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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10월
  • 2019.10.01
  • 1474

스물여섯 늦깎이 법학도의
마지막 당부   

 

학원악법 철폐하고 독재정권 물러가라

“몸이사 이제 싸늘하게 식었지만 그 맴이사 어디 식겠어. 어림 반 푼 없는 소리제. 이 에미 가슴 이리 불붙는디. 그 맴이 어찌 식겠어….” 

 

비가 내리던 1985년 9월 17일, 성남 모란 시장 건너편에 자리한 경원대(지금의 가천대) 법학도 송광영이 휘발유를 몸에 뿌린 뒤 ‘학원악법 철폐하고 독재정권 물러가라’,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구호를 외치며 분신했다. 그는 과거 YH무역이 있었던 건물에 자리한 서울기독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공권력의 감시 속에서 한 달이 넘도록 병상에 누워 있다가 같은 해 10월 21일, 어머니 이오순의 오열 속에 숨을 거뒀다. 

 

전두환 정권 후반기였던 1985년에 치러진 12대 총선에서는 김영삼, 김대중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신민당의 돌풍이 있었고, 대학생들의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대우 노동자들로부터 비롯된 노동쟁의 등 사회 곳곳에서 민주화 열망이 꿈틀대던 시기였다. 전두환 정권은 문교부에 준사법적 성격의 ‘학생선도교육위원회’를 설치하고, 학원소요와 관련된 형사처벌 대상자들을 일정한 장소에 수용해 6개월 이내의 선도 교육을 시킨다는 내용의 ‘학원안정법’으로 사회 병영화를 시도했다. 삼청교육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 입법안은 보수 야당 대표마저도 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해 8월 중순 입법 연기가 발표되어 유보되는 듯했다. 

 

모든 싸움이 그렇듯, 뉴스로서의 효용가치가 떨어졌다고 해서 일단락되는 싸움은 없다. 당시 문교부 장관은 소요가 계속될 경우 언제라도 법안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으며, 아니나 다를까 학내 시위에는 개입을 하지 않던 전경들은 2학기가 되자 대통령 지시를 근거로 캠퍼스 내로 진입해 시위 진압을 시작했다. 바로 곁을 스멀거리던 국가폭력에 송광영은 ‘결코 총칼이나 학원안정법 따위의 악법으로 복종을 강요할 수 없음을 엄중히 경고한다’는 내용의 양심선언을 유서로 남기고 자신의 희생으로 맞섰다. 대학생 신분으로 분신자살을 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러한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송광영은 만 열여섯이 되던 해, 중학교를 졸업한 뒤 양복점에 취직했었다. 집안의 막내였던 그는 십 대의 나이로 재봉보조원 일을 하며 청계노조에서 활동했고, 형들이 학교를 마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군복무와 생계를 이어가면서 검정고시를 치른 뒤 1984년, 스물여섯 나이가 되어서야 늦깎이 대학생이 될 수 있었다. 그는 검정고시 학원에서 받은 장학금 1만 5천 원을 구두닦이에게 모두 줘버린 뒤, 어머니께 핀잔을 들었지만 “우리는 집도 있고, 좋은 성적을 받은 것으로 만족한다”고 눙쳐버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법학을 택한 것도 어머니를 비롯해 그의 짧은 생에서 만나온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가 경원대에 입학하던 해 가을, 학내에는 비민주적인 재단운영으로 분규가 잦았다. 어용교수 퇴진시위를 그가 이끌게 되면서 그의 대학 생활은 늦깎이 법학도가 가져야 할 평화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실존주의철학연구회’, ‘경제문제연구회’ 등 학회를 만들며 학생운동을 주도한 그는 1985년 여름, 광주항쟁 시민군 출신으로 광주 학살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전남도청 앞에서 분신한 노동자 홍기일의 외로운 죽음을 접한 뒤, 대학생 신분으로는 처음 분신자살을 결행했다. 

 

그의 죽음 이후, 상계동에서 꽃집을 하던 어머니, 월남 파병 후 고엽제 피해자가 된 형의 삶도 바뀌었다. 그의 죽음은 당시 한국 사회가 은폐하고 외면해왔던 많은 모순들을 한 몸인 듯 안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당시 1천여 명의 공권력이 동원되어 그가 안치된 병원에 상주하며 감시했다. 그러나 그 야단법석이 무색하게도 그의 죽음은 어느 언론에도 기사 한 줄 실리지 않았고, 대책위 관계자들을 모두 연행하는 등 경찰의 계속되는 방해 속에 장례식과 영결식도 없이 안장되었다. 

 

이후 그의 기일이 다가올 때마다 그를 기리고자 하는 추모 행동들은 혐오를 수반한 폭력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다. 1996년에는 학교 학생과장과 장학복지과장에 의해 그의 추모비가 충북 음성에 버려졌다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부모님들과 학생들의 두 달여의 농성 속에 되찾은 일이 있었고, 2010년에는 총학생회 간부가 추모사업회를 진행하는 동아리방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일어났다. 

필자가 만든 영화 <1991, 봄>에 오르는 희생자 명단에는 경원대의 학생 이름들이 유독 많았다. 91년에는 5월 송광영을 그림으로 기리던 천세용이 분신했고, 1995년 학원자주화추진위원회 위원장 장현구는 학교의 고소로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받다가 후유증 끝에 송파 사거리에서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1996년에는 진철원이 사학 재단 운영에 항의하며 총여학생회실에서 분신했다.

 

‘그때만 해도 웬만한 학생들은 군사독재에 맞서 수업 거부를 하고 뛰쳐나갔다’라거나 ‘너나 할 것 없이 최루탄 연기 속을 내달렸다’는 식의 영웅담들이 넘쳐나는 속에서 그의 죽음에 대한 당시 사회의 침묵은 지금 무엇이 되었을까? 소외된 모든 주권자들을 대변하려던 민주의 이름은 지금 누구를 지키는 이름이 되었을까? 마주하기 유독 부끄러웠던 탓인지 학교 교정에 나란히 서 있는 송광영과 천세용의 추모비 촬영은 영화 <1991, 봄>의 마지막 촬영 일정이 되었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10월호 (통권 269 호)

경원 투사들에게

너희들은 내가 좋아하고 사랑한 만큼

내가 너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허지만 누구보다 앞장서 싸워온 나를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여기기에 내 죽은 이후 너희들에게

할 일을 부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러한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이 싸움이 너희들에 의하여 끝맺어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이율배반적 현실이 슬프기도 하다

열심히 공부해라! 못난 선배처럼 확고한 이론적

바탕을 이루지 못한 것을 철저히 비판해라.

짧은 생 미련은 없으나 너무나 아쉬운 것이 많다.

이루지 못한 일들 넘겨줄 수밖에 없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1985. 9. 1 송광영 

 

- 가천대학교 진리관 앞에 놓인 송광영 열사 추모비 중에서

 


글. 권경원 다큐멘터리 <1991, 봄> 감독 

<1991, 봄>은 국가의 불의에 저항한 11명의 청춘들과 유서대필, 자살방조라는 사법사상 유일무이의 죄명으로 낙인찍힌 스물일곱 청년 강기훈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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