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가 ‘북한 인권’에 그토록 관심 갖는 이유 (김연철, 2006. 5. 10)

<출처: 프레시안>

인권’문제 통해 美보수계층 결집

외교정책에서 인권 문제는 오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서의 의미나,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인권문제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외교정책에서 ‘인권문제’의 우선순위는 상대국과의 관계, 국제사회의 지지, 다른 현안문제와의 관계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부시 행정부가 ‘인권’문제를 외교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앞세우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부시 대통령은 작년 11월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교회에 갔다. ‘중국의 기독교인에게 신의 가호를’이라는 문구를 방명록에 쓴 부시 대통령은 중국의 종교자유를 정상회담에서 거론했다. 최근 미중 정상회담에서 ‘파룬궁’시위자의 백안관내 소란을 중국측이 주목하는 이유도 미국의 대중국 인권외교와 이 ‘해프닝’이 연결되어 잇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미국내 목소리도 높다. 레프코위치 인권담당 특사는 연일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 인권유린을 고발하고 있고, 최근에는 탈북자의 미국 수용이 현실화됐다.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에서 ‘인권 이슈’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 직접적인 이유는 올해 11월에 중간선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내정치와 인권 이슈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우파의 나라와 신정(神政)정치

최근 미국 정치는 분열과 양극화로 특징 지워진다. 중도는 없다. 이민법이나 이라크 전쟁과 같은 핵심쟁점들은 중도의 선택을 어렵게 하고 있다. 결국 미국 선거에서 ‘중도’를 잡는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 때문이다. 현대 미국정치를 가장 적절하게 요약한 단어는 아마도 ‘중도에서 벗어나기'(Off-Center)일 것이다. 중간층 유권자를 잡는 전략보다는 핵심지지층을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것이 선거의 성패가 되고 있다. 왜 그런가? 필자가 지난 4월 미국의 주요 지방 도시들을 방문하면서 인상 깊게 본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미국정치의 지역화 현상이다. 1980년 레이건 시대부터 구조화되기 시작한 공화당의 ‘남부 혁명’은 이제 정착되었다. 남부에서 공화당은 ‘말뚝만 박아도 당선’될 정도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텍사스를 중심으로 하는 남부는 미국 보수정치의 보루로 교회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보수주의’의 핵심 근거지다.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동서 해안지역’과 비교해 볼 때, 심리적, 정치적, 정책적 양극화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둘째는 낮은 투표율이다. 투표율이 낮기 때문에, 그만큼 핵심 지지층의 동원이 당선에 결정적이다. 2004년 대선의 60%에 달하는 투표율은 미국 선거역사에서 이례적이다. 1996년 대선 투표율은 49%였고, 2000년은 51%에 불과했다. 특히 대통령 선거가 없는 해에 실시되는 중간선거 투표율은 통상적으로 30%대로 떨어진다. 카운티나 시 수준으로 내려오면, 투표율은 더욱 낮아진다. 4월초 방문한 텍사스 휴스턴의 해리스 카운티(Harris County)의 중간선거 예비선거 투표율은 7%에 불과했다. 카운티나 시의 주요선거들의 투표율은 대부분 10% 미만이었다. 전국적 선거에서의 30%의 투표율, 지역정치에서의 10% 미만인 투표율, 대의제 민주주의의 존재 의미를 다시 한번 묻게 한다. LA에서 만난 미국 녹색당의 간부는 미국의 투표율이 세계 153위라고 개탄하면서, 아프리카의 정치 후진국과 비슷하다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인권 통해 사회적 보수계층 결집

어찌 되었건 구조적인 낮은 투표율 상황에서 ‘보수적 근거지의 동원 전략’은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효과를 본 바 있다. 아마도 11월 중간선거에 임하는 공화당의 선거전략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적 유권자들을 어떻게 동원할 것인가? 여기에 부시 행정부가 인권문제를 강조하는 배경이 있다. 현대 미국 정치를 읽는 키워드는 ‘가치 혁명’이다. 2004년 미국 대선이 끝났을 때, 후보 선택 기준 1위에 오른 것은 바로 도덕적 가치(22%)였다. 그 뒤를 이어 경제와 일자리(20%), 테러리즘(19%), 이라크(15%)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도덕적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유권자의 80%가 부시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도덕적 가치 혁명은 바로 미국의 교회가 주도하고 있다. 2004년 대선 출구조사에서 1주일에 한번 이상 교회에 가는 사람의 68%가 부시 대통령을 지지했다고 한다. 최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미국의 신정정치'(American Theocracy)라는 책을 지은 케빈 필립스(Kevin Phillips)는 ‘링컨의 공화당이 신정정치의 당이 되어 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필자가 만난 다수의 공화당원들도 현재 공화당이 보여주고 있는 ‘정치의 종교화’에 낯설어 하면서, 우려했다.

교회가 주도하는 이른바 ‘사회적 보수주의’는 미국 일상 정치의 중요한 풍경이다. 공공교육기관에서 진화론 대신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는 종교계의 요구는 과학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역정치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다. 올해 3월 조지아주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공립학교에서 성서를 선택과목으로 교과서로 채택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낙태를 둘러싼 논란이나 동성애자 결혼 문제 등은 이미 선거과정에서 보수층을 결집하는 가장 강력한 대중선전의 근거임이 확인된 바 있다.

