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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비핵군축운동을 합니다

  • 한미동맹
  • 2003.01.01
  • 715

서울 종로 광화문에서 '100만 촛불 평화대행진'



<1신>



빽빽한 경찰, 촛불 바다를 만든 시민



오후 3시경부터 경찰 차량들이 서울 종로와 광화문 일대를 봉쇄하기 시작했다. 광화문 사거리를 사이에 두고 사방을 경찰 차량이 에워쌌다. 미국 대사관으로 통하는 모든 골목들도 전경들이 틀어막았다.

12월 31일, 2002년의 마지막 하루. 이날 있을 '100만 촛불 평화대행진'을 막아내기 위해 경찰은 물샐틈없는 준비로 촛불시위를 대비하고 있었다. 경찰도 여느 때보다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 마지막 남은 하루를 미군 궤도차량에 치여 숨진 두 여중생을 추모하고 불평등한 SOFA 개정을 요구하기 위해 서울시민은 종로와 광화문 일대로 속속 모여들었다.

'미군 장갑차 고 신효순 심미선 양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가 총력을 기울여 준비한 이날 집회에는 서울 10만여 명, 전국 30만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교보문고 앞 12차선을 가로막은 경찰 차량을 등지고 중앙 무대를 준비한 범대위는 대형 트럭 두 대와 크레인에 스피커를 달아 음향시설을 만들었고, 고등학생에서부터 나이가 지긋한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수 십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행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도왔다.

범대위는 또한 미처 초를 준비하지 못한 시민들에게 'SOFA 개정'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컵과 초를 무료로 나눠주는 등 어느 때보다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러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6시 본 행사가 시작되면서 거리로 나오는 시민들의 수는 점점 많아졌다. 종묘에서 광화문 교보문고 앞까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촛불을 켜든 시민들은 조금의 틈도 없이 도로를 메웠다. 경찰이 차량으로 가로막은 광화문 사거리 반대편에서도 수많은 촛불과 깃발이 일렁거렸다.

"부시의 코가 납작해 질 때까지 더 열심히 해요"



오종렬 범대위 공동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여러분이 자랑스럽다"며 시위 참석자들을 격려했다. 그는 "지금 미국이 흔들이고 있다. 여러분의 위대한 평화행진이 미국의 패권주의적 야욕을 일깨우는 동시에 미국의 평화세력을 일어나게 했다"며 미국의 전쟁 움직임을 막아낼 때까지 촛불시위를 멈추지 말 것을 호소했다.

이어서 마이크를 받은 홍근수 공동대표는 며칠 전 "촛불시위를 자제해 달라"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말을 '친미 사대주의적 발언'이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북핵 사태 우선 해결, 후 소파개정'이라는 노 당선자의 입장을 비판하면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곧 출범할 정부는 불평등한 한미SOFA 협정을 반드시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중간중간에 시위 참가자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네티즌 대표로 무대에 선 강순영 씨(살인미군 문제 해결을 위한 다음 카페 서울지역 운영자)는 네티즌들의 여론이 인터넷 안에서만 들끓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강 씨는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을 가장 빨리 알린 것도, 촛불을 들자고 처음 제안한 사람도 네티즌들"이라며 부시가 한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는 소식과 SOFA가 개정되었다는 소식 또한 가장 먼저 알릴 것임을 약속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아빠와 함께 참여한 초등학생 신하늘 군도 "한마디로 미국이 우리를 우습게 본다는 이야기인데, 우리가 더 열심히 해 부시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 줍시다"라며 어른들 못지 않은 결의를 밝혀 시위 참가자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또한 1부 행사 막바지에는 '2003 자주 평화'라는 거대한 글씨 조형물에 불을 붙이는 상징의식을 통해 2003년은 자주와 평화의 해가 되길 기원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가수 장사익 씨와 양희은 씨가 참석해 노래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음악에 맞춰 시작된 촛불의 흔들림은 곧 주위로 퍼져 순식간에 종로·광화문 거리에 파도쳤다. 종묘 시위 참석자들쪽에서는 불꽃놀이가 진행되는 등, 촛불시위의 초반 분위기는 흡사 축제와도 같았다.

그러나 이런 시위 분위기도 '미 대사관 인간띠잇기'가 시작되면서 삽시간에 돌변했다.

곳곳에서 충돌, 부상자 속출해



이날 시위를 준비하면서 범대위측은 사전에 경찰청장으로부터 평화시위를 약속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유래 없이 광화문 사거리를 빽빽이 메운 수많은 경찰 차량은 경찰과 촛불시위대간의 충돌을 처음부터 예고하고 있었다.

오후 8시를 넘겨 1부 행사가 끝나고 시민들이 미대사관쪽으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자 당장 대기하고 있던 전경들이 투입됐다.

▲ 미대사관으로의 이동을 막는 경찰들에 의해 시민들이 고립되어 있다


시민들과 전경들이 서로 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숫자에서 월등히 앞선 시민들이 곳곳에서 경찰들을 밀어냈다. 경찰들이 시민들에 의해 자신들이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차량으로 막아 놓은 저지선에까지 밀리자 여기저기서 충돌이 발생했다.

흥분한 경찰과 시민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도중에 몇몇 시민들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주먹질하는 경찰과 방패를 휘두르는 경찰, 이에 화가 나 맞대응하는 시민 등, 여러 곳에서 위험한 장면이 연출됐다.



