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7월 2000-07-01   212

나는 아이들 앞에 부끄럼 없이 서고 싶다

서울미술고등학교 사학비리에 맞선 행동하는 양심

이 글은 부패한 사학재단에 맞선 한 교사의 외로운 투쟁의 보고이다.

30년 역사의 서울미술고등학교(교장 김정수-이하 서울미고)는 학교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음악, 무용과 같은 여러 가지 전공이 있는 특수 목적의 예능계 고등학교와 달리 전국 유일의 미술 전문의 예능계 학교이다. 그런데, 서울미고의 재단인 한흥학원(전 이사장 이돈환)은 뚜렷한 수익 재산이나 재단 전입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외형적 성장을 거듭했다. 성장 배경은 미술고등학교라는 특수성을 이용하여 온갖 명목의 잡부금을 과다 징수하고, 예능계 학교에서 실시하는 실기 수업의 수업료(실기지도비)를 통해 수십 억원의 불법자금을 조성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온갖 불법에도 불구하고 서울미술고등학교의 비리가 처음 언론에 공개되고 사회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EBS의 보도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아직도 서울미고의 비리에 대한 명확한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채 필자 혼자 비리 재단의 퇴진을 위해 싸우고 있다.

나는 1995년 공채를 통해 서울미고 교사로 임용되었다. 교사로 임용되고 얼마 되지 않아 학교와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불신의 원인은 대부분 학교의 금전적 비리 탓이었지만 교사들이 학교의 비리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는 한번도 볼 수 없었다. 전형적인 족벌 체제(남편-이사장, 부인-교장, 딸-교사, 친인척-이사)의 학교에서 문제점을 거론하는 것이 어려운 탓일 수도 있지만, 일부 교사들은 학교 발전을 위해 약간의 부정과 비리는 어쩔 수 없다는 비상식적인 논리로 이를 합리화했다. 오히려 학교의 비리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나는 이사장, 교장으로부터 부정적이고 아집과 편견에 빠진 교사라는 평을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1998년 말 재단은 교내에서 결혼하여 3년간 성실히 근무하고 있던 부부 교사에게 갑자기 사직을 요구했다. 갑작스러운 사직 요구는 평소 학교에 비판적이었던 나와 친한 관계의 부부 교사를 내쫓아서 나를 고립시키려는 의도적인 행위였다. 하지만, 부부 교사가 부당한 사직 요구를 거부하자 이사장과 교장은 모든 교사를 교장실에 소집하고 불법적인 여론재판을 실시하였다. 부부 교사를 앞에 앉혀 놓고 이사장의 심복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우리는 불편해서 부부와 한 교무실에서 근무할 수 없다’ ‘책임지고 사직해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사직을 강요했다. 동료 교사들이 대놓고 사직을 강요하는 말에 부부는 ‘1년만 유예 기간을 달라’고 하소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여론재판에도 부부가 사직하지 않자 이사장의 심복 교사들은 ‘부부 교사와 함께 근무할 수 없으니 인사조처 해 주십시오’라는 내용의 서명을 실시하였다. 동료 교사들이 자신을 내쫓기 위해 불법적인 서명까지 하는 것을 보고 결국 남편이 사직서를 썼다.

나는 교사들이 동료를 고발하는 여론재판, 동료를 내쫓는 서명 등의 비도덕, 비교육적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학교 비리를 내부적으로 고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비리 사실을 EBS에 제보했다.

