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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09월
  • 2012.09.05
  • 1891

참여연대 20년, 20장면

오는 9월 10일은 참여연대 창립 1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월간 『참여사회』는 이번 호부터 참여연대 창립 20주년까지 참여연대가 이루어낸 의미있는 성과들을 소개하는 <참여연대 20년, 20장면>을 연재합니다. 참여연대 창립멤버인 차병직 전 집행위원장(변호사)이 참여연대 활동 기록과 관련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집필할 예정입니다.



한장-1 ----------------------------------------------------------------------------

참여연대는 삼성전자 대표이사 이건희를 비롯하여 윤종용, 이학수 등 총11명의 전ㆍ현직 이사들이 위법 행위로 회사 측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해 삼성전자 주주 22명의 주권을 위임받아 98년 10월 20일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사법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공여 행위에 대해 이건희 회장에게 75억 원을, 부실기업 이천전기 인수를 결의한 8명의 이사들에게 276억 원을, 삼성종합화학 유가증권 저가매각 결의를 한 이사 5명에 대해 626억 원을 배상할 것 등 총 977억 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19980217삼성관련집회

 
소액주주운동 주요 활동 연혁

1997
소액주주운동 시작
국내최초 주주대표소송 제기(제일은행)


1998

국내 사법 사상 최초 주주대표소송(제일은행) 승소(총 400억원 배상 판결)
삼성전자(주) 대표이사 11명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 제기
5대 재벌 개혁을 위한 국민 10주 갖기 운동
(3,000여명의 시민 참여)


2000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증권집단소송제 도입 입법 운동


2005

삼성보고서 발간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 대법원 승소19990423현대주가조작처벌촉구집회수정


소액주주운동 더 알아보기

주주대표소송이란?
소수주주권의 일종. 기업의 경영진이나 이사진의 부정 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주주가 이들을 상대로 제기하는 손해배상소송


집중투표제란?

소액주주의 권리 강화를 위해 시행되고 있는 제도. 기업이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출할 때 3%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요청하면 주주총회에서 투표를 실시해 표를 많이 얻은 순서대로 이사를 선출하도록 한다.


증권집단소송제란? 

기업의 부정 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소액주주가 소송에 승소하면 동일한 피해를 입은 다른 투자자도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봄은 주총의 계절이었던 시절

 

차병직 변호사

내게 삼성전자 주식 한 주가 있다고 가정한다. 액면 120만 원짜리 초고액 지폐다. 한 장만 있어도 꽤 많은 것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그 회사의 전체 상장주식 수는 거의 1억 5,000만 주에 가깝다. 내가 가진 한 주를 시가총액에 견주면 그 가치란 180조 원 중의 120만 원이고, 권리로 치면 1억 5,000만 표 중의 한 표다. 그것으로 뭘 할 수가 있을까? 우리나라 유권자가 대략 4,000만 명쯤 되니, 대통령선거에서 내가 미칠 수 있는 영향보다 네 배 정도 더 미약한 힘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세상을 다른 쪽에서 살펴보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세상을 바꿔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눈초리로.

  “제일은행 주주 권한을 참여연대에 위임해 주십시오.”

  시작은 이런 캠페인이었다. 1997년 2월 5일 수요일, 참여연대 활동가들 몇 사람은 명동 거리로 뛰쳐나갔다. 제일은행이 한보철강에 위법한 특혜 대출을 해주었다가 입은 막대한 손해의 책임을 경영진에게 물을테니 주식 한 주라도 빌려달라는 이색 캠페인이었다. 그날 현장에서 우연히 지나가던 12명의 소액주주로부터 6,000주를 모집했다. 그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한 달 사이에 모두 20명으로부터 14만 1,471주를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3월 7일, 제일은행 주주총회에 참석하여 임원들의 책임을 추궁했다.

한 번의 경험은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1998년 3월의 목표는 삼성전자와 SK였다. 활동가들은 학자, 변호사, 회계사의 도움을 받아 치밀한 사전준비를 하였다. 3월 27일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는 개회 선언과 동시에 준비된 질문이 쏟아졌다. 해외의 위장회사를 이용해 삼성자동차에 지급보증한 사실 등을 추궁한 그날 주주총회는 무려 13시간 30분 동안 계속되었다. 열띤 보도와 함께, 시민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뉴스를 본 사람들은 거대한 기업이 시민단체 활동기구의 공격에 어쩔 줄 모르고 당한 것으로 느꼈다. 물론 부정적 시선의 사람들은 난폭한 폭도로 보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소액주주운동은 시민의 뇌리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이사들의 이사회 출석표를 든 장하성 교수와 마이크를 잡은 박원순 변호사의 사진은 개미군단의 아이콘이었다.


19990320삼성전자주주총회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발언하는 장하성 교수(왼쪽). 이사들의 이사회 출석표를 든 장하성 교수와, 마이크를 잡은 박원순 변호사는 개미군단의 아이콘이었다.


