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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3월
  • 2019.03.01
  • 261

지·옥·고에 사는 거인

전찬영 회원·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월간 참여사회 2019년 3월호 (통권 263호)

 

나 : 전공이 행정학이네요?

그 : 네, 로스쿨이 목표였는데 사회과학 학부에선 행정학이 가장 관련 있겠다 싶어서요. 

나 : 잘 모르지만, 왠지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데….

그 : 실제는 안 그렇습니다. 되게 매력 있는 학문이에요.

나 : (믿기 어려워하며) 그렇다면, 매력 어필 좀 해주세요.

그 : 행정학과라 하면 사람들이 짐작하듯이 실제로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와요. 

근데 제 경우엔 이 공부를 하면서…. 

 

대화의 주제는 ‘행정.’ 그러나 정작 나의 관심은 반짝거리는 그의 눈빛에 가 닿는다. 대놓고, 행정이라는 말에 뜨겁게 달아오르는 한 영혼을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는 중이다. 그 눈빛은 그 건조한 단어 속에서 그가 무언가 따뜻하고 가치 있는 것을 키워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를 키워낸 것들

그를 만난 날은 마침 청년참여연대(이하 ‘청참’)의 총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는 올해 청참 운영위원장을 맡게 됐다. 

“청참에서 활동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2017년에 참여연대 가입했고, 작년에 공익활동가학교에 참여하면서 참여연대에 푹 빠지게 되었죠.”

 

대학생 시절 안진걸 전 사무처장이 그의 학교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강연이 끝난 후 그는 ‘저런 곳이라면 꼭 가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중에 청참이 있다는 걸 알고 찾아봤더니 ‘공익활동가학교’라는 게 또 있더라고요.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어요. 무엇보다 평소 궁금했던 것들이 커리큘럼에 모두 들어 있어서 좋았죠.”

 

평소 노동, 성평등, 인권, 장애인, 사회 다양성 등이 궁금했다던 20대 청년. 20대에 저런 것들에 도통 관심이라곤 없던 나는 그것들이 대체 왜 궁금했는지 이유를 물었다. 

“개인적인 얘기고, 지금 생각해봐도 슬픈 기억이에요. 고등학생 때 피부가 갈라질 만큼 아토피가 무척 심했거든요. 은따, 은근히 따돌리는 것? 대놓고 그러진 않았지만 왕따 비슷한 걸 당했죠. ‘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아픔을 겪어야 되지?’ 그때 입은 상처 때문에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입장의 동일함’이 관계의 최고 형태라고 신영복 선생님은 말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관찰보다는 애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씀도 하셨다. 입장의 동일함과 좋은 마음씨 그리고 따스한 애정. 이 온기 어린 단어들이 그의 삶 안에서 입체적으로 구현된 것, 그게 바로 ‘행정’이다. 

“행정학은 로스쿨 진학만을 위해 공부하기엔 아까운 학문이에요. 실제로 공부를 하다보니까 정부가 왜 있는 건지, 관료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의미가 뭔지, 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많은 관심이 생겼죠. 그런 것들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정책 과정들을 분석하다 보니까 ‘좋은 행정’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까지 고민하게 됐어요.”

 

한 교수가 ‘학문의 왕은 정치학’이라고 말했을 때, 정치가 세상을 바꿀지언정 그 세상을 유지해나가는 것은 결국 행정이라고 말하고 싶었다던 그.

“그 정도로 매력 있는 학문을 제가 공부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공부하면서 얻게 된 고민과 생각들을 살아가면서 실현하고 싶고 그런 일들이 필요한 현장에 가서 열정을 쏟으며 일하고 싶습니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3월호 (통권 263호)

지난 2월 16일, 청년참여연대 제5차 정기총회가 열렸다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청년참여연대는 2015년에 창립했다. 현재 후원회원과 활동청년을 포함해 약 400명 정도 규모이며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2,30대다. 그가 운영위원장을 맡은 올해 청참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  

“그동안 청참은 5개의 분과 체제로 나뉘어 있고 각 분과장들 중심으로 활동이 돌아갔어요. 그렇게 분과장들한테 책임이 몰리다 보니까 부담도 되고 분과 활동이 침체되는 경향도 있었죠. 그래서 분과라는 틀에서 벗어나 구성원들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어요.”

 

TF팀과 소모임 중심으로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청참의 올해 목표다. 또 총선이 있는 내년엔 다른 청년단체랑 연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청년들의 목소리를 내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대학 시절에도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 행정학과 회장 등 많은 조직을 대표했는데 청참과 다른 게 있다면요?

“대학 때와는 좀 다른 종류의 어려움인 거 같아요. 예를 들어 대학 때는 함께 일할 집행부들이 탄탄했고 활동비 명목으로 재정적 지원도 받았는데, 거기에 비하면 청참은 구성원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차이점은 청참의 경우 상근자 한 명에, 활동비 지원도 부족한 편이에요.” 

 

내부 사정을 다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이 조직이 만들어진 게 오히려 더 놀라웠다고 말한다.  

“청년들이 이 조직에 매력을 못 느끼는 현실이에요. 예를 들어, 지난해 청참에서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청년들과 함께 하는 제주 4.3 기행을 기획했거든요. 근데 펀딩에 실패해서 결국 못 갔어요. 이런 좋은 활동이 있으면 청년들이 열의를 가지고 모여들 텐데, 그때 좀 슬펐죠.”

