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5월 2000-05-01   813

낙천낙선운동을 마치며

희망과 절망이 교차했던 연대의 시간

김달수 환경연합 홍보팀장

흔히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을 ‘100일 동안의 대장정’이라 표현한다. 참가단체의 규모로 보나 활동의 집중력과 강도로 보나 역사상 처음으로 경험하는 고난도의 시민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총선연대에 파견 나온 활동가들이 ‘초치기 멀티 액션(Multi-action)’이라는 농담을 나눌 정도로 전술의 다양함과 변화무쌍함은 팽팽한 긴장감을 한시도 풀어주지 않았다.

낙선대상자들의 물불 가리지 않는 저돌적인 공세, 500여 개에 이르는 전국 조직의 결속력 유지와 행동 지침의 통일, 상징적인 행동으로 총선연대의 활동을 광범위하게 여론화하는 ‘공중전’, 그리고 기층 단위 및 지역에서 대중적 시민참여를 조직화하는 ‘지상전’ 등 촌각을 다투는 상황판단과 전술변화는 힘겨움을 넘어 차라리 신명으로 다가왔다.

이제 긴장과 신명, 낙담과 용기, 꿈과 현실이 교차했던, 그래서 지루했으면서도 짧고 아쉽게 느껴지는 100일 동안의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나는 사실 조직에서 총선연대로 파견 나가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완강하게 반발했다.

환경연합 내의 신설 팀으로서 나름대로 경험과 훈련을 축적하며 팀의 기능과 역할을 정리해 가는 과정이기도 했거니와, 총선연대 활동의 긴박성이나 광범위함에 주눅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간의 총선연대 활동에 대한 일관되고 총체적인 분위기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결국 파견은 현실(?)이 되었다. 내가 배치된 곳은 ‘조직 3국’, 선거에 반드시 참여해 낙선후보를 찍지 않겠다는 ‘유권자 약속’운동을 진행하는 업무였다. 물론 선거운동이 본격화하면서부터는 한 집중낙선대상 후보의 낙선운동 상황을 파악하고, 현지 총선연대와 담당 마크맨인 최열 대표와의 원활한 낙선운동 전개를 매개하는 게 주임무였다.

내가 맡은 지역의 낙선대상 후보는 다른 곳과 달리 극렬하게 낙선운동을 훼방놓고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정치개혁 재난지역’으로 불릴 정도로 총선연대에 대한 낙선대상 후보의 공격은 도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오죽했으면 박원순 변호사가 이들의 집요하고 폭력적인 공격에 항의하며 길바닥에 주저앉았을까.

어떻든 내가 담당했던 낙선대상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그토록 모욕적인 욕설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났다는 홀가분함이 낙선대상 후보가 떨어졌다는 기쁨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처음 경험한 연대운동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직위나 직함에 상관없이 모두가 동등하게 발언하고 결정에 참여하는 횡적연대구조는 특히나 좋은 경험이었다. 다른 부서와 달리 조직 3국은 5명의 활동가가 배치되어 총선연대 내에서도 가장 규모 있는(?) 부서였는데, 구성원 모두가 각기 다른 단체에서 파견 나온 활동가들이었다.

서로 다른 단체, 다양한 연령대와 시민운동 경험의 편차에도 불구하고 총선연대 활동에서는 동등한 역량으로 인정되었고, 문제의식의 자유로운 공유는 우리 활동을 더욱 힘있고 풍성하게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우리는 절망과 희망을 공유했다. 상황의 긴박함으로 간혹 사소한 업무 혼선도 있었지만 연대운동의 열정과 신선함은 이를 극복하기에 충분했다. 총선연대의 활동에 대한 운동사적인, 혹은 조직적인 평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짚어내야 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했던 총선연대 활동은 활동가로서 가장 소중했던 훈련의 시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이강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

새천년 벽두 한국 사회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한판 승부 ‘낙선운동’으로 기록될 것이다. 3개월이라는 결코 짧다고만은 할 수 없는 기간 동안 함께한 수많은 활동가들과 후원자들, 그리고 총선연대 홈페이지를 방문한 90만 명의 네티즌들은 무능부패 정치인 퇴출을 위한 낙선운동을 가슴속에 오랫동안 간직할 것이다. 낙선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유권자들이 보내준 뜨거운 지지와 무수한 자원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 사회 각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혁 세력의 광범위한 연대는 우리나라 정치사와 정치개혁운동에 있어서 한 획을 긋기에 충분했다.

낙선운동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지만, 총선시민연대의 활동 성과를 단지 68%의 낙선율에서만 찾는 것에 반대한다. 수많은 활동가들간의 연대의 경험,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권력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의정감시의 새로운 방법론 등, 실천 영역에서의 성과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후보자 검증을 위해 수집한 자료들은 향후 의정감시 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며, 납세실적과 재산보유에 대한 검증 기법의 개발은 정치인들의 재산형성 과정을 지속적이고 실질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중요한 무기가 될 것이다. 또한 현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환멸이 극에 달해 정치무용론으로까지 치닫던 유권자들에게 우리가 나서서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권력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의 단초가 마련됐다는 점은 중요한 성과이다. 이러한 자신감은 향후 정치개혁의 대장정에 있어서 커다란 동력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가슴 뿌듯함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안 없는 네거티브 운동의 태생적 한계라든가, 혹은 진보정당 등 민중운동 진영과의 연대의 실패라는 일반적인 관점보다는 낙선운동의 진행 과정에서 조금만 더 철저히 준비하고, 고민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낙선대상자의 선정 근거가 된 7가지 사유 중 원주의 함종한 의원 이외에는 반개혁적인 의정활동을 편 의원들을 선정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의정활동 모니터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었다. 16대 국회에서는 입법과정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를 통해 반개혁적인 의정활동을 편 의원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낙선대상자 선정의 한 지표였던 반인권, 민주 헌정질서 파괴 전력 등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역사의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통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80년 광주를 짓밟은 쿠데타 세력에 편승해 무소불위의 전권을 휘두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에 참가한 인사들의 명단을 확보하는 데 보름이나 걸렸다. 또한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젊음을 바친 수많은 사람들이 공안세력에 의해 자행된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지금, 다른 한편에서는 그 가해자들이 여전히 막강한 권력의 안락함을 누리고 있음에도 그들을 단죄하기 위한 준비가 너무 미약했다.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에 대한 평가는 계속될 것이고, 특히 낙선운동의 과정에서 나타난 한계에 대한 반성은 향후 정치개혁 운동에 있어서 교훈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아직 낙선운동의 성공을 이야기하며 축배를 들기는 이르다. 무능하고 부패한 몇 명의 국회 진출을 저지했지만,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이번 낙선운동의 결과가 말하듯 유권자의 지속적인 감시와 견제만이 정치개혁의 희망임을 느낀다. 곧 16대 국회가 개원한다. 이제 더이상 유권자들은 정치를 그들만의 리그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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