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 7. 18.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한겨레통일문화상 시상식. 임동원 한겨레 통일문화재단 이사장(오른쪽)이
수상자로 선정된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에게 상패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사무처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평화군축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헌신해오면서,
금단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국방외교정책 분야에서
시민들의 권력을 감시하는 틀을 만드는 데 앞장서 왔습니다.
또 2010년 정부의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 결과에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등
시민들이 평화에 대해 깨어 있는 시각을 갖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제14회 한겨레통일문화상 선정 이유 중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제14회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자로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선정하고, 오늘(7/18) 오전 11시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3층에서 시상식을 진행했습니다.
이태호 사무처장은 시상식에서 수상 발언을 통해 이 상은 "천안함의 진실을 추구하는 시민정신에 대해, 외교안보분야도 시민참여의 성역이 아니라는 민주적 신념에 대해, 그리고 한반도와 지구촌의 군사화에 반대하여 이름 없이 헌신해온 수많은 평화활동가들의 노력에 대해 수여된 상" 이라며, 이 일에 종사해온 실무자의 한 사람으로서 모두를 대신해 이 상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고 밝혔습니다.
다음은 이태호 사무처장의 수상 소감 발언문 전문입니다.
제14차 한겨레 통일문화상 수상 소감 발언문
먼저, 이 자리에 서게 해 주신 한겨레 통일문화재단 임동원 이사장님과 심사위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상은 제게 어울리지 않는 과분한 상임에 틀림없습니다. 한 평생을 평화와 통일에 헌신해 온 많은 선배와 원로들의 경륜과 업적에 비추어 저의 활동경력은 보잘 것 없습니다. 더구나 단체 상근자로서 제가 해온 일은 다수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연결하는 일입니다. 저 개인의 성취나 업적으로 치환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난 십여년간 해온 대부분의 일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초대 소장을 지내셨던 박순성 교수님 이하 센터 실행위원들, 그리고 센터 초대 간사를 맡았던 박정은 팀장을 비롯한 많은 실무자들, 그리고 함께 연대한 단체와 활동가들의 공동작업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누가 생각하기에도 자격미달인 제가 수상자로 선택된 의미나 취지 같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우선, 현장에서 활동하는 젊은 평화통일 활동가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더불어, 최근 들어 더욱 악화되어온 한반도 상황의 심각성을 환기시키고 아직 초보단계인 우리사회 평화군축운동을 북돋우고자 하는 배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의문투성이로 남아있는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지지 표현이라고 믿습니다.
요컨대, 이 상은 제게 수여된 상이 아니라 천안함의 진실을 추구하는 시민정신에 대해, 외교안보분야도 시민참여의 성역이 아니라는 민주적 신념에 대해, 그리고 한반도와 지구촌의 군사화에 반대하여 이름 없이 헌신해온 수많은 평화활동가들의 노력에 대해 수여된 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염치없이 저는, 그저 이 일에 종사해온 실무자의 한 사람으로서 모두를 대신해 이 상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주최측에서 수상소감을 준비하라기에 저는 이 자리에서 두 가지 얘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는 천안함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군축, 정확히 말하자면 안보의 재해석과 민주화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천안함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의 합리적인 문제제기를 지지하고 그 노력에 기꺼이 연대해 주신 한겨레통일문화재단과 심사위원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 우리사회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마치 중세에 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범죄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천암함 폭침 신앙에 동조하지 않고 합리적인 의문을 가졌던 상식적인 시민들은 ‘비국민’ 혹은 ‘종북주의자’라는 주홍글씨를 천형처럼 감내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헌법재판관 후보조차 ‘믿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온갖 곤욕을 치른 후에 낙마해야 했습니다.
제가 속한 참여연대 역시 시민의 합리적 목소리를 대변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습니다. 참여연대가 유엔에 서한을 보낸 것이 알려지자마자, 참여연대 상근자들도 온갖 물리적인 위협과 협박에 직면했고 일부는 폭행에 직접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종국에는 천안함 진상규명 업무를 책임진 저는 물론이고, 임종대, 정현백 공동대표, 구갑우 평화군축센터 소장, 그리고 김희순, 곽정혜 간사까지 총 6명이나 국가보안법 위반, 업무방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검찰의 소환장을 받아야 했습니다.
