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청년사업 2012-01-13   2301

[청년아카데미 후기] ‘착한 경제’, ‘이타적 인간’은 출현한다

12월 27일부터 1월 19일까지 총 8번의 참여연대 청년아카데미가 진행됩니다. 그 중 네번째 강좌, ‘우리는 언제까지 경쟁해야 하는가? : 경쟁을 넘어서는 착한 경제는 가능하다’ 라는 제목으로 정태인 선생님의 강연이 1월 5일(목) 저녁 7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참여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턴들이 차례로 강연 및 활동 후기를 올립니다.

 

‘착한 경제’, ‘이타적 인간’은 출현한다

 

참여연대 9기 인턴 최지희

 

강의를 듣는 날 오전에, 나는 내 대학교 석차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입사지원을 해 둔 기관에서 석차정보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평소 학점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에 대해 여러 사람들에게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사실 나는 내 학점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개의치 않았었다. 다른 사람의 학점을 궁금해 한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미 확정되어 버린 ‘XX/XX’이라는 내 위치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표정이 굳어지면서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에잇,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 열심히 할 걸….”

그렇게 중간에 기호(/)를 포함한 단 몇 개의 숫자가 나를 인간에서 수직선상 좌표로 바꿔버렸던 것이다. 그 때 내게 생겼던 것은 너무 늦어버려 발휘할 수 없는 ‘승부욕’과 ‘부끄러움’이었다. 다시 말하면, 경쟁의식과 수치심이다. 경쟁은 이겼을 때는 짜릿하지만, 졌을 때는 수치스러운 것이다. 경쟁은 나의 기분을 망쳐버렸던 거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정태인 원장님의 강의 제목은 “우리는 언제까지 경쟁해야 하는가? – 경쟁을 넘어 착한 경제는 가능하다.” 였다. 이 제목을 직접 선정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난 이 제목 때문에 이 강의를 제일 기대하고 있었다. 경쟁에서 이겨야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고 경쟁하지 않는 것 자체는 생존을 포기하는 것 같은 사회에서, 경쟁하진 않지만 생존을 위협받지는 않는 대안적인 삶의 방법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겠다고 기대해서다.  

 

정태인_1.jpg

정태인 원장님의 강의를 내가 이해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존 경제학에서는 사람을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완벽히 이기적인 인간으로 그린다. 그런 경제학 하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 할 때, 사회 전체적으로도 이익이 된다고 말한다. 때문에 개인의 사적 소유와 이익 추구는 정당하다.
그러면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서로를 배려하고, 받은 대로 갚아주려는’ 상호성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인간이 이기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상호성도 결국 개인이 각자의 이익에 충실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인간은 그렇게 철저히 이기적이지 않다.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가정을 할 때, 각 개인은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을 뿐이다. 그러나 만약 인간이 정말 이기적이라면, 모든 것을 공유했었던 부족들은 이미 망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협동할 줄 아는 것이다. 

 게임이론에서 ‘죄수의 딜레마’는 서로가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경쟁하고 배신할 때 각자에게 더 이익이 되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이는 이기적 인간, 그리고 그런 사회의 법칙을 표현한다. 그리고 ‘사슴 사냥 게임’은 서로 협력하는 것이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이익이 되는 상황을 표현한다. 사회적인 신뢰를 기반으로 하여, 협력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표현한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 사회인가? 우리나라는 경쟁을 선택해야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있는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직업별 임금격차가 큰 나라로, 안정적 생활과 소득을 보장하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학생 때부터 성적을 위해 경쟁해야 한다. 아이들은 사교육에 시달리고, 부모들은 사교육비에 시달리게 된다. 교육을 통해 경쟁을 강요받고, 체화한다. 그러면 묻는다. 우리는 행복한가?

