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심판이 두렵다면 유권자의 뜻 제대로 반영하면 될 것



일부 국회의원들이 한-칠레 FTA 동의안·파병동의안등 국가중대사에 대한 표결을 무기명으로 추진하려 하고 있다. FTA 처리에 대해서는 이미 70여명의 의원들이 무기명 표결을 요구하는 서명을 국회의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파병동의안 역시 무기명 표결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참으로 낯부끄러운 일이다. 국민 10%에 육박하는 농민생존권이 직결된 사안을 처리하면서, 국가안전과 3000여 젊은이들의 생명이 달린 파병안을 처리하면서 이를 이름조차 기록하지 않고 익명으로 처리하겠다는 발상이 한심스럽다. 정상적인 국회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을 대표해야 할 국회의원이 자신의 표결결과를 국민에게 알리지 않겠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대의제에 대한 전면부정이다.

무기명표결을 추진하는 국회 일각에서는 부당한 압력 앞에서 의원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강변한다. 국민심판이 두려워 익명으로 의정활동할 거라면 금배지는 왜 달았나? 금뱃지는 자기 생각을 맘대로 떠들라고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여론을 수렴하고 유권자의 뜻을 대변하라고 유권자가 준 것이다. 따라서 국민대표자로서 소신대로 표결했다면 이를 유권자에게 공개하여 그 소신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들은 전자투표에 의한 기명(기록)표결을 의무화하고 있는 국회법 112조 중 예외조항(2항)을 내세우고 있다. "중요한 안건으로서 의장의 제의 또는 의원의 동의로 본회의의 의결이 있거나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기명·전자·호칭 또는 무기명투표로 표결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 포괄적인 예외조항 자체가 112조 전체의 취지를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 동안 문제가 되어왔었다. 더구나 이러한 법의 독소조항을 악용해 유권자의 심판을 면하기 위한 무책임한 의정활동의 방편으로 사용하는 것은 합법·불법을 떠나 위헌적인 발상이며 반의회적 행위이다. 국민은 이런 비열한 의정활동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국회의장은 무기명표결을 요구하는 파렴치한 제안에 동조해서는 안된다. 만약 국회의장이 나서서 무기명 표결을 시도한다면 국회의 존립근거를 스스로 부정한 최악의 국회의장으로 역사에 두고두고 오명을 남길 것이다. 국회의장은 무기명 표결 제안을 거부하고 국회의장에게 무기명 표결을 요구한 파렴치한 국회의원들의 명단부터 공개해야 할 것이다.

한편, 파병지 키르쿠크의 안전문제가 심각한 쟁점으로 부각되는 가운데, 사실상 백지위임장에 가까운 부실한 정부 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온지 한달 반이 지나도록 제대로 문제제기조차 않던 국방위가 본회의 당일인 9일 오전 10시 첫 회의를 소집하여 이를 오후 본회의에 이를 상정하겠다는 것도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는 발상이다. 국방위는 지난 1차 파병 때도 정부 첫 심의 2시간만에 아무 비판없이 파병안을 처리하여 지탄의 대상인 된 바 있다. 게다가 이번 경우는 날치기 등을 방지하기 위해 상임위 통과후 24시간을 경과하도록 규정한 국회법의 기본정신을 무시하는 변칙적 행위이다. 물론, 의정직권· 3당 대표 합의 등 예외사유를 변칙적으로 적용하므로써써 원인무효 사태를 회피할 수는 있겠으나 이는 파병안 같은 국가중대사를 다룸에 있어 용납될 수 없는 반유권자적 행동이다. 이러한 일이 강행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유권자의 심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의정감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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