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전말기(1)

구속전말기(1)

"폭행에 기물파손…공무집행 방해라…영장 신청해버려."

엄지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조사기록을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던 형사반장은 저만큼 구석진 데서 초조하게 앉아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는 하준상 씨를 한 번 흘낏 훔쳐보곤 필요 이상으로 버럭 소릴 질렀다.

조금 전 준상 씨를 고소한 오렌지족 두 녀석의 보호자로 나타났다 사라진 금테안경의 늙수그레한 신사에게 머리까지 조아려가며 부드러운 웃음을 선사하던 때와는 정반대 현상이었다.

반장이 내미는 조사기록을 날름 집어들고 준상 씨 쪽으로 돌아서는 전 형사의 입가엔 야릇한 미소가 살짝 돌았다.

그는 작달만한 키에 군용탱크 잠바를 입고 스포츠형으로 머릴 짧게 깎은 폼이 얼핏 보기엔 훈련소에서 갓나온 신병처럼 보이다가도 자세히 보면 어깨 탓인지 강인한 냄새마저 확 풍겨주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중성이었다.

전 형사의 알 듯 모를 듯한 인상도 그렇지만, 조금 전 금테안경에게 머릴 조아리던 형사반장도 그렇다. 큰 눈에 광대뼈마저 툭 불거진 데다가 크고 긴 두상이며 두텁게 아래로 처져내린 인중에 윤기까지 잘잘 흐르는 검붉은 입술에 껌을 질겅거리는 폼이 영락없이 투우용 황소가 되새김질을 하는 것 같아 준상 씨는 하마터면 소리내어 웃을 뻔했다. 결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허황된 웃음이 목구멍까지 울컥 튀어오르는 것을 꾹 눌러 도로 삼켜버리긴 했지만 그것은 비단 형사반장의 우스꽝스러운 변신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도대체 준상 씨가 오늘 저녁 회사를 퇴근해서 이곳 경찰서까지 끌려온 일이며 지금 자신이 이 지경으로 인신 구속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기까지의 시차 공간 속에서 진행되어온 모든 일들이 너무나 어처구니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장은 여전히 껌을 질겅거리며 철그럭거리는 열쇠꾸러미를 공기 돌 받듯이 코허리쯤 허공에다 휙 던져올렸다가 철그럭하고 되받아 신바람을 내고는 책상 서랍 여기저기를 철컥철컥 잠그는가 하면 훅훅 당겨 확인해보기도 했다. 이건 그의 버릇인 모양이었다.

"일어서시지."

전 형사가 들고온 조사기록 뭉치를 자기 책상 위에 태질치듯 던지고는 준상 씨의 겨드랑이를 움켜잡아 일으키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준상 씨도 이에 맞서 옷자락에 힘을 주어 울컥 버텼다.

"야 이 친구 오늘 정말 되게 속 썩히네 씨-."

전 형사는 꼬부랑한 감정이 잔뜩 묻은 손길로 준상 씨의 등을 우악스럽게 밀어댔다. 준상 씨가 등을 떠밀려서 동물 우리같이 습하고 어둑한 보호실 철창 속으로 고꾸라질 듯 뒤뚱거리며 뛰어들었다. 그의 등 뒤로 철창의 빗장이 철컥하고 잠겨졌다.

이따금 영화나 텔레비전 화면에서나 보아왔던 철창 속의 사람들, 그 위치에 난생 처음이긴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이 들어앉은 신세가 되고보니 허탈한 마음에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기도 하고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도 싶었다.

준상 씨는 휙 돌아서서 철창살에 매달리듯 하며 전 형사의 등짝에 눈길을 매달았다. 그러나 그는 마치 야생동물을 포획하여 운반차량에 싣는 작업을 마악 끝내고 돌아서는 밀렵꾼처럼 손바닥을 툭툭 털면서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빨리 돌려보내라구, 난 나간다."

형사반장이 소매자락을 손가락 끝으로 밀어올리고 시계를 코 앞에 끌어당겨 보더니 갑자기 불에 엉덩이라도 데인 듯 벌떡 일어나 출입문을 빠져나가며 전 형사를 향해 말했다.

그때까지 책상머리에 턱을 괴고 앉아 하얗게 쏟아져내리는 형광등 불빛 아래서 조는 듯 앉아있던 준상 씨를 고소한 두 녀석들을 전 형사가 턱짓으로 불렀다.

"너희들은 돌아가고 나중에 검찰에서 부르면 나가서 진술이나 잘해 알았어. 자, 여기 주민등록증."

전 형사는 노름방에 화투패 돌리듯이 녀석들에게 받아두었던 주민등록증을 휙휙 던져주었다.

꾸벅꾸벅 절을 하고난 두 녀석은 살쾡이처럼 민첩하게 조금 전에 형사반장이 빠져나간 출입문으로 사라졌다. 녀석들의 꼬리가 완전히 문틈으로 사라졌나 할 순간 빨간잠바의 대가리가 반쪽만 문틈으로 다시 비집고 들어와 보호실 철창가에 붙어 서 있는 준상 씨를 향해 혀를 낼름하고 사라져버렸다.

죽은 거북등처럼 납작하게 벽에 매달려 뽀오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팔각형 고물 벽시계가 V자를 그리고 있었다. 벌써 밤 열한시 오분이었다.

상 씨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서른 다섯 살의 건설회사 중견사원인 그가 연 사흘에 걸쳐 야간작업을 끝내고 오늘에야 정시 퇴근시간에 맞추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회사를 나섰던 것이다. 그의 마음은 이미 세 살 짜리 귀여운 딸과 아내가 따끈한 밥상머리에서 기다리는 집으로 달려가 있었다. 그가 이러한 귀가길에 오른 것은 봄냄새가 물씬 풍기는 4월 첫째주 수요일인 오늘 저녁 일곱시경이었다.

슨 일이든지 맡았다 하면 깔끔하게 끝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의 성격 때문에 회사에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았고 덕분에 입사 삼년 만에 동기들은 아직 주임도 못 된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도 그는 건축과 과장대리에까지 승진해 있었다. 그의 사회인으로서의 일상도 항상 정의감과 의협심이 몸에 배어 있었고 아내와 늦다리 결혼 후에는 직장과 가정의 궤도에서 단 하루도 벗어나 본 일이 없는 성실한 생활인이기도 하였다.

늘도 그는 여느때나 마찬가지로 B그룹 방계회사인 대성실업 십이층 빌딩 앞에서 노선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에 서서히 잠식되어가는 초저녁 포도 위를 자동차들이 하나 둘 눈을 뜨면서 이를 악물고 내닫고 있었고 조금 아랫쪽 길 옆에는 지금 막 좌판을 벌인 포장마차가 내부를 발쪽이 드러내 보이며 저녁 영업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차츰 짙어가는 어둠이 건물들 사이사이 골목 틈으로부터 슬금슬금 기어나와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오색 네온사인들이 여기저기서 펄쩍펄쩍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버스가 올 방향으로 눈길을 주었다.

바로 그때였다.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등 뒤로 뜨겁게 느껴지는 순간 그는 넓적다리 쪽에 걷어채이는 듯 심한 아픔을 느끼며 반사적으로 돌아보았다. 그가 서 있는 뒤편 골목길에서 베이지색 그랜저 승용차 한 대가 갑자기 튀어나오며 그를 스쳐 밀고는 멈추어섰다. 몸의 중심을 놓치고 쓸어질 뻔한 자세를 곧추세우며 돌아다보자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녀석이 차에서 튀어내렸다.

그는 순간 허리를 구부려 아픈 다리께를 감싸쥐고 녀석들이 미안하다고 사과해올 것에 대비해서 조심하라고 주의를 줄 작정으로 녀석들에게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들은 그에겐 일별도 없이 대성빌딩 대리석 현관에 시선을 꽂고 어슬렁거리며 걸어갔다.

