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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03월
  • 2020.03.01
  • 340

삼성의 쇄신, 법원의 공정한 판결과 이사회 개혁에 달렸다

준법위 꼼수 버리고 자발적인 지배구조 개혁에 나서야 

 

글. 이지우 경제금융센터 간사 

 

 

곳간에 도둑이 들었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경찰을 불러 도둑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경찰이 도둑을 잡은 후에 곳간 자물쇠를 새로 달았으니 이제 도둑을 풀어주겠다고 한다면? 한술 더 떠 그 자물쇠가 너무 허술해서 무용지물이라면? 그리고 알고 보니 곳간을 지키기 위해 고용했던 경비원들이 사실은 도둑과 한통속이었다면? 그런데도 경비원들이 곳간을 계속 지키고 있다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지금 삼성그룹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입니다. 

 

자물쇠를 새로 달았으니 도둑을 풀어줘라? 

지난 2월, 삼성은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법위’)를 출범하며, 7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후원금 및 내부거래, 합병·기업공개 등 조직 변경에 대해 보고받고, 경영진의 준법의무 위반 위험을 인지할 경우 조사하고 시정조치 요구하겠다는 운영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내용은 무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86억 원대 횡령·배임 및 뇌물 혐의를 재판 중인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재판장 정준영)가 ‘선제적’으로 주문한 내용입니다. 

 

정준영 재판장은 이에 대해 “기업범죄 재판에서 ‘실효적 준법감시제도’의 시행 여부는 미국 연방법원이 정한 양형 사유 중 하나”라며 “양형 심리 관련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적 운영 여부에 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러자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의 형량을 의도적으로 감량해 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쇄도했습니다. 삼성물산 부당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를 지휘했던 한동훈 부산고등법원 차장검사는 “도둑맞은 집에 세콤을 설치하겠다는 것이 어떻게 도둑을 풀어주는 근거가 될 수 있겠냐”며 준법위 설치가 이재용 부회장 형량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준법위 설치가 미국 양형 사유라는 재판부의 주장 또한 타당하지 않습니다. 재판부가 인용한 미국 연방법원 양형기준 제8장은 ‘사람’이 아닌 ‘기업’에 대한 양형기준이며, 범행 당시 준법감시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는 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양형 감경 사유로 적용될 수 없습니다. 또한 재판부가 내세우는 ‘치료적 사법’은 소수자와 약자, 미성년 등의 범죄 재발을 막기 위한 것으로 정경유착 범죄를 저지른 이재용 부회장은 그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파기환송심은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삼성 승계작업 자체를 부정했던 2심을 파기하고, 승계 현안의 존재 및 뇌물의 대가성을 분명히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준용하여 판결을 내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물쇠(준법위) 설치만으로 회삿돈 86억 원을 훔친 도둑(이재용 부회장)을 풀어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논리입니다. 

 

무용지물 준법위, 거수기 이사회… 곳간은 누가 지키나  

삼성이 설치한다는 준법위가 제대로 된 기능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도 문제입니다. 삼성은 쇄신을 위해 준법위를 설치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김지형 전 대법관 등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조직으로, 어떠한 법적 권한도, 책임도 없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회사 경영 사항에 대해 보고받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사회의 법적 역할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삼성 이사회는 제대로 굴러가고 있을까요?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2015년 구(舊)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곳간(회사의 이익)을 지켜야 할 경비원들(이사회)이 부당한 합병비율에 무조건 찬성하여 삼성물산 이익을 훼손한 것이 그 주요 근거입니다. 합병 전 당시 삼성물산은 제일모직에 비해 매출액이 5배, 영업이익이 3배 이상이었음에도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의 최종 합병비율은 1:0.35로 결정된 바 있습니다. 

 

참고로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 합병에 청와대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에 대한 2심 재판에서 이미 인정된 사실입니다. 심지어 당시 합병에 찬성한 이사 중 최치훈 구 삼성물산 사장 외 5명은 2020년 3월 현재도 여전히 삼성물산의 이사로 재직 중입니다. 삼성이 상법상 회사의 주요한 업무집행을 결정하고 충실의무, 선관주의의무(善管注意義務)를 갖는 이사회를 여전히 ‘거수기’로 유지하면서, 법적으로 어떤 책임도 없는 준법위를 설치한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밖에 되지 않습니다. 

 

합병

2월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관련 주주 손해배상청구 소송제기 기자회견 

 

삼성물산, 부당합병으로 인한 국민연금 손해 배상해야

삼성의 쇄신 의지가 진심이라면, 이사회 등 자발적 기업지배구조 개혁에 나서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에 경제금융센터는 삼성이 오는 3월 각 계열사 정기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 부당합병에 찬성하고도 재직 중인 직무유기 이사들을 해임하고, 계열사 이사와 감사위원을 새로 선임하는 등 이사회 개혁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삼성물산의 경우 부당합병 비율로 인한 국민연금의 손해를 배상해야 함은 물론입니다. 이에 지난 2월 17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변론센터는 구 삼성물산 개인 주주들을 대리하여 삼성물산 합병으로 이익을 얻은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 일가, 부당한 합병에 찬성한 구 삼성물산 및 제일모직 이사 전원, 제일모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에 가담한 회계법인 등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고, 현재 추가로 원고를 모집 중입니다. 

 

이러한 활동은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 불공정한 회사 합병의 피해자인 주주들의 손해를 환수하여 경제정의를 구현하고, 향후 이사들의 배임·횡령 등 회사를 이용한 사익추구 행위뿐 아니라 총수일가를 위한 거수기 이사회 등 관행을 개선하기 위함입니다. 

 

그동안 삼성 총수일가는 이건희 회장 비자금 등 각종 범죄 행각이 드러날 때마다 구조조정본부 해체,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 설립, 차명재산 사회 환원 등 온갖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집행유예를 받아왔습니다. 죄를 짓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던 것이 반복되어 결국 뇌물을 통한 국정농단이라는 파국을 불러온 것입니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면 마땅히 도둑을 처벌하고, 문제가 있는 경비원은 새로 뽑아야 합니다. 정작 도둑을 잡지 않고, 작동 안 되는 자물쇠만 달아놓는다면 또 다른 유사 범죄를 예방할 수 없습니다. 삼성의 쇄신이 국정농단 공동정범인 이재용 부회장의 합당한 처벌과 이사회 개혁에 달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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