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05-06   590

[기고] 다시 이라크, 소리 없는 오열을 심장에 담으며

이라크평화팀의 바그다드 통신

이 글은 지난 4월 12일부터 5월 1일까지 전쟁직후의 바그다드 현지에서 의료사각지대에 대한 의약품 지원 및 전쟁범죄모니터를 위한 기초조사를 해 온 이라크평화팀의 임영신씨가 보내온 전쟁 직후의 바그다드에 관한 기록입니다. (편집자 주)

*전쟁 직후 국경마저 비자없이 통과할 만큼 무정부 상태에 들어간 바그다드, 총성과 폭발, 약탈과 방화가 그치지 않던 혼란 속에서 전쟁의 폭격, 총상으로 인한 환자들의 피를 맨 몸으로 받아내던 바그다드의 병원과 의사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핵폐기물을 약탈해 맨 손으로 씻어 그 통들을 일상의 도구로 쓰고 있는 바그다드 사람들, 폭발로 인한 화상으로 신음하는 아이들의 울음을 그저 받아내야 하는 어머니들의 울음, 미국이 아니라 이라크 사람들의 입술과 눈으로 증언한 이 전쟁에 관한 기록입니다.-임영신

어제는 바그다드의 가장 큰 아동병원인 이시칸 병원(Bagdad hospital for children)에 갔습니다. 병원에 들어서는 길, 총을 든 민병대들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열 살 남짓한 꼬마마저 이 병원을 지키겠다며 총을 들고 서 있습니다. 그들에게 아이들을 돕기 위해 한국에서 왔다고, 마취제며 조금의 약을 가지고 왔다고 아이들을, 의사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설명을 하고 그 총과 담을 넘어섭니다.

두세 명의 의사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가난하고 황막한 병실, 한 켠에서 거센 울음소리가 들려 들어서니 한 달이 채 되지 못한 아기의 손에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수혈받던 피가 굳어 튜브가 막히고, 아이의 손은 수도 없이 꽂힌 주사바늘 자국으로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피보다 진한 눈물이 흐르는 아이의 어머니는 우는 아이를 달랠 길이 없어 온 몸을 가리기 위해 입은 아바야를 들추고 사람들 앞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립니다. 온 몸에 핏발이 서도록 울던 아이는 엄마의 젖을 물고 그 손의 아픔을, 그 몸의 고통을 참아냅니다.

그들을 위해, 전쟁이 아니라 단지 아이들을 치료하고 돌보기 위해 이십여 명의 민병대들이 총을 들고 병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열 살 남짓한 어린 꼬마 마저 총을 들고 병원의 마당….. 그 마당에는 꽃과 잔디가 아니라 소복한 흙더미들이, 그 사이로 햇빛에 가끔씩 반짝이는 유리병들이 있습니다.

그 흙더미 위에 꽂혀있는 유리병마다 작은 쪽지들이 들어있습니다. 그 종이 위에는 어떤 사람이 입고 있었던 옷이며 키, 지니고 있던 물건 등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누가 누구인지도 모를 만큼 부패한 아이들의 시체, 시체라도 찾고 싶어하는 부모들을 위해 그 아이가 입었던 옷이며 소지품들을 그렇듯 유리병에 넣어 담아두고…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은 그 무덤에 와 그렇게 자신의 아이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 이라크평화팀

그 마당 한 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땅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50센티 가량 땅을 파헤치더니 한 사람이 주저 앉아 손으로 흙더미를 헤칩니다. 순간 무언가를 ‘찾는 듯이 흙더미를 손으로 헤집더니 두 손으로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립니다. 그가 들어올린 것은 흙먼지로 뒤덮인 한 아이의 얼굴……이미 부패하기 시작하는 그 아이를 파헤쳐 자신의 아이를 확인해야 하는 이시칸 병원.

그 마당의 숱한 부모들… 오열이나 통곡조차 하지 못한 채 아이의 시체를 찾을 때까지 누구인지도 모를 시체마저 만지고 확인해야 하는 부모들의 소리 없는 오열, 그 오열 속에 어찌하지 못한 채 서 있는 우리 곁으로 갑자기 응급차가 들어옵니다. 차에서는 의사가 아니라 한 무리의 방독면을 쓴 사람들이 들것에 무언가를 들고 내리기 시작합니다. 피조차 없는 앰뷸런스의 들 것…. 갑자기 마당 가득 퍼지기 시작하는 역겨운 냄새….바람에 들것이 펄럭이며 설핏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한 사람의 발이 보입니다. 차에서 함께 내린 한 여자가 마당 한 켠으로 가 구역질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햇빛 아래, 이 냄새 속에, 이 참혹한 풍경 속에 차마 서 있기 어려운 제게 함께 있던 프랑스 의사 쟈크가 손수건에 약품을 묻혀 제 얼굴을 감싸줍니다.

