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10-31   2319

<안국동窓> 한미 FTA 지적재산권 협상, 이제 그만 접을 때가 되었다

한국 땅에서 지적재산권을 법학의 하나로 공부하거나 정책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 사회에 지적재산권이란 제도가 도입되고 전개되어 온 100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비관적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결론을 확신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한미 FTA 협상이다.

한국의 지적재산권 제도는 일제 강점기인 1908년 미국과 일본이 맺은 조약에 의해 강제로 시행되었다. 이 조약 제1조는 “일본국 정부는 특허권, 의장권 및 저작권에 관하여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령을 이 조약의 시행과 동시에 한국에도 시행하며, 미국인에 대하여는 한일 양국 국민과 동일한 보호를 준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 법령을 강제로 시행당하던 한국은 해방 후에도 일본법을 그대로 차용한 법제를 운영해 오다가, 1986년이 되면 급격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공격적 일방주의의 대명사로 불리는 미국 통상법 301조의 직격탄을 맞은 결과다.

미국 통상법 301조는 ‘외국의 법ㆍ정책ㆍ관행이 미국의 통상에 부담을 주거나 제한을 가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은 경우’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반드시 보복조치를 취하도록 강제하고 있는데, 1984년이 되면 외국의 법ㆍ정책ㆍ관행에 외국의 지적재산권 제도를 추가한다. 통상정책에 지적재산권을 연계한 것이다. 이렇게 변화된 미국 통상정책의 첫 희생양은 한국이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1985년 한국의 지적재산권 침해 사례에 대해 미국 통상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지시하고 USTR이 조사권을 발동하면서 한국은 미국과 본격적인 지적재산권 협상을 시작한다.

불과 10개월의 짧은 협상 기간을 거쳐 한국은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다. 국회 홈페이지에서 한국의 지적재산권 관련 법률들은 검색해보면, 모두 1986년 12월 31일에 전면 개정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1986년에 미국의 통상압력에 한국이 굴복한 결과다.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을 인정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이고, 외국인의 저작물을 차별없이 보호한 것이나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저작권의 형태로 보호한 것도 이때가 시작이다.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한국측 실무자조차 ‘방어밖에 없었던 협상’이라고 부르는 협상 결과에 대해 일본 동경대의 나카야마 교수는 “이것이 문명국 우방간의 협정인지 눈을 의심하게 될 지경이다. 이는 마치 전승국이 패전국으로부터 노획물을 독점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고 조롱에 가까운 비판을 하였다. 한국 내에서도 미국만을 위한 예외 조치에 대해 우리 통상외교의 실수라는 지적이 있었고, 양해각서에 포함되어 있던 미국 기업을 위한 의약품 특허의 소급 보호는 한국 경제관료들 사이에서도 ‘항복문서’로 통하기도 하였다.

1990년에 들어서면, 미국 주도로 만든 국제조약에 가입하기 위한 형태로 한국의 지적재산권 제도는 개정을 거듭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세계무역기구설립협정의 부속 협정으로 체결된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 협정)’과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저작권조약이다.

이처럼 한국의 지적재산권 제도는 창작물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우리 사회 내부의 합의를 통해 성립한 것이 아니라 일본과 미국의 한국 시장 지배를 위해 도입되었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의 지적재산권 제도는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수준보다 훨씬 더 강한 지적재산권 보호에 편중되어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수준의 지적재산권이 바람직한지 고민하고 이를 개혁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한미 FTA 지적재산권 협상에서 미국은 한층 더 높은 수준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요구하고 있으며, 그 내용은 미국의 문화 자본과 제약 자본들이 만든 ‘지적 상품’의 무역자유화를 위한 것이다.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 이에 따른 국내법의 대대적인 개정 작업이 뒤따르는데, 앞으로 이를 개혁하려면 먼저 미국 행정부나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초래된다.