결국 미국 선거에서 핵심 이슈는 외교나 경제보다 사회적 이슈들이다. 외교정책에서 ‘인권’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것이 사회적 보수층을 동원하고 결집하는 유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보수와 보수의 전쟁

미국을 우파의 나라(The Right Nation)라고 부른다. 하지만 전통적 우파와 종교적 우파 간의 간극은 매우 크고, 최근 들어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필자가 미국의 중부도시인 캔자스시티를 방문했을 때, 이 지역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갈등이었다. 2004년 대선에서도 쟁점이 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미국내 논쟁은 기업의 윤리와 교회의 윤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례다.

캔자스시티에는 미국의 유명한 생명공학 연구소인 스토워스 의학연구소(Stowers Institute for Medical Research)가 있다. 미주리주(캔자스시티는 캔자스주와 미주리주의 경계도시)는 미국의 다른 주들처럼 종교계의 압력으로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법안을 채택하고 있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바로 스토워스 의학연구소가 “만약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법안을 개정하지 않으면, 이 연구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선언을 하면서 비롯되었다. 필자가 방문한 캔자스시티의 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이 연구소가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성공회의소가 중심이 돼서, 줄기세포 연구반대 법안을 철회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난처하게 된 것은 이 지역의 공화당 상원의원인 짐 탤런트(Jim Talent)다. 그는 이 지역의 종교적 우파의 지지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상공회의소가 다수 주민의 지지를 근거로 법안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상원의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짐 탤런트를 지지해 왔던 이 지역의 종교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올 11월 중간선거와 동시에 치러질 줄기세포 연구 허용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의 결과는 짐 탤런트의 운명을 동시에 결정할 것이다.

이렇듯 기업 활동의 자유를 주장하는 전통적인 보수진영과 종교적인 보수진영 간의 갈등은 심화되고 있고, 아마도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논쟁이 상징적 사례가 될 것이다. 낙태나 동성애자 결혼문제가 민주당에 불리한 사회적 이슈였다면, 줄기세포 연구 문제는 공화당에 불리한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안보정책을 둘러싼 보수진영 내의 논쟁도 심화되고 있다. 바로 안보와 경제의 관계다. 필자가 방문했던 텍사스 휴스턴 상공회의소에서의 세미나는 인상적이었다. 국무부 관계자는 국경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비자정책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이 지역의 많은 기업인들은 현재 미국의 국토안보정책에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이 지역의 관광협회 회장은 엄격한 비자정책으로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다고 아우성이고, 어떤 기업인은 자기 회사에 투자를 약속한 인도의 투자자가 결국 비자를 받지 못해 사업 성사가 무산되었다고 분통을 터뜨렸으며, 중국에 공장을 갖고 있는 사장은 중국의 미혼 여직원들이 미국 입국장에서의 인격모독으로 미국 방문을 꺼려, 직원교육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최근 이민법을 둘러싼 비즈니스 업계와 안보관계 당국 간의 갈등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 기업의 입장에서 저임금 구조를 가능케 했던 불법체류자를 추방한다면, 심각한 경영타격을 입게 된다.

외교정책과 관련, 최근 출판된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책, ‘기로에 선 미국(America at the Crossroads)’이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내 주요 언론은 이 책을 ‘보수파들 간의 전쟁’이라고 평한다. ‘역사의 종언’의 저자이면서, 네오콘 핵심 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후쿠야마의 네오콘 비판은 주목할 만하다. 이 책에서 후쿠야마는 네오콘의 핵심 개념인 ‘예방전쟁’과 ‘민주정부 수립론’의 무모함, 준비 없음, 그리고 근거 없는 낙관주의의 비극적 결과를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의 결론에서 그는 “이라크 정책의 실패로 네오콘에 대한 불신이 증폭될 것이며, 외교정책에서 현실주의의 의미가 재평가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미국은 언제쯤 현실주의로 돌아올 것인가?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수층의 결집 전략은 11월까지 지속될 것이다. 중국과 북한에 대한 인권 공세도 보다 강력하게 전개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극단적으로 외교정책을 국내정치로 활용하고 있다. 동북아의 역학구도도, 한미동맹의 미래도, 우파 정치인들은 개의치 않는다. 미국이 한미동맹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미국 대통령의 특사가 개성공단에 대해 사실이 아닌 주장을 한 번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할 수 있겠는가? 후쿠야마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하루빨리 현실주의로 돌아와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지만, 당분간 국내정치적 필요 때문에 도덕외교는 지속될 것이다.

그렇지만 냉정히 평가해보면, 도덕외교의 현실은 그렇게 밝지 못하다. 남미의 좌파 도미노 현상에 대해 미국에서 만난 남미 전문가는 ‘정책이 없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다시금 ‘신냉전’이라고 부를 만큼 악화되고 있고, 중국과의 관계 역시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이라크 수렁은 점점 깊어지고,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은 그야말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모험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국내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전통적 보수인 미국의 기업인들은 종교적 우파가 주도하는 현재의 공화당을 낯설어 하고 있으며, 양식 있는 종교인들도 ‘정치의 종교화’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하고 있다.

동북아 정책은 어떤가? 북핵문제는 사라지고 인권문제만 요란하다. 그렇지만 인권문제는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고, 북핵문제는 당면한 현실이다. 한반도 정세의 교착은 미국이 국내정치용 도덕외교에서 탈피하여 현실주의 외교노선으로 복귀할 때 풀릴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현실주의로 돌아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의 합리적인 판단이 중요하다. 북한은 6자회담에 무조건 복귀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 내의 현실주의자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길 것이다. 북한이 핵문제 해결에 대한 적극적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쉽게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인권문제의 미로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김연철/고려대 아세아 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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