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5-12-03   2358

[파병연장 반대의 논리] 광범위한 제네바 협정 위반1 – 학살 또는 비인도적 군사행동

보고서3. 대테러전쟁과 인권 – Is this your Freedom?[2]

1) 팔루자 1차 공격 사례 : ‘단호한 결의’ 작전

○ 도시 봉쇄 후 무차별 폭격, 사망자 700여명 발생

– 팔루자는 바그다드 인근의 30만명 규모의 도시로 수니파 이라크인들이 주로 거주하며, 반미정서가 높은 곳으로 알려진 곳.

– 미국은 팔루자에서 미국 사설 경비업체 관계자가 피살된 것을 계기로 4월 4일 팔루자 외곽을 봉쇄하고 군사작전을 개시, 5월 1일 저항세력과의 휴전으로 봉쇄를 풀기까지 무차별 폭격과 저격을 진행.

– 봉쇄 다음날인 5일 아침부터 AC-130 중무장 항공기를 동원한 대규모 공중 공격을 개시했다. 그 후은 아파치헬기, F-16 전투기 등에 의해 민가와 모스크 등의 무차별적 폭격이 이어짐.

– 사망자의 이장 및 장례 일정들을 관할했던 모스크의 집계에 의하면 20여 일간 “700여명의 사망자, 1500여명의 부상자 발생”(출처 : 국립 팔루자병원 의사 타민 알-모우시리, 성직자 알 파룩, 2004. 6. 윤정은, 팔루자 보고서).

○ 사망자 중 40%가 여성, 나머지 60% 중 어린이 상당수

– 2005년 4월 13일부터 6월 14일까지 팔루자 주변 및 팔루자 시내에서 팔루자 공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를 조사한 윤정은(이라크평화네트워크의 활동가, 프리랜서 사진기자)의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가능했던 사망자 112명 중 68명이 남성, 44명이 여성으로 밝혀졌다고 함.

“명단을 제공해준 모스크는 압드-알라자크 -알-사메라이(Abd Alrazaq Al Samray) 와 알-모하제린(Al-Mohajereen) 모스크 및 알-파룩(Al-Farook) 모스크이다. 애초의 조사계획 일정에는 700여명 이상의 사망자 명단을 회수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112명의 명단을 입수할 즈음 이 명단 작업에 동의하지 않는 모스크들의 반발에 의해 중도 포기되었다. 조사 목적을 이해하는 이라크 세이크(성직자)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계획은 계속 진행되지 못했다. 반대의 이유는 “미군정을 위한 정보로 쓰인다”는 우려가 최종 통보되었는데, 이 납득할 수 없는 답변이 지금의 팔루자 시민들의 극도의 민감한 정서를 대변해주는 것이라고밖에 이해할 길이 없다.” (윤정은)

– 68명의 사망자 명단은 성인과 어린이를 구분할 수 없도록 표시되어 있었으나 이라크 사회에서 집 밖 출입을 삼가는 여성 사망률을 볼때, 적지 않은 어린이들이 공습 등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윤정은 ‘팔루자보고서’ 2004. 6. 18)

○ 사원-민간 무차별 폭격, 병원 수송차도 저격

– 미군은 사원에 대해서 폭격을 가하는가 하면, 민가에 대한 폭격도 지속

– 미군은 4월 8일까지 남성들은 팔루자를 떠나라고 명령. 미군은 남아 있을 경우 저항세력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명령하고 길거리를 다니거나 집안의 움직이는 사람에 대해 무차별 저격.

– 여성들의 경우도 저격된 사례 다수. 심지어 환자와 사망자를 돌보는 모스크의 성직자들에게도 공격, 성직자 3명 사망.

‘압델-아지즈 알-사마이 모스크’ 피격, 피란 민간인 40 여명 전원 사망

– “4월 7일, 코브라 공격용 헬리콥터와 F-16 전투기를 동원해 5백 파운드의 폭탄을 쏟아부어 민간인 40여명 이상의 희생을 가져온 하이-알-나잘 지역에 위치한 압델-아지즈 알-사마아이 모스크. 팔루자 관문이 열리고 난 바로 직후, 이 모스크를 방문해서 목격한 바로는 모스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으로 파괴된 상태였다. 폭격 당시 모스크로 피신, 기도하고 있던 40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대로 죽어 그 자리는 고소란히 무덤으로 변했다고 할 정도로 건물 잔해는 가루가 되어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 “민가에 대한 공격에 의해 한꺼번에 20명 이상의 가족이 몰살당한 민가가 위치한 지역은 하이-알-줄란 이다. 미군은 이후에 이 민가에 대한 공격은 오폭이었음을 시인했다. 미군측은 모스크에 가한 공격도, 민가를 향한 발포도 그곳에 무장세력이 은거하고, 무기가 숨겨져 있어서라고 주장했지만, 이 가족의 무고한 피해는 각 언론사들의 보도에서 민간인 학살의 증거로 제시되곤 했다.” (윤정은, 팔루자 보고서 2004. 6. 18)

