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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text">참여사회연구소</title>
      <updated>2013-05-26T03:21:27+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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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평 169] 그 많은 &apos;을&apos;들은 왜 모두 바보가 되었나?</title>
      <id>http://www.peoplepower21.org/1033147</id>
      <published>2013-05-24T10:33:10+09:00</published>
      <updated>2013-05-24T10:34:21+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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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이담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시민정치시평 169]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lt;strong&gt;그 많은 &apos;을&apos;들은 왜 모두 바보가 되었나?&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lt;strong&gt;: 단결권과 집단적 교섭권이 중요한 이유&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장흥배 경제민주화국민본부 기획팀장&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color:#993300;&quot;&gt;&lt;br /&gt;&quot;본 계약의 해석에 다툼이 있을 경우 갑의 해석에 따른다.&quo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농심(갑)과 특판점(을) 사이에 체결된 계약서의 말미에 나오는 조항이다. 이 조항이 유효하다면 불공정행위에 대한 공정위 처벌을 포함해 갑이 무슨 짓을 해도 사실상 제재가 불가능해질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한국타이어의 가맹사업인 T-Station 사업본부(갑)와 서울 송파 가맹점주(을)가 체결한 가맹계약서에는 갑이 송파점 인근에 추가의 가맹점을 낼 경우 을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을은 자신의 영업권이 보호되는 지역 범가 공란으로 남겨진 계약에 서명했다. 그리고 2006년 1월 가맹계약 체결 이후 2012년 5월까지 송파점 인근 약 2Km 이내에 7개의 T-Station 가맹점이 새로 들어섰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어째서 이런 터무니없는 계약이 체결되고 유지되는 것일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계약이 국가와 시장의 조직·운용·재생산의 기초가 된 것은 근대부터다. 국가 통치의 권원(權原)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왕권(왕권신수설)에서 국가가 시민과 체결한 계약(사회계약론)으로 이전되었다. 장원(莊園)을 공동체의 터전으로 하는 봉건적 신분관계 대신, 시장에서는 참여자들의 사이의 모든 관계가 크든 작든,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경제적 급부와 반대급부를 내용으로 하는 계약 관계가 되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국가 통치의 원리로서든 시장의 토대로서든, 계약이라는 말 자체에 내재된 선험적 의미는 계약 당사자의 &apos;자유&apos;다. 역사적 실재가 아닌 이론적 구성물에 불과한 사회계약론이 시민적 저항의 토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를 대표하는) 정부의 계약불이행에 대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시민의 자유가 이 이론의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도 &apos;자유롭지 못한&apos; 계약은 그 효력이 제한되거나 부인되는 법리를 갖추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의 계약이 기본적으로 &apos;자유계약&apos;이라는 의미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을들은 왜 바보가 되었을까?&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 &apos;자유계약&apos;이야말로 을들의 분노와 저항을 상대하는 갑들의 모든 항변에 흐르는 기조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참여연대는 지난 4월 CJ대한통운(갑)을 화물운송 운전자들(을)에 대한 불공정행위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갑은 &apos;회사가 소유한&apos; 화물차량의 취득 가격의 일부를 화물운송 계약을 맺은 을이 받아야 할 운임에서 &apos;도둑질&apos;하고 있다. 화물운송을 주선한 대가로 갑이 취하는 수수료는 전국 각 지역의 지사별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갑은 을의 운임에서 공제하는 항목과 그 금액의 크기를 엿장수 마음대로 넣고 빼고 줄이고 늘린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한 갑 회사 관계자의 반박 중 하나는 &quot;을이 스스로 원해서 체결한 계약&quot;이라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현대차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철탑 농성 중에 &apos;사내하청 노동자, 과연 사회적 약자인가&apos;라는 비공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를 받아 보도한 한 언론 기사는 &quot;현대차 협력사 근로자들은 사내하청 협력업체에 입사하는 게 꿈&quot;이라는 사내하청업체 사장의 발언을 전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들의 항변에 흐르는 기조로서 자유계약의 논리를 수용한다면, &apos;어째서 이런 터무니없는 계약이 체결되고 유지되는 것일까?&apos;에 대해 즉각 떠오르는 답은 하나다. 그것은 거의 대부분의 을들이 바보라는 것이다. 사실 위에 언급된 계약 조항을 보고 있노라면 누가 을들을 바보라 하지 않겠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은 을들이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관의 수준에서라도 자유계약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직관만으로는 부족하다. 갑을관계를 지배하는 얄팍한 자유계약의 논리를 깨기 위해서는, 자유계약에서의 &apos;자유&apos;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나아가는 실마리를 얻기 위해 처음 던졌던 질문을 살짝 바꿔야 한다. &apos;을들은 왜 바보가 되었을까?&apos;&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그 사연을 추적하기 위한 하나의 예로, 화물운전자(을)가 화물운송사업자(갑)와 지입제 화물운송 계약이나 차량관리 위수탁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어떤 처지에 있는지 살펴보자.&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을은 화물차량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번호판으로 불리는 영업권이 없으면 독립적인 화물운송 영업을 할 수 없다. 번호판을 얻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그 조건에는 심지어 화물운송 사업자의 동의도 들어 있다. 또한 그렇게 천상의 별을 딴 소수의 을도 갑으로부터 일감을 받지 않고서는 도저히 적정 소득을 얻을 수 없는 지상에 발을 딛고 있음을 안다. 개인사업자인 을은 갑과 집단적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공정위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화물운전자와 화물운송 사업자 사이의 계약 관계에는 공정거래법보다는 운전자에게 유리한 하도급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을이 처한 구체적 상황은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을의 밥줄이 걸린 길목 구석구석까지 대기업이 장악한 시장, 국가기관의 대기업 편들기, 공적 규제의 공백, 자본에 종속된 언론과 지식 환경, 무너진 노동권 보호의 울타리와 이로 인한 자영업의 과다 경쟁 등은 거의 모든 을들이 갑과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주어진 공통의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대리점, 특판점, 편의점,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납품업체, 하청업체, 화물 및 택배노동자 등 모든 을들이 터무니없는 계약을 체결하고 유지하는, 즉 바보가 된 사연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자유계약의 외부에 있는 갑을관계의 실체적 진실&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자본주의 발전기에 자유주의자들이 아동 노동을 옹호한 주된 논리가 바로 자유계약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유의 의미에 대한 마르크스의 신랄한 비판은 당대의 지적 양심에 호소하는 바가 컸고, 참혹했던 아동 노동의 근절에 기여했다. 최근 잇따른 을들의 자살은 을들에게 주어진 자유가 &apos;살아야 하나, 죽어야 하나&apos; 양자택일로 좁혀지고 있는 슬픈 현실을 반영한다. 이 자유계약 사회에서 갑의 횡포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이 자유의 의미에 대한 성찰에 기초해야 하는 이유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런 성찰의 실천적 함의는 결코 작지 않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자유가 &apos;자기 발로 걸어가 자기 손으로 계약에 서명하는 행위&apos;라는 극히 제한된 의미를 벗어나 계약을 둘러싼 갑과 을의 권력관계까지 고려한 의미로 확장된다면, 필요한 수준의 공적 규제가 들어설 여지도 그만큼 넓어질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조금 더 구체적인 사안으로, 집단으로서 단결된 힘을 보유하지 못할 때 을의 자유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갑을관계를 재정립하는 제도 설계에 반영되어야 한다. 10여 년 전만 해도 갑 회사의 노동자였을 많은 을들이 개인사업자로 등장하는 배경, 남양유업이나 CJ대한통운이 대리점협의회나 택배파업 비상대책위원회와의 공개적 집단교섭을 한사코 거부하려했던 이유 등은 갑을관계 제도개혁의 핵심이 을의 단결권과 집단적 교섭권 보장임을 역설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지난 총선과 대선 시기의 경제민주화의 주요 의제였던 재벌·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의 문제와 이와 맞물린 경제력 집중의 문제를 다시 사회적 의제로 불러와야 한다. 순환출자, 금산분리, 부당내부거래 등을 규제하는 제도적 틀이 갑에게 크게 유리하게 짜인 결과가 을의 처지를 계속 궁색하게 만들고 있다. 을의 분노가 그렇게 갑의 횡포의 근원과 재생산 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로 나갈 수 있다면, 을의 자유는 딱 그 발걸음만큼 전진할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lt;br /&gt;&lt;/span&gt;&lt;/p&gt;
