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청년사업 2013-07-05   1405

[청년연수후기] 통제할 것인가, 통제 당할 것인가?

2013 참여연대 청년연수는 7월 1일부터 8월 8일까지 6주간 고민 많은 20대 청년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입니다. 아래 후기는 청년연수에 참가중인 유승현 님이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님의 강연을 듣고 작성해주셨습니다.^^

 

20130702_청년연수 둘째날 (11)

 

이태호 사무처장님의 강연은 자유로운 첫 인상처럼 다양하고 자칫 난해할 수 있는 주제를 넘나들며 저를 포함한 적지 않은 친구들에게 ‘멘붕’을 선사하셨지만 후기를 위해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 한 가지 이야기를 하셨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구에서 정의내린 ‘시민’에 대해 말씀 하시면서 나온 이주민에 대한 이야기, 연장선으로 나온 민족주의 그리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서구의 분리주의 그로 인해 불거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구의 가해자들 혹은 이권을 노린 자들의 허울뿐인 인도적 개입의 가능성 여부 등과 같이 독립적으로 다룬 주제도 있었지만 이를 제외한다면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통제할 것인가?, 통제당할 것인가?“

 

최근 온라인상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전시에 적에게나 실시하는 ‘심리전’을 사용한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태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부터 국민을 자신들의 발밑에 두고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세력들의 못된 습관이 21세기 버전으로 부활한 것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1조 1항을 보기 좋게 무시한 결과입니다.

 

영화 ‘wag the dog(1998)’을 보면 처음에 이런 문구로 시작합니다.

 

“개는 왜 꼬리를 흔드는 걸까? 그것은 개가 꼬리보다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꼬리가 개를 흔들어댔을 것이다.”

 

영화는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을 막기 위해 국민에게 권력을 부여받은 정부가 미디어란 도구를 이용하여 보호하고 받들어야할 국민을 기만하는 내용을 풍자한 것입니다.

 

한국의 국정원 사태는 이 미디어의 범위가 기존의 전통적인 매체에서 인터넷이라는 온라인으로까지 확대된 것이지 그 외에는 과거 미디어를 통해 국민을 기만하는 태도는 동일합니다. 

다만, 오랜 시간 누적된 경험으로 TV나 신문 등을 통한 기만전술은 매우 섬세하고 디테일하지만 초보딱지의 풀이 체 마르지도 않은 온라인상에서의 어설프고 성급한 전술은 지금의 국정원 선거개입 사태가 알려진 단초이며, 이는 곧 국민을 통제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그들에게는 낯선 온라인이란 공간에서 일반 국민들이 ‘중구난방’하는 상황을 보고 얼마나 똥줄이 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보를 독점하고 이를 통해 관계를 단절시키고 모든 것을 동질화 시키던 시대에는 꼬리 즉 국가가 더 똑똑했을 진 몰라도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서로를 연결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지금의 시대에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상황은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꼬리가 몸통을 흔들려는 무리수로 인해 지금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며 더불어 물타기용으로 국정원이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하여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들도 연달아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3년 현재 우리는 ‘통제할 것인가?, 통제당할 것인가?“라는 기로에 서 있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이보다 더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제기되어온 문제입니다. “We are the people” 이 문구는 1989년 동독 국민들이 주장한 슬로건으로 “우리가 바로 인민이다”라는 뜻이며 이는 곧 당시의 인민공화국을 겨냥한 것입니다. 인민공화국이지만 인민은 안중에도 없는 현실 속에서 ‘진짜’ 인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죠.

 

이후 소련의 붕괴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전 세계의 보편적인 체제로서 자리 잡았지만 1989년에 외쳤던 슬로건은 2011년에 그대로 재현되게 됩니다. “We are the 99% people.” 

과거 인민공화국이 실제 인민은 안중에도 없던 것처럼 지금의 민주주의는 1% 만을 위한 민주주의이지 99%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며 이는 20년 전과 그 후의 차이가 결국 통제를 하는 주체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뀌었을 뿐이지 인민들이 그리고 시민들이 ‘통제 당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배드엔딩으로 끝을 맺는 자본주의라는 소설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라는 질문에 또 다른 슬로건이 나오게 됩니다. “Another world is impossible.”

 

구체적인 대안이 당장 없더라도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만은 계속 던져져야 한다고 이태호 사무처장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또 다른 세상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협동조합”입니다.

 

신뢰와 협력의 프로세서를 기본 전제로 하는 협동조합이야 말로 간판만 바꿔 달았지 계속해서 인민이 그리고 시민이 통제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특정 개인이 혹은 소수의 1%가 주인이 아닌 1인 1표 원칙아래 모두가 주인인 협동조합 하에서 ‘통제할 것인가? 통제당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표면상으로는 투표권을 가진 국민은 누구나 1인 1표를 행사할 수 있지만 이는 말 그대로 표면상으로 그런 것이며 실제로는 자본주의의 1주 1표가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세계화되고 국경 없는 자본주의를 국가단위의 민주주의가 컨트롤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고 이러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협력경제 즉 협동조합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협동조합이란 이야기가 자칫 이상적인 이야기로만 들리실 수 있겠지만 스페인의 몬드라곤, 스위스의 미그로 등과 같이 오래전부터 신뢰와 협력의 경제를 지속해오며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는 사례들이 많고 이는 최근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도 충분히 대안으로서의 근거가 된다고 생각됩니다. 

 

오래전 수렵생활을 하던 인류는 사나운 동물들에 비해 나약한 신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먹이사슬 정점에 올라선 이후 협력하는 법을 점차 잊어버리게 되고 협력 보단 효율을 위한 경쟁이 익숙한 사회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과거 인류가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맹수들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경쟁이라는 인간이 만든 통제할 수 없는 맹수에 99%의 인류는 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 인류가 맹수들에 대항하기 위해 협력했던 것처럼 현재의 우리도 경쟁보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협력경제 즉 협동조합을 통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Another world’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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