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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1년 11월
  • 200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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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익 앞에 건강권 무너지다
기적의 신약, 글리벡. 만성골수성백혈병의 특효약으로 알려진 글리벡(Gleevec)의 보험약가 결정을 둘러싸고 제약회사와 정부 그리고 환자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 10월 3일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심의조정위원회에서 결정한 캡슐당 1만7862원의 보험약가를 확정하고 고시할 방침을 밝혔다. 이는 노바티스(Novartis)사가 글리벡의 가격으로 제시한 캡슐당 2만5000원의 71.5%에 해당한다. 한편, 한국 노바티스사는 지난 10월 15일 정부가 글리벡 약가 상한액을 캡슐당 2만5000원으로 최종 결정해 고시할 경우,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의 부담금 30%에 해당하는 비용을 기증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경우 보험혜택을 받는 환자들은 약을 무상으로 공급받게 된다. 이에 대해 정부와 환자, 시민단체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기존 외국 신약의 약가보다 1.5배나 높아

글리벡은 기존의 항암치료를 하기 어렵거나 실패한 만성골수성백혈병에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약으로 스위스 노바티스사의 2001년 신약이다. 현재 이 약은 스위스,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 전세계 세번째로 판매되고 있다. 노바티스는 1993년 이 약을 연구, 개발하던 도중 개발비용이 엄청나 포기하려 했다. 그러자 미국의 백혈병 환자 2000명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탄원해 글리벡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하도록 했다. 그리고 노바티스사는 미 FDA로부터 연구비 지원과 개발비 전체에 대한 세금 혜택을 받았다. 이 약은 임상효과에서도 80∼90%의 효과를 보이며 인터페론 등의 항암치료가 어렵거나 효과를 보지 못했던 환자들에게 쓸 수 있는 유일한 약제로 알려지면서 백혈병 환자들에게는 삶의 희망으로 여겨질 정도가 됐다.

문제는 글리벡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점이다. 글리벡은 하루에 8∼12알씩 1년 내내 먹어야 하는 약으로, 이를 노바티스사가 요구하는 2만5000원에 살 경우 월 300∼45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이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며 사실상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10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글리벡을 조기 승인하자 국내 백혈병 환자들도 정부 게시판에 민원을 올렸다. 5월 20일 보건복지부는 이를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치료가 시급한 환자에게 먼저 투약하도록 조치했다. 6월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정식으로 글리벡의 수입 및 판매허가를 내주었으나 정부와 노바티스 간에 보험약가고시는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았다. 환자들은 빚을 내서라도 캡슐당 2만5000원에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들은 글리벡 가격이 인하되고 의료보험적용시 본인부담금 비율이 떨어지기를 고대하고 있다.

기업 이윤 위해 약가인하 거부한 노바티스

정부는 1차로 약제심의위원회 회의에서 글리벡에 대한 보험약가 상한액을 캡슐당 1만7055원으로 결정했다. 일반적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평가원)이 대개 수입약가를 결정할 때 권고약가는 1만1370원이다. 그러나 평가원 약제전문위원회는 글리벡에 대해서는 이의 1.5배인 1만7055원을 권고했고, 이것이 약제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반영되었다. 평가원 약가분석부 김선동 차장은 “통상적인 수입약가는 1만1370원이지만 글리벡과 같이 특별히 혁신적 약품으로 인정될 경우 외국의 약가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글리벡 외에도 11개 품목에 대해 통상 가격의 1.5배를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글리벡 약가인하와 보험적용범위 확대를 위한 환자·시민사회단체연대는 “현재 한국 약가는 미국 약가의 40% 수준인데, 캡슐당 1만1370원도 이미 40% 이상”이라며 “1.5배 인상은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더구나 노바티스측이 이 약가마저 받아들이지 않자 협상은 무산됐고, 보건복지부는 2차로 1만7862원을 약가 상한액으로 결정했다.

한편 노바티스는 2차로 제시된 약가도 받아들이지 않고 2만5000원선을 고수하면서 보험혜택을 받는 환자들이 부담해야 할 30%(70%는 정부부담)는 ‘만성골수성백혈병기금’을 만들어 환자들에게 직접 지불될 수 있도록 해 무상공급하겠다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김상희 사무관은 “이렇게 높은 가격이 책정되면 보험부담이 오히려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고 다른 약가와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며 “그렇지만 환자들의 처지를 고려해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렸다”고 말했다. 글리벡의 보험약가는 11월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우석균 정책실장은 “노바티스는 한국 환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면서도 우리 국민이 내는 보험금으로 실리를 챙기려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노바티스가 글리벡을 개발한 과정을 감안해볼 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약을 무상으로 공급해야 하며 굳이 돈을 받겠다면 환자 누구나 살 수 있고 연구개발비를 충당하는 정도면 된다”고 말했다.

백혈병 환자들의 모임인 새빛누리회 한욱 사무과장은 “1만1370원이 적정한 약가이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정부가 1만7862원을 빨리 고시하고 만성기, 급성기, 가속기 환자 모두 전면 보험적용을 받도록 결정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건강권 보호를 위한 정부의 노력 필요

글리벡의 약값 논란이 지속되는 데에는 의약품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쟁점이 걸려 있기 때문. 세계무역기구(WTO) 협정하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은 개발자의 이윤을 보장해준다는 이유로 특허권자에게 20년 간의 독점적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다국적 제약회사는 환자가 약을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라 이윤을 최대한 남길 수 있는 가격으로 약을 팔 수 있다. 글리벡의 경우, 노바티스가 어떠한 이유로 2만5000원이라는 가격을 책정했는지 근거가 불분명하다.

이번 약가결정에서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다국적 제약기업에 끌려다니며 가격을 계속 올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의약품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보장하기 위해 ‘강제실시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강제실시권은 특허권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특허발명을 타인이 실시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것으로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 31조에도 명시돼 있다.

국가 긴급사태나 공공·비영리적 사용을 위해 시행할 수 있는 강제실시권은 의약품을 특허권이 아닌 공공성의 측면에서 보면 적용할 수 있다. 글리벡의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노바티스사가 아닌 공기업을 만들어 국가의 지원으로 무상 혹은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약을 백혈병 환자에게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브라질에서는 다국적 기업인 로슈가 개발한 AIDS 치료제인 비라셉트라는 약품에 대해 강제실시를 시행한 적이 있고 이를 계기로 로슈사는 비라셉트의 가격을 40%까지 인하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일부 시민단체가 강제실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민중의료연합 정혜주 공공의약팀장은 “노바티스사가 특허권을 내세운다면 정부는 강제실시권으로 맞설 수 있다”며 “실제로 강제실시가 이뤄진다면 어느 회사든지 글리벡을 생산할 수 있으므로 무상공급이나 약가 하락을 유도할 수 있고, 설혹 강제실시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협상에서 결코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혈병 환자들은 막강한 다국적 제약회사 및 무기력한 정부를 상대로 글리벡 약가인하와 보험전면적용을 요구하며 생존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 10월 11일 보건복지부에 10만 명의 서명서를 제출하고 정부가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할 것을 요구했다. 지적재산권보다 공공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최경석(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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