&lt;blockquote&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apos;시민정치시평&apos;이란 제목으로 &amp;lt;프레시안&amp;gt;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quot;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quot;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apos;시민정치시평&apos;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quot;&gt;http://www.pressian.com/&lt;/a&gt; &apos;시민정치시평&apos; 검색  &lt;br /&gt;&lt;br /&gt;*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lt;/span&gt;&lt;/p&gt;
&lt;/blockquote&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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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평 168] 사회복지공무원의 연이은 자살의 이유</title>
      <id>http://www.peoplepower21.org/1031430</id>
      <published>2013-05-20T15:27:53+09:00</published>
      <updated>2013-05-20T15:28:03+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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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이담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시민정치시평 168]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lt;strong&gt;사회복지공무원의 연이은 자살의 이유&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lt;strong&gt;: 소 잃고도 외양간 못 고치는 복지행정&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조흥식 서울대학교 교수·한국사회복지학회장&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또 다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며칠 전 5월 15일 새벽, 논산시청에 근무하는 30대 초반 사회복지사 한 사람이 자신의 집 근처 철길에서 열차에 치어 아까운 생을 마감했다. 고인은 충남 사회복지직 공무원 시험에서 1등을 한 우수 재원이다. 또 부친이 왼팔을 못 쓰는데다 뇌졸중을 앓고 있어 특별히 사회복지분야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지난해 임용된 고인은 주로 장애인복지시설을 지원·관리하는 업무를 해 왔다. 고인을 포함해 정규직 3명과 계약직 직원, 공익근무요원 등 5명이 논산시의 등록 장애인만 600여 명을 모두 담당해 온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고인의 죽음과 관련해 경찰은 업무과중에 따른 자살로 추정했지만, 가족들은 단순 사고사로 보고 있다. 그의 주검이 자살이든 사고사든, 밤 1시가 넘은 시간에 철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는 점, 경적을 울렸는데도 미처 피하지 못했다는 열차기관사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사회복지사 업무와 연관이 있었던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가 최근 업무과중에 시달려 온 사람으로서 평소 고민과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의 일기장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4월 28일 일요일자 일기에 &quot;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밥 먹고 사무실로 향했다. 하루가 정말 피곤했다. 컴퓨터를 보고 있다가도 금방 졸고 다시 깨고 이루 말 못할 정도로 피곤했고,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quot;고 적혀 있다. 5월 5일자 일기에는 &quot;지금 심신이 너무 힘들다.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 지금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인가. 지금 나는 행복한가?&quot;라고 써 놓았다. 그리고 5월 7일자 일기에는 &quot;나에게 휴식은 없구나. 사람을 대하는 게 너무 힘들다. 일이 자꾸 쌓여만 가고, 삶이 두렵고 재미가 없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렵다&quot;고 적혀 있다. 일요일에도 근무해야 할 정도로 사회복지직 업무 부담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올해 들어 일선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불행한 일이 지난 1월 용인시, 2월 성남시에 이어, 3월 19일 울산에서 3건이나 터졌고 이번에도 이러한 불행한 일이 또 일어난 것이다. 문제는 향후에도 이러한 불행을 멈출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고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소 잃고도 외양간을 못 고치는 어리석음을 정부가 범하는 사이 귀중한 생명은 하나씩 스러져 가고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왜 어처구니없는 안타까운 일이 복지국가 운운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왜 이를 막지 못하는 것일까.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야말로 대책 수립의 출발이 될 것이다. 요 몇 년 사이 복지는 우리 사회의 화두로 등장했다. 정치권이 너도나도 복지국가, 복지사회를 표방하면서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외치지만, 그 구호 뒤에는, 국민들은 눈치 채지 못하지만 당연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있는 복지 업무가 도사리고 있다. 처음에는 기초생활수급자만 대상으로 하다가 점차 일반 노인, 장애인까지 확대되고, 최근에는 양육수당 도입, 학비지원 등의 사업까지 떠맡다보니 업무에 업무가 쌓이는 깔때기 현상에 복지공무원의 업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복지정책 재정은 45%, 복지제도 대상자는 157.6%가 증가한 반면,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4.4% 느는데 그친 것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이 여성(74%)인 복지공무원의 육아휴직 충원실적도 67% 정도에 그쳐 필요한 정원에 비해 실제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더구나 이러한 업무과다를 줄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2010년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 e음)의 개통은 오히려 사회복지공무원들에게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통합관리망이 도입되면서 13개 중앙부처 296개 복지업무가 &apos;사회복지 범정부정책&apos;이라는 명목으로 일선 복지공무원들에게 집중되고 있으며, 이미 손으로 작성된 별지신청서 등을 일과 후 일일이 전산망에 입력하는 잡무가 많아져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수급기준에 불만을 가진 탈락자들에 의해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으면서 근무하는 실정이다. &apos;행복 e음&apos;이 사회복지공무원에게는 &apos;불행 e음&apos;이 되고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정부는 이처럼 복지정책 사업이 해마다 늘어가는 것을 참작해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숫자를 대폭 늘리거나 과중한 업무를 분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11년에 만들어진 2014년까지의 사회복지 공무원 7000명 충원계획도 알고 보면 자연결원 충원 800명, 일반 행정직 배치 1800명을 제외하면 4400명에 불과했다. 세 건의 사회복지사 죽음이 발생하자 안전행정부는 급기야 올해 3월 28일 사회복지 공무원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복지인력 1800명 조기 충원, 사회복지수당 4만원 인상, 인사평가시 가산점 부여 등을 발표한 바 있다. 즉, 안전행정부가 사회복지직 담당공무원 1540명은 새로 뽑고, 800명은 행정직 인력을 재배치하거나 자연결원 인원을 사회복지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그러나 사태 해결에는 턱없이 부족한 방안이라는 지적이 사회복지계 내에서 끊이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목숨을 잃을 때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각종 대책을 쏟아냈지만, 그 결과가 이번에 4번째 죽음을 만들어냈듯 정부의 대책이 &apos;늑장 대응&apos;일 뿐만 아니라 실효성 없는 미봉책임이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사회복지 담당공무원의 스트레스는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공무원노조와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함께 실시한 사회복지직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 65%가 우울증을 앓고 29.2%가 자살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정부의 &apos;국민 맞춤형 복지서비스&apos;가 국민행복 100% 사회를 만들기 위해 등장하는 사이에 정작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은 불행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고 있음을 호소하고 있다. 아직 수차례나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외양간 고치는 첫 단추는 우선 지자체에서 사회복지공무원 증원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지자체 소속으로 공무원 정원제와 유사한 소위 총액인건비제라는 제도에 묶여 함부로 인력을 증가시키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는 현행 제도를 수정하는 것이다. 즉 신규 채용 복지공무원의 인건비 70%만 3년간 한시적으로 중앙정부가 부담하며, 이후엔 전액 지방재정으로 메워야 하는 방침을 풀어 지방재정이 부족한 지자체의 경우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그러나 더 근원적인 일은 사회복지전달체계를 개편하는 일이다. 기본적으로 사회복지전달체계를 종합행정체계에서 분리하는 것이다. 읍면동으로부터 분리하거나, 그 상급기관인 시군구로부터 분리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효과적인 것은 아예 사회복지업무를 사회복지청-지청-지소 등 별도의 독립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다. 즉 사회복지공무원을 국가공무원으로 하고 국가에서 전액 인건비를 부담해 국가가 복지를 책임져 나가는 것이다. 