미 저격병, 길 위에 지나가는 모든 것 저격

– “모든 모스크에는 첨탑이 있다. 그 첨탑 위에 두세명씩 짝을 이뤄 배치된 저격수들은 길 위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모스크뿐 아니라 건물들의 옥상 위에 배치된 저격수들을 팔루자 시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나쉬미야 압바스( Nashmiyah Abas, 80세)의 증언에 의하면 그녀의 조카딸이 저격수의 공격에 의해 사망했다. 또한 하이-알-나잘에 사는 아흐메트 칼라프(Ahmed Khalaf, 48세)의 조카 또한 미군 저격수에 의해 사망했다고 증언했다.” (윤정은 팔루자 보고서 2004. 6.)

앰뷸런스에도 폭격

– “미군의 공격이 민간인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이었다는 것이 입증하는 또 다른 증거들은 5월 2일 팔루자 거리에 곳곳에 폭발된 채 서있는 자동차와 불탄 엠블런스이다. 팔루자 진입로에서 가까운 하이-알-나잘 지역에 방문했을 때, 이 작은 동네를 지나치는데 불탄 차량을 세 대나 발견했는데, 하나가 환자후송차량이었으며, 두 대는 자동차였다. 시신을 찾으러 온 가족들에 의하면, 자동차 한 대에는 여자 혼자 타고 있었으며 미군이 공중에서 폭격을 가해 자동차가 그 자리에서 전소했다. 이 자동차와 불과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불탄 채로 정차해있는 자동차에는 부부와 친척 한 명을 포함해 세 명이 타고 있었으며 시체는 불타고 흔적도 없었다. 가족들이 잔해도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서 그저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이것은 지나가는 차량에 무차별적으로 폭격한 사례이다. (윤정은, 팔루자 보고서 204. 6.)

2) 팔루자 2차 공격 사례 – ‘유령의 분노’ 작전

○ 2004년 11월 8일 팔루자 2차 공격

– 2004년 11월 7일 알라위 이라크 임시정부 총리가 “1월에 예정된 선거를 평화적으로 치르고 국민들이 테러세력의 위협에서 자유롭게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밝힌 다음 날인 2004년 11월 8일 새벽, 이라크 주둔 미군이 이라크 북부 팔루자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

– 이는 재선에 성공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이라크 군사공격 개시 이래 최대 규모인 미군 1만2000명이 동원. 팔루자 점령 작전의 작전명은 ‘유령의 분노’, (문화일보 11월 8일자)

– 미 국방부 관리들은 “총선이 임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팔루자가 저항세력의 거점으로 남아있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며 이번 군사공격의 정당성을 강변.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역시 “길거리를 다니다 머리가 잘려지는 곳이 있다면 그 곳은 결코 자유민주국가라고 말할 수 없다.” 고 주장 (11. 8 연합뉴스)

– 그러나 1차 팔루자 봉쇄 이후 국제여론의 지탄을 받았던 미군 내에서도 팔루자 공세의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음.

– 오랜기간 중동에서 근무한 전 중앙정보국(CIA) 간부 위틀리 브루너는 “이라크 내 저항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수니파가 `새로운 이라크’에 참여토록 해야 한다”며 “무력을 이용한 팔루자 장악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고 지적.

– 워싱턴 국제관계전략연구소의 군사전문가 앤서니 코드맨은 이라크 현황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저항세력이 팔루자에서 격퇴되지 않은 채 안바르주(州)내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 실제로 바그다드 북쪽의 사마라는 주민들의 봉기가 이어지는 역동적 장소로 떠오르고 있고 모술, 라마디 등도 예정된 선거를 앞두고 ‘폭력사태’가 확산하고 있다는 것. (11월 10일 연합뉴스)

○ 저항세력 핵심 빠져나간 6만명 주민에 대한 집중 포화

– 당시 저항세력 지도부는 이미 팔루자를 떠났고, 인구 30만 명의 팔루자 주민 중 정작 떠나지 못하는 노약자를 비롯한 시민들 6만 여명과 순교를 각오한 저항세력, 그리고 집과 가족을 지키려는 팔루자 주민들만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짐.

