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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12월
  • 2018.12.02
  • 64

 

월간참여사회 2018년 12월호(통권 261호)

 

특집 1  가짜보수 진짜보수

대한민국에서
보수는 누구인가

글. 김민하  『냉소사회』 저자

 

 

요즘 대한민국 보수라고 하면 이른바 ‘태극기 부대’의 선글라스 낀 할아버지나 극성스러운 특정 종교 성향의 인물들을 흔히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원래 보수라는 건 정치적 노선을 일컫는 말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계가 있을지라도 지금 체제가 최선이고 변화를 모색하더라도 어디까지나 현 체제 안에서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따지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보수라는 구분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실제로 상당 기간 동안 대한민국 정치의 주류는 보수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정치 지형이 변화되었지만 원래 개별 유권자들의 성향으로서 존재했던 보수정치적 요인들이 다른 데로 옮겨 간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정치적 환경은 이런 요소들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를 가늠해보기 위해서는 정치에서 보수적 요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돼왔는지를 따져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보수정치 지지자들의 정신적 축 ‘박정희주의’

지금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수정치의 흐름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이중 첫 번째 경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4·19혁명 직후 혼란을 일소하고 국가의 기틀을 잡은 인물로 규정했다. 이승만 시대가 대외 원조를 통한 전후 재건을 모색하는 단계였다면 박정희 시대는 축적된 자원을 본격적으로 활용해 개발에 나서는 시기였다. 국가 주도의 수출 중심 경제 모델은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했다. 

 

대의민주주의 원리의 실현이나 인권의 보장 등은 경제 개발의 긴급한 필요에 밀려 상당 기간 유예되었다. 이후 군사독재 정권은 앞의 박정희 정부와 경제정책 면에서 색깔을 달리했지만 적어도 어떤 효율의 달성을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희생할 수 있다는 가치관은 그대로 유지했다. 이런 식의 통치 원리를 내면화 해 삶의 중요한 가치관으로 삼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태극기 부대’의 주력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여의도 정치의 기준으로 보면 이들과 정체성을 같이 하는 세력은 문민정부 탄생 과정에서 밀려났다가 박근혜 정권에 와서야 정치적으로 복권되었다.

 

하지만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사상의 문제로 따지면 앞서 서술한 형태의 ‘박정희주의’는 보수정치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공유하는 정신적 축의 하나로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생은 이들의 청춘을 지배했던 박정희주의가 아직 체제적 원리로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처럼 간주되었다.

 

탄핵은 이러한 세계관을 일거에 붕괴시키는 트라우마적 사건이었다. 박정희주의의 기준으로 보면 어떤 수단을 쓰던 결과적으로 나라를 잘 운영하면 그만인 것이다. 국민이 위임한 통치권을 사사롭게 사인에게 넘겨준 것이나 기업을 겁박해 공적 목적이 불분명한 재단 출연을 강요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체제는 바로 이러한 행위가 ‘위헌적’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 내렸다.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은 더 이상 ‘나’의 나라가 아니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태극기 부대’는 자신들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들이 거리에 있으면서 결코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고 공중파 방송과 주류 언론을 모두 거부한 채 자신들의 세계관을 끊임없이 재생산해주는 유튜브 방송에 중독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월간참여사회 2018년 12월호(통권 261호)

 

정치권의 이권 불리기 수단으로 전락한 ‘비즈니스프렌들리’ 전략 

앞에 쓴 것처럼 이런 사람들이 이 나라 보수의 전부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보수정치를 이어온 두 번째 흐름은 박정희주의의 반대편에서 자라났다. 경제정책으로 보면 박정희 정권 말기에 소위 안정화시책을 건의하며 중화학공업의 과잉 중복투자 문제를 지적한 시장주의자들, 정치로 보면 3당 합당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앞서의 박정희주의와는 달리 국가 주도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며 시장원리를 강조한다거나 민주화 운동 경력을 들먹이며 스스로를 세련되게 포장하는 지혜(?)를 발휘해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맹아가 전두환 정권에서 박정희식 경제정책에 대한 반동형성으로 싹텄다는 점을 볼 때, 이들은 민주화와 시장원리 사이의 가교를 자처한 것이라기보다는 군사독재의 후신들에게 굴복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이들이 만든 이명박 정권은 정치개혁을 중시한 참여정부가 경제를 소홀히 했다는 대중적 믿음을 자양분으로 해서 탄생했다. 대의명분이란 실현되지 않을 이상에 불과하고 오직 분명한 것은 이해관계뿐이라는 시장적 믿음이 정치적 결실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경제적 조건을 개선해줄 수 있다는 기대와는 달리 이명박 정권은 시작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확대에 대한 반발에 부딪혀 편집증적 성격을 갖게 되었고 정치보복을 자행하는데 몰두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을 야기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국민 경제의 발전이 아니라 정치권력을 사유화 해 자신의 이권을 불리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만행이 박정희식 국가주의의 ‘공적 속성’을 돋보이게 해 박근혜 정권 탄생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이들은 생존을 위해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며 탄핵에 찬성한 후 조직 분리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옹립을 시도했다. 그러나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낙마하고 애초 상정한 정치 일정이 모두 틀어지면서 오늘날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라는 어정쩡한 분점구도가 형성됐다. 원래 시장주의적 믿음을 바탕으로 보수정치를 지지했던 이들의 상당수는 무당파로 돌아선 채 현실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최근 암호화폐 투자 문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논란, 부동산 정책, 수능 정시 확대 요구 등에서 드러난 정책적 반발의 뿌리가 시장주의를 바탕에 둔 보수주의적 현실인식에서 나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반발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공정성’인데, 이것의 정확한 의미는 “이득을 볼 기회를 부당한 이유로 빼앗기고만 있을 수 없다”는 문장으로 표현 가능하다. 앞서 서술한 “이상보다는 이해관계가 중요하다”란 세계관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치안불안과 보수기독교의 이슬람 혐오 논리와 만나 배외주의로 표출된 것이 난민 논란이다.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면서 남에게 이익을 빼앗기지 않는 체제를 만들어 줄 것을 주문하는 이 여론이야 말로 앞서 한국식 보수주의의 두 흐름을 종합하는 하나의 시대정신이다. 이 세계관이 살아있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과거와 같은 형식의 보수정치는 다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것은 개혁적 여당의 얼굴을 하고 나타날지도 모른다. 좀 더 나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특집. 가짜보수 진짜보수 2018년 12월호 월간참여사회 

1. 대한민국에서 보수는 누구인가 김민하

2. 진보·보수의 오남용 고승우

3. 영국 보수당은 지금 안병억

4. 보수를 위한 제언 박권일

 


선거제도 바꿔 정치를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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