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9월 2012-09-05   1659

[여는 글] 대선에 포획된 시민의 꿈?

대선에 포획된 시민의 꿈?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대선과 시민사회

지금, 12월 대선을 중심으로 만사가 돌아가고 있다. 쟁점이 될 만한 문제에 대해서도 대선에 어찌 작용할지를 중심으로 대처 방식이 결정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다음 정부에서 시민이 정말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는 망각되고,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말의 잔치 속에서 정치공학이 시민의 꿈을 능가하고 있다. 이제라도 시민들은 커피 전문점, 음식점 혹은 술집에서 삼삼오오 만난다면 우리의 꿈이 무엇인지 서로 털어놓고 토론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의 꿈이 무엇인지 모르고, 우리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신념도 잃어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다시 짚어보는 시민사회의 의미

시민사회는 17, 18세기의 서구에서 계몽주의 작가들을 통해 절대군주의 전횡에 반대하는 기획으로 시작되었다. 그 핵심에는 개인과 집단 스스로에 의한 사회의 조직화라는 통념이 들어 있다. 서구 부르주아 계급은 능력주의·법치주의·대의제의 이념과 자본주의 정신의 훈육Discipline, 그리고 성 윤리나 일상생활에서의 갖가지 엄격한 의례를 통하여 그들 스스로의 시민성을 만들어갔고, 이를 통해 오늘의 훈련된 서구 중산층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헤겔과 마르크스의 저작들은 시민사회를 부르주아지나 중산층의 이익을 지키는 존재로 비판하였고,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시민사회’는 진보 세력에 의해서 경원시되는 용어였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에서도 진보 세력 중에 시민사회나 시민운동을 중간계급 속성을 지닌 집단으로 폄하하는 경향도 있다.

1980년대 유럽의 진보세력은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일당독재나 소련의 전체주의에 반대하면서, 자유·다원주의·사회적 자율성을 옹호하고, 과거 부르주아지 사회와 구별하기 위해서 ‘시민사회Civil Society’라는 용어를 재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자기조직화나 시민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제 시민사회는 개입주의적인 복지국가가 너무 많은 것을 규제하는 문제점이나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공동체 사회를 지향하려 한다. 또한 시민사회 담론은 경쟁이나 개인적 이익의 최적화에 기반을 둔 시장논리와는 다른 해결책을 지향한다. 다원성, 차이, 긴장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한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라.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에 대한 참여연대의 의문 제기를 보수언론은 ‘국론이 분열되고 한국의 미래가 염려된다’고 온갖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서구의 시민사회는 이런 차이나 긴장 자체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나아가 공공사회에서의 갈등을 넘어 타협이나 이해를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서의 정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시민의 꿈을 현실로 만들자

이제 한국의 시민사회 그리고 시민운동은 시민에게 스스로의 꿈을 말하게 해야 한다. 참여연대를 위시한 시민단체들은 오랫동안 대선과 관련하여 ‘복지’와 ‘경제민주화’ 문제를 쟁점으로 끌어내었다. 그러나 우리 활동은 앞의 묵직한 주제가 개별 시민의 일상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와 그것을 시민들이 어떻게 실감할 수 있을지 그리고 시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 참여연대가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 단계로 더 진전해야 한다.

내가 6년을 살았던 독일 사회를 예로 들어보자. 박사과정까지 모든 학비는 무료였고, 대부분의 학생은 생활비 몫으로 국가로부터 융자 장학금을 받았으며, 나중에 취업을 하면 장기간에 걸쳐 상환한다. 대부분 시민들은 공공임대주택에서 살고, 월세가 수입의 일정 부분을 넘으면 국가가 보조해준다. 보육료도 마찬가지다. 의료비는 100%를 보험에서 지급하였다. 이런 제도들은 세계화의 충격 속에서 어느 정도 약화되고 있긴 하지만, 그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고교 내신 성적으로 진학하고, 대학은 평준화되어 있다. 소득 재분배 정책에 따라서, 중상층은 거의 수입의 절반을 세금으로 낸다. 의료보험이나 연금 등도 수입에 따라 누진적으로 적용된다. 부부가 모두 정규직일 경우, 한 사람 월급의 절반은 세금으로 나간다. 이런 제도는 교사 등의 직종에서 주당 절반을 일하는 정규직 창출을 촉진한다. 초중등학생에게는 매달 통학권이 지급되고, 유난히 교통비가 비싼 나라이지만, 대학생은 학생증 하나로 반경 100km 내의 모든 교통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물가는 비싸지만, 우유나 감자·과일·화장품 등의 생필품 가격은 지금도 우리보다 훨씬 저렴하다. 학용품 등 일정 품목의 가격은 우리의 2~4배 수준이지만, 독일인들은 이를 감수하고, 대신 물건을 아껴 쓴다. 바로 이런 점이 서구 국가 중 유일하게 아직도 독일에 중세 이래의 길드 제도가 남아 있고, 중소기업이 굳건히 버틸 수 있는 이유이다.

우리도 독일과 같은 사회를 만들자고 하면, 보수 세력은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대경실색할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사회복지제도는 스웨덴이나 덴마크에 비해 보수적이어서 오히려 우리가 도입하기가 용이하다. 또한 지금의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독일이야말로 가장 견고하게 버티지 않는가? 시민들이여! 우리도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의 소박한 꿈을 말하고 토론하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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