– 공습 책임자 토머스 메츠 미군 중장은 공격에 앞서 “공격 목표는 저항세력 내 지도부를 생포하거나 사살하는 것이지만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 등의 고위 지도부는 이미 팔루자를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밝힘

– 실제로 미군은 팔루자에서 심각한 저항을 받지 않았고 11월 19일 사실상 팔루자 작전이 끝났음을 선언. 알 자르카위 등 미국이 지목한 저항세력의 핵심을 생포하거나 사살하지는 못했음.

○ 작전 초기 병원 폭격 및 국립병원 접수 – 민간인 사망자 집계 통제

– 11월 26일 카셉 다우드 이라크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군과 이라크 군의 팔루자 작전으로 2천85명 이상이 숨졌으며 이 중 미군 54명도 포함됐다고 밝힘.

– 그러나 민간인 사망자 통계는 집계되지 않음

– 미군은 1차 팔루자 작전 당시의 민간인 피해보도는 저항세력들의 근거없는 선동이라고 일축해온 바 있음. 미군은 작전 초기 팔루자 종합병원 등 민간인 사망 집계 가능한 시설 등을 접수하고 민간인 사망자 통계를 종합적으로 집계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함. 아울러 팔루자 내 다른 병원과 진료소를 공습해 폐쇄시킴

700구 시신 중 여성과 어린이 시신 504구, 화학무기 의혹도 제기됨

팔루자 점령 1개월 반 후, Free Arab Voice 12월 28일자 뉴스에 따르면, 팔루자 종합병원 측 타미르 살리 (Tamir Salih al-‘Ani) 박사가 이번 미군 공격전으로 인해 파괴된 가옥의 폐허로부터 이라크인 700구 시신을 발견했다고 보도. 살리 박사는 700구 시신 중에 여성과 어린이 시신이 504구임을 확인했고. 그 나머지는 성인 남성의 시신들이었다고 밝힘. 덧붙여 시신들이 팔루자 거리 위의 폐허에서 널부러져 있거나, 지붕 위나 정원 같은 곳에서 파헤쳐진 채로 발견되었으며, 어떤 시신들은 미국의 화학무기로 보이는 물질에 의해 탔던 것으로 드러났음. (Free Arab Voice 12월 28일자 뉴스)

바그다드 아부 하니파 사원 공격

– 미군은 지원을 받은 이라크군은 11월 19일 바그다드의 아부 하니파 사원을 습격, 2명이 숨지고 9명이 부상, 40여명이 체포. 공격을 받은 아부 하니파 사원은 사담 후세인 정권 지지세력들과 반미선동에 오랫동안 연루돼 있던 곳으로 알려진 곳. 당시 미군은 사원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일부 미군은 사원 경내에도 들어간 것도 목격됨(AP)

– 아부 하니파 사원의 성직자 셰이크 모아예드 알-아드하미는 이날 “우리 사원이 지난주 잘못된 정보로 인해 공격을 받았다”고 말하고 “이번 탄압은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가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점에서 더욱 괴롭다”며 이슬람 사원이 이라크군과 외국군에 의해 다시 모욕당하는 일이 없도록 보장하라고 요구. 18일 이라크 정부는 폭력을 선동하는 이슬람 성직자들은 테러에 참여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음.

– 시아파 강경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 시아파 최고지도자 그랜드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의 대표인 셰이크 압델 하디 카르발리도 이라크군과 이를 계획한 미군 비난. 이라크 수니파의 최고권위 단체로 1월 30일 총선을 거부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이슬람 학자 위원회(CMS)도 이번 사원 난입은 미군이 계획한 것이라고 비난.

○ 미국, 영국 팔루자 공습에 화학무기 백린(White Phosphorous) 사용

– 최근 미국과 영국은 팔루자 공습 당시 백린을 시용했다고 시인.

