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10월 2009-10-01   1089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_야간집회 금지 위헌에 부쳐



폭력집회의 근거없는 공포, 15년 걸려 깼다


박주민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 

우2009년 9월 24일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제10조가 위헌(헌법불합치도 위헌이다)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동안 과연 이 규정에 대한 위헌성이 끊임없이 논란이 되었지만 결국 위헌 결정이 나오기까지 무려 15년이나 걸린 이유가 무엇일까?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계기로 한번 고민해보자.



국어실력과 상식만 있어도 알 수 있는 위헌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제10조가 위헌일까? 법적으로만 파고들면 헌법, 야간집회금지. 위헌, 헌법불합치, 소급효 등 변호사인 내가 보기에도 한없이 어려워질 수 있으니 일단 상식과 국어실력만 가지고 판단해 보자. 단, 여기서 딱 한 가지 법 이론은 ‘헌법이 모든 법보다 우월하다’는 것, 그래서 헌법에 어긋나는 법은 그 효력이 없다는 것 정도만은 염두에 두자.

먼저, 헌법은 집회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헌법 제21조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헌법은 집회에 대한 허가를 금지하는데, 국어적 의미의 허가는 ‘어떤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이번에 문제가 된 ‘집시법 제10조를 보자.


집시법 제10조 (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시간)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하여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는 관할경찰관서장은 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


위 집시법 제10조를 보면 ‘~아니 된다’(원칙적 금지)고 하고 나서 ‘다만, ~허용할 수 있다’(예외적 허용)로 되어 있다. 국어실력과 상식을 동원해서 보면 집시법 제10조는 헌법 제21조 제2항에 명문으로 반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범법자로 만들어온 가해자

그렇다면 이렇게 뻔한 위헌적 규정이 계속 살아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무관심했던 것일까? 아니다. 이 조항은 여러 차례 문제가 됐었고, 1991년에 이미 한번 위헌법률심판제청이 된 적도 있다. 그러나 위 사건에서 압도적 다수에 의한 합헌판정을 받는 등 집시법 제10조는 헌법과 상식을 비웃으며 도도하게 존재해왔고, 가해자로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범법자로 만들어 왔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바로 폭력집회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 때문이었다. 위헌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것을 없애면 혹시 온 도시가 불법과 폭력집회로 넘쳐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이 조항에 대해 눈감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1994년에 헌법 제21조 제2항을 제대로 건드리지도 않고 바로 제37조 제2항(기본권은 질서유지 등을 위해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하게 제한하지는 못한다)으로 넘어가서 집시법 제10조가 그 존재필요성에 비해 그렇게 과도한 제한은 아니라는 취지의 합헌판결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경찰 병력 많이 투입될수록 충돌 일어

그럼 과연 한국의 집회는 폭력적이며, 야간이 되면 더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일까? 한국에서 집회를 가장 싫어할만한 조직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경찰청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07년 전체 집회 중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집회는  0.54%, 촛불집회가 활발하게 벌어졌던 2008년에도 0.66%에 불과하다. 독일의 경우 2.4%정도라고 하니 독일의 4분의 1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이 정도를 가리켜 우리나라의 집회가 폭력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나마 벌어지고 있는 집회에서의 물리적 충돌 역시 이번 헌법재판과정에서 검찰이 제출한 의견서에 따르면 경찰병력을 많이 투입할수록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 집회에서의 폭력이 발생하도록 하는 실질적인 원인이 시위참가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찰의 과도한 억압에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더 나아가 1967년 미국 린든 존슨 대통령이 만든 ‘사회혼란에 관한 자문위원회’나 1968년 ‘폭력의 원인과 방지에 관한 위원회’에서 연구한 결과 역시 집회 시위의 통제에 있어서 과도한 물리력의 동원이 시위를 과격하게 만들고, 조사된 24개의 폭동 가운데 절반 이상이 경찰의 잘못된 시위 관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폭력집회에 대한 공포(더 나아가서는 폭력적으로 변할 것이 염려되는 시민에 대한 공포)는 어느 정도는 과장됐고 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부풀려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위헌적 법률로 계속 처벌?

그런데 이 근거 없는 공포가 이번 야간집회에 대해서는 일단 한풀 꺾였다. 이전과 달리 압도적 다수가 야간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던 집시법 제10조의 위헌성을 인정한 것은 집회의 폭력성에 대한 두려움이 근거가 없다는 상식이 좀 더 대중의 상식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 바와 같이,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 역시 ‘사회적 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공포에 휘둘려 ‘개정 전까지는 잠정적으로 계속 적용’하도록 함으로써 결국 위헌적 법률로 국민이 계속 처벌받는 길을 열어주어 헌법재판소 스스로 존재 근거에 모순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 모순적 결정은 법원, 검찰, 경찰 등으로 내려갈수록 혼란을 보다 많이 일으킬 수 있고, 그 결과 보다 많은 국민이 위헌적인 법률에 의해 자신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위헌이라고 선언되기 전까지는 그나마 참았던 국민이 위헌적 조항에 의해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을 참을 수 있을지 걱정 된다.

이번 결정을 보면 인권 또는 기본권의 시작은 두려움과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머리로 차분하게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다들 포기하면 뻔하게 위헌인 규정도 고치는데 15년이 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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