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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1-2월
  • 2019.01.03
  • 185

'에너지 시민'의
탄생

 

'에너지 전환'이란 뭘까?

'에너지 전환'이란 말이 사람들 입에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환경단체는 물론 정부나 언론 등에서도 이 용어를 자주 쓴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에너지 전환은 물론 에너지 자체에 관한 일이다. 하지만 일차적으로만 그렇다. 에너지 전환은 사회 전체의 탈바꿈이나 거듭남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에너지 전환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익히 아는 얘기지만 먼저 확인할 것은, 화석연료와 핵발전에 기대는 세상은 근본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석유 고갈을 비롯한 에너지원 자체의 한계, 기후변화가 표상하는 생태적 위기, 원전 사고로 상징되는 거대한 위험 등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이런 세상은 정의롭지도, 민주적이지도, 평화롭지도, 안전하지도 않다. 지구촌 곳곳에서 에너지 빈곤과 불평등 현상이 기승을 부린다. 집중과 독점이 지배하는 거대 에너지 시스템 아래서 대다수 시민은 에너지와 관련된 의사 결정에서 소외되고 배제된다. 에너지 확보를 둘러싼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당연히 이런 현실을 바꿔야 한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는 에너지 절약과 효율 향상을 확대하는 것이다. 둘째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와 핵에너지에 대한 의존을 줄이거나 없애고 대신에 재생 에너지를 늘리는 것이다. 셋째는 보다 깊은 차원에서 사회경제 시스템과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서로 맞물린 이 세 가지를 실천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에너지 체제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 ‘에너지 전환’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논의가 분분하지만 크게 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첫 번째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지향한다는 원칙이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의 생존과 삶이 오래 이어질 수 없다는 뜻이므로, 이 문제만큼 중요한 건 없다.

 

두 번째는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민주주의의 고갱이는 보통사람들 다수의 참여다. 소수의 특정 세력이나 집단이 권력과 자원을 독점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다. 화석연료와 핵발전이 뼈대를 이루는 기존 에너지 시스템은 지속 가능성뿐만 아니라 이 측면에서도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규모 자체가 거대한 데다 중앙 집중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기존 에너지 시스템의 지배자는 국가와 자본이라는 거대 중앙 권력체다. 에너지 정책과 에너지 산업 등을 이 두 권력체가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에너지와 관련한 의사 결정에서 일반 시민은 철저히 배제돼왔다. 

 

하지만 에너지는 시민 모두의 것이다. 대규모 집중에서 소규모 분산으로. 독점에서 자치와 자립으로. 경직된 획일성에서 유연한 다양성으로. 이것이 에너지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독일의 에너지 전문가인 헤르만 셰어는 ‘에너지 주권’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내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하고 나눌지를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정의의 원칙이다. 한겨울에 매서운 추위가 닥쳐도 돈이 없어 난방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기, 깨끗한 조리시설, 연료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들을 에너지 빈곤층으로 규정한다. 75억 명이 넘는 전 세계 인구 가운데 13억 명이 전기 에너지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26억 명은 깨끗한 조리시설 없이 지낸다. 게다가 에너지에서도 양극화와 불평등 현상이 심각하다. 이런 현실에서 모든 사회 구성원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에너지를 차별이나 소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정의의 원칙이다.  

 

월간참여사회 2019년 1-2월 합본호(통권 262호)

‘에너지 전환’이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에너지 체제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삶을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

에너지 전환의 핵심 원칙들은 불평등과 양극화 줄이기, 경제 시스템과 체질 바꾸기, 복지와 일자리 늘리기, 민주주의와 자치 이루기 등과 같은 우리 사회의 당면 현안들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앞에서 에너지 전환이 사회 전체의 변화와 깊은 연관을 맺는다고 얘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궁극적으로는 에너지를 지나치게 낭비하고 지구를 망가뜨리는 경제체제와 산업구조, 문화와 사람들의 생활방식 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게 관건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재생 에너지가 늘어나고 기술적인 에너지 효율 혁신이 이루어져도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를 끝없이 부추기는 ‘낭비와 탕진의 악순환 시스템’이야말로 에너지 문제의 근본 주범인 탓이다. 이래저래 에너지를 바꾸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전환은 사람과 삶의 변화도 아우른다. 기존 시스템 아래서 대다수 사람은 그저 수동적이고 무력한 에너지 소비자 또는 이용자 신세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을 거치면서는 내가 쓰는 에너지가 지속 가능성, 생태 위기, 사회정의, 민주주의, 공동체의 안녕 등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새로운 깨달음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에너지를 더 절약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쓰려고 애를 쓴다. 요즘은 집안에 소형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는 사람도 점점 늘고 있다. 이것은 에너지 소비자를 넘어 능동적인 에너지 생산자로 나아가는 길이다. 때로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바꾸고자 하는 정치적 행동에 나서기도 하고, 시민단체나 지역 주민 모임 등의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탄생하는 것이 ‘에너지 시민’이다. 에너지 시민은 다양한 ‘얼굴’을 지닌다. 현명하고 윤리적인 소비자. 사회정의를 추구하며 정부 정책과 정치를 바꾸는 민주 시민.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생산자. 이 모든 것이 에너지 시민의 모습이다.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시대는 이런 에너지 시민의 탄생을 강력하게 요청한다. 에너지 시민이 상징하듯이 사람은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에게는 ‘나쁜 일’을 할 능력도 있지만 ‘좋은 일’을 할 능력도 있다. 자연을 망가뜨리고 에너지와 자원을 마구 낭비하며 사는 것도 인간이지만, 그런 세상과 삶을 바꿀 주체 또한 인간이다. 에너지 전환은 이런 능력을 발휘할 맞춤한 기회다. 

 


글. 장성익 환경저술가

녹색 잡지 <환경과생명>, <녹색평론> 등의 편집주간을 지냈다. 지금은 독립적인 전업 저술가로 일한다. 

환경 분야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로 책 집필, 출판 기획, 강연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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