  1994년 가을 참여연대가 출범할 당시에는 기업 감시 활동을 위한 조직은 없었다. 1996년 경제민주화를 위한 시민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이기로 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연구했다. 재벌기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주주, 노동자 등 이해당사자들이 직접 기업을 감시하고 참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상법에 보장되어 있으나 사문화되었던 ‘소수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19980217삼성관련집회
사무처장을 맡은 박원순이 1997년 초 마침 연구년을 맞아 쉬면서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고 있던 장하성 교수를 찾아갔다. 장하성 교수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새로운 방식의 시민운동에 동의했다. 그리하여 1997년 장하성을 위원장으로 경제민주화위원회는 본격 활동기구로 출범했다.

  말하자면 소액주주운동은 경제민주화위원회의 설립과 동시에 시작한 운동이다. 소액주주운동이란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경제민주화위원회를 만들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구호에 많은 시민이 호응하였고, 대기업의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다짐에 다수의 국민이 박수를 보냈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1998년 삼성전자 주주총회를 끝낸 뒤 장하성의 일성은 “허탈하다”였다. 진지하게 주장하고 설득하면 기업의 태도에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얻은 성과라고는 이사 25명의 1년 치 보수를 150억 원에서 140억 원으로 깎은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바깥의 비상한 관심과 열기에 비추어보면 장 교수의 자평은 겸손 또는 과도한 욕심의 탓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다음해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완전히 실망하고 말았다. 삼성전자는 스스로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뜻을 알려왔고 주주총회 이틀 전, 정관 개정 현안에 관해 합의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바로 다음날 그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한다는 통보를 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로 결실을 맺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LG그룹 계열사 데이콤은 2000년 주주총회를 앞두고 참여연대가 요구한 지배구조 개선안을 전폭 수용하겠다고 나섰다. 특히 한 해 전에 운동에 참여한 김기원, 김상조 교수의 제안에 따라 우리사주조합 주주들이 추천하는 사외이사를 임명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로선 종업원의 경영 참여 모델을 실현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회였다. 그러나 얼마 뒤 새 노조지도부가 들어서면서 전면 파업 사태로 치달았고, 약속 이행은 무산되고 말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소액주주운동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그 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말들이 개그맨들이 전파한 유행어보다 더 익숙해졌다. ‘1주도 권리다’, ‘오너 독주시대 끝나다’, ‘엉터리 회계 발붙일 곳 없다’, ‘책임경영시대’, ‘회사가 망하면 경영자도 망한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 ‘지배구조의 민주화’ 등의 구호는 ‘재벌개혁’이란 한 마디로 집약되었다. 혼란스런 자본주의 시장에 나부끼는 수많은 그 현수막의 표어가 기실 모두 참여연대의 창작물이었다.

  ‘봄은 주주총회와 함께 온다.’ 한겨레 2002년 2월 18일자는 참여연대의 외환은행 주주총회 참석을 예고하면서 제목을 그렇게 뽑았다. 이제 언론이나 시민이나 3월을 ‘주총 시즌’이라 부르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단순히 매년 봄이면 주주총회를 연다는 의미가 아니라, 돈으로 떵떵거리던 기업이 시민 감시꾼들에게 혼쭐이 나는 계절이란 반응이었다. 현대건설에 대한 부실 여신을 따졌던 외환은행 주주총회도 10시간을 넘겼다. 회의 시작 전에 주총 의장을 맡은 김경림 은행장은 “오늘 점심 식사는 물론이고, 필요하면 저녁까지 준비해 놓겠다”고 선수를 쳤다.

  모두 참여연대에 우호적이었던 건 당연히 아니다. 주주총회가 열렸던 3월 29일 오후 2시 51분에 작성된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의 기사는 이랬다. “외환은행 주주총회가 참여연대의 현대계열에 대한 집중적인 추궁으로 3시간이 지났으나 단 하나의 안건을 승인하지 못한 채 지연되고 있다. 중식을 위한 정회 이후 2시 30분부터 총회는 재개됐다.”

  보수 언론은 기업의 편에서 참여연대를 괜히 시비나 거는 방해꾼으로 여겼다. 그러나 진짜 훼방꾼이 총회장 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회사는 자구책의 하나였던지 총회꾼들을 등장시켰다. 갑자기 손을 들고 일어나 엉뚱한 말을 늘어놓으며 소액주주 대표의 발언을 끊어버렸다. 그런가 하면 “당신은 주식을 몇 주나 가지고 있소?”라며 덤벼들거나, 아예 “밥 먹고 합시다”라고 소리지르며 소란을 피우기도 하였다.


한장-2

참여연대는 국민 10주 갖기 운동을 전개했고, 소액주주들의 주주권한을 위임 받아 주주총회에 참석하여 임원들의 책임을 추궁했다.


