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10-02-10   3853

결사의 자유와 민노당 압수수색

결사의 자유와
민노당 압수수색

박경신 / 고려대 교수·법학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국가가 특정 개인을 처벌하려면 재판이라는 절차를 거쳐 유죄를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재판 자체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그의 신병을 확보하거나 그의 사생활을 캐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죄를 저지른 사람은 도주하거나 증거를 은폐할 동기를 가진다.

이 딜레마를 풀기 위해 대부분 국가에서는 체포, 구속, 압수수색 등 재판 전 강제처분을 위해 유죄 입증보다 수위는 낮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개연성’의 입증을 요구한다. 즉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 개연성, 압수수색 대상물이 그 범죄와 관련이 있을 개연성 등의 입증이다. 그리고 그 입증이 이루어졌는지는 사법부가 판단하도록 하고 있으며 그 판단이 바로 영장이다.


너무도 쉬운 법원의 영장발부

지난 주말 경찰이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의 민주노동당 가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민노당의 KT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을 탓할 일이 아니라 영장을 발부해준 법원을 탓할 일이다.

법원은 최근 1심에서 무죄를 받은 광우병 보도 사건에서도 MBC의 촬영 원본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당시 죄목이 ‘허위에 의한 명예훼손’이었는데, 허위보도됐다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이라는 객관적 사실과 보도내용이 이미 밝혀진 상황에서 촬영 원본은 전혀 불필요한 것이며 영장은 기각됐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수사 자체의 타당성을 고려했다면 영장은 기각됐어야 한다. 경찰은 정치활동금지 조항 위반 여부를 조사하려 한다고 했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가 익명으로 표현할 자유를 포함하듯 결사의 자유는 비밀결사의 자유도 포함한다. 즉 모든 사람은 익명으로 단체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 단체 가입을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면 결사의 자유는 위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장발부 기준 미국의 50년대만도 못한가

1950년대 말 인종차별정책을 고수하려는 미국 앨라배마 주정부가 소수민족권익보호단체인 ‘NAACP’를 탄압하기 위해 단체의 회원 명부를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명령을 주법원에서 얻어냈지만 연방대법원은 위헌 판정을 내렸다. 단체 가입 자체가 범죄시될 수 없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공개를 강제할 특별한 공익이 존재하지 않는 한 결사의 자유는 보호돼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앨라배마 주정부는 NAACP 활동의 위법성을 문제 삼으려 했지만 대법원은 설득력이 없다고 했다.

이번 경찰 조사는 민노당이 저지른 별도의 범죄 수사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민노당 가입 자체를 범죄시한 것이기 때문에 결사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며 영장은 기각됐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법부가 수사 자체의 타당성을 고려할 정도로 압수수색영장을 엄격히 심사하지 않는 이유는 구조적인 데에 있다. 체포나 구속은 범죄를 저질렀을 개연성을 요구하지만 압수수색에 대해서는 ‘범죄수사에의 필요성’만을 요구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체포·구속의 대인적 효력과 압수수색의 대물적 효력을 분리하며 후자는 심각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지만, 일기장과 e메일이 공개되는 것이 어떻게 대물적 효력인가. 형사소송법의 개정이 시급하다.

문제는 형사소송법

단체 가입은 그 단체의 입장에 동조하는 표현 행위다. 표현의 자유에 익명으로 말할 권리가 포함된다면 곧 단체 가입 여부가 공개되지 않을 자유도 포함된다. 단순히 단체 가입 여부를 확인해 가입자들의 결사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압수수색영장은 그 자체가 불법적이다.

마지막으로, 눈앞에서 불법적 영장이 발부됐는데 이를 몸으로밖에 막을 수 없는 야만적 상황도 시정돼야 한다. 즉 압수수색 적부심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 이 글은 2월 8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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