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2월 2004-01-21   1505

<최현주가 만난 사람> 한국시민사회의 간달프, 조희연 교수

“이제 방학이 시작했지만 ‘방심하면’ 바로 개학이 돌아온다. 2-3학년의 경우는 방학 동안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책이나 글을 읽고 글을 하나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즐겁고 유익한 방학이 되기를 빈다.”

조희연 교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홈페이지에 올려진 짤막한 메모가 ‘긴긴 겨울방학’을 그립게 만든다. ‘방심하면’ 바로 개학이라지만, ‘2-3달’이 어딘가. 일주일 휴가도 천국인 사회인들에게 그 시간이면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게다가 메모를 올린 조 교수는 보통의 사회인과는 비교도 안될 상황일텐데. 인도 뭄바이에서 열리는 ‘세계사회포럼’에서 ‘부시낙선운동’을 제안하기 위해 지금 그는 평소보다 몇배 더 바쁘다.

조희연 교수가 인도로 출국하기 3일전,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항동의 성공회대 교정을 찾았다. 어렵사리 시간을 잡고 연구실을 찾았는데 문이 잠겨 있다. ‘설마, 몇시간 사이에 잊지는 않으셨겠지’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 교수의 건망증은 정말 유명하다. 평화운동가 임영신 씨(그는 성공회대학원 학생이다)가 이라크에서 다녀온 직후에 조희연 교수를 만났다. “오랫만이군, 고생 많았지. 점심이나 같이 하지. 다음주 화요일 어떤가?”라는 조 교수의 제안에 따라 임영신 씨가 ‘다음 화요일’에 연구실에 찾아가자, 조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고생 많았지. 점심이나 같이 하지. 다음주 화요일 어떤가?”

10분가까이 기다리자 바쁜 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까만 사각 배낭을 메고 자료를 한보따리 들고 조희연 교수가 바삐 걸어오고 있다. 문을 열자, 미로처럼 얽힌 책장들과 천장까지 쌓여있는 자료들이 가득한 연구실 전경이 드러났다. 어디에 서 있어야할지 모를 정도다. 최근 그가 얼마나 바쁘게 지내는지 실감났다.

“세계화된 상황에 맞게 시민운동도 초국경적 액선 프로그램 고민하자”

“국제적으로나 미국 내에서나 인터넷으로만 봐도 다종다양하게 반부시 투쟁이나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그것을 ‘전지구적인 공동행동 네트워크’로 만들어 총화해보자하는 겁니다. 이에 기초해 미국 내 반부시, 부시낙선운동이 가시화되고, 그것에 지구촌 시민사회가 협력해 전지구적 캠페인으로 부시 대통령를 낙선시키자는 것이죠.”

이미 ‘Bush off’ 등의 타블로이드판으로 유인물까지 만들어 놓은 조 교수는 새로운 운동을 추진할 생각에 들떠있다. 이 유인물들을 한꾸러미를 인터뷰어에게 안겨주며 사무실에 가서 나눠주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이거야말로 국경을 뛰어넘는 ‘세계화시대의 운동패턴’이 아니냐 싶어요. 아직까지는 공상인데, 나도 처음에는 별 호응이 없어 포기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세계사회포럼 세션을 준비하면서부터 주요한 국제평화단체들이 참여의사를 밝혀오고 있어요. 월든 벨로가 이끄는 ‘FOCUS ON THE GLOBAL SOUTH’나 아시아 최대 평화단체인 ‘ASIA PEACE ALLIANCE’라던지, ‘INTERNATIONAL MOVE FOR JUSTICE’ 등이 참여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약간 고무가 되서 포기하지 않고 진행하는데, 뭄바이에서 국제평화운동가들과 공감이 되면 할 수 있고 아니면 포기해야하나… 문제는 미국단체의 연계여부인데, 현재로는 ‘ACT-UP’이라는 단체말고는 아직 실제적 연대를 못 했어요.”