시민들과 경찰들의 몸싸움도 점점 격해졌다. 윤도현의 아리랑이 경쾌하게 울리는 가운데 경찰 방어벽이 뚫린 곳에서는 시민과 전경, 기자들이 한 데 뒤엉켜 뒤죽박죽이 됐다.

경찰 뒷편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 있던 몇몇 여고생들이 몇 발자국 앞에서 일어나는 충돌을 바라보며 "평화시위 보장하라"고 애타게 외치는 모습도 보였다.

급기야 시민들의 부상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사회자는 다급하게 응급차를 불렀고, 시민들은 앞을 막고 있는 경찰들을 향해 "비켜라 비켜라"를 외쳤다.

▲경찰 차량에 올라가려하는 시민을 경찰이 제지하고 있다. 밑에서 이 위태로운 장면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경찰을 향해 "위험해"를 연신 외쳤다.


잠시 후 광화문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던 시민들이 거꾸로 경찰들을 압박해 들어오면서 경찰은 병력을 증강 배치했다. 몇몇 곳에서는 이미 숫자가 훨씬 많아진 시민들에 둘러싸여 오히려 경찰들이 고립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몸싸움이 계속 되던 9시 37분경, 촛불시위대가 미 대사관 뒤쪽을 뚫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곧이어 9시 45분경, 범대위는 촛불시위 정리에 들어갔다.

시위를 정리하면서도 사회자는 경찰에게 의무병과 구급차를 시급히 보내 줄 것을 요구했다. 무대 뒷편에는 한 여성이 경찰과의 충돌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이날 행사 진행을 돕던 진행요원들은 이 여성 주위를 원으로 둘러싸서 보호하는 동시에 걱정하는 시민들을 안정시키는 등 행사의 세심한 부분까지 시종일관 챙기고 있었다. 이들은 기자들에게도 사진촬영을 하지 말 것을 부탁하며 부상당한 여성의 신변보호에 힘썼다. 잠시 후 119 구급대원이 도착해 이 여성의 다친 다리에 붕대를 감으며 응급처치를 했다.

밤 10시를 넘긴 현재, 시민들은 자유발언을 하며 정리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2신>



밤 10시 30분, 미 대사관 앞에서 촛불 인간띠 행사가 끝나자 시민들은 보신각 주변으로 이동했다. 범대위 차량이 보신각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우려했던 시민과 경찰과의 큰 충돌은 없었다. 경찰은 방패를 휴대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신각 주변에서 교통을 통제했으며 승용차와 버스 등 일반 차량이 빠져나가자 범대위 차량의 진입을 허용했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2002년 한 해를 보내는 보신각 종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범대위가 준비한 문화행사와 보신각 타종 사전 행사로 서울시가 마련한 공연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주위에 모인 시민들은 흥분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범대위와 서울시, 그리고 시민들이 직접 준비한 각종 공연을 보기 위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며 바쁘게 움직였다.

범대위 문화행사 사회를 맡은 임지은 씨(26세)는 작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지난 8월 3일 장갑차 위에 직접 올라가 시위를 벌였던 인물. 그는 "지난 6개월간 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연일 광화문에 모여 들었다. 이제 2003년을 자주의 해로 만들자"며 행사의 포문을 열었다.



이어 고려대 문예패와 노래패, 농악대, 극단 한강 등의 공연이 펼쳐졌다. 이들은 미군철수를 주제로 활발한 노래와 율동을 선보였으며, 참석자들은 중간중간 '윤도현 아리랑'을 부르며 흥을 돋우기도 했다.

임씨는 "우리 국민의 힘으로 SOFA를 개정할 수 있다"며 "노무현 당선자가 자신 없다면 국민에게 맡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범대위는 시민 박희준 씨의 자유발언을 끝으로 공식행사를 마쳤고, 마지막으로 1월 25일 있을 예정인 대규모 촛불시위에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줄 것을 당부했다.





<촛불시위 참가자들의 말말말>

"2002년 한해동안 이동권 문제를 고민하던 장애인들이 촛불시위가 열리기 전에 문화행사를 열었다. 촛불시위에도 끝까지 참여하고 싶지만 장애인들이 추위에 약해서 오래 있지는 못할 것 같아 미안하다. 내년에도 대중교통에 중심을 두고 싸움을 계속할 예정이다."(장애인이동권연대 박현 조직국장)

"노무현 당선자를 보면서 미국에 대한 굴욕적인 외교에는 보수와 개혁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대학생)

"SOFA를 반드시 개정한다는 확신만 있으면 북핵 먼저 해결하겠다는 노무현 당선자의 취지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에겐 그런 확신이 들지 않는다."(시민 황보평원 씨)

"나는 미국이 싫다. 이렇게 많은 한국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이곳에 모이다니, 한국 사람들 정말 멋지다!" (필리핀에서 온 아밍 그라이)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와중 록밴드 공연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한편에서는 전경들과 싸우는데 이렇게 공연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굉장히 색다르고 놀랍다. 그렇지만 한 공간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두 장면이 펼쳐지는 게 보기 좋다. 우리에게 이런 다양성이 골고루 인정된 적이 있었던가."
(회사원 박종은 씨)

이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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