  2000년 3월 24일, 30여 명으로 구성된 경제민주화위원회 소액주주 대표단은 멀리 울산으로 원정을 갔다. 현대중공업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 마침 당시 독일에서 돌아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던 유시민이 동행했다. 그날도 총회꾼들과 설전을 벌이며 오전 회의를 끝낸 뒤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이런 말을 하였다. “저 자식들, 주식도 하나 없는 놈들이…….” 그 순간 장하성 교수와 나란히 걷던 유시민이 훽하고 돌아서서 날카로운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일촉즉발의 험악한 분위기가 휘몰아쳤다. 이틀 뒤 유시민은 동아일보의 ‘수요프리즘’란에 ‘현대의 중세적 비극’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 “현대중공업의 주주총회를 보면서 현대(現代) 계열사들은 기업의 상호를 ‘중세(中世)’나 ‘고대(古代)’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장-1_1

 

2000년대를 목전에 두고 소액주주운동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중앙일보는 99년 2월 2일자에 ‘소액주주운동 약인가 독인가’라는 도발적 제목으로 박스기사를 썼다. 약이라는 입장의 장하성 인터뷰와 독이라는 주장의 공병호 인터뷰 기사를 나란히 배치했다. 공병호는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 경영자의 비밀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으며, 악의적 행위가 아닌 한 경영자를 처벌해선 안 되고, 회사 손해에 대해선 노조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 중앙일보를 본 장하성은 즉시 그 기사를 구성한 곽보현 기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소액주주운동을 마치 장하성과 공병호의 권투 시합 정도로 취급하는 게 싫어 분명히 인터뷰를 거절했는데도 그런 기사가 창작돼 실린 데 분노한 것이었다. “곽 기자께서 ‘기자를 믿지 말라’는 말을 믿지 않는 나의 생각을 바꾸게 했다는 사실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로 편지를 맺었다.

  같은 달 24일 세계일보의 김영권 기자는 글자 한 자 틀리지 않는 똑같은 제목의 기사를 썼다. 전경련 산하 자유기업센터의 신사회법운동이란 걸 소개하는 내용이었는데, 소액주주의 자기보호 수단은 매각이라는 지적이 이채로웠다. 소액주주가 회사 경영에 불만이 있으면 트집을 잡을 게 아니라 주식을 팔아치우면 된다는 기상천외의 제안이었다. 게다가 소액주주가 대표소송을 제기하면, 지배주주가 그 소송을 반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안도 내세웠다.

  편지는 하는 것만이 아니라 받는 것이기도 했다. 서강대 최운열 교수는 1998년 4월 14일 소액주주운동의 실무 총책임을 맡고 있던 이승희에게 자필의 편지를 보냈다. “자칫 여러분의 주장이 기업 경영의 활성화에 저해되고 외국의 단기투자자에게 유리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유념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비판을 논리적으로 전개한 사람은 정승일이었다. 강연이나 칼럼에서도 밝혔지만, 그의 논지는 장하준과 대담으로 엮은 『쾌도난마 한국경제』에 잘 드러나 있다. 소액주주운동은 주주자본주의의 한국 상륙을 위한 안내자 역할을 했다는 평가였는데, 결과적으로 외국 투기자본의 배만 불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으로 하여금 단기수익성에 치중하게 하여 노동 조건은 악화되고, 고용 없는 성장의 위험에 놓이게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참여연대가 배당은 늘고 노동 조건은 악화되는 현상을 바란 것은 아니다. 비판은 어느 정도 논리적 자기 정당성을 지니고 있지만, 소액주주운동이 남용될 경우의 폐해를 예측하여 경고하였을 뿐이다. 소액주주운동이 과도하여 한국 경제에 혼란을 초래한 적은 없다.

  온갖 비난과 견제에도 불구하고 소액주주운동은 해외에서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초기였던 1998년, 미국의 경제 전문 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아시아 경제 리더 50인 중의 한 사람으로 장하성을 꼽았다. 한국의 경영자나 기업가 가운데 선정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소액주주운동은 애초부터 경제민주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최근에도 경제민주화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경제전문가들이 있다. 족벌체제를 중심으로 한 기업의 지배구조의 민주화는 권장 사항이다. 단, 그 가족 경영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불법행위를 없애라는 것이 소액주주운동의 요청이었다.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탈피하고, 부의 재분배 과정에서 불공정을 깨뜨리라는 것이 경제민주화란 이름의 시민적 명령이다.

  정권조차 흔들고 싶어 하는 막강한 재벌 기업이 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겠는가? 근년에 시작된 윤리경영의 요구에 따른 준법감시인제도는 무엇 때문이겠는가? 증권집단소송제도는 어떻게 국회를 통과했겠는가? 1997년 제일은행 이사들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 소송 1심에서 400억 원을, 2001년 삼성전자 주주대표 소송에서 977억 원을 배상하라고 법원이 선고하였을 때 시민들은 깜짝 놀라며 세상의 변화를 실감했다. 그 변화의 계기가 바로 소액주주운동이었다.


차병직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 참여연대 창립부터 함께하여 협동사무처장, 집행위원장, 정책자문위원장을 두루 맡아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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