한 녀석은 착 달라붙은 청바지에 앞 머리엔 무스를 발라 닭벼슬처럼 올려세웠고 한 녀석은 핏빛이 도는 빨간색 잠바를 입은 품이 한눈에 오렌지족임을 알 수 있었다. 대성빌딩 계단으로 다가간 후 한 녀석은 청바지 가랑이를 쩍 벌려 한쪽 다리는 인도에 다른 한쪽 다리는 대성실업의 번쩍번쩍 광택이 나는 대리석 계단에 걸치고서 짝짝짝 껌을 씹어대었고 빨간잠바의 다른 한 녀석은 그 녀석의 발끝 돌계단에 퍼질러 앉으며 담배 한 개피를 꺼내어 라이터 불을 반짝 켜대며 말했다.

"까이들이 다 틀어졌으니 오늘은 헌팅이다 헌팅."

녀석들은 자신의 차에 받친 준상 씨 따윈 아예 의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준상 씨는 어이가 없어 잠시 녀석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포장마차에서 흘러나오는 카바이트 불빛, 주변에 흩어져 있는 네온과 가로등 불빛들, 이런 것들이 혼합된 괴기성 조명을 받아 일렁거리는 녀석들의 상통은 불량기마저 감돌고 있었다.

가랑이를 쩍 벌리고 서서 껌을 씹던 녀석이 돌계단에 퍼질러 앉은 빨간잠바의 입술에 붙은 담배를 훌쩍 떼내어 한 모금 쭉 빨아 그 연기를 허공을 향해 후 뿜어올리고는 다시 되돌려주는가 하면 주둥이를 닭 똥구멍처럼 오물오물하며 씹던 껌으로 밤알만한 껌 풍선을 만들었다 터뜨렸다 하며 입재주도 부렸다.

준상 씨는 녀석들의 방약무도한 태도에 대해 무엇인가 한 마디 해주려고 녀석들을 향해 두어 걸음 옮기다가 아내가 당부하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여보 당신은 요즈음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슬기가 부족해요. 요즈음 사람이 무탈하게 살려면 경우 같은 건 절대로 따지지 말아야 하고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는 일단 방관자가 돼야 해요, 당신처럼 맨날 눈에 보이는 대로 경우를 따지는 사람들은 손해보기 마련이에요.’

의협심이 강한 그의 성격으로 인해 생기는 귀찮은 일이 있을 때마다 핀잔조로 한 아내의 말이었다. 민원 창구에서 창구 직원의 나태함을 지적했다가 심통이 난 그로부터 불이익을 받기도 했고, 난폭운전을 하는 택시기사에게 주의를 주었다가 자질구레한 불평을 들은 거라던가, 순서를 기다리는 열중에 새치기를 하는 얌체를 잡아내다가 시비가 붙는가 하면, 지하철을 탔을 때 주정꾼을 제지했다가 멱살을 잡히는 등 준상 씨로서는 자질구레한 손해를 꽤나 자주 보아왔던 터였다. 그 때마다 모른 체하고 넘어가 버렸으면 아무 탈이 없었을 것이라는 게 아내의 지론이었다.

"어머-."

대성실업 건물에서 그녀의 동료 한 명과 함께 마악 나서던 제복을 입은 이십대 초반의 처녀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청바지 녀석이 씹고 있던 껌을 잔뜩 오므린 입술 끝으로 그녀들을 향해 투-하고 쏘았고 녀석의 입술 끝에서 튀어나간 껌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하필이면 그녀의 코 밑 인중 부분에 착 달라붙어 버렸던 것이다.

불시에 껌 공격을 받은 그녀는 목을 자라처럼 어깨 속으로 움츠리며 인중에 붙은 껌을 급히 털어낸다는 것이 그만 입술과 손가락 사이에서 만두 반죽처럼 찌익 묻어났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그녀의 동료가 황급히 휴지를 꺼내어 친구의 입술과 손가락에 묻은 끈적끈적한 껌을 떼어내느라고 부산을 떨며 꽁알대었다.

"이히히 커 참 기똥차네, 야 성대야 너 참 재주도 기똥차다, 얌마 너 무례하게 그딴 식으로 간접 키스하기냐."

앉아있던 빨간잠바가 재미있어 미치겠다는 듯이 한쪽 발로 땅바닥을 탁탁탁 굴러가며 웃어댔다.

"새꺄 좀 가만 있어…어이 거 쬐끔 미안한데…그건 그렇고 이왕 이렇게 된 바에 우리 오늘 뺑뺑이 한 번 어때 응 뺑뺑이."

껌을 쏘아보낸 청바지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입가에 실실 흘리며 옆에서 까불어대는 빨간잠바를 손바닥으로 툭 치고나서 슬금슬금 그녀들 곁으로 다가갔다.

"여보세요. 어디다가 씹던 껌을 함부로 뱉고 그래요."

껌 공격을 받은 아가씨가 다가오는 녀석의 얼굴을 정면으로 빤히 쳐다보며 톡 쏘았다. 포장마차의 카바이트 불빛에 비친 그녀들의 가슴에는 대성실업 배지와 빨간 플래스틱 명찰이 반짝하고 불빛을 퉁겼다. 급한 김에 제복을 사복으로 갈아입을 겨를 이 없었던지 근무복을 입은 채 였다.

"야 니네들 미안하다고 했잖아, 우리 오늘 뺑뺑이 짝이나 하자구 피나게 한 번 돌자구 응 저기 저 차에 타자 응."

껌 뱉은 녀석은 사과를 하기는커녕 수작을 걸고 있었다. 뒤에 처졌던 빨간잠바도 불이 버얼건 담배꽁초를 허공에다 휙 퉁겨버리고는 바지주머니에 양손을 쑤셔넣은 채 주적주적 끼어들었다.

"야 요건 얼마든지 있으니까."

녀석은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그녀들 코 앞에 들이대면서 돈 것정은 말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녀석들을 향해 앙칼지게 톡 쏘았다.

"사람을 어떻게 보는 거예요."

"이 두 눈으로 보지 뭘 어떻게 봐."

"교양은 뭐 벙어리 저금통에 저금해놓고 다니는 거예요.?"

"교양 교양, 하지마 난 저금한 거 다 찾아쓰고 없다."

녀석들의 대꾸가 점점 조롱기로 변하고 있었다.

"알만한 사람들이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에요."

"알만하다니, 설마하면 글쎄 우리가 계란이나 메추리알 정도로밖에 안 보이냐, 알만하다니, 아 우리도 엄연히 선거권이 있다구 왜 이래 이거, 야 성대야 얘들이 우릴 알만하댄다."

청바지도 지금까지 보여오던 은근한 태도를 바꾸어 갑자기 빈정대기 시작하였고 빨간잠바도 시비조로 변한다.

"씨발 더럽게도 비싸게 구네, 싫음 그만둬 우릴 상대할 아이들은 얼마던지 있어 쌍판이 괜찮다 싶어 그랬는데 싫다면 그만이지 뭐 꺼져버려."

"어머머 기가 차서"

그녀의 입술이 분노로 인해 파르르 떨었다.

"뭐 꺼지라고 야 이 거지 같은 자식들."

그녀의 동료가 더 화가 나 있었다.

깐 사이에 이들의 대화는 싸움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옷자락을 잡아채고 턱을 거두는 등 몸싸움으로 변하고 있었으나 실은 그녀들이 일방적으로 폭행에 가까운 희롱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승강이를 지나는 행인들은 무관심하게 흘깃거리다가 콧등 너머로 또는 귀뿌리 밑으로 경계하는 눈초리를 보낼 따름이었고 그녀들을 위해 나서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까지 지켜보아온 준상 씨는 창자 끝에서부터 목까지 울화가 치밀어 올라와 목구멍으로 억누르고 있는데 그의 구두코에 통-하고 경쾌한 음향을 내며 날아와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플래스틱 명찰이었다. 빨간색 명찰에는 김영미라고 음각되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구경꾼의 일원으로 존재하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준상 씨는 모든 운동을 즐겨했지만 특히 유도는 삼단을 보유한 실력이라 불시의 습격을 받지 않는 한두 놈 정도에게 공매 맞을 염려는 없었다. 그는 카바이트 불빛을 받으며 성큼성큼 그들쪽으로 다가갔다.