아울러 사회복지 담당공무원도 감정노동자로 인식하여 민원인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도록 정기적인 힐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박근혜 대통령이 의원 시절 사회보장기본법을 전면 개정하여 대통령 후보시절에 국민행복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공약하여 당선된 이상, 공무원의 수장으로서 마땅히 사회복지전달체계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여 더 이상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삼가 올해 작고한 사회복지 공무원 네 분의 명복을 빈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blockquote&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apos;시민정치시평&apos;이란 제목으로 &amp;lt;프레시안&amp;gt;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quot;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quot;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apos;시민정치시평&apos;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quot;&gt;http://www.pressian.com/&lt;/a&gt; &apos;시민정치시평&apos; 검색  &lt;br /&gt;&lt;br /&gt;*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lt;/span&gt;&lt;/p&gt;
&lt;/blockquote&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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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평 167] 남양유업의 폭력, 윤창중의 폭력…그 거대한 질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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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3-05-16T15:16:40+09:00</published>
      <updated>2013-05-21T10:05:44+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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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지렁이이</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시민정치시평 167]&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남양유업의 폭력, 윤창중의 폭력…그 거대한 질서 &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 폭력 앞에 선 대한민국, 불복종의 촛불을!&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배문정 우석대학교 교수 &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폭력의 나날이다. 조직 폭력배나 학교 일진의 폭력이 아니다. 제빵회사 회장, 철강회사 상무, 청와대 대변인….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이 특급호텔에서, 비행기 비즈니스석에서, 국빈 방문 중인 워싱턴에서 가장 힘없는 약자를 향해 인간성 상실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가진 자들의 고귀한 &apos;도덕적 책무(Noblesse Oblige)&apos; 같은 단어는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좋은 학벌, 높은 지위, 많은 재산은 미덕의 결과도 원천도 아니며 오직 폭력의 수단이고 목적일 뿐이니 참으로 암담하고 서글픈 세상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모두가 처해있는 진정한 비극의 상황은 가진 자들의 도덕적 타락과 저급한 폭력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는 거대한 폭력의 사소한 돌출이며, 더 심각하고 더 치명적인 폭력을 은폐하는 눈속임일 뿐이다. 청와대 대변인의 저열한 폭력 뒤에 GM의 통상임금 개입과 한미 FTA 강행이라는 더 큰 폭력이 가려져 있듯이 말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보이지 않는 폭력은 보이는 폭력보다 더 교활하고 잔인하다. 그것은 분노도 저항도 없는 희생을 부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자살이 그렇다. 하루에 45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30분 간격으로 죽음의 행렬을 잇고 있지만, 이 가공할 폭력 앞에 우리는 모두 무력한 희생자로, 방관자로 서 있다. 악을 쓰고 저항하고, 분노와 비난을 퍼부을 가해자도 없이.&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한 사회의 자살률은 그 사회가 발 딛고 서 있는 폭력의 빙산이 얼마나 거대하고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눈금자다. 흔히 자살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우울증은 사실 자살의 진짜 이유가 아니다. 뇌와 우울증에 대한 신화는 전도되어 있는데, 뇌의 이상이 우울증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우울하기 때문에 뇌에 이상이 생긴다. 보이는 폭력은 분노와 저항을 부르지만 보이지 않는 폭력은 절망과 우울을 부른다. 그렇다. 얼굴 없는 살인자의 연쇄 살인극,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자살 행진의 진짜 이름이며 대한민국이 마주한 폭력의 그림자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888888;&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얼굴 없는 폭력, 그 거대한 질서&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1950년대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Solomon Acsh)는 폭력의 당사자가 없는 폭력의 사례를 연구했다. &apos;동조 실험&apos;이라고 불리는 그의 실험에는 한 명의 진짜 피험자와 여러 명의 가짜 피험자들이 참여한다. 실험은 여러 개의 선분 중 표본과 길이가 같은 선분을 고르는 간단한 과제였는데, 가짜 피험자들이 차례 차례에 질문에 답을 하고 나면 진짜 피험자가 마지막에 답을 하도록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이제 실험이 시작되고, 가짜 피험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엉터리 답을 보고한다. 즉 누가 봐도 길이가 다른 선분을 모두 하나 같이 같다고 보고하는 것이다. 자신의 차례가 되면, 진짜 피험자는 자신의 눈을 믿어야 할 지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믿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한 이상 내 눈을 믿는 것이 정상이지만, 피험자는 실험이 진행될수록 내 눈이 아닌 타인의 판단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내 눈의 증거를 믿을 수 없게 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런 사회적 압력에의 굴복은 상황이 애매할수록,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더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사회적 폭력이 제한된 소규모의 집단에서 일어날 경우에는 폭력의 가해자들이 쉽게 지목될 수 있다. 집단 따돌림에 의한 자살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인터넷과 같이 열린 광장에서 익명의 다수에 의해 행해지는 압력은 사람의 손을 떠난 거대한 사회적 질서를 형성하게 되고, 이것은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여 폭력을 휘두른다. 바로 이때 진정한 의미의 얼굴 없는 폭력이 발생하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에서 발생하고 있는 국정원 댓글 공작과 종북 여론 몰이는 바로 얼굴 없는 폭력 뒤에는 사실 이 폭력을 계획하고 주도하는 진짜 얼굴들이 있음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마녀사냥의 집단적이고 상징적인 폭력이 가져오는 결과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서 확인되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apos;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apos;, &apos;가난하고 속물적인 유대인&apos;의 초상은 나치의 상징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마녀의 초상이었다. 사르트르는 그의 &apos;반유대주의와 유대인&apos;에서 지구상에 유대인이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을 창조하거나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한민국에 종북세력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더라도 &apos;극우반공주의&apos;는 종북세력을 창조하거나 만들어 낼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888888;&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얼굴 없는 폭력의 평범한 악인&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1961년 사회심리학자 스텐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인간 본성에 대한 기념비적 연구를 수행한다. &apos;맹종 실험&apos;으로 알려진 이 실험에서 밀그램은 &apos;처벌에 의한 학습 효과&apos;를 측정한다고 광고하여 피험자들을 모집한다. 피험자들은 각각 선생과 학생 역할을 하고 학생이 정답을 맞히지 못하면 선생은 전기 충격을 주어 처벌을 하는 것이다. 이 실험에서 학생 역할의 피험자는 가짜 피험자였고 전기충격 장치도 가짜였다. 실험의 진짜 목적은 선생 역할을 맡은 피험자가 얼마나 높은 수위까지 전기충격을 주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놀랍게도 학생의 처절한 비명 소리와 양심의 가책에도 불구하고, 선생 역할의 피험자는 위험 수준에 달하는 마지막 수위까지 전기충격을 주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 실험의 결과는 평범한 사람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아주 끔찍한 폭행의 하수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현상은 바로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고 쓴 보고서 &apos;예루살렘의 아이히만&apos;에서 &apos;악의 평범성&apos;이라고 묘사했던 현상이다. 아이히만은 유대인 집단 학살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그는 &quot;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며 단지 명령을 수행했을 뿐&quot;이라고 주장한다. 