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266] 세월호, 무능이 체계적으로 덮이고 있다

 

[시민정치시평 266] 

 

세월호, 무능이 체계적으로 덮이고 있다

: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거짓을 버리는 싸움

 

이양수 한양대학교 강사, 참여사회연구소 <시민과 세계> 편집주간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났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희생자들 말고는 외견상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책임지고,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 해결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어김없이 지켜지지 않았다. 국회는 수사권 부여를 놓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싸움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건 희생자들의 가족들이다. 오직 진상과 책임 규명이라는 한 가닥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분들이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도 냉정하고 차갑다. 책임을 지겠다고 한 사람이 책임을 가리겠다는 이 해프닝 같은 현실. 거듭되는 대책에도 불구하고 계속 발생하는 안전사고. 단순히 사람의 실수로 돌리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제도의 작동 불능 상황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이 어디 희생자뿐이랴.

 

분명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일상을 바꾸었다. 나라의 기본이라고 할 신뢰가 사라지고, 온갖 불신과 맹신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을 뿐이다. 서로의 일상이 기대될 때 신뢰가 생기고, 그때에야 비로소 서로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대가 사라지면 자신의 편협한 관점에서 세상을 받아들이려는 태도로 돌변한다. 유병언의 죽음을 둘러싼 온갖 의혹은 신뢰가 무너진 사회 공권력의 민낯인 것이다. 비판과 견제를 해야 할 언론이 앞장서 선정적인 보도로 진실을 현혹하는 것도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는 시민의 행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사실 불행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이다. 이른바 진상 규명은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그 잘잘못을 가리는 첫 번째 단계이다. 유가족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간절히 원하는 것도 이런 진상 규명의 길을 열어놓자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의혹이 생기면 한 점 의심이 없도록 일관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유가족의 입장에서 의혹이 일 만한 것을 낱낱이 가려내는 일이 진상 규명의 본령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 사건의 전모를 알지 못한다. 단지 무능력의 탓일까. 아니다. 무능력 이상의 것, 단순히 진상 규명에 머물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놓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대응은 실망 수준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의 목적은 진상 규명이건만, 답보 상태에 있다. 천만인 서명에 돌입한 것도 이 목적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도 일부 국회의원의 발언과 시각은 실망 수준을 넘어 불순한 의도까지 느끼게 한다. 핵심 쟁점인 ‘수사권과 공소권’, ‘특검 추천권’도 마찬가지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정반대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직접 수사권을 부여하자는 야당의 입장에 대해 ‘사법 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여당의 현란한 수사적 논변이 제기된다. 가만히 말을 듣고 있자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보다 당략적인 이해타산만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싶다. 지난 일요일, 야당은 ‘특검 추천권’이라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이 안은 여당의 요구를 수용해 상설특검이 수사를 하되, 야당 추천의 특검이 임명한 특검보를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 실질적인 수사권을 확보한다는 방안이다. 하지만 여당은 불가능하다는 대답으로 일관할 뿐이다.

 

물론 법과 제도의 창출에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이 개입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을 만드는 취지이다. 이번 경우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노력이 중요하다. 진상 규명은 진실에 한 발자국 내딛는 것이다. 특별법은 더욱이 한시적이다. 그런데 여당은 특별법을 일반법과 연계시켜 마치 일반법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혹 밀어닥칠 쓰나미 파국을 막겠다는 심산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사건 진상의 규명에는 당략적 접근이 필요 없다. 그런데도 명분에 몸을 숨겨 당략적인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희생자, 유가족, 시민의 간절한 요구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모든 진행 과정이 불신을 키우고 있다. 사건의 진상을 원하는 국민들의 시선을 철저히 무시할수록 거짓을 조직적으로 은폐한다는 의혹이 커져가는 법이다. 이번 사건에서 불신을 키운 것은 바로 정부다. 공권력 집행의 무원칙과 부패가 문제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진상을 가려내 진실에 다가서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으로 비춰진다. 세월호 참사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은 분명 정부의 무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힘이 있는데도 그 힘을 발휘하지 못 하는 것이 무능력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무능을 탓하는 것은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라는 일종의 채찍질이다. 깊은 반성과 올바른 행동은 자신의 무능을 던져버리는 현명한 방법이다. 정부는 그 쉬운 선택마저 마다했다.

 

무능을 체계적으로 덮어버리려는 시도가 기만이다. 거짓으로 진실을 은폐하려는 것이다. 거짓이 거짓을 낳을 수밖에 없음은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우리 속담이 말하는 바다. 체계적인 거짓이 작동하는 체제는 항상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쫒는다. 신뢰의 자리에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권력의 동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권력 게임의 최후 승자가 누구인지는 우리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진정한 관심은 진실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민주주의 권력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일련의 진행 과정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제도는 권력 게임의 놀이판이 아니다. 우리를 지킬 마지막 보루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가 아직도 왜 발생했는지 모른다. 100일이 지나도 우리가 왜 이런 무지의 상태에 있는가. 진상 규명을 회피하면서 진실을 은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면 진상 규명이 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 규명은 그 이상이다. 조직적인 은폐, 제도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도를 활용해서 고의적으로 속이는 것, 즉 체계적인 은폐에 대한 진실 규명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현실에 대한 진실 규명이다. 세월호 특별법의 핵심은 일부 논객이나 의원이 말하는 보상이 아니다. 그 핵심은 진실을 막는 우리 안에 절대적 악과 싸우는 데 있다. 오로지 진실의 힘으로 맞서야 하는, 그래서 보이지 않는 유령과의 싸움이다. 우리는 기만이라는 유령과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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