현재 가장 관심을 쏟고 있는 ‘부시낙선운동’ 얘기가 나오자 조 교수는 속사포처럼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한편으로는 기대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실효성 없는 제안으로 그칠까 조마조마해 한다. (그의 제안은 성공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에 참여한 전세계 반전·평화운동 단체들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낙선운동에 나서기로 하며 ‘부시 낙선운동 네트워크’가 꾸려졌다) 그는 이 운동의 다른 성과로 한국시민사회에 글로벌 마인드를 심어주기를 기대한다.

“이제 초국경적 마인드가 필요한 지점이 있다고 봐요. 글로벌리티, 지구촌시민사회 자체가 완결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종의 리얼리티가 있어요. 일단 실제하는 면을 인정하고 초국경적 액션프로그램을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부시 대통령은 미국 만이 아닌 지구촌 시민사회의 문제잖아요. 일본 자위대나 우경화 문제도 일본 만이 아닌 동북아, 그리고 한국의 문제구요. 이런 차원으로 접근하면 한국의 국가보안법 문제도 아시아의 다양한 국가보안법들을 묶어 하나의 의제로 설정해 아시아적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가능하죠.”

그의 상상력에는 끝이 없다.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비롯해 세계화된 사회에서 비롯되는 사회 다양한 의제와 다양한 차원의 다양한 투쟁방법 그리고 다양한 조직형태와 연대형태 등 ‘다양한 제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세계화는 분명히 자본이 추동하죠. 그러나 이러한 세계화도 일종의 진보적 잠재력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인권, 평화 등 보편적 가치를 세계화하는 측면도 있잖아요. 우리는 세계화가 내재화하는 진보적 잠재력을 의제화하고, 급진적으로 전위화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텔레폰 조’라 불리우는 이유

그는 갑자기 A4 종이뭉치를 뒤적이면서 서둘렀다. 조희연 교수는 정말 바쁘다. 약간 과장하면 우리나라에서 바쁜 순위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전화를 받을 틈도 없을 정도다. 조희연 교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2가지가 있는데, 바로 ‘전화’와 ‘건망증’이다. 분위기 전환도 할겸, 평소부터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하루 통화량은 보통 얼마나 될까.

“하하, 텔레폰 조라는 것 때문에 그러는구만. 비용으로 얘기하면 정확지 싶은데, 요즘에는 한 13만원 가량 써요. 뭐…… 전화를 많이 해요.”

그렇다. 그는 정말 전화를 많이 한다. 연구실을 비롯해 그가 속해있는 각종 사무실에서도 전화를 많이 하는 편이니, 실제 통화량은 13만원의 열배는 될 것이다. 정말 열에 7-8번은 한손에 수화기를 들고 있던 모습을 본 것 같다. “나 조희연인데”로 시작하는 전화로 그는 많은 활동가와 교수들, 연구자들에게 수많은 일거리들을 일순간에 떠맡기기도 하고, 그가 떠맡기도 한다. 조희연 교수와 전화에 얽힌 이야기는 책 한권 분량감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는 전화를 안 받는다는 것이다. 핸드폰에는 ‘이용자의 요청으로 메세지기능으로’ 가게 되어있고, 연구실 전화도 바로 녹음기능으로 되어 있다. 보통 처음 전화해 본 이들은 조희연 교수가 직접 전화를 받을때까지 전화를 한다며 수차례 전화하기 일쑤다. 딱 한번 그가 직접 전화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필자는 너무 놀라서 할말을 잊고 말았다. 송두율 교수가 구속된 날이었다.

“머리에 많이 오래 담아둘 수 없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전화를 해버리는 습관이 있어요. 생각나면 즉각 전화를 해서 매듭을 지어야 일이 쌓이질 않거든요. 사회심리학에서 마무리되지 않은 일에 대한 기억이 높다는 ‘래빈의 이론’이란게 있어요. 쉽게 말하면, 다방에서 웨이터에게 커피를 주문하잖아요. 래빈이 실험해보니 계산이 안 끝난 주문을 더 기억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미 돈 낸 주문보다 3배 가량이나 높죠. 그래서 나도 한꺼번에 듣고 즉각 대답해서 그때그때 끝내려고 노력하죠.”