"야 이놈들아 그만두지 못해."

순간 녀석들은 동작을 멈추고 주춤하고 고개를 비틀어 준상 씨를 쳐다보았고 그녀들 역시 구겨진 옷자락을 매만지며 도끼눈을 한 채로 씨근거리며 준상 씨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아니 당신은 또 뭐야."

청바지가 얼굴 근육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돌아섰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더욱 험악하게 확 변해버렸다. 지금까지는 최소한 녀석들에겐 싸움이라기보다는 그녀들에게 싸움 반 희롱 반으로 섞어 장난기 어린 싸움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분위기가 그게 아니었다. 녀석들의 상통이 번쩍거리는 네온의 불빛을 받아 더욱 더 험악하게 보였다.

녀석들은 사냥감을 보고 허기져 달려드는 맹수떼처럼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준상 씨를 가운데로 하고 옥죄어들었다.

흥미있는 구경거리를 놓칠세라 지나던 행인들이 우루루 에워쌌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자신들에게 불똥이 튀어오지 않을 만큼 적당한 안전거리를 두고 멈칫멈칫 하며 비겁한 눈알들만 반짝거릴 뿐이었다. 쭉 둘러선 구경꾼들 사이에는 포장마차 여주인의 투박한 얼굴도 어깨와 어깨들 사이에 벌쭉이 걸려 있었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건의 주역이던 그녀들도 이젠 도리없이 구경꾼으로 변하여 있었다.

"너희들 도대체 왜 그래, 사람을 차로 받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공연한 행패나 부리고 왜 그래 늬들…."

준상 씨는 감정을 억지로 누그러뜨리려고 애쓰며 녀석들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타이르듯이 말했다.

"어허 이 어렵소 이거 놔, 씨팔."

빨간잠바가 어깨 위에 올려진 그의 손을 주먹으로 쳐서 떨어뜨리며 콧김을 내뿜었다. 그는 빨간잠바에게 얻어 맞은 손이 몹시 아팠다. 그러나 다시 참고 말했다.

"보아하니 나이도 어린 녀석들이 도대체 이게 무슨 행패야 행패가. 어서 늬들 갈 길이나 가 이 녀석들아."

"이히- 창만아 사람 제법 웃긴다야 이치가 우릴 어린 녀석들이란다 야, 어이쿠 이걸 그냥."

청바지가 소싸움 하듯이 대가리를 그의 턱 밑 목에 틀어박고 뜸베질을 해대며 어금니 사이로 씨부렁거렸다. 그는 놈의 대갈통에 턱을 떠받쳐 얼굴이 하늘로 향해 제쳐진 채로 주춤주춤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좀 얻어 터지려고 백 쓰는 모양인데- 성대야 저리 비켜 내가 손 좀 봐줄게 씨팔놈."

대갈통으로 뜸베질을 해대던 청바지를 빨간잠바가 휙 버리고는 그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움켜잡고 우악스럽게 밀어젖혔다. 그는 녀석에게 밀려 건물 대리석 벽에 등을 부닥치는 순간 녀석의 주먹이 그의 아랫배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헉!."

준상 씨는 순간 호흡이 정지되는 것을 느끼며 아랫배가 뻣뻣하게 굳어드는 것과 함께 일이 매우 꼬여들고 있음을 느꼈으나 때가 너무 늦어 있음을 직감하였다. 포장마차에서 흘러나오는 카바이트 불빛이 그의 몸 전체에 와서 달라붙으며 마구 떨고 있었고 건물 사이사이로 쏟아져나오는 네온 빛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다음 순간 또다시 허공을 가르고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주먹을 보았다. 준상 씨는 그 주먹을 재빨리 피해 건물 벽면으로부터 민첩하게 몸을 빼내었다. 날아든 주먹은 목표물을 잃고 대리석 벽면을 후려쳤다.

"아앗."

빨간잠바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진 제 주먹을 움켜 안고 굼벵이처럼 허리가 꾸부러졌다. 뒤이어 청바지의 가랑이가 휙하고 어둠을 갈랐다.

준상 씨는 자신의 가슴을 향해 날아드는 녀석의 발길질을 유연성 있게 몸을 돌리며 잡아 낚아챘다. 청바지가 나가 동드라졌다. 그는 이어서 깨어진 주먹을 안고 쩔쩔 매고 있는 빨간잠바의 허리를 잡아 땅바닥에 업어치기를 해버렸다. 순식간에 뚜렷이 갈라지고 있었다.

러자 녀석들은 씨팔 좇도를 연신 내뱉으며 차를 몰로 어둠속으로 꼬리를 사려버렸다. 둘러서 있던 구경꾼들도 좋은 구경거리가 너무 싱겁게 단막으로 끝나버린 데 섭섭한 입맛을 쩝쩝거리며 하나 둘 흩어지고 있었다. 시비의 주인공이던 그녀들도 준상 씨에게 머리를 가볍게 조아려 고마움을 표시한 후 엉덩이를 살레살레 흔들면서 멀어져갔고 포장마차 뚱뚱보 아주머니도 앞치마에 손을 부비며 포장마차 속으로 뒤뚱뒤뚱 기어들었다. 그뿐이었다. 그리고는 다른 아무 일도 없었고 거리는 거짓말처럼 다시 평상으로 돌아가버렸다.

상 씨는 단추가 떨어지고 구겨진 옷자락을 매만지고 넥타이를 바로 잡으면서 심한 갈증을 느꼈다. 기분마저 엉망으로 구겨져버렸다. 소주 한 잔으로 목을 축여야 기분이 원상회복될 것 같아 포장마차의 천막을 들추고 목판 앞에 다가앉았다.

"에이 재수가 없을라니…, 아주머니 소주 한 병 주시오."

카바이트 불꽃은 더욱 성난 듯 식식거렸고 목판 위에서는 오징어 꼼장어 해삼 멍게 닭다리 곱창 낙지…안주감들이 모두 울그락불그락 성질을 내며 펄펄 뛰는 듯했다.

준상 씨도 카바이트 불꽃처럼 식식거리며 소주 두 잔을 안주도 없이 연거푸 목구멍으로 쏟아부었다.

"안주는 뭘로 할라요 이-."

뚱뚱이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시커먼 얼굴에 흑인처럼 뒤마려 올라붙은 두꺼운 입술과 어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꼼장어나 좀 구워놔요."

"근데 아점씨는 워찌 고로콤 힘이 쎄당가요 이-. 깡패 두 놈이 넉장거치 나자빠져 뿐지니 참말로 아점씬 힘이 쎄두만요 이-."

뚱뚱이 아줌마가 벌겋게 양념된 꼼장어를 연탄불 위에다가 뒤척이며 사뭇 감탄조로 말했다.

포장마차 안에 있던 서너 명의 손님들도 준상 씨에게 부러운 시선을 흘깃흘깃 보내고 있었다. 준상 씨는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도 우쭐해진다거나 자랑스럽지가 않았다. 그것은 아내의 말이 귓바퀴를 타고 뱅뱅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보 속담에 남의 싸움에 칼 뺀다는 말이 있죠. 제발 당신 남의 싸움에 칼 좀 빼지 말아요. 공연한 일에 항상 뛰어들어 자신이 손해보는 일 말이에요.’

사사건건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준상 씨에게 아내는 항상 불만이었다.

"이사람이야?"

"네 그래요 맞아요, 이사람이요."

