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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12월
  • 2019.11.28
  • 512

가려진 이슈 ➎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 

봉인된 차별금지법, 일상에서 멀어지는 평등 

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 

 

 

월간 참여사회 2019년 12월호(통권 271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모든 사람은 차별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도 분명히 밝히는 원칙이다. 그런데 저 말을 법에 담는 것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부족해서 시기상조라고 한다. 차별금지법안이 국회에 등장한 이래 12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보이는 태도가 이렇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기 시작한 건 국가인권위원회다. 2003년 설립 이후 발 빠르게 시작한 일이다. 해외 입법례 검토 등을 통해 권고법안을 발표한 것이 2006년이고 이듬해 법무부가 정부발의안을 입법예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노력과 노무현 정부의 의지가 만났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평등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아니라 이후 십수 년 한국 사회의 인권현실을 후퇴시키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입법예고 과정에서 보수개신교계의 반대에 부딪힌 정부는 7개의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하고 법안을 발의했다. ‘성적 지향’을 비롯해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 병력, 언어, 출신국가, 학력’이 삭제됐다. ‘차별해도 된다는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법무부는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차별금지사유를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조정”한 것이라고 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합리적인 기준’은 이후 ‘논란’에 불을 붙였고 인권의 경계를 설정하는 기준이 돼버렸다. 

 

각종 인권 관련 법과 조례가 폐지되거나 철회되었고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동성애 반대하느냐”는 질문이 등장했다. 얼마 전에는 ‘성적 지향’을 삭제하고 성별이분법을 강화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17대 국회에서부터 19대 국회까지 꾸준히 발의되어온 차별금지법안이 20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되지 않은 현실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사회적 합의’를 거론하는 동안 오히려 차별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고 있다.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와 국회에 있다. 

 

‘누구도 차별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말을 제도로 만드는 일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이 차별인지, 차별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지,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구조적 차별에 맞설 거대한 해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이 과정에 들어설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입을 다물어왔다. 혐오가 문제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혐오라는 문제에 맞서 행동하는 정치인은 늘어나지 않는다. 혐오 때문에 어렵다며 차별금지법 발의에 난색을 표하거나, 혐오부터 해소해야 한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뒤로 미루고 혐오에 길을 내주고 있다. 평등의 운명을 다수결에 내맡기는 것이 현 정부·여당의 태도다. 21대 총선이 다가오니 21대 국회로 과제를 넘기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평등은 한순간 완성되는 과제가 아니다. 지금 바로 변화의 물꼬를 틀 방법을 찾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다. 

 

차별금지법이 봉인된 동안 우리는 더 많은 차별을 알아차리고 더 많은 평등을 이룰 기회를 놓치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평등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어쩌면 우리가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편집위원 한 줄 참견

법인스님 아름다운 정원은 여러 꽃과 여러 나무들이 어울려야 하지 않는가? 

조준희  ‘나중에’와 ‘사회적 합의’라는 비겁한 방패 뒤에서 나와 여전한 일상적 차별을 직시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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