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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7.12.04
  • 41

신임 헌법재판소장에게 부치는 편지

 

홍정훈 참여연대 활동가, 병역거부자

홍정훈 참여연대 활동가, 병역거부자

 

안녕하십니까, 이진성 신임 헌법재판소장님. 

 

저는 1년 전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평화주의적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20대 청년입니다. 올해 4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다음달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1심 선고 직후 저는 변호인들과 함께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는 제 사건을 수년째 계류 중인 여러 사건과 함께 심리 중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여러 무죄 판결이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지만, 사실 저는 1심 선고와 함께 구속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2심 재판도 당초에는 올해 안에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나, 저와 변호인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자, 2심 재판부가 이를 수용해 재판이 연말까지 연기된 상황입니다. 그런데 9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안이 부결되었고, 모든 계획은 절망적으로 무너졌습니다. 상급심에서 1심 판결이 유지될 경우, 저는 차디찬 감옥에 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1심 판결 직후 참여한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에서 저보다 앞서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가야만 했던 수많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보았습니다. 모형 포승줄에 묶여 모형 감옥 안에 다시 들어서야만 했을 때, 침묵과 함께 텅 빈 표정이 가득한 그들의 얼굴에서 비참함을 느꼈습니다. 앞서 저와 같은 선택을 했던 분들과 똑같이, 제가 감옥에 들어가야 할 순간이 목전에 있다는 절망감은 실감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로 자라나 현실을 압도하곤 합니다. 그 행사에 참여했던, 저와 비슷한 시기에 병역거부를 했던 한 청년은 실형을 선고받아 현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다행히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만났던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해주었고, 언제나 법정 방청석을 가득 메워준 덕분에 외로움만이 가득한 싸움은 아닙니다. 새로운 정부는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와 같은 뜻을 밝힌 국가라면 전쟁, 그리고 전쟁을 위한 폭력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들의 신념을 당연히 존중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평화를 지키려 했던 이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모든 구성원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국가가 그 책임을 방기하는 동안, 평화적인 신념을 가진 이들은 감옥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잘 알고 계시다시피,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수차례 한국 정부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지 말 것을 권고했습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이들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도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행정부도, 입법부도, 사법부도 묵묵부답인 상황에서, 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여 이제 시대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현재, 수많은 언론은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이 눈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또다시 미뤄진다면, 매년 600여명이 예외 없이 감옥으로 향하는 비극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11년 전 감옥에 가야만 했던 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자신이 유죄판결을 받은 법정에 서서, 2017년 홍정훈이라는 또 다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변론을 하다 눈물을 쏟아야 했습니다.

 

헌법재판소만이 우리 사회의 비극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미 너무나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어야만,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부디 우리 사회가 더 나은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루빨리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는 조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감히 모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는 수백 명의 양심을 위해, 이진성 신임 헌법재판소장님께 편지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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