– 백린은 공기에 노출될 경우 산화되어 피부와 뼈를 부식시키는 강력한 화학물질로 인체에 닿을 경우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 미 정부는 백린이 화학무기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최근 기밀 해제된 국방부 문서에 따르면 10년 전, 미 정부가 오히려 백린을 화학무기로 규정하고 사담 후세인이 쿠르드 족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며 비난한 사례가 있음. (이탈리아 TV방송 RAI 2005. 11.8 등 외신 종합)

○ 작전 중 부상 포로 사살 파문

– 미군의 팔루자 작전을 종군 취재한 미 NBC방송 카메라 기자는 13일 팔루자의 한 사원에서 해병 1사단 1연대 3대대의 한 병사가 부상을 입은 채 비무장 상태로 누워 있는 포로를 조준 사살하는 장면을 촬영, 공개

– 이 장면을 찍은 케빈 사이츠 기자는 ꡒ미군이 이 사원 안에 있던 또 다른 저항세력 부상 포로 3명도 사살한 것으로 보인다ꡓ고 증언.

– 사건 조사를 맡은 밥 밀러 중령은 교전수칙에 따르면 적이 적대적 의도나 행위를 보일 경우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정당방위로 결론

– 루이즈 아버 유엔인권고등판무관도 미군이 제네바 협약을 위반 한 것은 아닌지 정밀 조사할 필요성을 제기

○ 음식과 식수공급의 차단 – 비인도적 작전

– 장 지글레르(전 스위스 사회학 교수이며 현재는 유엔 식량권 특별 보고관)는, “미영점령군이 특정 도시 공격전을 수행할 때,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강제이주시키려고 음식과 식수 공급을 아예 차단시켜 버렸다”고 비난

– 그는 2005년 4월 31일 유엔 인권위 연례회의에서 “이라크에서는 지금 전체의 침묵아래 하나의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주도의 점령군은 팔루자 등지를 비롯해 반미의 저항이 거센 지역에는 식량반입을 가로막고 식수원을 파괴하는 등의 행위를 전술의 일환으로 활용했다”며 “이는 명백한 제네바 협정 위반”이라고 비판.

3) 기타 비인도적 작전 사례 : 북서부 수니 지역 공격

○ 시리아 국경 북서부 지역에 대한 대규모 군사작전- 마타도어 작전

– 2005년 5월 7일, 이라크 주둔 미 전투여단과 제2해병사단 등 1000여 병력은 전투기와 무장 헬기를 동원해 시리아 국경지대인 카임 지역을 공격한 뒤 8일에는 인근 오베이디 지역으로 공격을 확대

– ‘마타도어 작전(oeration Matador)’이라고 알려진 이 공격은 2004년 11월 중부지역 팔루자를 공격한 이래 최대 규모로 14일까지 7일간 지속되었음. 미군측은 미 해병 9명이 숨지고 40명이 부상당했으며 120여명의 저항세력을 사살했다고 발표. 또한 ‘정보가치’가 있는 39명을 생포하는 등 저항세력의 거점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AP)

– 미군은 3일만에 100여명의 저항군을 사살했다고 선전했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민간인 희생자를 불러왔을 거라는 관측이 일제히 보도. 카임 마을 주민들은 “집집마다 폭탄이 떨어져 마을이 쑥대밭”이라고 증언.( SBS뉴스, 동아일보)

– 13일 AP 통신은 “대부분이 사막지대에 해당하는 이곳 마을들의 거리가 폭격으로 부서졌으며 하늘에는 미군 전투기가 날고 지상에는 1000명 이상의 병력이 저항세력을 추적하고 있었다”고 보도. 시리아 국경 인근의 여러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미군이 마을을 봉쇄했다고 전화를 통해 알려옴.

– 14일 알자지라 인터넷판은 “미군의 전투기와 헬기가 도시를 폭격하여 가옥을 포함한 건물들을 파괴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수천 명의 거주민들이 살 곳을 잃고 피난했다”고 보도. 알자지라는 또 “카임 시내의 이슬람 사원 건물도 미군의 폭격을 당했고. 시민들은 파괴된 사원의 잔해 속에 파묻혀 있는 코란을 꺼내면서 분노를 표했다”고 보도.

– 알자지라는 또 “시내의 병원도 천장이 부서졌으며 의사들은 주택 한 채에 진또 시내의 병원도 천장이 부서졌으며 의사들은 주택 한 채에 진료시설을 급조해서 피를 흘리는 환자들을 진료하는 실정”이라고 보도

– AP통신은 “알 안바르주의 몇몇 지역 주민들은 미군의 공격 이후로 전기와 식수가 끊긴 채로 고통 받았다고 말했으나 미군측은 이를 부인했다“고 보도.