미국이 FTA를 통해 지적재산권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미국 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올리기 때문이다. 2006년 3월에 발행된 세계무역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한해에만 미국이 지적재산권 로열티로 얻은 수입이 513억 달러(약 60조원)에 달한다. 지적재산권 로열티 수입이란 지적재산권 이용료를 말하는 것이므로, 지적재산권 상품 그 자체를 판매하여 얻은 수익까지 합하면, 미국이 지적재산권으로 얻는 수입은 로열티 수입의 수십배에 달할 것이다.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로 허덕이는 미국 입장에서 지적재산권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이처럼 미국은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로 엄청난 이득을 보기 때문에, 미국 통상법에 FTA 지적재산권 협상의 목적을 상대국에게 미국법과 유사한 지적재산권 보호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2005년 12월 미국의회 보고서도 FTA는 지적재산권 보호 확대로 미국의 이익을 높이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하며, 소프트웨어, 음악, 동영상, 의약품 분야에서 지적재산권 보호 수준을 높이면 미국 산업의 무역수지를 개선하고 혁신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미국 국내 가격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의약품 분야만 보더라도 미국 상무성은 다른 나라에서 약가 통제를 하지 못하게 하였을 때, 미국 제약사들이 특허권으로 얼마나 더 이익을 볼 수 있는지 조사하여 이를 토대로 남의 나라 약가에 간섭하고 나선다. 미 상무성의 보고서에 따르면, 11개 OECD 국가(프랑스, 독일, 캐나다, 영국, 일본, 호주,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네덜란드, 스웨덴)에서 약가 통제를 하지 않을 경우, 2003년에 267억 달러만큼 특허의약품의 수입이 증가한다고 한다.

미국이 자국 기업들의 막대한 이윤 확보를 위해 지적재산권을 강조하는 데에 비해, 한국 관료들 사이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지적재산권 강화로 인해 별 이득을 보지 못하는 데도 불구하고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것이 선진 제도의 수용이라고 믿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는 지적재산권의 강화로 조직 이기주의를 달성할 수 있는 일부 관료 조직이 퍼트리는 동화같은 미신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적재산권 제도에 대한 천박한 이해 때문이다.

지적재산권 제도는 지적 창작물의 독점권 인정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 제도가 아니다. 무역자유화를 위한 제도는 더더욱 아니다. 기술의 혁신과 문화ㆍ예술의 발전을 위해 창작자에게 한시적인 독점을 인정하는 것 뿐이다. 지식을 재산권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시장독점권을 인정해야 지식의 생산이 많아진다는 논리는 지식을 상품화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가와 기업들의 논리다. 지식을 상품화하려는 미국식 자본가들의 논리가 지식의 생산체제에 어떤 해악이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한 채, FTA 협상 체결을 위해 버리는 카드로 지적재산권 분야를 활용하려는 한국의 통상 관료들로 인해 지적재산권을 학문의 하나로 연구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비관적 결론에 이르고 나면 비참한 심정까지 생긴다.

“축구를 할 때 한 10개 부처 넘게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부처는 포워드나 원톱을 하기도 하고, 어떤 부처는 윙백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희 부의 현재 상황은 골을 덜 먹기 위해서 윙백을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에 골 넣는 목표를 제시하라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유시민 장관이 한미 FTA 3차 협상 결과를 보고하면서 한 말이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미 FTA 협상에서 지적재산권 분야는 미국에 양보하라고 외교통상부가 관련 부처에 공문을 보내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하는데, 외교통상부의 이러한 태도는 지적재산권 분야는 골을 덜 먹기 위한 윙백 역할도 필요 없을 정도로 막을 게 없다는 속내를 반증하기도 한다. 미국 기업과 한국 기업을 위한 골대를 하나씩 세우고 상대방 골문을 향해 공을 많이 집어넣는다고 이기는 축구 경기와 한미 FTA 협상을 같은 차원으로 본다면, 지적 창작물의 보호 제도를 골 득실의 차이로 이기고 지는 게임의 희생양 정도로 보고 80년대에 미국에게 했던 굴복을 반복할 요량이라면, 더 이상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FTA 협상을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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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섭 (변리사, 한미FTA저지 국민운동본부 지재권분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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