참여연대에게 하고 싶은 말

조 교수가 A4 발제문까지 들고서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참여연대의 미래다. 참여연대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다. 그는 참여연대가 10년맞이는 과거 10년을 성찰적으로 돌아보면서, 향후의 10년을 준비하는 시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참여연대가 진보적 시민단체로서 자기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혁신이 필요합니다. 사회운동이라는 게, 열심히 투쟁해 목표를 성취하고 나면 스스로는 전혀 다른 조건에 놓이게 되는 딜레마를 갖고 있죠. 그래서 부단한 자기변화를 갖지 않으면 운동이 정체되고 자기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참여연대는 열심히 투쟁해서 무엇을 성취했는가. 그 성취로 참여연대의 기반은 어떻게 달라진 것인가. 구체적으로 물었다.

“나는 그것을 국가의 정상화에 대응하는 시민운동의 급진화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조 교수의 설명은 물 흐르는 듯 지나가지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 말만 놓고 보더라도, ‘정상화’는 무엇이며, 급진화는 무엇인가. 또 투쟁이 아닌 ‘대응’이라는 개념도 녹록치 않다. 잠시 의문을 가진 사이, 그의 설명은 벌써 저만큼 가있다.

“권위주의적이었던 국가의 민주화가 대단히 촉진되었죠. 그것이 국가의 자유민주적인 정상화라고 보죠. 물론 참여연대 만의 성과가 아닙니다. 진보적인 시민단체의 역동적 투쟁으로 국가와 시장의 합리화와 민주화가 촉진되어 온 측면이 있죠.

그런데 냉정하게 보면, 이러한 정상화와 합리화 과정은 시민사회운동의 의제화와 인물들을 국가에게 뺏겨가는 과정이기도 해요. 포섭되어가는 과정이죠. 과거에는 거리투쟁으로 쟁취했던 것을 제도적 측면으로 해결하는, 제도 내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그는 과거에는 국지적으로 인식되던 이슈들이 계속 시민사회운동의 주요의제로 채택되어온 과정에 주목하며, 과거에는 여호와의 증인 등 일부 종교의 문제로 인식되어 온 양심적 병역거부가 이제는 대표적인 인권이슈가 된 것을 예로 들었다.

“이러한 과정은 다소 과격하게 인식되는 민중운동 의제들이 바로 곧 시민운동의 주요 의제화될 가능성을 예시한 것이예요. 시민운동이 그런 관점을 갖고 민중운동을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죠. 그뿐 아닙니다. 시민운동진영에서 주장해 온 이슈들이 제도화되고 있는 흐름에 응전하는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보세요. 이를 통해 많은 인권적 요소들이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국가기구를 통해 일정부분 해소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인권운동은 어디로 갈 것인가. 사회경제적 인권으로 훨씬 더 급진적인 쪽으로 가야한다고 봐요. 시민사회운동은 이러한 점들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조 교수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응전’이다. 점잖은 어감인 ‘응전(應戰)’은 ‘적의 공격에 맞서 싸운다’는 뜻이다. 그는 활동가들보다 몇배는 급진적일 것이다. 그는 시민운동이 좀더 급진적인 의제를 발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10년을 맞는 참여연대가 이번 기회에 그런 채비를 꾸려 또다시 먼길을 떠나길 바란다는 것이다.

“참여연대가 10년 전, 창립당시의 의제로 버티면 의제 빈곤 현상과 함께 정부의 협의적 파트너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10년을 기점으로 좀더 급진적인 관점으로 의제를 발굴하고, 운동을 이끌어 갈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 발굴작업을 해야 합니다. 박원순 변호사에 이어 박영선, 김기식 사무처장이 젊은 사무처장 시대를 열었잖아요. 이들이 영(young) 참여연대의 이미지를 만들었다면, 여기에서 역동적인(조 교수는 다이나믹 이라는 표현을 썼다) 참여연대로 바꾸기 위해, 참여연대는 훨씬 더 젊은 감수성으로 인물과 의제를 발굴하고 활동이슈화 해야한다는 것이죠.”