아렌트는 이 전형적으로 성실하고 평범한 독일인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으며, 그 놀라운 &apos;사유능력의 부재&apos;가 바로 유대인 학살이라는 끔찍한 폭력의 진짜 범인이라고 주장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밀그램의 실험과 아렌트의 보고서는 인간은 스스로 인정한 권위와 규범에 거의 맹목적으로 복종하며, 이때 평범한 사람들이 적극적인 동조자로 참여하는 체제의 폭력이 발생함을 보여주었다. 거대한 불개미 떼의 집단적 힘과 같은 가공할 체제의 폭력은 우두머리의 지시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apos;성찰하지 않음&apos;이라는 치명적인 악덕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 시점에서 우리는 얼마 전 일어났던 백화점 여직원의 자살과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폭언을 떠올리게 된다. 백화점 매니저로부터 판매실적을 강요받으며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여직원은 &apos;그만 좀 괴롭혀요&apos;라는 문자를 남기고 자살했다. 남양유업 영업사원들은 족벌 경영의 밀어붙이기식 전략에 &apos;생각 없는&apos; 협력자가 되어 대리점 주인들을 과도하게 괴롭혀 왔다. 스스로 경쟁과 생존의 압력에 시달리며, 성실하고 유능한 직장인이고자 노력했을 매니저와 영업사원은 거대한 폭력의 질서 속에 잔혹한 가해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888888;&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얼굴 없는 폭력의 방관자&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대한민국 시장질서의 위계에 촘촘히 산재한 폭력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불러왔는지 다시 한 번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한때 화려한 도시 문화의 대명사로 등장했던 편의점 점주들이 부당한 가맹 계약에 줄줄이 자살을 하고, 동네 골목까지 밀고 들어온 대형 마트가 동네 상권을 파괴하고, 생계의 벼랑에 몰린 영세 자영업자들이 가족과 함께 동반 자살을 감행한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1990년부터 2011년까지 불과 20년 사이에 대한민국의 자살자 수는 4배 이상 증가했다. 중소상인들의 대형마트 영업규제 요구도 &apos;소비자의 선택&apos;이라는 시장논리와 부패한 권력의 편들기로 흐지부지되고, 이제 대한민국의 시장 위계에는 재벌과 소비자만 남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랑비에도 옷이 젖고 낙숫물도 댓돌을 뚫는데, 탱크처럼 밀려오는 시장의 폭력에 중소기업이든 중소 상인이든 악을 쓰고 버틸 체력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세계 2차대전의 나치 정권 하에 살았던 마틴 니뮐러(Martin Niemöller)는 &apos;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apos;라는 제목의 시에서, &quot;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quot;고 노래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 시에 나치 대신 &apos;시장&apos;을, 공산주의자 대신 &apos;비정규직 노동자&apos;를 사회주의자 대신 &apos;영세상인&apos;을, 유대인 대신 &apos;재래시장&apos;을 집어넣어 다시 읽어보라. 정확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폭력의 마지막 순간 &apos;소비자&apos;라는 이름으로 물러서있던 &apos;나&apos;만 남게 될 것이며, 결국 최후의 희생자로 사라질 것이다. 아무도 방관자로만 살아갈 수 없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888888;&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불복종의 선언과 &apos;얼굴&apos;의 회복&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시몬느 베이유는 &quot;폭력은 폭력의 피해자를 살아 있는 존재에서 사물로 바꾸어버린다&quot;고 말했다. 폭력의 진짜 목적은 가해자의 쾌락도 피해자의 고통도 아니다. 오히려 쾌락과 고통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존재를 폭력의 도구로, 폭력의 대상으로 바꾸어 분노도 저항도 의지도 성찰도 없는 사물로, 얼굴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바로 폭력의 진짜 목적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저마다의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살아 있는 개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고민하지 않게 될 때, 그리하여 각자가 체제의 부속품이 되고, 도구가 되고, 상품이 되어 고유한 인간성을 상실할 때, 국가와 시장은 &apos;얼굴 없는 폭력의 질서&apos;가 된다. 체제의 폭력을 유지하는 것은 권력도 자본도 소수의 지배자도 아니다. 그것은 개인들의 잃어버린 &apos;얼굴&apos;이다. 한 사람의 &apos;얼굴&apos;에는 그 사람의 의지와 생각, 감정, 그리고 영혼이 담겨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apos;인간의 몸은 인간 영혼의 최고의 그림&apos;이며, &apos;얼굴은 몸의 영혼&apos;이라고 말했으며, 레비나스는 인간은 타인의 얼굴에서 윤리적 책임과 만난다고 말했다. 체제 속의 개인들이 각각의 &apos;얼굴&apos;을 잃고, 평범한 악인으로 이기적인 방관자로 절망적인 패배자로 굴종할 때 폭력은 스스로를 유지하고 증식한다. 모든 &apos;얼굴 없는 폭력&apos;의 실체는 &apos;얼굴&apos;을 잃어버린 개인들인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체제와 시장의 거대한 폭력 앞에 선 대한민국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잃어버린 자신의 &apos;얼굴&apos;을 찾고 폭력 앞에 &apos;불복종의 선언&apos;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스스로의 머리로 판단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둘러싼 이웃들과 &apos;얼굴&apos;을 마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상품이 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생각 없는 관리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이기적인 소비자가 되기를 거부할 때, 그리하여 주체적이고 윤리적인 얼굴을 가진 존재로 &apos;인간선언&apos;-어쩌면 &apos;바보선언&apos;-을 할 때 비로소 거대한 폭력의 힘은 사라질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러한 &apos;불복종의 선언&apos;은 아마도 아주 사소하고 바보스러운, 하지만 지혜롭고 용기있는 윤리적 행동들로 이루어질 것이다. 영리한 적을 이기는 길은 더 영리해지는 것이 아니라 영리함의 논리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이며, 시장을 이기는 길은 &apos;이윤과 효율의 논리&apos;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미국산 오렌지 30개를 1만 원에 파는 대형마트를 지나쳐 과일 노점상에서 참외 7개와 할머니의 환한 미소를 곁들여 사는 지혜, 우동 한 그릇이 가져다준 행복을 배고픈 이웃과 나누려 우동 한 그릇 값을 미리 맡겨두고 나오는 기쁨(이태리 나폴리의 전통에서 시작된 &apos;맡겨두는 커피(Suspended Coffee)&apos;는 지불 능력이 모자라는 이웃을 위해 형편이 나은 이웃이 미리 계산하고 커피를 맡겨두는 나눔의 소비 방식이다. 현재 한국에서도 여러 업종의 가게들이 동참하는 &apos;미리 내는&apos; 소비가 생겨나고 있다.), 시장은 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몸의 성실함과 마음의 환희로 보여주는 용기(예, 봉구스 밥버거), 이런 사소한 불복종의 실천들이야말로 거대한 폭력에서 나와 나의 이웃을 구하는 유일한 촛불이며 짱돌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blockquote&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apos;시민정치시평&apos;이란 제목으로 &amp;lt;프레시안&amp;gt;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quot;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quot;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apos;시민정치시평&apos;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quot;&gt;http://www.pressian.com/&lt;/a&gt; &apos;시민정치시평&apos; 검색  &lt;br /&gt;&lt;br /&gt;*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lt;/span&gt;&lt;/p&gt;
&lt;/blockquote&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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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평 166] 성범죄 뿌리 뽑겠다던 박근혜 정부, 윤창중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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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3-05-13T11:59:29+09:00</published>
      <updated>2013-05-13T12:02:17+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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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이담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시민정치시평 166]&lt;/span&gt;&lt;/p&gt;
