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1998-10-17   1284

[제5호 개혁정론] 특검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국민의 정부' 출범과 더불어 많은 것이 변했지만, 공직자 부정부패 수사와 관련한 정치적 논란과 공정성 시비는 옛날 그대로입니다. 대통령께서 야당총재 시절 하신 말씀과 대선공약을 돌이켜 보면, 최근 정치인 사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권의 대립과 국회의 파행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태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청와대와 여당은 한나라당이 옛 집권세력인만큼 부정부패를 파헤치다 보면 당연히 그쪽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는 논리로 편파사정을 부정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사정의 결 과가 아니라 그 주체와 과정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서경원 의원 사건이나 정치자금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편파적 이고 음모적인 검찰권 행사로 엄청난 피해를 당하신 일을 아직 잊지 않으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12.12와 5.18 등 국 헌문란 사건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가 김영삼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입장을 뒤 집었던 우리 검찰이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바뀌었다고 해서 고 갑자기 정치적 중립성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 아 니겠습니까.

대통령께서는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셔야 합니다. 정치인과 공직자의 부정부패와 인권유린 등 국가기관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대통령을 포함한 그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고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진실을 밝히고 범죄자 를 응징하며 피해자를 구제하는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부정부패 척결과 인권 보장 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의지만을 믿으시면 안됩니다. 골수까지 부패로 썩은 우리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의 개혁의지를 제도화해야 하며, 그 첩경은 공직자 비리와 인권유린 사건을 전담하는 특별검사제 도입입니다.

특검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입니다. 일단 이 다리를 건너고 나면 좋았던 싫었던 옛날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정치적 눈치보기와 인권유린으로 점철되었던 검찰권 행사에 종지부를 찍는 '과거와의 단절'입니다. 이 제도를 실시하면 대통령도 위법행위를 저지를 경우 특별검사의 조사를 받게 될지 모릅니다. 박상천 법무부 장관을 비롯하여 정부여당의 거의 모든 고위인사들이 특검제를 반대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경성비리 사건과 국세 청 대선자금 강제모금 사건 등을 처음부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특별검사가 수사했다면, 결과적으로 야당 정치인만 줄줄이 소환되는 상황이 벌어져도 그것을 편파사정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정권교체가 혁명이 아닙니다. 하지만 점진적 개혁에서도 확실한 단절이 필요한 분야가 있다고 봅니다. 더욱 이 특검제 도입은 엄청난 수의 희생자를 낳는 금융개혁과 노동시장 유연화 등과는 달리, 직권을 남용하여 뇌물을 챙 기고 인권을 유린하는 극소수의 권력자 집단을 제외하면 온국민이 혜택을 보는 '저렴하고 효과적인' 개혁이 아닙니 까? 특검제 도입 여부는 '국민의 정부' 개혁의지의 시금석입니다. 대통령의 결단을 기다리는 국민의 시선을 외면하지 마시고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시기 바랍니다.

시사평론가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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