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150]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시민정치시평 150]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누구를 위한 것인가? 

: 헌법 위반 소지 높은 개정안

 

허진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변호사)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2012년 1월 21일 초‧중등교육법의 개정안에 대해 입법 예고하였는데 그 주된 내용은 대통령령으로 규정되어 있는 교과용 도서에 관한 사항 중 중요 사항을 법률에 직접 규정하고, 교과용 도서의 검정‧인정 합격도서에 대한 행정제재 처분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교과용 도서의 범위, 저작, 검정, 인정, 발행, 공급, 선정 등에 대한 주요 내용을 직접 규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으로 위임하여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규정하여 왔는데, 이는 법률유보의 원칙이나 위임입법의 한계를 위반한다는 그 동안의 논의를 고려할 때 교과용 도서에 관한 중요 사항을 법률로 규정하는 개정안은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교과용 도서의 검‧인정 제도와 관련된 신설 조항의 내용들, 첫째, 교과용 도서의 검‧인정 심의 단계에서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의 감수권, 둘째, 검‧인정 합격 도서에 대한 광범위한 교육과학부장관의 수정 명령권, 셋째, 검‧인정 합격을 받은 자가 교육과학부장관의 수정 명령에 응하지 아니할 경우 교육과학부장관은 검‧인정 합격을 취소하거나 1년의 범위 안에서 합격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은 교육제도에 대한 헌법의 기본 이념인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소지가 농후한 것으로 철회되어야할 것이다.

 

민주주의 기본 이념은 모든 공동체구성원의 존엄성에서 도출되는 인격적 평등과 그들의 자유로운 발현이라 할 것이며, 민주주의는 가치상대주의가 제대로 보장되어야만 만개할 수 있다. 또한 교육을 받을 권리는 교육을 통해 모든 공동체구성원이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자신의 인격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게 하며,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정착시킬 수 있는 소양을 갖추는데 그 의의를 두고 있다.

 

한편 헌법은 제31조 제4항에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교육의 자주성은 교육내용과 교육기구는 교육자나 교육에 관련된 이해관계인들에 의하여 자주적으로 결정되어야하고, 다만 공교육제도에서의 합리적이고 필요한 범위를 넘어서는 국가의 감독으로부터 독립되어야함을 의미한다. 교육의 전문성은 교육정책 및 그 집행은 교육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져야함을 의미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교육내용, 교사 및 교육조직이나 교육제도가 국가나 정치적 세력으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아니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국가가 교과서의 저작이나 사용에 관여하는 검‧인정 제도는 민주주의의 가치상대성, 학생들의 교육을 받을 권리, 원칙적으로 자녀의 교육권은 부모에게 있으며 국가는 2차적인 교육의 주체에 불과한 점, 교과용 도서의 저자가 갖는 학문의 자유, 교육과정에서의 사상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내용과 절차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따라 현행법령은 교과서 검‧인정 제도와 관련하여 검‧인정기준에 따라 교육과정의 이해관계인들로 구성되는 교과용도서심의회가 이를 심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감수의 사전적 의미가 저술이나 편찬하는 일을 지도하고 감독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검‧인정 심의 단계에서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의 감수권과 관련된 내용은 교과용도서심의회의 독립된 심사권을 침해할 수 있으며, 감수의 대상, 범위, 절차에 대한 주요 내용을 규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어 명확성의 원칙이나 위임입법의 한계를 위반하는 것 일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초‧중등교육의 평균적 수준 유지나 교육적 측면에서의 명백한 오류 방지라는 국가적 감독권의 한계를 넘어서 검‧인정 신청 도서에 대한 사전 검열의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아 교육의 자주성, 정치적 중립성에 부합할 수 없는 내용이라 할 것이다.

 

또한 검‧인정 합격 도서에 대한 광범위한 교육기술과학부장관의 수정 명령의 범위에는 검‧인정 기준과 관련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어,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의 개정안 입법 예고 후에 선고된 대법원의 판결과 상반되는 내용으로 철회되어야 할 것이다. 대법원은 표현상의 잘못, 기술적 사항, 객관적 오류의 수정을 넘어서서 이미 검정을 거친 교과서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수정명령은 검정제도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하여 교육기술과학부장관의 수정 명령의 대상이나 범위의 한계를 명확히 하였다.

 

그리고 검‧인정 심의 과정이나 검‧인정 합격 후 광범위한 국가 감독권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행정 제재 처분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잠탈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어 헌법에 위반된다 할 것이다.

 

결국 문제되고 있는 초‧중등교육법의 개정안의 내용들은 교과용 도서의 검‧인정 제도에 있어 교원, 학부모를 비롯한 이해관계인이나 교육전문가의 절차적 참여를 통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교과용도서심의회의 권한을 상대적으로 축소하고 국가의 감독권한을 확대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될 소지가 높다. 더구나 교과용 도서의 검‧인정 제도에 있어 국가의 감독권은 초‧중등교육의 평균적 수준 유지나 교육적 측면에서의 명백한 오류 방지 등으로 제한되어 있음을 감안할 때 정부입법으로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는 것은 절차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교육기술과학부장관은 개정안을 철회하고, 국회가 교육법의 이해관계인들의 의사가 반영된 새로운 개정안을 발의하기를 기대한다. 

 

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