&lt;p&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br /&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성범죄 뿌리 뽑겠다던 박근혜 정부, 윤창중은?&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 윤창중 성추문 사태를 보며&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병천 강원대 교수&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박근혜 정부는 4대악 근절의 슬로건을 높이 치켜세운 바 있고 성범죄의 뿌리를 뽑는 것은 그 대표적인 공약이었다. 그리고 이 정부는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는 세운다)와 뒤섞어 이상스런 비빔밥을 만들었지만, &apos;갑&apos;의 횡포를 막고 경제민주화를 추진해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큰 약속도 했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한두 번 속은 게 아니다. 그러나 한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은 스스로 약속을 다른 어떤 가치보다 중하게 여긴다고 했던 만큼 기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그런데 머지 않아 100일을 맞게 될 이 정부의 그간 행보는 불안하기만 하다. 출범 초 &apos;밀봉· 불통&apos; 인사에서 잘 드러났듯, 대통령과 이 정부 전반이 국정운영 과정에서 보여준 소통력과 내부 자정 능력의 취약함을 보면서 혹시 큰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던 참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일어난,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저지른 희대의 성추행 사건은 결코 우연한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사건에 대한 워싱턴 D.C.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 여성은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의 한 호텔 내에서 &quot;(윤창중이) 허락 없이 내 엉덩이를 &apos;움켜쥐었다&apos;(grabbed)&quot;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 졌다. 그리고 윤창중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공직기강팀 조사에서는 피해 인턴 여성의 &quot;엉덩이를 만졌다&quot;고 진술했으며, 인턴 여성이 그의 숙소인 워싱턴 D.C 소재 호텔방으로 올라 왔을 때 자신이 &quot;팬티를 입고 있지 않았다&quot;는 점도 시인한 것으로 알려 졌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렇게 이번 성추행 사건이 일파만파 전지구적 뉴스로 된 데는 &apos;미씨 유에스에이&apos;(http://www.missyusa.com)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만약 사건 내용이 이 사이트에 올려지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은 쉬쉬하고 덮여졌을지도 모른다. 해당 사이트는 &apos;한국의 팔이쿡&apos; (http://www.82cook.com)과 비슷한 &apos;주부 사이트&apos;라고 들었다.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분들은 칭찬받아 마땅한 시민 정신을 가졌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참 이상한 나라다. 새 정부가 출범해 한미 우호 친선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한 실로 중차대한 정상회담을 하는 마당인데, 대통령 수행임무를 띤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자가 감히 성추행 작태를 벌이다니. 이상한 짓은 이것만이 아니다. 윤창중은 청와대 조사에서는 인턴 여성의 엉덩이를 만진 것도, 그리고 노팬티차림 이었다는 것도 시인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해서는 이 사실을 모두 번복했다. 오히려 여성 인턴이 제 할 일을 형편없이 잘 못했다면서 피해 여성을 두 번 욕보였다. 그러면서 격려차 허리를 툭 한번 쳤을 뿐이었으며, 가이드의 방문은 상상도 못했고 속옷 차림으로 문을 열었다고 했다. 이런 이중 플레이를 어떻게 봐야 하나.&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도대체 이런 정도의 파렴치한이 어떻게 대한민국 청와대 대변인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일까, 이게 문제다. 결국 대통령의 불통, 밀봉인사가 자초한 일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지 않나. 이상한 일은 또 있다. 고집 불통 인사를 강행해서 국격을 땅에 떨어지게 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대통령은 한마디 말도 없는데, 청와대 홍보 수석이라는 사람은 도리어 대통령에게 사과한다는 말을 한다. 성범죄 용의자인 윤창중이 한국으로 재빨리 도주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매우 이상한 일이다. 이 대목과 관련해서는 재미 한인 단체에서 미국 사법권에 도전한 중대 범죄로 보고, 도주 전말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까지 나왔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국격을 높이러 가서 오히려 국격을 떨어뜨린 이상한 일은 윤창중 성추행 사건만은 아니다. 박대통령은 제너럴 모터스(GM)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quot;통상 임금 문제를 꼭 풀겠다&quot;는 답변을 했다. 이는 외국 투자자가 넌지시 떠보는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면서 자기 나라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초법적인 발언이다. 취임 이래 박대통령은 신자유주의적 &apos;줄푸세&apos; 정책과 경제민주화를 교모하게 뒤섞는 비빔밥 전략을 쓰면서, 특히 노동 분야에서 줄푸세 기조를 보여 왔다. 대법원 판결까지 가볍게 무시하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사건이나 비극적인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 등에 대해 아무런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이번 통상 임금 문제에 대한 박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기조를 한층 강화시킬 것으로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윤창중 성추행 사건으로 이런 중차대한 경제민주화 역주행 건이 주변화될 것 같아 걱정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지금은 쑥 들어가긴 했지만 한 때 &apos;선진화&apos;라는 말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으니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다음 국정 과제는 선진화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 한참 부족한 것은 선진·첨단 또는 창조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기본적인 것, 정상적인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에 절실한 것은 불통·불안·불만을 넘는 튼튼한 기본, 즉 기본적인 소통·공감·공유, 그리고 책임의 가치이다. 이것이 이번 박 대통령의 방미 중에 일어난 여성 인턴사원을 욕보이고,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대한민국 국격과 전 대한민국인의 존엄을 욕보인 이상한 소동들을 보며 느낀 소감이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blockquote&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apos;시민정치시평&apos;이란 제목으로 &amp;lt;프레시안&amp;gt;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quot;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quot;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apos;시민정치시평&apos;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quot;&gt;http://www.pressian.com/&lt;/a&gt; &apos;시민정치시평&apos; 검색  &lt;br /&gt;&lt;br /&gt;*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lt;/span&gt;&lt;/p&gt;
&lt;/blockquote&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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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평 165] 감동 잃은 진보정치, 고(故) 이해삼을 떠나보내며</title>
      <id>http://www.peoplepower21.org/1028970</id>
      <published>2013-05-09T16:13:17+09:00</published>
      <updated>2013-05-09T16:28:44+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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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이담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시민정치시평 165]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lt;strong&gt;감동 잃은 진보정치, 고(故) 이해삼을 떠나보내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lt;strong&gt;: 진보정치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성찰 있어야&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박은홍 성공회대학교 교수&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갑작스럽게 이해삼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이 우리 곁을 떠났다. 만 50세를 못 채우고 그는 그렇게 이 세상과 하직했다. 그는 서울 성수지역에서 제화노조를 만들었고 그 후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그곳을 묵묵히 지켰다. 그의 동료 제화노동자들은 그가 &quot;구두장이들의 소박한 공동체 꿈을 꾼 동지&quot;였다며 그를 기렸다. 그들은 이해삼이 단지 제화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서, 진보정치의 꽃을 피우기 위해 자신의 건강과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헌신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죽음 앞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 아파했다.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도 없이 그를 보내야 했기에 더욱 아파하고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30년 동안 때로는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보아온 내게 이해삼은 후배이지만 많은 가르침을 준 소중한 친구였다. 그는 늘 진지했고 열정적이었고 힘든 진보정치의 길을 고집했다. 그는 자신을 내세우지 아니했다. 묵묵히 지킨 노동현장에서나 진보정치의 중심으로 여긴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대책위원장을 맡았을 때나 그의 겸허함은 한결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노동현장의 열망을 담은 진보정치가 힘 있게 비상(飛翔)하는 그날을 꿈꾸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그런데 이 시대의 한국의 진보정치권은 어떠한가? 흔히 시간과 권력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고 하는데, 과거 군사독재 시기 그 견결했던 혁명의 열정을 오늘날까지 간직하고 있는 진보정치권 인사가 과연 몇 명이나 있는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정통야당의 진보화를 꿈꾸며 뛰어든 이른바 &apos;386세대&apos;의 존재감은 사라진지 오래다. 