물론 이 황당한 혐의에 대해 공안검찰조차 무혐의로 결론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민들과 참여연대가 정부에 요구한 최소한의 투명성, 책임성, 표현의 자유, 과학적 엄밀성 중 어느 것 하나도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가치가 아닌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어려운 시간을 잘 버티고 용기를 발휘해 준 평화군축센터 두 상근자를 비롯한 참여연대 임원과 상근자들께 깊은 신뢰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더불어 당시 참여연대를 돕기 위해 연대해 주신 각계인사들과 국내외 단체들, 특별히 참여연대를 지키기 위해 회원으로 동참해주신 1700명 이상의 ‘가스통’ 회원들께 큰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천안함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한 모든 분들께 수상의 영광을 돌립니다. 서재정/이승헌 교수님, 서프라이즈 신상철 대표, 노종면 기자,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 대표, 그리고 참여연대와 비슷한 시기에 유엔안보리에 서한을 보낸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서재정 교수는 저희 센터 자문위원이기도 한데, 논란 초기에는 오히려 누가될까봐 공개적으로 연락도 못했습니다. 그저 언론보도를 통로로 이심전심으로 협력했습니다.
천안함 진상은 반드시 재조사되고 검증되어야 합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진실은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천안함 사건 2년 4개월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수많은 의문이 남아있습니다. 참여연대가 유엔에 서한을 보낼 때, 복잡한 과학적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왜 폭발의 증거로 화약흔을 거론하지 못하고 알루미늄 산화물을 제시하냐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결국 과학자들로부터 문제의 알루미늄 산화물이 폭발이 아니라 침전의 산물이라는 반론이 제기되었습니다. 정부는 아직 적절한 반론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최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여러 자료 중 미국에서 1997년에 작성된 ‘북한 핸드북’에는 북한의 70-80톤급 잠수정은 어뢰발사능력이 없다고 나와있습니다. 한국정부는 국내에서는 북한의 130톤급 최신 연어급 잠수정이 중어뢰를 발사했다고 설명했지만, 유엔에 보고할 때는 7-80톤급 잠수정이 어뢰를 발사했다고 보고했습니다. 미 정보당국이 어뢰발사능력이 없다고 한 그 잠수정이 천안함을 쏘았다고 보고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부는 폭발의 증거도, 발사체의 증거도 아직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 밖에 물기둥, 스크류... 어느 것 하나 정부의 주장을 입증해주지 못합니다. 미 대사관 직원이 500쪽 분량의 보고서를 보는 동안 우리 국회는 10쪽이 채 안되는 보고서만 받아 보았습니다. 당시 검증작업에 참관했던 유엔사 중립국 감독위원회 대표들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 세탁된 정보만 보고받았다고 불평하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마녀사냥의 선두에 선 조선일보조차도 시민들의 문제제기에 이유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같습니다. “두 번 열리고 활동을 마감한 국회 천안함조사특위를 즉시 재가동해 국정조사에 버금가는 강도로 검증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와 더불어 각계의 최고 전문가를 총동원해서라도 이번 결과에 대한 반론과 이론(異論)을 기탄없이 제시하도록 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일이다." 2010년 9월 14일 사설에서 조선일보가 제안했던 만큼만이라도 정부와 19대 국회가 시민들이 납득할만한 검증작업에 나서기를 이 자리를 빌어 촉구합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재조사와 검증이 절실한 이유는 그 부작용이 지금도 지속되면서 확대재생산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적 논란거리를 그대로 두고 정부가 섣불리 공표한 실효성 없는 5.24조치는 남북간에 출구 없는 소모적 대치상황만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새로운 냉전적 질서로 재편하는 구실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로의 전략적 복귀를 천명한 외부세력에게 아주 좋은 명분이 되고 있습니다. 아프간 재파병,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 전용 면책, 한미FTA 추가양보, 북한 점령을 공개적으로 내건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군사훈련과 실탄사격훈련, 미군 핵함정의 서해 진출, 14조 이상의 미국산 무기구매 약속, 한일 밀실 군사협정, 중국과의 갈등과 한미일 군사훈련 등이 그것입니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강요된 신앙은 이런 상식 밖의 일들에 대해 모든 합리적인 질문을 차단하는 전가의 보도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위기국면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이렇게 불투명하고 무책임하게 민주적 통제권 밖에서 행동한다면, 그리고 이렇게 낡은 냉전적 발상과 군사적 수단에만 호소하는 처방으로 일관한다면 한반도 주민들의 미래는 암울하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주변국민들에게도 큰 폐를 끼치게 되겠지요. 천안함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어야 할 절박한 이유, 나아가 안보영역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민주적 통제가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좀 길어집니다만, 내친 김에 ‘안보’문제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아직 우리사회에서 국방외교안보 영역에 대해 시민이 개입하는 것은 불온한 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역 안에서는 민주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상식 밖의 일들이 상식처럼 일어나곤 했습니다. 무려 10조에 이르는 차기전투기를 구매하는데 시험평가를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겠답니다. 한일 군사협정 체결은 국무회의 통과 자체가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주민동의를 조작하고 환경영향평가를 조작해서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해온 해군이 도리어 적법한 공사라면서 반대하는 주민들을 범법자 취급하고 있습니다. 해군은 자주국방을 위한 해군기지가 있어야 한다면서 주민들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해놓고서는, 제주남방해역에서 한미일 공동군사훈련에 나섰습니다.