다시 땅을 파고 형상마저 사라져 가는, 거인처럼 부풀어 버린 시체들을 묻는 이시칸 병원의 마당, 그 마당 곁의 건물에서는 지금 막 태어난 신생아들이, 총과 폭탄으로 다친 혹은 다리를 잃고 팔을 읽은 아이들이 이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매일 실려오는 저 시체들을, 달린 다리를 가방에 들고 들어서는 사람을, 총에 맞아 온몸이 피범벅이 된 채 들어서는 아름다운 소녀를, 머리가 깨져 뇌가 흘러나오는 참혹한 사람들, 팔과 다리가 잘리고, 어딘가가 썩어가고 있는 아이와 사람의 죽음 곁에서 또 다른 아이들은 생을 위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 (사진) 이라크평화팀

아동병원의 마당에 부려지는 이 참혹한 죽음들, 전쟁의 결과들…. 그 한 켠에서 엄마의 젖을 먹고, 피를 수혈해야 하는 어리고 어린 생명들…. 이것이 전쟁이라고, 이것이 그들이 다만 이라크에 태어났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생의 첫 기억이라고 어찌 말해야 할까요….

약탈로 상점조차 문을 열지 못하는 바그다드,,,, 그러나 생명을 걸고 약탈로부터 자신들의 병원을 지킨 의사들이 동료들을 모아 문을 열기 시작하고, 또 어떤 이들은 스스로 사람들을 모아 병원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것입니다.

정부가 주던 몇 달러 안되던 월급 그 마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사들은 검고 눅신해진 흰 가운을 입고, 때로 불도 들어오지 않는 수술실에서 헤드 랜턴을 의지해 수술을 합니다. 때로 마취제가 없어 우는 아이를 그냥 수술하기도 하고, 피로 더러워진 침대 시트를 갈지 못해 그 침대에 다시 환자를 눕히기도 합니다. 전기를 쓸 수 없는 병원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피를 씻어주고. 찢어진 상처를 꿰매주고, 우는 이들을 안아주는 것이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약탈을 하고 불을 태우는 사이, 다른 한 켠 어떤 이들을 병원과 환자들을 위해 빵을 만들고, 물을 가져다 주고, 환자들을 돌보아 줍니다. 어떤 병원에는 어떤 이라크 인들이 트럭으로 약을 가져다 주기도 한답니다. 누가 약탈을 한 것일지도 모를 망정, 그들은 그 약들을 다시 문을 열기 시작하는 병원에 가져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웃들의 생명을 돌보기 위해 그 낯선 약탈자들에 맞서 총을 들고 저 병원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무려 한 달이 넘도록 어떤 급여도 없이 이 힘겹고 무거운 짐들을 나누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온 얼마 되지 않는 마취약… 7곳이 넘는 병원들을 방문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묻고 또 묻고 전달한 그 마취약을 보더니 사담 정형외과의 마취전문의사가 젖은 눈으로 저를 안습니다. 그 약이 없을 때 그들이 어떤 비명을 들어야 했는지 어떤 신음을 다만 심장으

로 감당해야 했는지 가만히 헤아려봅니다.

아직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작고 연약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전쟁을 극복하는지, 어떻게 이 혼란을 견디고 일상을 회복해 가는지, 어떻게 죽음을 무릎 쓰고 사람을 돌보는지…. 우리는 다만 그들과 함께 그들의 집과 병원에서 그들의 필요에 귀 기울일 뿐입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몸이든, 눈이든, 삶이든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국경을 넘자마자 미군의 체크를 받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미군의 점령국 이라크, 도시 곳곳에 탱크와 총으로 일상을 가로막는 죽임의 흔적들,,,, 총에 맞은 누이의 피로 적시며 병원을 향해 가는 이들을 향해 미군이 인사를 건넵니다. Good Morning. 차에 타고 있던 또 다른 이라크 사람이 손을 흔들어 줍니다. 죽어가는 누이의 신음을 들으며…….

임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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