마지막 소줏잔을 훌쩍 마시고 난 준상 씨의 등 뒤로 포장이 휙 걷어 올려지며 포장 안의 불빛과 밖의 어둠이 마구 뒤섞이면서 시커먼 경찰모에 번쩍하고 독수리 경찰모표가 보이나 싶자 그 뒤로 빨간잠바와 청바지 녀석들의 버얼건 낯짝이 묻어들며 그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찍었다.

그는 안주 한 점을 막 입으로 가져 가려다가 멈추고 그들에게로 고래를 틀었다.

"갑시다, 파출소로 좀 갑시다."

양볼이 불룩 나오고 낱알 감자처럼 생긴 코가 붉은색을 띠고 있어서 경찰모를 썼으니 망정이지 경찰모만 벗겨놓으면 좋게 말해서 못난이 인형보다 조금 못생긴 순경이었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을 조금은 원망해도 될 성싶을 그런 얼굴의 순경이 준상 씨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어서갑시다."

"왜요, 파출소는 왜요?"

"몰라서 그러시우 당신이 이 사람들을 때렸다고 신고를 받았으니 파출소에 가서 조사해봐야겠소, 어서갑시다."

준상 씨는 어이가 없어 순경과 녀석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카바이트 불꽃은 더욱 식식거렸고 목판 위의 안주감들과 술병들이 함께 울그락불그락 동조하고 있었다.

출소는 애시당초부터 신뢰성이 없어 보였다. 마치 복덕방 사무실처럼 어거지로 꾸며 놓은 서너 평 됨직한 집무실에 들어서자 입구 쪽에서부터 구석진 데까지 ㄴ자로 걸쳐놓은 나무의자엔 못대가리가 삐져나와 있었고 행상 차림의 사십대 여인이 코흘리개 사내아이를 끼고 그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었다. 그 옆으로 빈 책상을 두어 개 건너뛰어 출구 쪽엔 뚱뚱한 순경이 재털이에 올려놓은 담배꽁초가 제풀에 다 타서 책상 위로 굴러내리는 것도 모른 체 하마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목젖을 드러내고 하품을 해대는데 꺼멓게 변색된 금속 어금니가 을씬년스럽게 보였다.

"하-이 피곤해 죽겠네."

준상 씨를 연행해온 감자코 순경은 경찰모를 벗어서 들어올린 제 무릎에다 먼지를 툭툭 털고는 종이와 볼펜 경찰봉 재털이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는 책상 위에다 툭 던지고는 얼굴 근육을 잔뜩 찌푸리며 푸념했다.

"이 사람이야? 가해자가"

대머리 차석이 준상 씨를 턱으로 가리키자 감자코 순경이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담배를 빼어물고 황이 다 닳아 불이 잘 켜지지 않는 성냥을 열심히 긋고 있었다.

"피해자는 어디갔어?"

"진단서를 떼어오겠다고…병원에…."

"성민의원에 보내지 그랬어."

"거기 갔어요."

진단서 발급 병원도 파출소 단골이 있는 것 같아 불쾌감을 느끼며 엉거주춤 서 있는 준상씨에게 감자코 순경이 불이 붙은 담배를 한 모금 발아 연기를 뿜어내며 삐죽이 내민 입으로 벽에 붙은 낡은 의자를 가리켰다.

"거기 앉으슈."

준상 씨는 삐어져 올라온 못대가리를 피해 조심스레 엉덩이를 낡은 나무의자에 올려놓았다.

"아재씨예, 한 번만 용서하시이소, 내 다시는 앙그랄랍니더."

대머리 김 차석을 애원의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던 여인이 울음섞인 목소리로 통사정을 했다.

"아재씨예, 어린 것 하구 먹구 살라꼬 하다보이 그래 됫뿌릿서예, 한 번만 봐주이소 예, 아재씨예."

"시끄러워요, 벌써 세 번짼데 뭘 봐달란 말야, 그놈의 암표상 때문에 내가 신물이 난다구 신물이."

대머리 차석이 도끼눈을 하고 버럭 고함을 지르자 여인은 반사적으로 움찔 움츠러들며 코흘리개 아이를 끌어안았다.

"이번에는 안 돼, 경범 딱지 긁어서 넘겨줄 테니까 구류를 살든지 벌금을 물든지 그건 맘대로 하라구."

"아재씨예, 한 번만 용서하이소, 집에 젖먹이를 두고 왔어예, 나 인자부터 다시는 안 할라카이 한 번만 용서하이소 예."

"어허 안 된데두 되게 귀찮게 구네, 그거 지난 번에도 똑같은 소릴 했잖어 엉. 조금 기다렸다가 경범 호송 차량 오면 타고 본서로 가라구, 본서에 가서 사정해보라구."

대머리는 야멸차게 잘라 말했고 여인은 꿀적꿀적 울기 시작했다.

덩달아서 코흘리개 아이도 `힝-엄마야’ 하며 꽈리만한 코거품을 코 끝에 매달며 울기 시작했다.

"커 참 되게 귀찮게 구네, 강 순경 저 아주머니 저 뒤 보호실에 좀 넣어두라구."

대머리는 번쩍이는 이마에 플래스틱 이남박처럼 쭈글쭈글 주름을 잡으며 감자코에게 눈짓을 했다. 감자코는 여인을 잡아끌었다.

"집에 젖먹이가 있는데…."

여인은 말 끝을 못 맺으며 이젠 막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뒷벽에 난 출입문으로 끌려들어간 여인의 울음소리와 아이의 울음소리가 철크덕하는 철문 여닫는 소리와 함께 조용해져 버렸다.

준상 씨는 순간 또 목구멍에 주먹 같은 것이 툭 튀어 올라왔다.

"여보시오 차석님, 그거 암표상 단속도 좋지만 불쌍한 아주머닌 것 같은데 좀…융통성을…베풀 수는…."

"뭐요? 당신 지금 여기 뭐하러 와 있는 사람인지 알기나 하고 말하는 거요? 당신 지금 폭행 피의자로 연행되어 와 있는 주제에 누굴 교육시키자는 거야 뭐야."

대머리 경사가 눈에 불을 켜고 목울대를 높여 준상 씨 말꼬리를 싹둑 잘라버렸다.

"아니 교육시키자는 게 아니라…다소 좀 융통성을…."

"이 사람이 정말 왜 이래, 당신이 그렇지 않아도 다 잘할 것은 잘하고 있으니 당신 걱정이나 해."

여인을 보호실에 가두고 손을 부비며 나오던 감자코와 연방 하마처럼 하품을 하고 있던 뚱뚱이 순경이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서로 마주보며 코를 벌름거렸다.

때마침 출입문이 펄쩍 열리며 녀석들이 진단서 봉투를 들고 뛰어 들어왔다. 녀석들은 마치 어디 심부름에서 돌아온 파출소 사환쯤 되는 양 숨을 헐떡거리며 주척거렸다.

감자코가 얼른 봉투를 받아들고 봉투 아가리에 입바람을 훅 불어넣어 진단서를 끄집어냈다.

"우수에 자상 좌측 대퇴부 타박상…전치 2주…이리로 의자 당겨놓고 앉어, 에 또 그리고 당신도 이리 와 앉고, 남의 걱정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당신 조사 좀 하자고."

감자코는 어지러운 책상 위를 툭툭 털어내고 볼펜을 집어들어 딱딱 손장난을 치면서 책상머리에 둘러앉은 준상 씨와 녀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먼저 피해자인 자네들부터 진술해봐."

"네 저희들이 말이죠, 친구집에 가려고 요 앞 대성빌딩 앞에서 차를 세우고 길을 묻고 있는데 말이죠, 이 아저씨가 저희들 보고 건방지다면서 시비를 거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뭐가 건방지냐고 하니까 이 아저씨는 어린 놈이 말대꾸를 한다면서 트집을 잡아 저를 태질을 치고 마구 짓밟았어요, 여기 보세요. 이 손도 구둣발로 짓이겨서 이렇게 터진 거예요."