– “미군의 공중 폭격을 당한 사다흐 마을의 지도자 무클레프 아베드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사막으로 피했으나 의료 서비스가 없어서 부상자가 생겨도 호송하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AP가 보도

– 이라크 적신월회에서는 알 안바르(Al Anbar )에 사는 6000명의 가족들이 생활터전을 잃었으며 보통 화씨 110도(섭씨 40도)를 능가하는 살인적 고열에 고통받고 있음을 발표. 이 단체는 며칠 동안 5개의 구조대를 급파했고 의료진은 잡석 속에 파묻힌 시신들에게 옮겨진 콜레라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지만, 의료지원과 깨끗한 물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발표. 페르도스 압바디(Ferdous Abadi), 적신월회 대변인은 “현재의 상황은 한 마디로 비극”이라고 지적.

○ 탈-아파르 작전

– 미육군 대령인 빌리 J. 버크너는 탈 아파르시가 저항군들의 주요 거점이라고 선전한 뒤, 2005년 9월 2일부터 외부와 완전히 격리시킨 채, 탈 아파르에 집중 공격.

– 탈 아파르는 바그다드로부터 418km 정도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시민들 90%는 투르크인. 이 중 70%는 수니파 이슬람 교도. 미국과 이라크 정부 측은 이 곳을 시리아로부터 외국의 테러리스트들이 들어오는 지역이라고 말해왔음.

– 이라크 정부군 6천명과 미군 4천명을 투입했던 탈 아파르 지역 공격에 대해 이라크 정부군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 사둔 알-둘라이미 이라크 국방장관은 9월 10일 141명의 저항군을 사살했고 197명을 체포했다고 발표.

– 미군은 9일 이 지역에서 8일 동안 작전을 벌여 약 215명의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했다고 밝힘. 한 군 소식통은 알-이라키야TV와의 인터뷰에서 체포된 이들 대부분이 “외국인들’로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 예멘, 수단 및 요르단 출신자들이라고 언급.

– 한편, 알 자지라는 “수니인들을 집중대상으로 삼아 청소년이든 고령의 수니인 학자들이든 개의치 않고 체포하거나 사살했고 “갈 곳을 잃어 텐트에서 지내는 시민들까지도 역시 체포했으며, 이 과정에서 탈 아파르 지역의 대부분의 집들이 파괴되어 난민 5000명 이상이 발생했다”고 보도 (알 자지라 2005년 9월 9일부터 11일까지 기사 요약)

– <이슬람 온라인>은 “미군과 이라크 정부군의 탈 아파르 지역에 대한 공격 때문에 모든 것이 파괴되어 피난을 떠났다 돌아온 주민들이 자신의 집을 찾을 수도 없었고 마을은 유령 도시가 되어 있었다”고 보도. 피난을 떠났다 돌아온 주민인 야신 알 타리파리는 “10km 이상을 걸어 다녔지만 우리 집을 찾을 수 없었다”며 폐허가 된 도시 상황을 전했다고 보도.

– 또 사회 기반 시설에 대한 공격의 영향으로 단전, 단수가 계속 되고 있어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그리고 공격을 피해 마을 떠났던 피난민들 가운데 일부는 다시 난민 캠프로 돌아갈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이슬람 온라인’이 보도

– 공격 기간 동안 미군은 관영 알 이라키야를 제외한 모든 기자의 현지 취재를 금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공격을 시작하면서 17명의 기자를 체포, 구금하고, 그들의 카메라를 압수. 따라서 탈 아파르에 대한 공격과 관련해서 발표된 사진은 미군이 제공한 것.

○ 라마디, 강철주먹 작전

– 미군은 2005년 10월 2일부터 외국인 테러리스트들이 안바르주의 도시들을 근거로 활동하고 있다며 라마디, 카임 등에서 ‘강철주먹’이라는 저항세력 소탕작전 개시(한겨레 2005-10-18)

– 이라크 헌법 국민투표가 치러진 2005년 10월 15일 미군은 서부 안바르주의 주도인 라마디 근처 마을 두 곳에서 전투기와 헬기를 동원한 미사일 공습을 벌여 “무장세력 70여명을 사살했다”고 16일 발표.

– 그러나 목격자들과 의료진들은 <에이피통신> 등에 사망자중 최소 39명은 민간인이라고 진술. 병원으로 실려온 부상자들 가운데는 여성과 어린이도 많다고 전함

– 한편, 미군이 폭탄을 땅에 묻고 있던 저항세력을 사살했다고 밝힌 데 대해 이 지역 부족 지도자인 치아드 사드는 <가디언>에 “숨진 사람들은 전날 미군 5명이 숨진 현장에서 잔해를 구경하거나 쇠붙이를 주워가려던 이들”이라고 인터뷰.