EBS의 보도 후 서울시 교육청은 서울미고에 대한 특별 감사를 실시하여 16억 원의 불법 자금 조성 및 온갖 불법을 자행한 것을 확인하고 이사장과 교장 및 행정실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비리 관련자들이 검찰에 고발되자 이사장의 심복 교사들은 제보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마침내 비리 사실을 제보할 수 있는 사람은 평소 학교에 비판적이었던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온갖 협박 및 불이익을 가했다. 예를 들면, 부부 교사에게 자행한 것과 같은 여론재판으로, 교·강사 90여 명을 강당에 모아 놓고 ‘이미 방송된 내용의 모자이크를 모두 제거했다’, ‘음성 변조한 내용도 다 풀었다’, ‘제보 사실을 시인하고 책임져라’, ‘우리의 생계 책임져라’라며 박수를 치고 욕설을 하는 등 인신 공격을 가했다. 나중에는 방송된 내용의 모자이크를 제거하고 음성 변조를 푼 테이프를 공개하겠다며 협박을 하기도 했다. 나는 너무 거센 공세에 제보 사실에 대하여 시인도 부인도 할 수 없었다. 또, 교무실에서 누군가가 내 교과서를 찢어 놓기도 하였고, 업무를 박탈했으며 부서별 회식 자리에도 배제하는 등 집단적인 따돌림을 가했다.

결국 나는 언론에 비리를 제보한 뒤 지금까지 동료 교사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비리 재단은 나를 기어이 학교에서 내쫓기 위해 올해에도 두어 차례 여론재판을 했다. 올 1월에는 불법 조성한 자금으로 만든 강원도 영월 소재 예림미술교육원에 전 교사를 모아 놓고 여론재판을 했다. 제보 후와 같이 계획적이고 치밀한 방법을 통해 몸이 아파 약을 복용하고 쉬겠다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입힌 금전적 손실을 보상하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책임을 지고 사직하라’는 등 참기 어려운 인신 공격을 가했다. 내 뜻에 동조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폐쇄된 그 곳에서 위협적으로 행동하는 교사들을 보며 교사의 양심을 의심할 정도로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 연수 후에 학교 비리는 단순히 재단만의 문제일 수 없다는 생각에 지난 2월 1일 개학날 ‘비리 재단 퇴진하고 이사장의 하수인들 각성하라’는 내용의 글을 선생님들께 나눠주고 재단 퇴진과 재단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공개 투쟁을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교사들로부터 욕설과 폭행까지 당했다. 그리고, 공개 투쟁을 선언한 이후에도 재단의 심복 역할을 하는 동문들이 찾아와 여론재판과 비슷한 방법으로 사직을 요구하며 폭언을 하기도 했다.

결국 비리 재단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동안 당한 정신적 피해를 알리기 위하여 지난 3월 서울미고 재단과 심복 교사들을 상대로 집단 따돌림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아직도 학교측에서는 재학생과 동문을 상대로 자신들의 비리는 은폐하고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따돌림을 당한 것이라며 헛소문을 유포하고, 진상 규명을 위한 성의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다행히 지난 5월 25일 인권실천시민연대를 비롯 참여연대, 참교육학부모회 등 시민단체에서 ‘내부고발 양심선언 교사 보호와 서울미술고 비리 해결을 위한 대책위’를 만들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감독 관청인 서울시 교육청은 진상 규명에 소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왜곡된 여론으로 나는 교사의 역할조차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처지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왜 대부분의 교사가 명백한 비리 사실에도 침묵하고 혼자서 비리 재단 퇴진을 주장하며, 교사를 집단 따돌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것은 잘못된 사립학교법 때문이다. 현재 사립학교법은 비리로 인해 사학 법인이 학교 경영에서 쫓겨나도 2년 후면 다시 복귀할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머지 않아 돌아올 재단을 상대로 싸움을 하는 것은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서울미고의 모든 교사들 중 학교의 비리를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서서 재단 퇴진을 요구하지 못하는 것이 이런 한계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싸움은 가깝게는 비리 재단의 퇴진에 있지만, 멀리는 학교의 사유화를 가능하게 하고 공익 이사들의 참여를 제한하는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개인의 불이익을 무릅쓰고 공익을 위하여 내부의 비리를 제보하는 사람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부패방지법이 하루 빨리 제정되기를 바란다. 맑은 사회는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 행동하는 양심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김학경 서울미술고등학교 교사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