빨간잠바가 나불거리는데 청바지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제가 옆에 있다가 말리자, 그렇지 네 실은 말리지도 못했죠. 말리려 했을 뿐이죠. 그러자 이 아저씨는 저마저 어깨너머로 태질을 치고, 보세요 이 상처 이 사람은 깡팬가 봐요."

청바지는 바지 자크를 북 긁어내리고는 버얼건 알궁둥이를 감자코의 둥근 코 끝에다 불쑥 내밀었다. 너무 바싹 들이밀어 감자코가 고개를 뒤로 뺐다.

"아마 이 아저씨는 무슨 운동을 하는 모양인데요. 우린 지나가던 사람들이 말려주지 않았으면 매 맞어 죽을 뻔했다구요."

"그럼요 말리는 틈을 타서 우린 도망쳐 얘는 신고하고 저는 숨어서 포장마차로 들어가 술 마시는 이 아저씨를 지켜보구 있었어요."

준상 씨는 기가 막혔다. 녀석들은 완전 프로였다. 사기술인지 연기술인지 하여튼 놀라워 말이 막힐 지경이었다. 논리정연한 말과 그 얼굴 표정부터가 한 시간 여 전 대성실업 앞에서 껌을 질근질근 씹으며 행패를 부리던 그 꾸민 거짓말이 도저히 거짓말 같지가 않게 진실이 듬뿍 담겨진 것 같아 준상 씨 자신도 속을 지경이었다.

"야 이놈들아 이런 나쁜 놈들…."

준상 씨는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감자코 순경이 눈을 치뜨며 제지해 도로 앉았으나 턱이 덜덜 떨려 말이 잘 안나왔다.

"승용차로 나를 밀어붙이고 담배꽁초를…마구 마구 행길에 버리고…지나가는 행인의 얼굴에 껌을…폭행을…이놈들아 하지 않았어, 이놈들…그리고…그 손이 터진 것은 나를 때리려다가 벽을 친 건데 이 나쁜 놈들.

"아저씨 자꾸 이놈 이놈 하지 말라구요. 우리도 스무 살이 넘었다구요."

"아이구 이런 쳐 죽일 놈들을 그냥…."

준상 씨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또다시 벌떡 일어섰다. 감자코가 준상 씨를 잡아앉히며 꿍시렁거렸다.

"당신 성질 한 번 대단하구만, 그래도 그렇지 술 먹고 어린아이들이나 두들겨 패고 다녀서야 되겠어?"

"바로 그때 대머리 차석의 책상에 놓인 전화통이 요란하게 몸을 떨며 찌르릉거렸다. 대머리는 수화기를 들었다.

"네 김 경삽니다. 네 네 지금 조사중입니다. 즉시 본서로 넘기라구요. 아 네네 저도 잘 알지요. 그분 아 네네 우리 서의 자문위원이시고…네 네 잘 알고 말고요. 네 네 잘 알겠습니다. 반장님 바로 넘겨드리겠습니다."

대머리 차석은 수화기를 놓자마자 이쪽을 보고 말했다.

"뭐 바쁜데 길게 이야기 할 것 없이 본서로 넘겨."

준상 씨는 답답하고 속이 탔다.

"허허 참 나 정말 미치겠구만 여보시오. 이놈들은 몽땅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이놈들 말은 전부 거짓말입니다."

"글세 거짓말인지 정말인지는 조사해보면 알 것이고 당신 술이 많이 취한 것 같군, 우린 뭐 진단서가 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본서에 가서 잘해 보시우."

파출소 순경들과는 진실을 따지기 어렵다고 생각한 준상 씨는 본서로 넘겨진다는 데 대하여 마음 속으로 `좋다, 경찰서에 가서 정말 경찰관다운 경찰관에게 진술해서 꼭 진실을 밝혀야지’ 하고 입을 꽉 다물고 말았다.

석들과 함께 준상 씨가 S경찰서 형사계로 넘겨진 것은 밤 아홉시가 훨씬 넘어서였다. 밤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형사계 사무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투우용 황소같이 생긴 형사반장을 비롯해 서너명의 사복 형사들이 피의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조사하고 있었다.

준상 씨 일행이 도착했을 때엔 형사반장은 금테안경을 낀 오십대 후반의 한 사내와 마주앉아 있었고 녀석들은 그 금테안경을 보자 꾸벅 절을 하고나서 뒤통수에 손을 얹어 머리를 긁적거리며 면구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품이 그들의 보호자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금테안경은 녀석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설핏 던졌을 뿐 아무 말도 건네지 않고 고개를 돌려 연신 아첨기 어린 몸짓을 하는 형사반장을 뒤로 하고 총총히 사라져버렸다. 형사반장에게 단단히 청탁을 하고 나간 것 같아서 준상 씨의 마음은 불안했다.

파출소에서 함께 온 감자코 순경도 준상 씨를 황소같이 생긴 형사반장에게 인계하기가 바쁘게 출입문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형사계 사무실 안은 동쪽에 사방 한 자짜리 붙박이 창이 하나 붙어있고 그 창에는 시커먼 어둠이 꽉 막아 있었다. 그리고 북쪽의 서너 칸쯤 되는 벽면은 동물원의 원숭이 울처럼 철창이 있었다.

그 철창 속에 금방이라도 고약한 냄새가 풍길 것만 같이 후줄그레한 사람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를 콱 죽여주기에 충분했다.

타타타타…칙- 타타타타…칙- 하고 피의자 조서를 타자치는 서너 명의 사복형사들의 눈꼬리는 뱀처럼 차가웠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험상궂어 어느 쪽이 피의자인지 구분하기가 매우 힘들 정도였다.

"야 이 개새끼야 간통을 안 했다꼬, 그래 간통을 안 했다면 뭐할라꼬 남의 기집을 끼어 차고 대낮에 여관을 들락거렸나 말이다 엉, 이 지랄 같은 새끼야."

두어 칸 저쪽에서 우락부락하게 생긴 형사가 머리 숱이 적어 머리 밑이 허성하게 보이는 사십대 후반의 사내에게 목울대에 핏대를 세워 다그치고 있었다. 사내가 무슨 말인가 변명을 하였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아 준상 씨에게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뭐이 어째? 벗기는 했어도 하지는 않았다고? 이 씨부럴 놈이 나를 뭘로 보고 자빠졌어 이 개새끼야 벗어놓고 안 할 놈도 있냐, 있어? 어이구 이걸 그냥…하기사 미친 년이지 그래 대가리 털도 다 빠져버린 이따위 자식이 뭐가 좋다고…."

또 사내가 고개를 약간 쳐들며 뭐라고 중얼거리자 형사는 타자기에서 손을 떼는 거와 동시에 날렵하게 사내의 이마배기에 꿀밤 한 개를 오지게 먹이고나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었다.

또 다른 책상머리에서는 까무잡잡한 얼굴에 하관이 쭉 빠져 신경질 덩어리로 뭉쳐진 듯한 형사가 주먹을 들어 허공을 휙휙 갈라가며 준상 씨 또래로 보이는 미남형 사내를 윽박지르고 있었다.

"칵 죽여버리기 전에 도장 찍어 이 사기꾼 새끼야, 니 주둥아리가 말한 대로 다 기록했을 뿐인데 왜 엉까고 자빠졌어."

"제가 죄는 졌어도 진술하고 싶은 건 다 기록해주셔야지요."

사내는 원망어린 듯한 눈꼬리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항의했다.

"이게 정말 사람 골탕 먹일려고 작정을 했나 진을 뺄라고 작정을 했나 기록은 씨부럴 놈아 뭘 기록해달라는 거야, 엉떨지 말고 빨리 도장 못 찍어 이 사기꾼 놈아 백 번을 다시 기록해봐라 사기죄가 오기죄로 되는가 이 국제 사기꾼 놈아 빨리 찍어 못 찍어?"