북유럽 국가 중 핀란드는 평등교육과 협력교육을 강조한다. 평등은 다양성을 낳는데, 다양성은 또 효율성을 낳는다. 핀란드에서는 직업별 임금격차가 우리나라에 비해 거의 없으며, 때문에 개개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이탈리아 로마냐 지방에서는 오래전부터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연대하는 협동조합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구축해왔다. 협력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이익을 높이는 사슴사냥게임과 같은 이들의 실례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 보편적 복지와 사교육폐지에 대한 문제 등, 경쟁보다는 협력을 구축하자는 여론이 더 힘을 얻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희망이 있다고 본다. 신뢰를 기반으로 협력적으로 행동했을 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정태인원장님의 강의를 다 듣고, 마음이 편했다. 유명한 학자가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 자체가 무척 희망찬 일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무척 즐거웠다. 나의 관점과 상식이 틀리지 않았다고, 경제학을 통해서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서 기뻤다. 강의는 이익과 경쟁에서 시작하여 신뢰와 협력으로 끝났다. 결국 이익을 위한 경쟁이 만들어 낸 문제는 그와 똑같은 관점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한 협력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이기적이라고 풀어서 설명하든, 이타적이라고 설명하든 결론은 상식으로 끝난다. 간단히 “지 혼자 잘 살겠다고 그러면 못 쓰는 거다.” 라는 할머니의 말 한 마디가 내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경쟁적 사회가 협력적 사회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은 얼마나 지난할 것인가. 착한 경제, 보편적 복지 등에 대한 강의는 짜릿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은 훨씬 길고 고통스러울 것이 뻔하다. 강연 중에 제시되었던 것 중 두 가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 교육 문제. 정태인 원장님께서 우리나라의 시험체제와 등수 체제에 대한 비판을 하시며 사교육 전면 금지에 대한 제안을 하셨다. 돈이 들지 않는 정책이라고 이야기 하셨지만, 그 과정이 어려울 것임을 훨씬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사교육 분야에 이미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정책에 크게 반발할 것이다. 사교육 업계에서 대량실업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사교육 업계 종사자들의 생계도 위협받는다. 그 분들을 공교육으로 편입시키는 정책을 만든다고 해도, 그 정책에 신뢰성, 효과성, 형평성에 큰 의문들이 제기될 것이다. 사실, 학원 강사라는 직업은 대졸 미취업자들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기에, 단기적으로 대졸 미취업자의 갈 곳은 더 줄어들 수도 있다. 자기주도학습이 인기를 얻어가고 있지만, 한 여성지의 부록에 ‘자기주도학습시대의 사교육 전략’이라는 글이 실린 것은 사교육의 뿌리가 너무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또한, 평등적이고 협력적인 교육도 쉽게 정착하기는 힘들 것이다. 성적중심의 대입제도를 깨려던 이해찬 세대도 단군 이래 최저 학력이라는 누명을 쓰고 짧게 끝나버린 바 있다.

그리고 임금의 격차 조정 문제. 핀란드는 직종별 임금격차가 많지 않다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여지가 많아진다고 말씀하셨다.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회이다. 그렇지만 한 사건이 생각난다.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사회에 대한 내 시각을 많이 이야기했었다. 우리나라의 일자리와 임금체계가 너무 양분된다는 이야기도 했었던 것 같다.

 

한 친구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대학병원에서 수련의로 있는 친구로 기억한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당연히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하는 것이 아니야? 안 그럼 누가 공부하겠어?” 그 친구가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을 알기에 나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받은 게 많다는 말, 우리가 사회를 이끌어 나갈 세대가 될 것이기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한다는 말로 사회문제에 대한 대화를 끝냈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것만은 충분히 보상받아야 하고, 충분한 보상이 없다면 공부를 안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가치관이 과연 임금격차를 줄여나가는 과정을 잘 수용할 수 있을까. 열심히 공부해 왔다고 생각하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보니, 모든 문제가 교육으로 수렴하는 것 같다.)

 

하지만 좋은 기회가 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위기가 기회라더니, 여러 가지 상황과 사건들을 볼 때, 착한 경제와 보편적 복지를 우리 사회에 이루어 낼 좋은 기회가 정말 온 것 같다. 나로서는 강연을 통해 경쟁을 넘어 착한 경제를 만들어가는 구체적인 방안과 개인의 실천과제 같은 것을 듣기를 기대했기에 약간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런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겪어야 할 진통이 우리 몫이고, 그 안에서 내 역할을 찾고 살아내는 것은 내 몫이라는 담담한 확신이 생기기 시작한다. 여전히 명백한 것은 없지만, 여전히 믿는다. 그리고 믿을테다. 착한 것이 승리한다는, 어릴 적 듣던 이야기들의 교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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