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0월 2001-10-01   458

자치와 영웅대망론의 이상한 동거

일본 생활자정치의 광맥캐기

모든 생명이 살아나 수런거리는 때를 우리는 봄이라 부른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지만, 인간의 봄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인간의 봄은 저마다 스스로 대지를 파고 직접 일궈내야 비로소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정치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희망의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그러나 일본정치에 시민적 공공권의 창출에서부터 불어오는 봄바람이 언제쯤 제도정치권에도 불게 될 것인지, 또 그 바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불어오게 될지 읽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현재 일본정치는 고이즈미 수상의 인기돌풍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여러 문제점들을 현상적으로나마 타파해줄 것 같은 후보자에게 지지를 보내는 ‘현상타파형’ 시민에너지와 주민투표운동과 무당파 자치단체장의 당선열풍에서 보여지듯 시민적 공공권에 기초한 ‘시민참가형 민주주의’의 시민에너지가 양립하고 있는 상태에서 과연 어느 쪽이 향후 일본정치의 주류를 형성하게 될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 두 에너지의 근원인 시민계층의 상당부분이 중복되어 있다는 점은 시민권력의 제도화가 언제 어떻게 이뤄지게 될 것인지 더욱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과 시민적 공공권의 성장

일본의 저널리스트들은 90년대 일본사회의 정치경제를 일컬어 ‘잃어버린 10년’이라 한다. 학자들은 이 기간을 ‘통치능력의 상실’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90년대 일본정치를 단지 이런 식으로만 표현할 수는 없다.

정당정치와 관료들의 통치능력 상실을 대체하기 위해 시민 스스로 자기통치능력을 향상시키려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 바로 지방정치의 활성화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사회운동이 기존 정치권에 대한 저항 혹은 요구형 운동이던 것에 반해, 90년대 사회운동은 “생활자(生活者)라는 발상에 기초를 둔 정책의 창출과 정책결정에 관한 책임을 주민들이 분담한다”는 새로운 정치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이란 역설적으로 얘기하자면, 주민 자신이 시민으로 진화하지 않는 한, 자기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는 계기를 발견할 수 없게 된 시대를 의미한다. 봄은 희망을 뜻한다. 따라서 역설적인 얘기이지만 역경에 처할수록 희망을 갖지 않는 한, 인간의 봄은 도래하지 않는다. 역경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싹을 발견하듯, 주민투표는 정책을 검토하고 선택하는데 대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정치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체험하는 계기를 제공해주고 있다.

96년 마키마치(まきまち) 주민투표운동의 성공 이래, 주민투표는 시민권력의 제도화를 지향하는 운동으로서 전국 각지로 번지고 있다. 그 결과 주민투표는 아래로부터의 통치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경직된 일본 대의민주주의를 지방 차원에서뿐 아니라 국가 수준에서 재정의하려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움직임으로 나타나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성 정치인과 관료들은 주민투표운동의 움직임에 대해 ‘민주주의의 오작동’에 지나지 않는다며 주민투표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그저 민주주의를 둘러싼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호도하면서 문제의 초점을 흐리는 전략을 펴고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을 통해 시민참가형 민주주의를 학습한 시민들은 정치인들의 선동에 쉽사리 편승하지 않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현상은, 시민권력의 제도화라는 새로운 정치적 움직임에서 가장 큰 장애세력이 바로 그 움직임을 소극적으로 지지하는, 소위 신무당파층이라 불리는 시민파라는 점이다.

‘무정형의 시민파’의 양면

주민투표운동은 일본정치가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시금석이기도 하지만, 일본사회의 보다 깊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가 정치변동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교육수준의 향상과 서비스 산업 및 정보산업의 신장, 그리고 평등신화와 종신고용제의 붕괴 등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개인의 정체성을 보증해주었던 가족, 공동체, 회사, 국가 등은 급속도로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 결과, 가족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자아실현을 우선시하며, 조직에 대한 충성보다는 개인의 개성과 능력발휘를 우선시하는 새로운 개인주의 동향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개인주의 경향은 세대간, 계층간, 도시와 농촌간, 성별의 대립을 가속화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종래의 진보와 보수, 혹은 좌파와 우파라 하는 대립축에 의해 자리매김될 수 없는 새로운 계층을 등장시키는 사회적 배경이 되고 있다. 이들 계층은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지만 경제적으로는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보수적 색깔을 띤다. 따라서 그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종래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축에 의해 판이 짜여지는 정당정치에 관해서는 무관심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 이들을 일컬어 소위 신무당파층이라 한다. 이들 계층은 주민투표를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이들 계층은 종래 의원선거나 자치단체장선거에서 나타나는 ‘정책패키지’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개별적인 정책에 대해 보다 많은 의사표시를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한 것은 바로 이들 계층이 고이즈미 수상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을 지지하는 계층이라는 점이다. 이들 계층은 시민파라 불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성을 표출하는 통로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 의미에서 ‘무정형의 시민파’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1세기의 일본정치는 신무당파로 불려지는 이들 ‘무정형의 시민파’들이 앞으로 어떠한 시민세력으로 성장하게 될 것인지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정치의 지각변동은 두 가지 벡터(vector)의 대항적 공존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그 하나는 주민투표와 일련의 시민파 자치단체장 당선열풍의 연동관계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시민적 공공권의 창출과 시민권력의 제도화를 지향하는 벡터이다. 다른 하나는 종래의 뿌리깊은 청부형 정치문화로부터 탈피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선 낡은 정치를 타파해줄 것 같은 후보자에게 투표한다고 하는 영웅대망론의 벡터이다. 시민권력의 제도화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일본의 정치가 전개된다면, 그것은 정치변동뿐 아니라 생활공동체의 재생이라고 하는 맥락에서 더욱 근본적인 사회변동을 이끌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벡터가 우세를 점하게 된다면, 현재의 주민투표운동을 뒷받침하고 있는 수동적 시민에너지의 상당부분은, 고이즈미 수상의 독선적 리더십을 지지하는 에너지의 흐름 속에 흡수되고 말 것이다.

고이즈미 정권의 등장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정치변동이 불러일으키는 지각변동은 당분간 휴지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방정치를 중심으로 시민권력을 제도화하려는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고이즈미 정권의 등장은 시민적 공공권의 활성화와 시민권력의 제도화를 희망하는 시민들에게 인간의 봄이 오는 속도란, 그러한 변화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수가 더 늘어나고 그들 각자의 힘이 더 큰 흐름 속에서 하나로 합해질 때 비로소 앞당겨지는 것이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가르쳐주고 있다. ‘시민권력의 제도화가 실험되고 있는 한’ 일본정치의 지각변동은 계속될 것이다.

나일경 일본 게이오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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