미남형 사내는 머리를 어깨 속으로 자라처럼 집어넣고 마지못해 엄지손가락에 인주를 묻히고 있었다.

준상 씨는 파출소에서 가려내지 못한 진실을 경찰서에서는 가려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장마통에 흙담벽 무너지듯이 퍼석퍼석 무너져내리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그것은 조서를 받고 있는 피의자들보다 조서를 꾸미고 있는 형사들의 무지막지한 언동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었다.

금테안경이 나가고나서 한참동안 형사반장으로부터 허리를 구부리고 무언가 지시를 받고 서 있던 전 형사가 제자리로 돌아가서 털푸덕 앉으며 소리쳤다.

"이리들 와봐 니미럴… 오늘 좀 일찍 퇴근하려 했더니만 더럽게 걸렸네."

전 형사는 반장에게서 건네받은 파출소에서 송치된 서류를 손 끝으로 뒤적뒤적 하며 몹시도 못마땅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이봐 밥 잘 처먹고 힘이 남아나면 공사판에서 질통이나 질 것이지 왜 쌈박질이야 쌈박질이."

전 형사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책상머리에 가앉는 준상 씨에게 냅다 소리부터 질러댔다.

"아 싸움한 게 아닙니다."

"그럼 싸움한 게 아니라면 뭘 했다는 거야 서로 끌어안고 부루스라도 추었단 말이야 뭐야."

"그게 아니고 이 녀석들이 행인에게 행패를 부리기에…."

"그래서,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그렇다고 사람을 두들겨 패라는 법이 있어?"

"그게 아니고 제 말씀을 끝까지 좀 들어보시오."

"들어보나마나야 때렸어 안 때렸어, 하기야 진단서가 증명하는 거지 뭐 내가 싸우는 걸 보기나 했나."

전 형사는 준상 씨의 말꼬리를 모두 잘라먹은 뒤 타자기를 가슴 안으로 끌어당겨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럼 피해자인 너들부터 말해봐 이 사람이 너들을 안 때렸다고 하는데 그러냐?"

"아이 참 아저씨두 안 맞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상처가 났고 진단서가 떼어지나요. 그럼 의사선생님이 가짜로 진단서를 떼어줬단 말인가요."

"그래, 그건 그래, 근데 이 사람은 너들을 안 때렸다는데?"

"여보시오 형사양반 그런 조사가 어디 있소,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구나 말하시오."

"그럼 끝까지가 어디까진지 말해봐 나 오늘 좀 피곤하니까 더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전 형사는 투박한 어깨를 자꾸 추스리며 신경질을 부려댔다.

준상 씨는 여기서 눌리면 자신의 신상에 매우 불리한 결과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변명하기에 열을 올렸다.

전 형사는 군용탱크 잠바 옆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어 입술 끝에 붙이고는 이 주머니 저 주머니에 손을 쑤셔박아 성냥을 찾고 있었다. 이때 청바지 녀석이 재빨리 라이터를 꺼내어 길쭉한 불꽃을 만들어 전 형사가 물고 있는 담배 끝에 대어주었다. 한 입 빨아당긴 담배 연기를 준상 씨 얼굴에 훅 뿜으며 전 형사는 신경질이 잔뜩 묻은 어투로 말했다.

"아 빨리 말해봐 끝까지 한다는 말 말이야, 들어준달 때는 하지 않고 뭘 꾸물거려, 하던 지랄도 멍석 펴놓으면 안 한다더니… 누구 약 올리나?"

준상 씨는 다그치는 전 형사의 태도에 짓눌려 무얼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 지 정말 막각해졌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지 진실을 밝혀야 될 것 같아서 턱을 쳐들고 땀을 흘리며 말을 이어갔다.

"이 녀석들이 말입니다…차로 나를 밀어붙이고 행인에게…행 행패를 부리기에…에…또…내 내가 말리자 두 녀석이 합세해서 나에게 덤벼 들었습니다. 나는 이 녀석들에게 매를 맞지 않기 위해서는 대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그럴 경우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가만히 서서 매를 맞아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상 씨가 말하는 동안 줄곧 실눈을 하고 아니꼽다는 듯이 콧잔등 너머로 바라보고 있던 전 형사는 입을 열었다.

"참 나 원 그걸 말따위라고 하고 자빠졌나 엉 당신 뭐 정당방윈지 뭔지 하면서 제법 법률용어를 들먹이는데 그따위 어설픈 넝마쪽 같은 상식을 내 앞에서 늘어놓지 마 알았어. 난 말이야 형사생활로만 십오년 잔뼈가 굵어왔단 말이야. 멀쩡한 사람 때려놓았으면 미안한 줄이라도 알아야지…하기야 사람치고 제 손으로 쳤다는 놈 하나도 없었어 지금까지."

형사는 사뭇 일방적이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사건조사를 끝내고 싶은지 아니면 그 금테안경의 백줄이 통했는지 전 형사는 철벽이었다. 준상 씨도 슬그머니 울화가 치밀었다.

"여보시오 형사양반 그렇다면 지금 뭘 조사하겠다는 거요 당신 십오년에 걸친 경력으로 짐작해서 조서기록을 만들면 될 일이지."

준상 씨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전 형사를 비꼬아주었다.

"뭐라구 이 새끼 형편없는 악질이구만."

전 형사는 발끈하고 대번에 욕설을 퍼부어댔다. 눈을 세모꼴로 치켜뜨며 피우던 담배를 파들파들 떨리는 손 끝으로 유리재떨이에 부벼껏다.

"이 새끼라니 당신 눈에는 모두 새끼로만 보여, 누굴 보고 새끼 새끼 하는거요."

준상 씨도 맞받아쳤다.

"그래 내가 보긴 새끼로 보인다 보여 이 형편없는 자식아."

전 형사는 중지와 시지 손가락 두 개를 뻗어 준상 씨의 턱 밑을 살짝살짝 걷어올리며 준상 씨를 극도로 약오르게 했다.

"이 손 못 치워 이 따위가 뭐 경찰관이라고…."

준상 씨는 벌떡 일어서며 턱 밑에 와서 알짱거리는 전 형사의 손가락을 잡아 낚아챘고 전 형사는 책상 위로 엎어졌다.

그 바람에 책상 위의 유리재털이가 바닥으로 밀려 떨어지며 박살이 나버렸다.

"어허 이 새끼 경찰관까지 치네 어렵소 잘 논다 잘 놀아."

전 형사는 앞치락을 툭툭 털고 일어서며 이를 악물며 말했다.

주위에 동료 형사들이 이쪽을 보고 제가끔 한 마디씩 이죽거려댔다.

"야 전 형사 가만 내버려둬라 제풀에 공무집행 방해죄 하나를 더 가지겠다는데 뭘 그래."

"아니야 편안히 잘 모셔 혹시 또 누구처럼 물 멕였다고 진정서 낼라."

"요사이 우리 경찰관이 뭐 힘있냐 때리면 맞아줘야지 뭐."

"그 친구 물 먹고 죽은 박아무개 사건 보구서 기살은 친구 같은데…."

여기저기서 꽈배기처럼 말을 비비 꼬고 낄낄거렸다.

준상 씨는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좋다 그래 나는 조서만 꾸미면 그만이지 어디까지나 공정하게 말이야."

전 형사는 이를 악물면서 자세를 가다듬고 앉아 타자기의 단추를 맹렬한 속도로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타타타타–칙, 타타타타타–칙,

준상 씨 앞으로 말려 넘어오는 타자 활자체들이 준상 씨의 동공 속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전쟁을 일으킨 개미떼들의 행렬처럼 줄지어 몰려오는 타자 활자체들은 그를 무차별 공격하고 있었다.

그 떼개미들 같이 생긴 타자 활자체들을 모두 연결해보면 준상 씨를 간단하게 폭행 공무집행 방해죄로 몰고가기 위한 역사(役事)였다.

