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03월 2020-03-01   1617

[떠나자] 베트남 호이안 – 부르는 게 값인가요?

베트남 호이안

부르는 게 값인가요? 

 

호이안1

 

도시가 통째로 세계문화유산? 

베트남 중부에 있는 호이안(Hoi An)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반나절이면 자전거 타고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규모의 작은 도시다. 그래서 여행자 대부분은 국제공항이 있는 다낭(Da Nang)에 머물다가 당일 혹은 1박 2일 정도 호이안에 들른다. 다낭에서 호이안까지는 차로 30분 거리에 올드타운을 둘러보는 게 전부이기 때문에 여행자들에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나흘이나 머물렀다. 워낙 걸음이 느린 탓도 있지만 오래 머물러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느릿느릿 여유롭게 둘러본 호이안 올드타운에는 과거 다민족이 모여 무역하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 중국에서 온 화교들이 만든 집성촌과 그 가문의 사당이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관광을 원하는 여행자들에게 입장료를 받고 있다. ‘조상 잘 둔 집은 명절 때 전 안 부치고 여행 간다’는 농담처럼 호이안 사람들은 선조들이 남긴 흔적으로 먹고산다. 

 

호이안의 유명 관광지보다는 올드타운의 좁고 긴 골목들이 내 여행 취향과 잘 맞았다. 이 도시를 지나쳐갔을 네덜란드 무역상, 인도 무역상의 흔적을 만나길 기대하면서 천천히 골목을 걸었다. 하지만 햇볕에 탄 까무잡잡한 얼굴과 현지에서 구매한 옷차림이 베트남 현지인과 다를 바 없었는지 유럽 여행자들의 카메라에 찍히는 경험만 해야 했다. 

 

과거 활발했던 무역항의 흔적, 호이안 올드타운 

호이안을 달리 설명하면 여행자들이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경쟁하듯 풍경을 앵글에 담으려는 곳이다. 올드타운에서 마주친 이들의 절반은 여행자고, 나머지는 여행자의 주머니를 노리는 상인들이다. 과거 번성했던 무역항의 분위기가 아직 남아 있는지, 혹시 내 몸에 돈이 붙어 있어 돈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건가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 본다.

 

호이안 중앙시장 앞에 놓인 수로에는 작은 나룻배로 사람을 태워 나르는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베트남 돈 5천 동Dong에 양손 가득 비닐봉지를 든 현지인들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주었다. 5 천동이면 우리나라 돈 250원쯤 되는 아주 적은 금액이다. 힘겹게 노젓는 노인을 보면서 ‘저 돈을 받아서 어찌 살까?’ 괜한 측은지심이 발동한다. 하지만 노인의 장사 수완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이내 눈치 챌 수 있었다. 뒤이어 여행자 서넛이 노인의 배에 타려고 “얼마입니까?”라고 물으니 노인은 “2만 동이요.”라고 답한다. 순식간에 요금이 네 배나 오른 것이다. 노인은 여행자와 현지인을 구분해내는 그 단순한 눈썰미만으로 꽤 괜찮은 장사를 하고 있었다. 호이안 지역 상인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아가는 듯싶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호구 여행객이 되고 싶지 않아서 구글맵을 열고 현지인 리뷰가 달린 한 식당을 찾았다. 숙소에서 꽤 거리가 있었지만 깔끔한 내부 인테리어와 리뷰에 적힌 저렴한 가격대가 마음에 들었다. 태양 아래 땀을 흘리며 어렵게 찾아간 식당 안에는 이제 막 저녁 장사를 시작했는지 손님은 없고 잘 정리된 테이블마다 메뉴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베트남어로 적힌 메뉴였지만 돼지고기, 소고기, 새우, 장어 등의 음식 재료와 볶다, 끓이다, 튀기다 같은 조리법을 베트남어로 익혀두면 현지 식당에서도 음식 주문은 크게 어렵지 않다. 사람이 먹는 재료는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저 멀리 유럽이나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호이안2

 

호구 여행객이 되고 싶지 않았을 뿐인데

그렇게 한참 베트남어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쳐다보지도 않던 주인장이 뒤늦게 우리 인기척에 놀랐는지 성큼성큼 다가와 영어 메뉴판을 내밀었다. 드물게 외국인이 찾아오기도 하는지 영어 메뉴판이 있는 모양이었다.

 

‘참 친절한 주인이군’ 하는 생각도 잠시, 영어 메뉴판은 음식 가격이 베트남어 메뉴판의 두 배 정도였다. ‘이러다 눈 뜨고 코 베이게 생겼군’ 싶었다. 어이가 없어서 두 개의 메뉴판을 들고 어떤 가격으로 받을 거냐고 사장에게 묻자, 그는 ‘장사 시작부터 한몫 잡을 수 있었는데 그것참 아쉽게 됐군’하는 표정으로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곧 능글능글 웃으며 현지인 가격으로 받겠다고 했다. 실랑이도 없었고 언성도 높이지 않았으며 우리는 그렇게 서로 웃으며 협상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밥을 먹는 내내 ‘세계문화유산 타이틀을 갖고 있는 여행지의 상인들은 모두 이런 태도로 사는 건가’ 싶었다. 

 

관광지에서 받는 호의는 조금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베트남어를 모르니 영어로 통번역한 비용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어딘가 찜찜하고 억울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낮에 여행자들이 노인의 나룻배에 타려고 한 건 현지인들처럼 그 수로를 건너보고 싶었기 때문일 거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숙소 근처의 가까운 식당을 두고 굳이 먼 거리의 식당을 찾아간 건 현지인들처럼 식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의 입맛을 느껴보고 싶어서다. 현지 물정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호구가 되고 싶지 않았고, 바가지요금이 아닌 현지인 가격으로 밥을 먹고 싶었을 뿐이다. 누군가는 돈 쓰는 기분을 내고 싶어서 동남아 여행을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관광객이라고 해서 현지인과 다른 대접을 받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한 도시에 오래 머무는 여행을 하면서 대체로 기분 좋은 기억을 남기고 온다. 만약 호이안에서도 한 달을 머물렀다면 다른 도시들처럼 따뜻한 추억과 함께 돌아왔을까. 가보지 않은 길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난 뒤끝이 긴 사람이라 앞으로 당분간 여행지에 호이안은 올리지 않을 거다. 

 


글, 사진.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함께 글 쓰며 사는 부부 작가이다.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며,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마흔 번의 한달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최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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