 

결국 모든 게 돈 문제인 거 같아 듣는 나는 맥이 빠졌다. 그런 좋은 기획이라면 참여연대 회원들에게 알려 펀딩을 받는 방법도 있다고, 안타까운 마음에 자잘한 조언들만 늘어놓았다. 청년 의제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가는 건 뭔가요?

“주거 문제죠. 저도 대학 졸업하고 지금은 반지하에서 살고 있거든요. 빛은 하나도 안 들어오고 창문을 열면 바로 지하주차장이에요. 많은 청년들이 ‘지옥고’ 즉 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살고 있어요. 고시원 평균 넓이가 1.4평 남짓인데 청송2교도소의 독방은 2평이에요. 감옥보다 나을 게 없는 환경이죠. 근데 예전에 제가 이 문제로 열린 간담회에 한 번 참석한 적이 있거든요….”  

 

그 자리에 참석한 공무원들은 모두 4,50대의 아저씨들이었다. 청년주거문제를 해결하려고 온 자들의 입에서 ‘청년들이 사회 기여하는 바는 적은데 호텔 같은 시설을 바란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그만 좀 징징거려! 딱 이런 태도였어요. 실무를 맡고 있는 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며 ‘아, 멀었구나’ 이 생각밖엔 안 들더군요.”

 

행정학을 공부한 그가 제시하는 관료주의 문제의 해법은 ‘거버넌스’다. 대표적인 민관협력 사례로 ‘광화문1번가’가 있는데 그는 그곳에서 두 달 정도 일했다. 위에서 시키니까 그냥 와서 회의만 하고 가는 공무원들도 꽤 있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 길도 어째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불효자는 웃습니다

참여연대를 알게 된 후, 청참이나 청년공익활동가학교 활동 등을 하면서 그전과 달라진 것들이 있나요? 

“너무 많이 달라졌죠. 대학생활 동안은 루틴하게, 특정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일련의 명령대로만 움직였어요. 로스쿨 진학을 위해 아등바등 학점 따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근데 공익활동가학교를 수료하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진짜로 고민이란 걸 했어요. 여러 사회 이슈들을 다루면서 생각보다 간단하게 풀릴 수 있는 문제들도 많다는 걸 알았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도 많다는 걸 깨달았죠. 이제야 진짜 저 자신을 찾은 것 같아요. 제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참여연대를 알게 되었더라면….”

 

일찌감치 불효자가 되겠죠, 그의 말을 자르며 내가 대답했다. 대구에 살며 늘 보수우파 진영에 투표하는 부모님께 참여연대에 들락거리다가 끝내 로스쿨도 공무원 시험도 포기해 버린 아들은 어쩌면 불효자란 단어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청년공익활동가학교가 그런 의미의 불효자를 양성하는 곳이라면 불효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그가 환하게 웃었다. 

“여러 경험들 끝에 꿈이 바뀌었어요. 세상에는 고통받는 사람들도 너무 많고 해결해야 할 일들도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언제 공부해서 로스쿨에 가고 또 언제 인권 변호사가 되어서 세상을 바꾸지? 언제쯤 내가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이 깊어지면서 로스쿨을 포기했죠.” 

 

정확하게 말하면, 바뀐 건 꿈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상처 입은 사람들을 돌보는 것, 고통받는 이들이 없는 세상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좋은 사회 시스템. 그의 꿈은 이것들로부터 1mm도 움직이지 않았다.  

“최근에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일하게 됐어요. 조사위 일정이 끝나면 업무가 종료되는 계약직이에요. 그 안에 세월호를 조사하는 과가 있고 가습기살균제참사 문제를 조사하는 과가 있는데 저는 가습기살균제 쪽을 지원했고요. 평소 제가 하고 싶고 꿈꾸던 일이기도 하고 또 이 일을 하면서 배울 것도 많을 것 같아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그가 지금부터 하려는 ‘공무’는 단지 조직을 관성대로 굴리는,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으로 대표되는 그런 일이 아니다. 한 개인이나 몇몇 집단의 이익이 아닌 한 사회에 속한 모든 구성원들의 일상과 안녕을 지켜내는, 그야말로 ‘공공(公共)을 위한 업무’인 것이다. 그런 일을 하게 된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는 그를 보며 나도 행복했다.  

 

마지막으로 청참 홍보 좀 부탁드려요.

“청참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안전함’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생각이나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폭력적인 언어나 상황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이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지하방의 거인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저를 이름으로 안 부르고 별명으로 불렀거든요. ‘아토피’ 이런 식으로. 근데 그 와중에 좋은 친구들도 있었어요. 겉모습 말고 제 내면을 봐 주는 친구들도 있었죠. 그런 친구들 때문에 그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어요. 아, 나도 또래 집단에 속할 수 있구나, 나도 이 사회에 속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런 안도감을 그 친구들에게서 얻었죠.”

 

그 경험은 그를 확장시켰다. 자신만의 상처에서 걸어 나온 그는 다른 이의 고통에까지 다다랐고 그 경계는 더욱 넓어져 뭇 시민들의 삶과 그들의 일상을 관리할 좋은 행정 시스템까지 아우르게 되었다. 

 

자아의 경계가 당신이 느끼는 것에 의해 정해진다면, 자신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경계 안에서 수축할 것이다. 반면에 다른 이의 것까지 느끼는 이들은 확장할 것이며, 모든 존재에 공감하는 이들의 경계는 아예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홀로 있지 않으며, 외롭지 않고, 자신이라는 섬에 발이 묶여버린 이들과 달리 취약하지 않다. 

-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중에서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지하방엔, 체구는 작지만 그에게 속한 세상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없는, 거인이 한 명 살고 있다.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9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기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사진.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녹취. 조연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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