"증인이 있습니다. 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목격자가 있습니다."

준상 씨는 녀석들과 다툴 때 에워싸고 구경하던 구경꾼들 중에 포장마차 주인 아주머니를 생각해내었다.

"증인은 무슨 증인."

"있습니다 포장마차 아주머니요. 현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구경한 분이요. 사건의 진상을 공정하게 증언해줄 꺼요. 그 아주머니의 진술을 참고해주시오. 공정하게 조사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나더러 지금 대성빌딩 앞까지 가자는 말이야?"

"네, 그렇게 해주십시오. 그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면 확실히 흑백이 가려질 겁니다. 아무에게나 시비를 걸어 자기들이 우세하면 폭력을 휘두르고 당할 수 없는 상대에겐 간교하게 이런 식으로 고소하는 교활한 녀석들입니다. 철저히 조사해주셔야 겠습니다."

"좋시다. 그럼 가보자구 그 대신 현장까지 교통비는 당신이 대요. 차가 없어 택시를 잡아타야 되니까."

준상 씨의 설득에 다소 누그러진 전 형사는 타자기를 훅 밀고 일어서며 말했다.

상 씨가 전 형사와 함께 대성빌딩 앞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포장마차 아주머니는 한창 성업중이었다. 목판을 둘러앉은 대여섯 명 손님들에게 술과 안주를 팔기에 바삐 손을 놀리고 있었다.

"어레 난 도통 몰라라요. 쩌쪽에서 싸움 한 일은 있는 거 거튼디 난 아무것도 못 봤당께 난 아무것도 몰러랑께."

전 형사가 코 앞에 경찰관 신분증을 들이대며 증언을 요청하자 뚱뚱보 아주머니는 대번에 돼지머리 같은 고개를 좌우로 거세게 흔들어대며 딱 잘라 말해버렸다. 준상 씨는 그만 아찔하고 현기증을 느꼈다.

"아니 아주머니 아까 보신대로만 말씀해주세요. 그 녀석들이 나에게 먼저 덤벼들어 때리려다가…."

"몰러 몰러 나는 아무 상관 없당께로."

준상 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뚱뚱보 아주머니는 마구 턱을 내둘러 도리질을 쳤다.

"여기서 내가 아까 술도 마시고 파출소 순경과 나간 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아주머니는 왜 사실대로 본대로 이야기를 안 해 주시나요?"

"고건 알어라우, 여기서 아점씨가 쐬주 먹고 순갱이 데리고 가는 건 봤당께. 고것 말고는 다른 건 몰러 나한테 더 묻지 말드라구 이-. 나 장사일만 해도 바쁘당께로."

그냥 저냥 지켜보고 섰던 전 형사는 준상 씨를 향해 꽈배기같이 뒤꼬인 미소를 실실 흘렸다. 준상 씨는 뚱뚱보 아주머니가 쥐어박아 주고 싶도록 미웠다.

"그만 가자구 원맨쇼 그만하구."

전 형사는 어둠이 꽉 막아선 포장 바깥으로 준상 씨의 등을 떠밀어내며 징글맞게도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번에도 술 먹고 싸운디 증언인감 뭔감 했다가, 워매 갱찰서로 오라가락 싸서 사흘 동안 장사만 못해 뿌릿당께, 이젠 몰러가 최고랑께로."

준상 씨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포장 곁에 우물쭈물하고 서 있는데 포장 안에서 뚱뚱보 아주머니가 누구에겐가 목소리를 죽여가며 중얼대는 소리였으나 택시를 잡으려고 두세 발짝 포장마차에서 떨어져 손을 휘젓고 섰던 전 형사는 듣지 못했다.

호실에 감금되면서 준상 씨의 마음은 착잡했다. 저녁밥을 지어놓고 자신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초조하고 불안했다. 사람이 살다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도 당할 수가 있을까.

철창 앞에서 서성거리는 준상 씨를 나직한 목소리로 부르는 자가 있었다.

"형씨. 형씨 이리 좀 와보슈."

준상 씨는 소리나는 쪽으로 눈동자의 조리개를 맞추며 주적주적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굴이 미남형을 잘 생긴 아까 진술기록을 간청하다 윽박질리던 그 사내였다.

"아 게 좀 앉으슈 그렇게 서서 있다고 누가 여기서 내보내주나요."

사내는 무릎을 싸안고 앉은 자세로 턱을 들고 유난히도 치열이 고른 하얀 이빨을 드러내놓고 소리없이 씩 웃었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 보아도 사내의 얼굴은 멜로드라마의 배우처럼 잘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준상 씨는 엉거주춤 사내의 턱 밑에 무릎을 싸안고 쭈그려앉았다.

"보아하니 형씬 이런 델 첨 들어온 것 같은데…"

사내의 어투에 준상 씨는 점쟁이 앞에서 복채를 놓고 자기 운명 점괘를 기다리는 중과부처럼 텅 빈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 주제넘은 이야기 같소이다마는 형씨가 참 보기가 딱해서 몇 마디 하겠쉬다. 섭히 생각일랑 마시우."

"아 아니 천만에요."

준상 씨는 고개에 힘을 넣어 가로저어 보였다.

"내 첨부터 죽- 형씨 사건을 지켜보았는데 형씬 아주 재수없게 용코로 걸려든 것 같아요. 형사반장과 쑥덕거리고 나간 금테안경낀 그 영감탱이가 누군지 아시우?"

"……"

준상 씨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영감탱이를 잘 알아요. 그 영감탱이는 영동바닥에서 알려진 갑부요. 부동산 투기로 엄청난 돈을 모았고 경찰이고 검찰이고 그 영감탱이가 안 통하는 데가 없어요. 이 서에도 영감탱이는 자문위원이고요 자문위원이라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게 아닙니까. 형씨는 아마 구속될 꺼요."

"아니요 누가 뭐라해도 나는 정당방위였어요. 구속이라니 말도 안 돼요. 정당방위가 아니라 하더라도 2주 진단 정도로 사람을 구속시켜요?"

준상 씨는 거세게 도리질을 쳤다.

"보아하니 형씨는 공무집행 방해 혐의도 추가되는 것 같던데."

"할말 했을 뿐인데 그게 어떻게 공무집행 방해란 말이오."

"글쎄올시다. 그게 글쎄 그런 일이 쌔고 쌘 게 현실이라서…."

"현실이고 나발이고 그렇게 따진다면 세상에 전과자 안 될 놈 한 놈도 없겠네."

"내 말은 형씨의 혐의가 폭행죄냐 공무집행 방해죄냐가 문제가 아니라 고소한 놈이 누구냐가 문제인 거요. 아까 그 금테안경 낀 영감탱이가 문제란 말이오. 나야 뭐 쫄따구 사기꾼 하수인으로 먹고 살고 있지만 언젠가 사장 심부름으로 그 영감탱이를 두어 번 스쳐 지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영감탱이를 알지요. 그 영감이 귀하신 몸으로 여기까지 거동하신 걸로 보면 형씨를 혼내주려는 의도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형씨를 고소한 녀석들 중 한 놈은 그의 아들일 것이고 그가 아마 반장에게 당신을 필히 구속시켜 달라고 청탁을 한 것 같소이다. 하기야 이건 순전히 내 짐작일 뿐이지만 말이요."

"그래도 그렇지 나랏법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그게 말이 돼요?"

"형씨는 법 법 하시는데 때로는 법보다 세종대왕 백이 더 쎄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법은 오늘 형씨가 당하는 것처럼 눈이 멀 때도 있지만 세종대왕 백은 거짓말을 안 해요. 틀림없이 약속을 지켜주는 건 그것뿐이에요."

"세종대왕 백이라니요."