조 교수는 참여연대가 가져야할 ‘전환적 혁신의 화두’로 3가지를 제시한다.

“우선 한국의 참여연대에서 아시아의 참여연대으로 가야한다고 봐요. 역량의 30%는 아시아 후발 민주화 국가를 위한 활동으로 쓰는 것을 검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너무 이기적이예요.”

아시아연대를 강화하고 실질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참여연대에게만 해당된 것은 아니다. 그는 민주노총은 아시아의 노동자를 위해, 참여연대는 아시아의 권력감시를 위해고민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별도로 기금을 마련해, 아시아 활동가들이 인턴 등으로 참여연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아시아연대 활동이 국제연대부서만이 아니라 활동 각 영역, 의정감시 조세감시 등 각 사업영역에서 연대를 고민하고 추진해야한다는 주장이다.

“두번째는 ‘권력감시운동의 심화와 업그레이드화’입니다. 참여연대가 확실하게 자기사업으로 설정해 왔고, 발전시켜 왔던 것이 주로 사법감시, 의정감시를 비롯한 권력감시운동이죠. 이 운동들들 훨씬 전문화, 심화, 업그레이드화 시켜야한다는 말입니다.

언제나 주장하지만, 권력감시를 하는 각 활동센터들은 각각 현재 참여연대의 규모만큼 발전해야해요. 예를 들면 사법감시센터는 50명의 상근활동가와 5명의 상근변호사가 있는 형태로 자기발전을 하고, 그 토대에서 정말 심화된 사법감시 활동을 하는거죠. 전 그렇게 될 수 있다고도 봅니다.”

“10년 전의 진보가 10년 후에도 진보일 수 없다”

조 교수가 주장하는 3번째 전환의 화두는 ‘진보적 시민단체로서의 자기정체성 실천을 위한 진보적 의제발굴 노력’이다. 10년전의 진보성은 10년 후에도 같은 수준의 진보성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시민운동의 콘텍스트가 변화했음을 강조한다.

“참여연대가 창립될 당시의 1994년과 10년을 맞이하는 2004년 현재, 어느 쪽이 더 계급사회입니까? 나는 100배는 더 계급사회가 되었다고 봐요. 노동자의 자녀가 서울대에 들어갈 확률은 1000분의 1로 축소되었어요. 거의 불가능하죠. 세계화, 개방화의 영향으로 점점 심화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계급사회를 고착화시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민주화된 정권이 추진해 왔다는 역설이 있어요. 개혁세력의 동력과 투쟁으로 민주화를 이뤄왔는데, 민주화된 사회는 더 계급적으로 고착화되었다는 것인데…”

그렇다. 정말 이런 비극이 있나 싶다. 물론 계급사회가 꼭 나쁘냐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하게 구분해, 부자는 계속 부자로, 가난한 자들은 계속 가난하도록 사회구조가 부추기고 있다는 것은 비난받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로 그나마 이뤄진 민주화된 사회가 결과적으로는 더욱 계급화되고 있다니, 지금도 젊음을 불사르며 사회운동을 하고 있는 이 땅의 운동가들이 거품을 물고 쓰러질 일이다. 그러나 조 교수는 담담하다. 운동가들은 그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된 상황에 ‘응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화는 상당부분 이뤄내 국가를 정상화시켰으니, 이제는 계급사회에 맞는 투쟁전략을 세워야한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새로운 계급사회’에 맞는 의제를 채택해야합니다. 물론 사회복지분야는 창립초기부터 지속적으로 해 왔죠. 그 외에도 비정규, 소득재분배, 빈곤 등 세계화와 관련된 문제를 새로운 의제영역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런 지점에서 ‘낙천적 비판사회학자’인 조희연 교수는 빛을 발한다. 참여연대 활동을 통해 또는 이러저러한 토론회와 강연을 통해 알게된 조 교수에게 가장 감탄하는 점은 ‘낙천적인 성품과 세계관’이다. 그는 엄혹한 현실을 말하면서도 절망하는 법이 없다. 그의 낙천성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허허허, 그렇지. 내가 낙천적인 면이 있어요. 글쎄, 원래 낙천적이었나? 어려운 질문이네. 허허”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 분석에 대해 백과사전적 지식과 날카로운 분석을 턱턱 내놓던 그는 본인에 대한 답변에서는 잠시 머뭇거린다.