민주화 투쟁의 적통임을 자부하는 제1야당 내에서, 누가 붙인 이름인지는 모르나 &apos;친노&apos;, &apos;비노&apos;의 대립은 국민들에게 &apos;노&apos;(NO)일뿐이다. 그래서 진보임을 자임하는 일부 정치인들은 정통야당의 구태가 싫어 기성 정치의 때가 묻지 않았으면서 지식과 재력을 겸비한 한 저명인사의 &apos;새정치&apos;에 많은 기대를 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apos;새정치&apos;는 골리앗과 같은 거대 자본과 싸움하다 아웃된 의원의 지역구에 출마해 제도권 정치 입문에 성공하는 것으로 그 막을 열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그렇다면 제1야당과도 &apos;새정치&apos;와도 선을 긋는 &apos;진짜&apos; 진보정치권임을 자임하는 진영은 어떠한가? 단적으로 이들 진영은 당명조차 제대로 알기 힘들 정도로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고 있다. 이해삼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 많이 걱정하고 아파하면서 결국 자신이 애정을 갖고 몸담았던 정당을 나와야 했다. 누군가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는데 한국의 진보정치는 그 지점에 와있는지도 모른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그래서 반성과 성찰이란 용어가 진보정치권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고로 반성은 나와의 은밀한 대화인데 몇몇 분들의 반성은 남을 의식해 요란하고 때로는 현란하다. 자신이 제도정치권에 남지 않을 경우 진보정치가 곧 망할 것 같이 생각하는 그런 진보정치인들은 또 어떠한가? 과연 이분들에게 원칙적이나 독선적이지 않고, 유능하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그런 인물들에 대한 배려와 양보를 기대할 수 있을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민주주의란 정치시장에서 정치엘리트와 유권자 간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상품화하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음을 잘 안다. 그 상품화는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어떤 때는 상품화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여기는 진보정치인들을 보게 된다. 이분들이 &apos;수단으로서의 권력&apos;과 &apos;목적으로서의 권력&apos;이 어렵지 않게 뒤바뀔 수 있음을 모르지 않을 텐데 그 지적·실천적 긴장의 끈이 끊어진 것은 아닌지, 진보정치권조차도 권력 앞에 정직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흔히 재화는 사람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수단으로 탄생했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재화의 노예가 된 꼴이 되었다고 한다. 진보정치권 인사들에게까지 권력이 재화처럼 목적 그 자체가 된 것은 아닌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진보정치권이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 시대를 뒤로 하고 이해삼은 우리에게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이 세상을 떠났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해삼은 &quot;사람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quot;라고 했다. 그의 이 말은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영성적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왜 그가 그런 말을 했을까를 진보정치권은 보다 진지하게 보다 깊게 생각했으면 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노동현장과 진보정치의 가교가 되고자 했던 그의 정신과 가치를 기리며 이 땅의 진보정치가 진정성을 회복하고 다시 연대해 힘 있게 나아가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blockquote&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apos;시민정치시평&apos;이란 제목으로 &amp;lt;프레시안&amp;gt;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quot;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quot;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apos;시민정치시평&apos;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quot;&gt;http://www.pressian.com/&lt;/a&gt; &apos;시민정치시평&apos; 검색  &lt;br /&gt;&lt;br /&gt;*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lt;/span&gt;&lt;/p&gt;
&lt;/blockquote&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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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평 164]  박근혜 통치술 뜯어보니 &apos;몸으로 느끼는 정치&apo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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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3-05-06T13:59:22+09:00</published>
      <updated>2013-05-06T14:08:59+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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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이담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시민정치시평 164]&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lt;strong&gt;박근혜 통치술 뜯어보니 &apos;몸으로 느끼는 정치&apos;&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lt;strong&gt;: &apos;체감정치&apos;와 정치적 비전&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양수 한양대 강사&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정치인의 레토릭에는 남다른 의미가 담겨있다. 정치의 특성은 말과 행동을 믿고 지키는 것에 달려 있다. 정치 비전은 늘 말에 담겨 있다. 18대 대선의 레토릭은 &apos;경제민주화&apos;, &apos;창조경제&apos;였다. 이런 말의 결과로 과반이 넘는 국민의 지지를 얻고 박근혜 정부가 탄생했다. 박근혜 정부는 &apos;행복의 정부&apos;가 될 것을 약속했다. 이 말들이 그저 말에 그친다면 국민의 기대가 실망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지난 4월 30일 각 부처 업무보고가 끝났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이번 정부의 업무보고는 어떤가. 이번 정부의 야심작인 창조경제, 경제민주화가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 뭐라 평가하기 이르다. 그보단 이번 업무보고 과정에서 보여준 박 대통령의 국정스타일을 지적하고 싶다. 매 업무보고마다 비슷한 형태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에 소개된 자료를 찬찬히 살펴보면 여론의 이목을 끌지 못했지만 주목할 만한 반복적인 수사가 나온다. 아마도 박 대통령의 국정스타일을 가늠하는 좋은 예가 아닌가 싶어 인용해본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quot;정책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이 정책이 실효성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모니터링하고 끝까지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각 부처가 열심히 머리를 짜내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느라고 노력한 게 헛수고가 될 수 있습니다. 국민은 그걸 못 느끼고 있기 때문에 헛수고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의 많은 노력이, 실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것을 체감하고, &apos;아 이래서 내가 더 좋아졌다&apos;, &apos;삶의 질이 더 높아졌다, 더 편해졌다&apos; 이렇게 돼야 우리가 애쓴 보람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데 앞으로 중점을 많이 두시기 바랍니다.&quot; (3월 26일 국무회의 관련 브리핑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박 대통령의 국정 스타일은 한마디로 &apos;체감정치&apos;라 할 수 있겠다. 체감정치는 전임 대통령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전임대통령이 생산자 중심의 현장정치를 강조했다면, 체감정치는 고통 받고 있는 국민이 실감할 수 있는 현장정치를 내세운다. 여러 차례의 국무회의와 업무보고 내내 박 대통령은 국민의 시각에서 고통과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해결해나감으로써 국민이 정말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정치를 주문했다. 4월 30일 업무보고 마지막 날, 박 대통령은 체감정치가 5년 국정철학의 기조임을 암시하면서 체감정치를 평가할 객관적인 지표 마련을 당부하고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quot;새 정부의 노력이 국민들이 체감하는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평가가 더욱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현장의 시각에서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만 개선방안을 찾아갈 수 있고, 또 평가 결과의 피드백으로 실질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 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방식을 찾아나가기 바랍니다.&quot; (4월 30일 국무조정실 업무보고 관련 브리핑 대변인 브리핑)&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국민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박 대통령이 꼼꼼한 업무스타일을 강조하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달 24일 &apos;기사 댓글까지 본다&apos;는 내용의 보도는 이를 입증한다. 무엇보다 민심을 읽고 애로사항을 해소해 &apos;국민에게 희망을 주겠다&apos;는 뜻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말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quot;끝까지 모니터링하고 관리&quot;하라는 당부의 말을 반복하고 있다. 