핵발전소가 사고로 가동이 중단된 것을 국민들은 한 달 후에나 알게 되었습니다. 한미FTA협정문을 일점일획도 바꾸지 않겠다던 정부는 이미 밀실에서 추가양보를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한미FTA비준안이 국회에 날치기로 처리되는 그 시간까지 정부는 국회에 한미FTA번역오류 정오표조차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민주정부를 자처한 이전 정부에서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했습니다.
2003년 3월 21일 이라크 1차 파병 동의안이 임시국무회의에서 처리된 후 그 날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가결되었습니다. 정부는 공청회도 없이 한미FTA 협상을 개시했고, 각계각층의 강한 우려와 반대에도 아랑곳 않고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통합협상을 1년 만에 끝냈습니다. 협상이 끝나도록 국회의원들은 협정문을 볼 수 없었습니다. 동북아 분쟁에는 개입하지 않겠다던 정부는 국민도 모르는 사이에 한미연합군이 동북아와 세계로 진출하는 발판이 될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습니다. 그 와중에 ‘자주국방’의 이름으로 천문학적인 군사비 지출이 승인되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집값도 등록금도 급등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안보 혹은 국익 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공포, 아주 과장된 공포입니다. 공포의 과장은 평화의 적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외부의 위협에 대한 공포가 과장되고, 힘쎈 외부세력에 대한 심리적 군사적 의존이 만연한 사회에 민주주의와 복지가 깃들리 만무합니다. 세계 경제 위기를 예언한 것으로 유명한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이 ‘쇼크 독트린’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성찰과 반성 대신 전쟁이라는 충격과 공포 즉 쇼크를 이용해서 탐욕을 극대화한 결과 자본주의의 위기가 ‘재앙’의 수준으로까지 심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게 글의 요지입니다. 이 기준에서 한국을 보면 한국전쟁 이후 60 여년간 쇼크 독트린이 계속되어온 셈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그럭저럭 국제경제위기를 잘 헤쳐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곪을 대로 곪아 있습니다. 2008년 현재, 10대 재벌자산이 우리GDP의 70%를 차지하고, 10대재벌 매출은 GDP의 65%입니다. 자살율 최고!(사망원인 4번째, 노인빈곤율 OECD 최고! 어린이 행복지수 23개국 조사대상국 중 23등! 출산율 세계 최악! 청년 10명 중 4명이 고용불안! 노동시간 세계 최고! 시민들은 사회적 안전망도 없이 극단적인 경쟁사회, 극단적인 위험사회, 최악의 저출산고령사회가 강요하는 고통스러운 일상을 힘겹게 버텨내고 있습니다. 안보안보 했는데 그렇다고 군사적 갈등이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국가안보의 본질적 목표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진정한 위협이 무엇인지, 무엇을 통해서 안전한 삶이 찾아올 수 있는지 시민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국방비를 줄여서 복지에 쓰자는 식의 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외부의 위협에 대한 공포에서 잠시 벗어나서 시민의 진정한 안전을 위한 처방에 관심을 두는 일, 좁은 국경선에 갇히지 않고 평화와 협력을 위해 노력하는 일에 기회를 줘 보자는 것입니다.
