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자원활동 2012-02-16   2313

[자원활동가 인터뷰]’문지기’ 안내데스크 자원활동가 김대현

[시민참여팀] 참여연대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또는 자원활동 후기 형태로 연속적으로 올립니다.

 

 

‘함께 하는 삶’을 위해 자원활동을!

– 참여연대 ‘문지기’ 안내데스크 자원활동가 김대현님

 

 

김구는 생전 ‘독립된 조국의 문지기라도 하고싶다’고 말했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결심을 보여주는 말이다. 좌에는 청와대, 우에는 정부청사를 거느리고(?) 있는 참여연대의 문지기를 맡고있으신 김대현님. 그도 세상이 나아지기 위해서라면 참여연대에서 무슨일이든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대현님은 자신의 닉네임을 ‘자유인’이라고 표현했다. 얽매임은 싫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싶다는 의미다. 이곳과 인연을 맺은건 2008년. 당시 거의 매일 광우병 촛불집회에 나간 그는 당시만해도 참여연대를 알고는 있었지만 자원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집회에서 참여연대가 눈에 띄었다. 주도적으로 싸우고 사회적으로 논의를 끌고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시민들이 주체로 세상에 참여하고 연대하는데 그 중심에 참여연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자원활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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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자영업을 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하루정도 시간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나이가 좀 많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참여연대에 1층, 안내데스크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충무로가 영업 사무실이라 이동거리도 가까워 참여연대로 나와 자원활동을 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을 갖춘 셈이다.

 

“안내데스크를 보는 일이라 힘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리 힘들지 않다”는 그는 데스크를 지키며 참여연대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안내를 해주는 일을 한다. 방문자들 뿐 아니라 전화를 하는 시민들에게도 안내 도우미의 역할을 한다. 참여연대에 오는 모든 전화들을 간사들이 일일이 받을 수 없어, 오는 전화를 받아서 담당 간사를 안내해주거나 항의 전화까지 대처한다. 

 

대현님은 하루에 대략 100건의 전화를 상대한다고 말했다. 데스크의 일들은 단순한 업무 같지만 참여연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곳에서 대현님은 2009년 8월부터 약 2년 반 동안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참여연대 자원활동가들 중에서는 꽤 오래 한 편에 속하지만 데스크 자원활동하는 분들 사이에서는 그가 가장 막내다. 데스크의 특성상 길게는 참여연대의 창립부터 함께한 자원활동 베테랑들이 이곳에 모여있다.

대현님은 자원활동을 하면서 쌓인 날들만큼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이 있다. 그는 “참여연대 간사들, 활동가들이 아름답기 때문에” 자원활동은 자신에게 ‘김태희’라고 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신과 가치를 지키려 힘든 일을 선택했다. 그 모습이 아름답고, 뿐만 아니라 똑똑하고 겸손하다. 자유로우면서도 열심히 하는 활동가의 모습들이 그에게는 김태희만큼 아름답게 보인다.

그가 봉사를 하는 동안 제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제작년 ‘천안함 사태’였다. 참여연대에서 UN안보리 의장국에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이메일 서한을 보냈을 당시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보수단체가 참여연대 앞에서 2주정도 집회 및 농성을 벌였다. 욕을 하고 물건을 던지면서 위협을 했을때, 평소와는 달리 긴박한 상황에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전화도 계속 와서 대처하느라 진땀을 뺏다. 그때 힘들기는 했지만 ‘데스크를 지키는 일이 참여연대에 도움이 되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에 한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 느끼기도 했었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삶은 ‘함께 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앞으로 올 자원활동가들도 그런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길을 걸어도 혼자보다는 함께, 싸우든 사이가 좋든 부대끼며 그렇게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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