“사실은 우리가(그는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표현을 썼다) 긴급조치 시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인데, 그때는 언제 민주화가 올까 상상이 안 되었어요. 박정희가 없는 사회를 상상도 못 한 거예요. 내가 78년에 감옥에 들어가 79년 8월 15일에 나왔는데, 두달 후에 박정희 체제가 내부갈등으로 붕괴될 것을 다들 짐작도 못했죠.”

그는 감옥에서 나와 ‘열관리 기술자’ 자격증을 따기 위한 준비를 한다. 당시 학생운동 풍토에서는 ‘노동현장 투신’을 가장 치열한 삶의 모습으로 지향하고 있었던 것. 그는 자신의 삶의 궤적을 소개하는 글을 통해 “가고 싶지 않았으나, 이러한 지향을 거부하지 못해 기술자 자격증을 준비하던 심경”을 솔직히 털어 놓는다. 그는 1차 시험에 합격하고 2차 시험을 준비하던 중에 박정희가 죽고 유신체제가 막을 내리는 10.26을 맞는다. 그리고 복학할 기회를 갖는다. 그는 이 기회가 상상할 수 없었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술을 마시고 토하고 괴로워하며 ‘현장에 투신할 것인가, 적성에 맞는 일(공부)을 찾아 2선에서라도 봉사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고 한다.

“나도 감옥에 가 있고 그랬지만, 우리보다 훨씬 자기를 던져서 시대와 싸웠던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도 있고 죄의식도 있고, 그래서 2선에서라도 최선을 다하는 노력을 해왔던 것 같아요. 솔직히 2선 지식인이지, 1선 지식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1선 지식인이 없어지면, 뒤에 있던 사람이 맨 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하죠. 80년대 그 많던 레닌들이 다 없어지니 내가 일선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우리사회가 좀더 혁명적 상황에 처한다면 일선 지식인과 민중들이 나타날 거라고 봐요.”

아니, 80년대 한국사회구성체 논쟁을 비롯해 우리사회 가장 대표적인 실천적 비판사회학자인 그가 아니라면 누가 일선 현장에 있는 학자인가. 그의 겸손함에 숙연해졌다. 그러나 그는 숙연할 틈을 안 준다.

“많은 사람들이 조희연이 참여연대 초대 사무처장이었다는 것을 모르는데”

“전문가들의 참여도 중요하지만, 운동은 직업입니다. 직업적 운동이 중요한 것이죠. 뭐 많은 사람들은 박원순 변호사 전에 조희연이 사무처장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환기를 해야겠는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맞다. 조희연 교수는 참여연대 초대 사무처장이었다. 창립초기의 많은 일들에 시달려 그의 건망증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는 설이 있는데, 예를 들면 겨울에 외투를 사무실에 두고 추위에 떨면서 집까지 가거나, 차를 갖고 왔다가 택시를 타고 집에 간뒤에 다음날 차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일화들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웃어대는 인터뷰어 때문에 조 교수 역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모르는 것은 조희연 사무처장은 비상근이었기 때문이죠. 박변호사가 변호사직을 때려치우고 상근직업시민운동가로 활동한 것에 참여연대 성장의 비결이 있어요.”

그는 평생을 ‘운동적 야인’으로 살아가는 모델이 우리사회에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사회에서 직업적 운동가가 견뎌내야할 척박한 삶의 질과 끊임없는 자기혁신의 과정을 떠올리니, ‘야인’의 모습과 처지가 구체적으로 연상되었다.