"아 돈 말이죠 돈 만 원짜리 몰라요? 다른 건 몰라도 돈 많은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 있는 만큼의 힘이 있고 그 사람들에겐 당할 재간이 없다는 말입니다. 형씨도 아마 구속영장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니 만일을 대비해서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전화라도 하여 뒷일을 부탁하는 게 좋을 것 같슈다."

"뒷일이라니, 무슨 일?"

"세종대왕 백."

준상 씨는 슬그머니 화가 치밀었다. 사기 피의자로 구속될 운명에 놓인 주제에 되지도 않는 괴변을 늘어놓다니, 그러나 사내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준상 씨의 `너 걱정이나 하거라’

하는 시큰둥스러운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묻지도 않은 말을 자문자답했다.

"나 나말이요? 나야 사기 배임에 미성년자 유인 약취니 꼼짝없이 징역살이 할 것으로 보이겠지만 우리 사장이 구해줄거요. 그러면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이 말이요. 어째서 그렇게 되는지 궁금하신 모양인데 그건 설명이 길어서 단숨에 여기서 다 이야기하긴 어렵고 형씨도 이제 차차 알게 될 거요. 이런 댈 드나들다 보면 말이요."

준상 씨는 그 사내의 말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이 약간 이상한 사람인가도 싶었다. 그러나 준상 씨는 그 사내에게 조심스럽게 한 가지 물어보았다.

"형씨는 도대체 뭘 하는 분이요?"

사내는 빙긋이 웃으며 한동안 대답없이 고개를 떨구고 바닥만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것이 내 직업이요."

"이것이 직업이라니 무슨 말이오."

"난 지금 업무중이오."

"……?"

"사장들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조사도 받고 징역도 가고."

"그러면 형씨네 사장은 무슨 회사를…?"

"나에겐 사장은 누구라도 될 수 있지요. 나를 이용하고 싶은 사람은 다 내 사장이 되는 거요. 부동산 사기꾼, 어음 사기꾼, 회사 먹어 치우기, 불법 영업하는 술집 등 무엇이든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내 이름으로 모든 행위를 하고 걸려들면 내가 이렇게 대신 잡혀오고 그분들은 뒤에서 손을 써서 나를 빼주던가 대가를 지불하던가 이를 테면 아까 그 금테안경 낀 영감탱이 같은 자들도 내 사장이 될…."

준상 씨는 사내의 이야기에 너무 기가 막혀서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생각 같아서는 사내의 상통을 쥐어박고 싶었다. 준상 씨는 사내의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아 사내를 멸시하듯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뚜벅뚜벅 철창으로 다가가 주먹으로 철창살을 마구 쥐어박으며 당직 경찰관에게 소릴 질렀다.

"이봐요 나 집에 전화 좀 하게 해주시오."

상 씨가 바지주머니 속에서 빨간 플래스틱 조각에 김영미라고 음각된 명찰을 발견한 것은 낮 열두시경, 이미 지방법원 판사에 의해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였다.

-피의자는 유도 3단 유단자임을 악용, 음주 후 선량한 행인 박창만, 조성대에게 시비를 걸고 업어치기 등으로 폭행하여 각 전치 2주씩의 상해를 입히고, 이를 조사하던 사법경찰관 전용태에게 폭언 폭행하여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했을 뿐만 아니라 경찰서 내의 기물을 파손하는 등 그 행위가 지극히 포악하고 증거의 인멸과 도주의 우려마저 엿보이므로 구속 수사함이 타당하다-

준상 씨의 구속영장 요지였다.

화를 받고 이른 새벽 달려나온 회사 상사인 공무부장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형사계 사무실을 들락거렸고 어린아이 모양으로 엉엉 소리내어 울면서 공무부장 꽁무니에 묻어 다니는 아내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수갑이 채워진 준상 씨가 보호실에서 나와 경찰서 마당 건너편에 있는 유치장으로 옮겨가기 위하여 호송 경찰관과 같이 형사계 출입문을 막 나서고 있을 때였다.

형씨 형씨 잠깐만, 이거 한 잔 들고가시우 유치장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으니까, 나 나는 불구속 기소로 되어 이렇게 풀려났소.

하룻밤을 보호실에서 함게 지냈던 잘생긴 직업 사기꾼 그 사내였다.

사내는 자동판매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 한 잔을 짜들고 준상 씨에게 다가서며 호송 경찰관의 짜증섞인 얼굴에다가 연신 꾸벅꾸벅 절을 해 양해를 구하면서 종이컵을 내밀었다.

준상씨는 엉겁결에 종이컵을 받아들었다. 수갑에 엮어진 왼손마저 덩달아 종이컵에 따라붙었다.

약속대로 우리 사장이 와주었어요. 그래서 석방되었수다.

…...

형씨 아무 생각 할 거 없이 큰 거 두 장만 만들어 가지고 옷 벗은지 얼마 안 되는 그 뭐야 전관예우 있지요. 그런 변호사를 빨리 사시요.

사내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빠른 어조로 말했다. 그러한 사내의 얼굴 어느 한 구석에 언뜻 스치고 지나가는 진실 같은 것이 잠깐 보였다.

아내와 공부장은 씀바귀를 씹은 듯한 얼굴을 하고 준상 씨와 사내의 얼굴을 교차하여 쳐다보았다. 특히 공무부장은 준상 씨가 건네준 김영미라고 음각된 플라스틱 명찰을 다시 꺼내보이며 대성실업을 찾아가겠노라고 말했다. 가서 증언을 부탁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혐의가 풀려 반드시 석방될 것이라고 아내가 공무부장의 말을 보충하면서 다시 울기 시작했다.

준상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내가 준 종이컵을 아내에게 되내밀었다. 사내가 엉거주춤 커피가 든 종이컵을 되받았다.

준상 씨는 앳된 얼굴의 호송 경찰관을 향해 휙 돌아서며 마치 성난 듯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소리쳤다.

갑시다.

경찰서 본청 현관을 지나 햇빛이 마구 쏟아지고 있는 아스팔트 바닥을 가로질러 별관 유치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사내의 목소리가 준상 씨의 뒤통수에 와서 달라붙었다.

형씨 돈 아끼지 마시우 비싼 변호사를 사시우 전관예우를 받을 수 있는 비싼 변호사를 말이오. 꼭 그렇게 하시우.

동시에 준상 씨는 갑자기 현기증을 일으키며 속이 메스꺼웠다. 그는 경찰서 아스팔트 마당 한복판에 두 다리를 쭉 뻗고 퍼질러 앉으며 꾀-꾀- 소리내어 헛구역질을 해댔다.

후 준상 씨는 석방되었다.

그러나 준상 씨가 풀려난 것은 그로부터 6개월인지 7개월인지 뒤의 일이었다. 김영미의 증언도 준상 씨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김영미는 야속하게도 금테안경에게 매수되어 준상 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고 준상 씨가 검찰청에 조사받으러 불려나갔을 때 그곳에서도 금테안경은 이따금씩 스쳐 지났었다.

결국은 내 집 마련을 위해 아내와 허리띠를 졸라 매며 수년간 악착같이 모아오던 삼천 만 원이 든 통장을 몽땅 털어서 그 사내의 말대로 비싼 변호사를 사고 나서야 항소심에서 석방된 것이었다.

상 씨가 징역 1년에 2년간의 집행유예라는 전과자가 되어 구치소 철문을 나와 아내가 대기시켜 둔 택시를 향할 때는 쓸쓸한 가을비가 누런 은행 잎사귀를 하나들 떨구어내리는 밤이었다.

차라리 밤이 좋았다. 아내와 택시 뒷좌석에 앉았다. 외할머니의 품에서 잠들어 있을 어린 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멀고도 긴 귀가길이었다. 준상 씨도 그의 아내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준상 씨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그로서는 사내로 세상에 태어나서 철든 이후 처음으로 울었다.

가을비가 제법 굵어지더니 차창에 날아와서 칙칙 달라붙으며 눈물처럼 자꾸자꾸 흘러내리고 있었다.

유명종(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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