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1월 2002-12-30   1217

“페르난도 니노와 마크 워커”에 대한 미 군사재판 참관기

정의가 실종 된 그들만의 재판


어린 여중생 둘을 죽인 페르난도 니노와 마크 워커에게 무죄평결이 내려졌다. 그들은 재판결과에 만족한다고 함박웃음 지었지만 한국인들의 가슴엔 지울 수 없는 멍이 들었다. 그들을 위한 그들만의 재판. 이 재판을 목도한 한 기자로부터 참관기를 듣는다. 편집자 주

미군 당국은 공개재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방청객과 기자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시민단체에서 40명의 방청객이 입장할 것을 요청했으나 단 두 석만 허용한데다 이마저도 마지막 순간에 이들의 반미시위전력을 이유로 불허했다.

기자들은 한 언론사당 한 명씩만 취재를 허용했는데 그나마 법정 출입은 6명으로 제한했다. 이유는 법정의 협소함이다. 방청석은 6인용 의자 4개 총 24석.기자용 6석, 피의자 가족 변호인용 6석, 한국외교부, 법무부관리, 주한미군 관계자용 6석, 그리고 피해자 가족과 시민단체용 6석이다. 피해자 가족과 시민단체 대표는 불참해서 자리가 비어 있었다.

기자들은 아침 7시까지 동두천 시청에 집결해서 미군 군용버스로 미2사단까지 갔다. 이 버스를 놓치면 하루 종일 입장이 허용되지 않는다. 재판 도중 미2사단 밖으로 나오면 당일은 재입장이 허용되지 않는다.

무늬만 공개재판?

법정에 들어가는 기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기자는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조그만 미디어 룸에서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법정과 미디어 룸에 들어갈 때는 노트북 컴퓨터, 휴대폰을 끄고 주머니에서 소지품을 다 끄집어내고 신체검사를 하고 들어간다. 법정은 물론 미디어 룸에도 랜과 유선전화 한대 없다. 노트북을 놓을 책상도 없다. 의자만 20여 개 놓여 있다. 노트북으로 하는 기사 송고는 불가능하므로 기자들이 전화 통화를 해서 기사를 불러준다.

추운 날씨에 법정과 미디어 룸 밖으로 나가 곱은 손으로 그것도 한정된 휴정시간 내에 급하게 전화통화를 한다. 미디어 룸의 텔레비전은 오디오 성능이 좋지 않아 옆에 앉아 있는 미국 사람도 알아듣기 쉽지 않다. 화면상태가 좋지 않고 화면이 고정되어 있어 재판장과 배심원석 앞에 나와 설명하는 검사나 변호인이 보일 뿐이다.

미디어 룸은 사방이 철책으로 싸여 고립되어 있으며 법정에 가거나 식당에 갈 때 등 모든 이동시는 미군의 인솔 하에 움직이며 개별행동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상은 미군 당국이 국내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공개재판이라는 형식은 취했지만 공개재판의 틀 내에서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으로 방청과 취재를 제한하는 모습이다.

피고인에게 전적으로 유리한 재판

페르난도 니노와 마크 워커의 재판 과정이 미국법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된 공개재판이라는 것이 미군 당국의 주장이다. 형식면에서 보면 그렇다. 그러나 내용 면에선 피고인에게 전적으로 유리한 재판이다. 재판장, 배심원, 변호인 그리고 검사가 모두 한솥밥을 먹는 미 2사단 장병들로 구성되었다. 이는 군사 법정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변호인과 검사 양측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미군 증인만을 세웠고 한국인 증인은 단 한 명도 증언대에 세우지 않았다. 한국 검찰과 법무부에서 제출한 사건조사 서류도 재판 과정에서 전혀 검토되지 않았다. 한국인과 한국인 피해자의 참여가 철저히 배제된 그들만의 방식, 그들만의 철학, 그들만의 문화에 의한, 그들만의 재판이 대한민국 땅에서 있었다. 피해자는 한국의 두 여학생이고 그들은 미국이 아닌 한국 땅에서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었는데.

니노는 재판 도중 휴정시간이 되면 좌석에 앉은 아내와 주위 사람들과 장난을 치고, 농담도 하고, 크게 웃기도 한다. 워커는 무죄 평결 이후 행복하다, 주한미군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다, 라는 취지의 언론 인터뷰를 한다.

본인들의 진의가 어떻든 한국 사람들이 보기엔 아름답지 못한 언행이다. 한국 기자들,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있었다면 그런 언행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인에게 최소한의 배려를 해줄 수 없는 그들의 정서, 그 결과가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이다.

증인들에 의하면 관제병 니노는 사고 직전 계속 누군가와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으며 전방주시 의무를 게을리 하고 선행차량과 마주 오는 차량의 관제병이 보내는 위험신호도 보지 못했다. 니노가 미선이와 효순이를 봤을 때는 급박한 순간이었으며, 여러 번 운전병 워커에게 정지신호를 보냈으나 통신장비 이상으로 워커가 듣지 못했다는 게 니노의 주장이다.

니노의 부주의와 경험 미숙이 빚은 참극

재판과정에서 통신장비 이상 유무로 지리한 공방이 계속됐지만 통신장비 이상 유무는 이 사건의 핵심이 아니다. 다른 관제병들의 증언에 의하면 통신장비 결함이 수시로 나타나기 때문에 숙련된 관제병들은 위험한 순간에 운전병을 막대기로 찌르기도 하고 손바닥이나 주먹으로 때리기도 한다.

니노를 수사한 미군수사관은 니노에게 왜 그런 물리적 힘을 가하지 않았냐고 물었다고 증언했다. 니노는 사고 직전 급박한 상황에 얼어붙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결국 니노의 부주의와 경험미숙이 이 사건의 원인이 된 셈이다.

그러나 니노가 두 어린 한국 여학생의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가졌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워커에게 차를 멈추도록 했을 것이다. 니노의 “얼어붙었었기 때문”이라는 증언은 미군 수사관의 두번째 날 심문에서 나온 번복된 진술이다. 첫째 날 심문에서 니노는 그 수사관에게 워커가 운전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해 물리적 힘을 가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니노에게 두 한국인 여학생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군 병장 워커가 운전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미군 법정의 배심원들도 위의 증언을 모두 들었다. 그리고 니노에게 무죄를 선언했다. 니노와 마찬가지로 미군 법정의 배심원들에겐 두 어린 한국 여학생의 생명은 워커의 운전에 방해가 된다면 언제든지 없어져버려도 되는 그런 정도의 가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황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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