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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19년 12월
  •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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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빛나는 아날로그 LP

 

월간 참여사회 2019년 12월호(통권 271호)

 

인류는 언제부터 소리를 기록했을까  

친구가 휴대폰에 녹음한 어머니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소녀 시절부터 좋아하신 노래라고 했다. 어머니에게도 소녀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의 노래는 평생 어머니와 함께 했지…. 언젠가 헤어지게 될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한 자락이 가슴 시리도록 애틋하게 다가온다. 

 

스마트폰에 온갖 동영상, 사진과 함께 녹음 파일이 넘쳐난다. 불과 130년 전만 해도 녹음 기술이 없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19세기 말 에디슨과 베를리너가 축음기를 발명했다지만, 녹음과 재생 기술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인류의 집단 지성이 이뤄낸 기적일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소리를 붙잡아 두는 꿈을 꾸었다. 17세기 라블레의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는 주인공의 소리가 바다에 얼어붙었다가 녹아서 다시 소리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물에 젖은 스펀지나 납으로 만든 관에 소리를 담았다가 원할 때 꺼내서 듣는 상상도 심심찮게 있었다. 이러한 상상의 바탕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소리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는 바람이 자리 잡고 있었다.

 

130년 전 녹음된 음악가의 목소리와 연주 

최근 읽은 헤르베르트 하프너의 『음반의 역사』는 녹음과 재생 기술의 발전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19세기 위대한 음악가들 중 목소리를 남긴 사람이 있다. 1889년 12월 2일, 브람스는 에디슨의 대리인이기도 한 테오 방케만 박사의 제안으로 녹음을 하게 됐다. 방케만 박사와 그의 조수는 피아노 아래에 양철로 된 기다란 소리 나팔을 설치했다. 브람스는 피아노를 연주하라는 요구에 부담스럽다는 듯 “브람스가 아니라 펠링어 부인이 연주합니다.”라고 둘러댄 뒤 헝가리 무곡 1번을 연주했다. 그 녹음 파일을 한번 들어보자. 

 

브람스의 생전 육성과 헝가리 무곡 1번 연주

이 음원을 듣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Brahms Talks Plays를 검색하세요

youtu.be/yRcMPxbaDAY

 

 

차이코프스키도 육성 녹음을 남겼다. 러시아의 부호 율리우스 이바노비치 블로크는 에디슨의 포노그래프를 장만한 뒤 1890년 1월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한 유명한 음악가들을 초청했다. 아무도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짧은 대화만 남아 있다.  

 

직접 들은 그의 육성은 목소리 톤이 높고 가벼워서 뜻밖이다. <비창> 교향곡을 들으며 상상한 중후한 목소리가 아닌 것이다. 그의 음악은 위대하지만, 그의 목소리까지 위대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평범한 목소리 때문에 그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작곡가의 음악을 그 자신의 연주로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흐가 연주한 바흐 토카타, 모차르트가 연주한 모차르트 소나타, 베토벤이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등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이들은 녹음 기술이 없던 시절에 살았기 때문에 직접 연주한 음악을 들을 길이 없다. 

 

차이코프스키 육성 오디오 파일

루빈슈타인  멋진 물건이군요! 

블로크  결국 해냈죠. 

라브롭스카야  역겨워요…. 

(음계 노래) 차이코프스키  더 잘 부를 수도 있었는데! 

(라브롭스카야 노래) 차이코프스키  블로크씨도 대단하지만 에디슨은 더 훌륭하군요. 

(뻐꾹, 뻐꾹 소리) 사포노프  모스크바의 페터 위르겐손 

차이코프스키  방금 누가 말했죠? 사포노프 목소리 같은데…. 

(휘파람 소리)

 

이 음원을 듣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Tchaikovsky Edison Cylinder를 검색하세요

youtu.be/7DEEdFLjUiw

 

 

‘하이파이 스트레오’의 전성시대

1960년 무렵은 ‘하이파이Hi-Fi❶ 스테레오의 전성시대’라고 한다. 데카레코드DeccaRecords, 도이치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 등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들이 경쟁하며 최상의 입체 음향을 선보였고, 이를 능가하는 녹음 재생 기술이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무렵 재미있는 일화들이 있다. 영국의 데카레코드는 1948년 ‘FFRRfull frequency range recording’이라는 첨단 녹음기술을 개발한 뒤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초청하여 브람스 교향곡 2번을 녹음했다. 이 역사적 녹음을 위해 데카는 여섯 대의 마이크를 설치했다. 문제는 이 마이크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푸르트뱅글러가 마이크를 하나만 남기고 다 치울 것을 요구한 것. 이날 연주는 전무후무한 명연이었지만 대지휘자의 고집을 존중하느라 형편없는 녹음이 되고 말았다. 

 

림스키 코르사코프 <셰라자데> 

지휘 스토코프스키 

연주 런던 심포니, 1964

1악장 바다와 신밧드의 항해 

2악장 칼렌다 왕자 이야기 

3악장 젊은 왕자와 공주 

4악장 바그다드의 축제, 바다, 난파

 

이 음악을 들으시려면? 

유튜브에서 Scheherazade reference recording Stokowski를 검색하세요

youtu.be/gr7mwY9ICC0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스토코프스키는 RCA 스탭들에게 적극 협조했다. 리허설의 모든 과정을 자유롭게 녹음하여 최상의 입체음향 기술을 맘껏 실험해 보라고 한 것이다. 스토코프스키는 그 덕분에 ‘하이파이를 발견한 사람’이란 명예를 얻었다. 그는 월트디즈니와 손잡고 애니메이션 <판타지아>를 녹음한 데 이어 1964년 데카레코드에서 런던 심포니를 지휘하며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라자데>를 녹음했다. 향후 이 음반은 ‘Phase 4 stereo’라는 입체음향 기술의 성과로 기록된다.

 

지금까지 음악을 들으며 오디오 기기에는 신경을 쓴 적이 없다. 음악에 담긴 작곡가의 마음, 음악을 통해 들려오는 시대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음악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란 베토벤의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디지털 음원이 넘쳐나는 요즘, 새삼 아날로그 시대에 녹음되어 LP에 담긴 그들의 소중한 마음이 그리워진다. 모든 음악이 도매 상품처럼 대량 거래되는 시대, 유니크한 개성을 지닌 아날로그 LP야말로 하나하나 보물이 아닐까. 이 LP들을 다시 들으려면 턴테이블을 장만해야 하는데, 눈 딱 감고 이 작은 사치를 누려볼까 싶기도 하다.  

 

‘High Fidelity’의 약자로, 인간의 가청영역대 16Hz~20kHz를 원음에 충실하게 왜곡 없이 재생하는 음향기기의 특성을 가리키는 음향용어

 


글.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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