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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3월
  • 2019.02.27
  • 121

여는글

21세기형 아큐와 리플리 씨

 


월간 참여사회 2019년 3월호 (통권 263호)

초등학교 5,6학년 때로 기억한다. 교실 칠판 위에 ‘정직, 근면, 성실’이라는 교훈이 우리를 엄숙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그 세 단어가 무서웠다. 그리고 우스웠다. 아마도 훈육과 통제의 의도를 직감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인가, 《바른생활》 교과서는 재미도 없고 뻔한 소리로 들렸다. 1970년대, 국민교육헌장은 우리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전 국민의 뇌를 물들이고 짓눌렀다. 소가 물을 마시면 젖을 만들고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들 듯이, 국민을 하나로 묶으려는 자들이 사용하는, 그 ‘정직’과 ‘성실’은 딴 생각하지 말고 딴짓 하지 말라는 의도와 의미였다. 그래서 성년이 된 이후에도 줄곧 겸손, 예의, 도덕, 봉사, 정의, 충성, 헌신 등 명사가 주는, 이른바 그 ‘좋은 말’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명사가 주는 경직과 강박에서 탈출하고자 의미의 변용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형용사와 동사가 많은, 시의 주변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도 흘렀다. 시공간의 변화와 함께 사물이 변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물을 보는 내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사물과 사건이 달리 보이고, 그동안 부정했던 몇몇의 언어가 낯설어지고, 뒤틀어지고, 새삼스러워졌다. 산과 물이 어제의 산과 물이 아니더니, 내가 사용하던 어제의 언어들이 어제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동안 불신했고, 불편했고, 그래서 슬쩍 외면했던 언어들이 낯선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정직, 근면, 성실, 예의라는 어제의 명사가 새삼 반가워졌다. 비로소 그 ‘좋은 말’이 ‘좋아졌다’. 언어에 부합하는 삶이 진정 길이라고, 내 사고는 단순명료해졌다. 

 

‘정직하게 살자’, ‘거짓말을 하지 맙시다’, 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그런데 지금 이 시절, 다시 세상에서 그런 언어가 무시당하고 있다. 아니 당당하게 활개 치고 있다. 백주대낮에 우리 삶의 시공간에 뉴스라는 이름으로, 세미나라는 명패를 달고 공공장소에서 발언 되고 있다. 이른바 가짜뉴스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그 당당한 가짜 발언을 살펴보자.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에 침투하여 반란에 가담했다고 조목조목 주장한다. 법정에서 가짜뉴스라고 판결해도, 과학적인 방법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증명해도 진짜라고 말한다. 그것도 학교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 박사와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거짓을 진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거짓 발언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 이상하다. 언론은 거짓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극도로 보수적 경향으로 기울고 있고 극도로 우파적이라고 평한다. 많이 이상하지 않은가? 상식을 가진 대다수 사람들은 그 발언이 거짓이라고 보는데, 그 거짓과 몰상식과 무례를 보수와 우파적 경향의 강화라며 진영논리로 분석한다. 사실의 왜곡은 사실의 부정보다 더 위험하다. 사실을 부정하는 거짓이 노골적으로, 혹은 그럴듯한 논리로(진지한 말장난이라고 해야겠다) 활보하면서 우리 사회에 정직이라는 말은 다시 움츠러들고 무시당하고 있다. 거짓이 세간의 조롱을 받기보다 세상을 희롱하는 시대, 무엇보다도 거짓에 동조하고 합류하는 사람들이 매우 염려스럽다. 듣자 하니 가짜뉴스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자녀와 친구들이 법적, 과학적인 증거를 말하며 아무리 가짜라고 해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왜 거짓을 사실과 신념으로 받아들이면서 줄기차게 거짓 발언을 하고 있을까.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재능있는 리플리 씨’들이 하나의 풍조로 늘어나고 있는 시절이다. 이런 21세기 리플리 씨를 신앙처럼 추종하는 사람들은 어떤 심리로 살고 있을까. 혹여 ‘정신 승리’의 마법에 걸려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루쉰의 《아큐정전》에서 아큐는 동네 깡패들에게 얻어맞고 이렇게 자신을 진단한다. “나는 아들한테 맞은 격이다. 아들뻘 되는 녀석과 싸울 필요가 없으니, 나는 정신적으로 패배하지 않은 것이다.” 21세기 아큐들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좌파 빨갱이들에게 핍박을 받고 있다. 그런 놈들과 싸워 이겨야 하니 우리의 가짜뉴스는 가짜가 아니다. 우리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으니 정신적으로 떳떳하다.” 어쩌면 한 개인의 내면에 아큐와 리플리 씨가 절묘하게 동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상은 복잡하지만 진실은 단순하다. 거짓은 거짓이다. 정직이 최선의 삶이다. 

 


글. 법인스님 참여연대 전 공동대표,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전남 땅끝 해남 일지암 암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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