실제로 업무보고 이외에도 주요 회의 때마다 실제 고통 받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해소방법을 모색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4월 5일 법무부·안전행정부 업무보고 관련 브리핑, 3월 29일 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업무보고 관련브리핑, 4월 24일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 관련브리핑을 참조하라.) 말하자면 리허설 방식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시연한 셈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런 모습 뒤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통치자에 대한 통념이 작동하고 있다. 국민을 위한, 이른바 &apos;민본(民本) 정신&apos;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을 해소하는 청렴 공무원을 떠올리게 한다. 역으로 부정부패는 단호하게 응징 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런 통치술은 나름의 방식이다. 지난 5년의 허망한 정치를 생각해보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정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치에서 엄청난 차이를 느낄지 모른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그럼에도 체감정치를 보면 어딘가 편치 않다. 지금 우리가 느끼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는 모든 게 안개 속이다. 정말 공약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과연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공약 실현을 위해서는 그저 국민의 목소리를 모두 듣겠다는 의지를 넘어 강한 개혁의 드라이브가 필요하다. 따라서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 미래를 향한 지표를 찾는 일이다. 그 교훈 속에서 원칙을 세우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상황은 더욱 긴박해지고 있다. 북한, 일본, 국제 관계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 어느 쪽도 만만치 않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과연 앞으로 한반도에 불어 닥칠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정치는 늘 불확실성 속에서 출발한다. 이런 불확실성을 통제 가능한 상황으로 만드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고, 정치의 온전한 특성이다. 그래서 정치인의 말은 현실 문제에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건이 터지면 상황에 맞게 진로를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점에서 정치인에게 맹목적인 신념의 고수는 위험하다. 또 그렇다고 상황마다 말을 바꾸는 정치인은 협잡꾼일 뿐이다. 정치인에 바라는 건 항상 변하는 상황의 특수성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비전을 찾아내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런 정치인의 능력을 &apos;프로네시스&apos;라고 했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apos;비르투&apos;도 강조점은 달라도 동일한 능력을 뜻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 모든 가능성은 정치인의 말과 행동에 달려 있다. 따라서 정치인의 수사는 국민의 관심사 밖 주제도 정치적 비전으로 포착해야 한다. 외롭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 작업이다. 국민의 통념과 편견을 깨는 작업을 동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작업에는 무엇보다 상상의 힘이 필요하다. 만일 이런 정치의 상상적인 힘을 포기한다면, 남는 것은 냉혈한 통치기술 뿐이다. 그저 몇 사람만을 위한 통치이지, 결코 국민 모두를 위한 통치일 수 없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업무 보고가 끝난 이 시점에서 이번 행복의 정부가 진정한 행복을 실현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실패는 지금 우리에겐 치명적이다. 위기 소리에 둘러싸인 지금, 보여주기 정치가 전부여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건 자신의 고통을 토로할 순번이 아니다. 기다리는 것은 내일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는 것이다. 1963년 &apos;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apos;라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이 아직도 회자되는 것도 흑인 한 사람 한 사람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흑인들에게 희망의 내일을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이 시대의 어려운 사람의 절규를 듣고 미래를 내다보았으면 싶다. 우리 모두의 미래를 담고 있는 말, 우리는 그런 말을 듣고 싶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blockquote&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apos;시민정치시평&apos;이란 제목으로 &amp;lt;프레시안&amp;gt;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quot;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quot;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apos;시민정치시평&apos;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quot;&gt;http://www.pressian.com/&lt;/a&gt; &apos;시민정치시평&apos; 검색  &lt;br /&gt;&lt;br /&gt;*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lt;/span&gt;&lt;/p&gt;
&lt;/blockquote&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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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평 163]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향배는? 불길한 검찰</title>
      <id>http://www.peoplepower21.org/1020397</id>
      <published>2013-05-02T09:53:37+09:00</published>
      <updated>2013-05-02T10:10:00+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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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이담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시민정치시평 163]&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lt;strong&gt;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향배는? 불길한 검찰 &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lt;strong&gt;: 검찰은 경찰과 다를까?&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박주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국정원 직원 김모씨가 대선시기 인터넷을 통한 여론조작을 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사건의 경찰 수사결과가 지난 4월 18일 발표되었다. 넉 달 동안이나 경찰이 사건을 들고 있었기에 수사기간만 보면 충분히 의혹이 풀렸어야 했다. 그러나 경찰이 발표한 수사결과는 국민들의 의혹을 해소하기에 부족했을 뿐 아니라, 발표 직후부터 터져 나온 수사과정에 대한 압력행사 등으로 오히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경찰 수사결과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정원 직원 등이 대선시기에 정치에는 관여했으나 선거에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낸 점과, 국정원이 여러 차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직원들이 업무로서 그러한 행위를 했다고 밝혔음에도 지시를 한 윗선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먼저 국정원 직원 등에게 공직선거법위반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부분을 살펴보자. 이 부분은 법률의 해석에 관한 부분이라 &apos;그럴 수도 있겠다&apos;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조문을 직접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공직선거법 제86조 제1항 제1호는 &apos;소속직원 또는 선거구민에게 교육 기타 명목여하를 불문하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 이하 이 항에서 같다)의 업적을 홍보하는 행위&apos;를 금지하고 있다. 대선은 전 국민이 선거구민이라서 선거구민을 따로 특정할 필요가 없는데, 위 조문에 따르면 대선시기 국민을 상대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업적을 홍보하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국가정보원법에서 정치관여를 금지하는 조항을 보자. 국가정보원법 제9조 제1항, 제2항 제2호는 &quot;그 직위를 이용하여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그러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quot;를 금지하고 있다. 즉,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사실을 유포하면 안 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위 두 조항은 모두 동일하게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업적을 홍보하면 안 된다고 하고 있고, 심지어 국가정보원법은 &apos;그 직위를 이용하여&apos;라고 하여 금지되는 행위를 더욱 좁게 보고 있다. 따라서 국가정보원법에 위배되면 공직선거법 역시 자동적으로 위배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국가정보원법만 위배했다는 이해되지 않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것은 큰 풍선 안에 작은 풍선이 들어 있는데 바늘로 큰 풍선을 통과해서 작은 풍선만을 터뜨리는 마술과도 같은 것이다. 경찰이 국민에게 마술 같은 능력을 보여주었다. 아마 선거에 개입하였다고 하는 순간 살아있는 권력과 맞서야 된다는 공포가 그런 능력을 발휘하게 한 것이 아닐까 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다음으로 윗선에 대한 수사가 없었던 부분을 보자.