수 없다. ⓒ황평우

 

신교동, 청운동, 궁정동의 유래 

신교동은 신교(新橋), 즉 새로 지은 다리가 있었다는 데 연유한다. 선희궁④ 동쪽인 지금의 신교동 70번지 부근에 신교가 있었으며 1830~1864년에 가설된 것으로 추정한다. 선희궁지가 있는데 선희궁이 폐지된 후에 제생원⑤으로 사용하였다가 현재는 국립서울맹학교가 되었다.

 

청운동은 청운초등학교 뒤쪽 청풍계(淸風溪)라는 계곡의 ‘청’ 자와 백운동(白雲洞)의 ‘운’ 자를 따서 지었다. 청풍계와 백운동은 인왕산의 맑은 바람, 맑은 물과 함께 흰 구름으로 덮여 있는 자연환경에서 유래하였다. 현재의 경복고등학교 자리는 농사시험소였고 청운초등학교 터는 가사문학의 거장 송강 정철의 탄생지다.

 

궁정동은 육상궁(毓祥宮)의 ‘궁’ 자와 온정동(溫井洞)·박정동(朴井洞)의 ‘정’ 자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육상궁은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를 봉사(奉祀)한 묘이다. 청와대와 붙어있는 큰 한옥들이 있는데 이를 ‘칠궁’이라고 한다. 칠궁은 후궁의 몸에서 왕이나 왕으로 추존되었던 이들을 낳은 생모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육상궁은 영조를 낳은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의 사당이고, 저경궁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 원종을 낳은 인빈 김씨, 대빈궁은 조선 시대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권좌에 오른 희빈 장씨의 사당이다. 연우궁은 영조의 맏아들인 효장세자의 생모 정빈 이씨의 사당이고, 맹학교 자리에 있던 사당을 이전한 선희궁,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 사당인 경우궁, 영친왕의 생모 엄 비의 사당인 덕안궁이 있다. 

 

칠궁

청와대 옆 칠궁 중 연우궁에서 제사 올리는 모습 ⓒ황평우

 

지명은 곧 ‘문화’다

지명地名은 일정한 지역의 명칭이다. 고대로부터 인류가 살아오면서 특정한 위치, 범위, 유형의 지리적 실체에 대해 공동으로 약정한 고유명사다. 한반도에 거주한 민족들은 구릉지형에서 정착성이 강한 생활 형태를 유지했다. 좁게는 한 사람부터 가족, 집단 넓게는 종족의 삶의 형태를 이루었다. 

 

그들은 삶의 터전에 이름을 지었고, 따라서 지명은 정착지에 대한 인간의 공동적 언어 기호라 할 수 있다. 지명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공동 소유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생활하며 창조되는 모든 문화가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인류 생활의 집단화 및 사회화는 지명이 생기는 필수 조건이 된다. 지명은 사람들의 사회 활동과 생산 활동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지명이란 일정한 지역 안에서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고 사교하는 도구로서 중요한 사회적 표징이자 약정이기 때문이다.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지명은 고유명사이다. 고유명사의 발생 요인은 하나의 사물을 다른 사물과 구별하기 위한 데 있다. 따라서 지명은 인간의 한 지점이나 지역을 다른 지점 또는 지역과 구별하기 위해 발생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과 사물을 구별하기 위하여 사람마다 이름을 짓듯, 땅도 곳곳을 구별하기 위하여 고유한 이름을 부여하는 원리이다. 내가 사는 고장을 다른 사람이 사는 고장과 구별하기 위하여 고유명사를 부여한 것이다. 가령 ‘하늘, 해, 달’은 모두 유일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해, 달’은 보통명사이자 고유명사다. 그러나 달은 유일하면서도 그 모양이 한 달 내내 바뀌기 때문에 서로 다른 모양의 달을 구분하기 위하여 ‘초승달, 보름달, 반달, 그믐달’이라 부른다.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도 별마다 고유 호칭을 갖는다. 

 

지명을 제대로 이해하면 다음과 같은 풍부한 사료들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첫째, 국어의 계통, 고대 국어의 재구, 국어의 어원, 국어 변천사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둘째, 한국의 역사, 역사 지리, 민속, 민담, 신화, 전성, 제도 등 문화사 전반의 연구 자료가 된다. 셋째, 우리 민족의 성립 및 이동은 물론 타민족과의 문화사적 교류 관계를 파악하는 데 긴요한 자료가 된다. 넷째, 역사학, 고고학, 지리학, 민속학, 사회학, 경제학, 설화문학 등에 대한 보조 과학이 될 수 있다. 다섯째, 지명을 접두한 물명, 지명과 인명, 지명과 신조어 등의 깊은 관계를 밝힐 수 있다. 