“운동적 야인으로 자기 삶을 지탱시키는 힘은 넓은 의미의 가치라고 봐요. 성과가 아니라 민중에 대한 신뢰일 수도 있고 주관적일지도 모르지만 역사에 대한 신념일 수 있죠. 그런 가치가 없이 사업이 성공했다거나 자기가 인지도를 가졌다는 등의 성과에만 집착하면 결국에는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고 정치가가 되려고 하고 그러는 거죠.

나의 유일한 포부는 일선의 전업적 직업적 운동가들과 보조를 맞추면서 그러면서 정치권력을 탐하지 않고 권력에 초월한 지식인으로 남는 거예요. 변절하지 않는 지식인으로. 그게 유일한 꿈이자 포부라고 할까요.”

올 8월부터 안식년, 핸드폰이 안 터지는 지역으로 갈 계획

조희연 교수는 올 8월부터 1년간 안식년을 갖게 된다. 캐나다 UBC로 갈 계획이란다.

“사실 외국에 안가도 되는데, 여기 있으면 일이 끊이질 않아서요. 좀 탈출을 해서, 건강도 보충하고, 지적충전도 할 계획입니다.”

맞다. 이메일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핸드폰은 안 터지는 지역으로 가야 그에게 비로소 ‘안식’과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참여연대 창립부터 현재까지 그래도 활동적인 임원이라고 볼 수 있죠. 아직도 상집회의에 가서 이거 연대하자 저거 해보자 막 그러긴 하는데, 이제 기여할 수 있는 부분들을 전환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참여연대라는 한 단체를 넘어 시민사회 전체의 방향문제, 단기적이 아닌 장기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과 지적작업을 해야할 것 같아요. 일선에서 아주 실무적인 차원에서 아이디어를 모으고 하는 것보다는 그런 역할로 제 기여방식의 변화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고민 중입니다.”

실제로 그는 최근에 참여연대에서 학술단체협의회로 활동의 중심을 옮겼다. 현직을 맡고 있는 단체만도 7-8개에 이르는 그는 그 바쁜 와중에서도 최근 5년간 논문을 50편이나 썼다. 안식년을 통해 이러한 논문들을 토대로 좀더 심화된 연구를 하고 싶다고 한다.

조희연이 없는 한국시민사회라, 좀 상상이 안된다. 그는 한국시민사회운동의 간달프 아닌가. 영화<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마법사 ‘간달프’처럼 이론적 무기와 방패를 만들어 가며 민주화투쟁은 물론 현재 시민사회운동에 이르는 긴긴 과정을 늘 현장 활동가들과 함께해 왔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고 비록 1년간의 공백이라고 할지라도 벌써부터 허전한 기분이 든다.

“우리사회는 문화적 보수주의가 굉장히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어요. 이러한 점들이 시민운동과 시민사회의 역동적 분출을 질곡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사회의 문화적 보수성에 대한 도전들에 대해서도 의제화하고 이슈화해야 합니다. 우리사회 문화적 토양들, 패턴들, 감성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그가 없는 한국시민사회운동 1년을 잠시 떠올리는 사이, 그는 시민사회운동이 새롭게 도전해야할 의제를 설명하고 있다. 맞다. 걱정도 팔자다. 잠시 자리를 비운 기간을 몇 번을 채우고도 남을 과제와 의제를 들고 그는 나타날 것이 분명한데 걱정할게 뭐가 있나 싶다. ‘부시낙선운동’을 제안하고 학술워크샵 발표를 위해 2월 한달간 인도에 머물 한달 여 기간 만에도 수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 올 것도 충분히 예견되는 일이다.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의제보따리를 한국시민사회에 풀어 놓을까. 벌써부터 “아, 나 조희연인데… 이건 어떨까…”로 시작될 전화들이 기대된다.

글 : 최현주 기자, 사진 : 류관희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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