비틀즈 멤버인 존레논의 노래 중에 Give peace a chance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분단 이래 우리는 평화와 협력, 나눔과 연대에 기회를 주어본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항상 국가안보와 국가경쟁력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었습니다.
2000년 이후의 12년 동안, 80년 서울의 봄보다 더 짧았던 2000년 6.15 이후의 6개월을 빼면 나머지 기간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지경입니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 중에도 국방과 안보는 금단의 영역으로 남아있었고, 경쟁력에 대한 강박은 모든 이들의 행복추구를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참여연대 앞에서 ‘종북척결’ 시위를 하시던 어버이 연합의 어르신들이 OECD최고수준의 노인자살율과 노인빈곤율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그런 날을 꿈꿉니다. 손자들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모든 것을 주시는 우리시대의 가난한 어르신들이 모든 아이들에게 친환경 무상급식을 제공하자거나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자는 주장에 대해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반대하지 않는 날을 꿈꿉니다.
젊은이들이 군대 대신 소방대에도 지원할 수 있는 날, 국가안보나 국토개발의 이름으로 주민들이 제 땅에서 동의 없이 쫓겨나지 않게 되는 날, 환경을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국책사업에 제동이 걸릴 수 있는 날을 꿈꿉니다.
제주도 하나 만큼은 군부대 없는 명실상부한 세계평화의 섬으로 남겨둘 수 있는 여유를 발휘하는 날, 연평도 백령도를 요새화하는 대신 공동어로생태구역으로 정해서 남북의 어부들이 함께 꽃게를 잡는 날을 꿈꿉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해 남한 먼저 군비를 축소하겠다고 선포하는 날, 북한 핵과 더불어 남한의 핵우산도 접고 나아가 동북아시아에서 핵무기와 핵물질의 위협을 제거하자는데 6자가 합의하는 꿈을 꿉니다.
이 꿈의 현실화과정에서 우리사회를 지속가능한 사회로 만들 처방, 분단체제를 변혁하고 북한 동포를 포용할 수 있는 역량,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번영을 주도할 비전이 나올 것이라 믿습니다.
이게 황당한 꿈일까요? 아마도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는 황당해보였을 것입니다. 당시에 국익을 위해서는 미국의 현실적인 힘 앞에 굴종이라도 해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도 Not in my Name이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덮쳤을 때, 미국시민 과반수는 국가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전쟁 말고 뭘 해야 하는지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그 즈음 전 세계 사람들도 그 서슬 퍼런 패권주의가 어떻게 허망하게 패배하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때, 누군가 월스트릿을 점령하자고 말하면 철없는 극좌파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3년 뒤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왔고, 2011년 겨울, 소련이 망한 지 꼭 20년만에 월가에서 We are the 99% People!라는 구호가 외쳐졌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한국에서는 희망버스가 있었고 강정으로 가는 평화비행기가 있었고, 연애할 권리를 되찾자는 대학생들의 도심점거 시위가 있었습니다. 천안함 사건과 5.24조치, 연평도 포격사건의 서슬에도 무상급식 운동을 지지한 유권자들이 2010, 2011 지방선거에서 잇달아 이겼습니다.
지금은 시대의 전환기, 동북아시아의 전환기, 한국 민주주의의 전환기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운동, 평화운동의 임무는 담대해지는 것, 또 담대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사회의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억누르고 있는 가장 큰 장벽인 ‘공포’에 담대하게 도전해야 할 때라고 저는 믿습니다. 평화가 살 길이고 평화가 국방이고 복지고 경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꿈을 위해 저보다 더 치열하게 현장에서 뛰고 있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특히 이 자리에서 제주해군기지 공사강행에 맞서 5년여를 돌맹이 하나 던지지 않고 평화롭게 저항하고 있는 강정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을 기억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권리와 대체복무제 도입, 그리고 평화군축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온 몸을 던져서 스스로 소수자의 길을 걸어온 젊은 평화활동가들을 기억합니다.
여성평화운동의 선구자들, 특히 실무자들을 기억합니다. 통일운동의 1세대 실무자로서 통일운동의 혁신을 위해 젊음을 다 바쳐온 존경하는 선배와 동료들을 기억합니다.
그 분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그 모든 분들께 수상의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2012. 7. 18. 이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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