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기타(pd) 2003-03-15   1429

[분쟁지역현황] 이라크 리포트 – “슬픈 열대” : 문명이 파괴된 문명의 발상지, 이라크

다음 글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최상구씨가 정리한 글을 기초로 재작성한 것이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메소포타미아지역은 문명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BC 4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 속에 수메르·바빌로니아·아시리아 등의 고대국가가 흥망 하였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이후 7세기 무렵부터 이 지역에 이슬람문화가 전파되었다.

이후 1534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약 400년간 오스만 튀르크 제국에 편입되었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령이 되었다가 1932년 독립한 국가가 바로 이라크이다. 이처럼 화려한 고대문명을 간직하고 있는 이라크를 우리는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세계 2위의 석유매장량을 보유한 국가, ‘국가 없는 민족’인 쿠르드족과의 민족분쟁, 이슬람 내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갈등이 존재하는 나라, 독재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하고, 대량살상무기를 만들려 하는 ‘구제불능’의 ‘야만적인’ 이미지만이 쉽게 떠오른다. 그러나 그 독재정권을 지원했던 세력은 누구였나?

1979년 집권한 후세인은 이란-이라크 전쟁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군사기술을 받았는데, 현재 미국이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이유인 바로 그 ‘대량살상무기’ 개발기술이다. 미국의 이러한 군사기술의 지원은 당시 이란 혁명 등으로 중동지역에서 확장 일로에 있던 이슬람 세력을 견제·제지하고, 중동지역에 대한 패권유지라는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걸프전을 감행한 부시대통령조차도 미국의 군수산업체들이 살상 무기와 민군 겸용 기술을 이라크에 판매하는 것을 승인함으로써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능력을 증대시켰다. 또한 ‘후세인의 악마화’에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1988년 쿠르드족에 대한 화학무기 공격 역시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생산된 것이다. 즉, 이라크가 ‘악의 축’이 된 것은 미국의 지원에 의해서였다.

누가 대량살상을 하고 있는가?

‘사막의 폭풍’ 걸프전 이후 미국과 영국은 수십 차례에 걸쳐 이라크를 공격했다. 1993년에는 부시대통령 암살모의를 이유로 이라크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것은 국제사회의 합의와 질서를 깨뜨리는 초법적 행위였다. 1998년의 ‘사막의 여우’ 작전 역시 유엔의 무기사찰 결의에 포함되지 않은 무력사용을 유엔의 절차를 무시하고 감행한 것이었다. 더구나 인구밀집지역을 폭격하거나 오발된 포탄이 병원을 파괴하는 등 민간 피해도 적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걸프전 이후 10여 년의 경제제재이다. 상하수도 시설의 마비 때문에 도시지역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식수의 양이 1990년 절반밖에 안 될 것이라고 유엔 아동기금과 세계식량기구가 추정하였다.

식수정화처리에 필요한 염소는 경제제재로 말미암은 수입금지 품목인데, 염소로 정화처리 하지 않을 때 콜레라, 간염, 장티푸스 등 전염병이 창궐할 수 있다고 미국 스스로 분석하고 있다! 병원에는 약품이 없고, 잦은 정전으로 사실상의 병원 업무가 마비되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걸프전 이후 5세 이하 아동이 매달 5천명씩 사망하였고,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을 포함할 경우 사망자수는 200-300만에 달할 것이라고 유엔 아동기금과 세계식량기구는 밝혔다.

1996년 제한적으로 금수조치가 해제되었는데,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해 20억 달러 어치의 석유를 수출하고, 그 대금으로 생활필수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억 달러의 수출대금 중 이라크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돈은 약 11억 달러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걸프전의 배상금 등으로 UN이 관장하여 사용하게 되어 있다. 이라크가 2000년 한 해 쿠웨이트의 정유회사들에 지급한 배상금은, 지난 5년 동안 1700만 이라크 국민의 구제에 들어간 비용보다 2배가 많은 159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은 이러한 이라크 민중의 고통을 독재자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지만, 미국을 주도로 한 국제사회의 제재는 결국 압제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고통만 배가시킬 뿐이다. 후세인은 오히려 미국의 위협과 탄압을 명분으로 정권을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법을 위반했던 미국의 공습과 9.11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는 이러한 이라크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기구인 유엔의 권위와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고 있다. 이라크에게 또 한번의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미처 복구되지도 못한 사회를 완전히 파괴시키는 돌이킬 수 없는 행위이다. 이미 이라크는 수차례의 전쟁과 경제제재로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이다. 이라크에게 필요한 건 평화적 해결을 통해 이라크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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