– 수니파가 밀집 거주하는 알-안바르주의 주도(州都)인 라마디는 미국의 보호하에 15일 치러진 헌법안 국민투표에서 99%에 가까운 반대표가 나올 만큼 반미(反美) 정서가 강한 지역. 이 때문에 민간인을 포함한 많은 인명피해를 야기한 미군의 이번 공격은 헌법안에 반대한 수니파 주민들에 대한 보복 성격을 띤게 아니냐는 논란

비인도적 군사작전과 이라크 정치일정

– 미군은 이라크 국민투표와 같은 중요한 정치적 일정을 앞두고 있을 때마다 수니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들에 집중공격을 퍼붓는 대규모 공격전을 되풀이.

– 작년 11월에도 1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보이콧을 주장하는 수니 중부지역, 특히 팔루자 등지를 초토화시키는데 주력, 마찬가지로 올 10월 헌법찬반투표일를 앞두고도 탈 아파르를 비롯 이라크 서북부 지역을 봉쇄시켜, 대규모 공격전을 펼치므로서 수천명의 난민을 발생시킴

– 한 이라크인 블로그(http://riverbendblog.blogspot.com.)에서는 “수니파가 더 이상 투표하지 못하게끔 국민투표에 앞서 수니파 지역이 공격목표가 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아는 일이며, 자신의 마을이 파괴되고 가족들이 적십자 텐트에 수용된다고 하면 그 누가 헌법 같은 것에 신경을 쓸 것인가”라는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4) 아프간에서의 사례

○ 탈레반 사체 모독 – 이슬람 교리 모독하며 선무 방송

– 2005년 10월 1일 아프가니스탄 샤왈리코트 지역 남부 곤바즈 마을 근처에서 미군 병사들이 탈레반군으로 추정되는 아프가니스탄 병사 사체 2구를 메카가 있는 방향인 서쪽을 향해 놓은 뒤 불태운 사건으로 제네바 협약 위반이라는 비난 확산.

– 관련 장면은 미군 173 에어본 여단에 소속돼 취재 중인 프리랜서 기자인 스티븐 듀폰트가 촬영하여 호주 SBS TV에 방영.

– 제네바 협약에 따르면 사체는 명예롭게 매장되어야 하며, 가능하면 죽은 자가 속한 종교의 의례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음. 또 ‘급박한 위생상의 이유나 죽은 자의 종교에 따른 동기’가 아니면 불태워서는 안된다고 밝히고 있음.

– 이슬람 교리에 따르면 시신은 깨끗이 씻기고 기도한 뒤, 흰 천에 싸서 숨진 지 24시간 이내에 땅에 묻어야 하며 불태워서는 안됨. 시체를 태우거나 메카 방향으로 사체의 머리를 향하게 하는 것은 이슬람 교리에 대한 중대한 모독으로 알려져 있음

– 한편, 미군 심리전부대는 그 뒤 곤바즈 마을이 있는 언덕에 확성기를 대고 현지어로 이 사건을 모욕적으로 선전했다고 <에이피> 통신이 보도. AP는 “미군 병사들이 위생상의 이유로 시신을 태우는 것이라고 변명했으나 자신들의 행위가 이슬람인을 모독하는 것인 줄 확실히 알고 있었으며, 곤바즈 마을에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텔레반 군을 자극해 언덕 밑으로 끌어내기 위한 심리전의 일환으로 행해진 것 같다”고 보도.

– 남부 칸다하르시의 또다른 율법학자 샴수딘은 “만약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슬람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반미 봉기가 일어날 것”이라며 “그런 범죄를 참을 수 있는 무슬림은 없다”고 강조.

– 이와 관련,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대변인은 “우리는 적이든 친구든 사체에 대한 모독행위를 강력히 비판한다”고 밝히고 아프가니스탄 국방부가 이 사건에 대해 자체 조사를 시작했다고 발표.

– 아프가니스탄 독립인권위원회 위원 파힘 하킴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연합군이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는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시점이어서 이번 사건은 더욱 충격적이다”며 “처음에는 그들이 우리를 해방시키러 온 것으로 생각해 모두가 그들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적 권위를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아주 많이 좌우된다”고 지적. 하킴에 따르면 지금까지 연합군의 인권 침해에 대한 제소가 100건이 넘으며, 이중 대부분은 가족 친지들은 물론 아프가니스탄 당국에도 알리지 않은 채 아프가니스탄인을 연행해 간 경우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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