 

이와 같이 지명의 역사와 문화를 생각해 보면 전통적으로 한국의 지명은 사람이 사는 터를 중심으로 존재성과 정체성을 부여했으며 풍수적 요인을 고려해 지은 이름이 많다. 풍토와 특산품 또는 기후에 맞춰 작명하기도 했으며, 미래를 예견하며 작명하거나 역사적 사건에서 유래한 지명도 있다. 즉 지명은 인문사회, 역사문화, 자연환경적인 문화의 소산물임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사라져가는 우리의 땅 이름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는 2014년부터 전면적으로 도로명주소를 사용하고 있다. 새 도로명주소를 추진했던 행정안전부의 논리는 국민의 생활편의를 도모하고 물류비 절감 등 국가경쟁력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모두 허구다. 국민 생활 편의가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생 살아온 동, 리 등의 땅 이름을 모두 없애버림으로써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켰다. 한 국가의 도로명주소를 개정하겠다면서 논리라고 내세운 것이 고작 택배비 절감이다. 토지 지번(地番)을 토대로 주소로는 위치를 쉽게 찾기 어렵다는 정부의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구릉지형이 약 70%이기 때문에 구릉지와 산악형태 지번의 다양성과 복잡성은 촌락과 도시의 확장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 

 

도로명주소는 길, 즉 도로를 기준으로 삼아 목적지를 찾아가는 평지지형의 국가들에게만 유리한 것이다. 다른 나라가 길을 중심으로 주소명을 부여한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전통적 삶의 방식을 하루아침에 변경하겠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사대주의에 불과하다. 게다가 도로명주소 작업이 시작되던 1996년에 비해 지금은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당시 정부는 물류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이제는 내비게이션 덕분에 초보 택배기사도 집을 찾기 쉽다. 스마트폰 시대다 보니 누구나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이름이 사라지면 문화적 상상력도 사라진다 

도로명 주소를 따르면 4만여 개에 이르는 전국 각 시·군·구의 ‘동, 리’등이 일시에 사라진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듯이 이름이 사라지면 문화적 상상력도 사라진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자기 고향, 동네가 없어지게 된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땅의 뿌리를 잃고 ‘길에서 난 아이’가 되는 것이다. 과연 도로명주소 사업이 문화적 뿌리를 뽑아내고 시행할 정도로 중대한 문제인지, 막대한 돈과 행정력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인지 원점에서 재고해야 한다. 도로명과 지명은 국민 정서, 역사성 등 문화적 특성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2007년 당시 산업자원부는 ‘평’, ‘돈’, ‘자’ 등과 같은 전통적 계량 단위를 사용하거나 홍보하면 과태료 200만 원~700만 원을 물리겠다고도 했다. FTA 협정이 되고 나면 계량단위를 통일해야 하고 불확실한 전통단위로 인해 국민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는 논리였다. 미국의 마일, 미식축구의 야드, 피트, 영국의 파운드는 그대로 두고, 자국의 전통적 관습이자 인본주의에 입각한 계량 단위는 말살하고 있다. 전통적 계량 단위는 문화요, 전통이다. 즉 문화다양성의 일종이다. 

 

오히려 잃어버린 우리의 시간(우리는 일본 기준시간에 살고 있다)을 찾아야 한다. 음력을 포기하면서도 자신들의 연호를 쓰는 일본은 무엇인가? 천년 넘게 이루어 왔던 전통의 콘텐츠를 일방통행식 관료주의가 파괴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지역주민과 향토사학자, 역사학자, 문화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물어 역사문화의 진정성과 전통성을 살리면서 실리적으로 실생활에 편리한 주소를 만들기 위해 원점에서 재론해야 할 것이다. 서촌은 다양성이 존중된 이름이다! 

 

서촌

멀리 오른쪽으로 백악산과 왼쪽 인왕산이 보인다. 그사이 포근한 동네가 서촌이다. 한옥과 양옥, 근대와 현대가 공존한다. ⓒ황평우

 


① 왕실 소유의 원예, 채소재배를 담당

② 군대를 지휘하는 임무를 맡았던 관청 

③ 필운은 이항복의 호이며, 배화여고 건물 뒤에 있다. 필운대에서 바라보는 봄의 한양은 너무 아름다웠다고 한다. 지금은 건물에 가려져서 감옥처럼 변해있다.

④ 영조의 후궁이며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의 사당

⑤ 조선 시대 서민 의료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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