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국정원은 &apos;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행동은 업무로서 한 행위&apos;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었다. 김모씨가 업무로서 이러한 행위를 하였다는 의미는 당연히 국정원 차원에서 김모씨의 행위를 관리, 감독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심리정보국만의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심리정보국만을 수사대상으로 삼았고, 그나마 심리정보국장조차도 제대로 소환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수사를 마무리한 것이다. 이에 대해 비난이 일자 경찰은 심리정보국장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거나 소환을 해도 응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누군지 모르면 수사를 못하고 불러도 안 오면 수사를 못 한다는 말이다. 누군지 뻔히 아는데다가 부르면 항상 달려오는 사람을 수사하는데 경찰이 필요할까! 애초부터 수사할 의지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렇게 어지러운 상황에서 검찰이 공을 넘겨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지난 정권 때 정치적 독립성을 매우 심하게 의심받았었다. 그로 인해 이번 대선과정에서 여·야할 것 없이 공히 검찰개혁을 중요한 화두로 삼기에 이르렀다. 과연 검찰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런 정치적 사안을 제대로 수사해낼지 벌써부터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곳곳에서 검찰이 수사대상을 넓히는 정도로 생색을 내면서 경찰과 마찬가지로 &apos;국정원이 선거에는 개입하지 않았다&apos;는 결론을 낼 것이라는 관측이 많이 나오고 있다. 정말 검찰이 이런 식으로 수사한다면 향후 5년간 검찰은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지지받을 수 없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도 못한데다가 수사의 능력도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지금 경찰의 처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번 사건은 검찰이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거나, 아니면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해서 자신의 존재의의를 입증하고, 사회적으로는 정의가 찾아지기를 바란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blockquote&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apos;시민정치시평&apos;이란 제목으로 &amp;lt;프레시안&amp;gt;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quot;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quot;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apos;시민정치시평&apos;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quot;&gt;http://www.pressian.com/&lt;/a&gt; &apos;시민정치시평&apos; 검색  &lt;br /&gt;&lt;br /&gt;*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lt;/span&gt;&lt;/p&gt;
&lt;/blockquote&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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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평 162] 지금 필요한 건 &apos;철수 생각&apos;이 아니라 &apos;철수 실천&apos;!</title>
      <id>http://www.peoplepower21.org/1017054</id>
      <published>2013-04-29T11:43:00+09:00</published>
      <updated>2013-04-29T15:04:21+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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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지렁이이</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시민정치시평 162]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지금 필요한 건 &apos;철수 생각&apos;이 아니라 &apos;철수 실천&apos;! &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 누가 깃발을 올리려나?&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홍윤기 동국대 교수 &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보통 재보선이라고 하면 이런 저런 이유로 공석이 된 국회의원이나 기타 자치단체장을 새로 뽑아 전임자가 못 다한 임기를 채우도록 하는 선거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재보선은 사람을 새로 뽑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미리 뽑아놓은 사람들의 당선을 뒤늦게 확정해 공지하는 절차가 되어버렸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대통령이나 장관들이나 자리를 메운 지 몇 달도 안 된 시점인 탓도 있겠지만 올 4ㆍ24 재보선은 유난히 그랬다. 어느 당이 압도적으로 이기고 어느 당이 완패했다는 말이 전혀 무색하다. 뽑힐 만한 사람들이 뽑힌 게 아니다. 지난 대선 때 일찌감치 뽑아놓았던 사람들이 그대로 들어가고 싶은 자리대로 들어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안철수든, 김무성이든, 이완구든, 어느 &apos;지역&apos;이 아니라 자신이 되고픈 &apos;시간&apos;대로 되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들이 당선된 지역들 가운데 예전에 자신들의 연고지였던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자리가 비자 날아가서 그곳 유권자들의 표를 그냥 주워 들였다. 놀라운 힘이다. 이렇다면 진정한 의미의 지역구는 한 군데도 없다. 좀 성급하고 과장된 표현이긴 하겠지만,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구는 이제 모두 전국구가 된 셈이다. 그리고 이러다 보니 사실 이 재보선 갖고 새로 얘기할 거리도 없다. 이렇게 얘깃거리가 없는 재보선은 그야말로 &apos;듣보잡&apos;이다. 그러다 보니 하던 얘기나 계속해야 하는 이상한 담론 지형이 펼쳐졌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재작년 가을부터 &apos;아직 무엇인지 모르는 미래&apos;에 대한 시민 유권자들의 기대가 여전히 엄청 크다는 것이 재보선 사후담 중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반세기 넘게 대한민국 사람으로 살고 있지만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지금 이 시점 대한민국 시민들의 속내이다. 아직 되지 않는 미래들에 대해 왜 그렇게 기대가 많을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당선되자마자 실망만 안겨준 현임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 달도 안 돼 대선 때 득표율 밑으로 10퍼센트 이상 떨어지고, 그것을 반전시킬 별다른 치적도 없음에도, 여당의 지지율은 부동의 일등이다. 하지만 더 웃기는 것은, 이제 막 당선된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만들 경우 그 당의 지지율이 현 여당을 앞선다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amp;lt;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amp;gt;가 안철수 신당의 등장을 가정하고 4월 28일 실시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안철수 신당이 30.9%로 가장 높았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각각 30.7%, 15.4%를 기록했다. 앞서 3월 2일 &amp;lt;한겨레&amp;gt;와 &amp;lt;한국사회여론연구소&amp;gt;의 같은 조사에서 새누리당 40.1%, 안철수 신당 29.4%, 민주통합당 11.6%였다던 것을 감안하면 현직 의원으로서 이제 전문 정치인이 될 안철수에 대한 기대가 새누리당에는 거의 괴멸적인 타격을 가하고, 민주통합당에는 상당히 위협적인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재작년 가을 처음 정치권에 안철수라는 이름이 떴을 때, MB 정권 하에서 차기 대선 당선가능성에서 누구의 추월도 허용하지 않았던 박근혜 대세론을 처음으로 꺾었던 것과 동일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지난 대선 때 후보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그 미진한 행적들이 박근혜 집권 과정의 난맥상 때문에 잊혀지거나 희석되었을까? 분명히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인선도 그렇고 정책도 그렇고 지난 몇 달 동안 드러난 대통령 박근혜의 실력은 별로였다. 전임자인 MB보다 그나마 나은 것은, 이 시점에 MB가 벌렸던 온갖 분탕질에 해당하는 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사실 너무 안 해서 슬슬 걱정이 되지만), MB가 저질러 놓은 실정의 뒷감당이 너무 버거워 거의 동정심이 들 정도라는 것이다. 대북 정책은 여전히 MB의 덫에 걸려 남북관계의 파탄을 스스로는 원치도 않으면서도 MB도 하지 않는 개성공단 폐쇄의 수순으로 떠밀려간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개성공단 폐쇄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훨씬 깊을 수 있다. 우선 공단에서 철수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에 대한 보상은 외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겨우 1조라고 했지만, 얼추 따져도 10조에 육박하는 손실 규모는 이번에 어렵사리 편성한 추경예산 전체를 무력화할 공산이 크다. 그리고 경기부양도, 복지정책도, 나아가 그 내용도 아직 갖추지 못한 창조경제도, 모두 개성공단이라는 블랙홀에 빨려들 수 있다. 정부의 정책능력이 엄청나게 제약받는다는 얘기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북한의 난동에 대한 혐오로 현임 대통령에 대한 선호도가 약간 놀라가는 이른바 &apos;랠리 효과&apos;가 나타나기도 한다. 문득 40년 전 월남이 패망했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 그 많던 유신반대 민주화 운동이 월남 패망으로 약 1년간 주춤했다. 이 때 유신독재정권은 모든 반대세력에 대해 선제공격에 나서 긴급조치로 대학생을 비롯하여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잡아들였다. 절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집권당 안에서도 이반의 조짐을 주도할 만한 중견인사가 등장하고, 유력한 반대자가 국회에 입성하며, 국민의 조용한 불만이 그 표정에서 역력하게 읽혀지는 분위기에서 북한이 계속 위협적으로 나오면, 40년 전의 풍경이 그대로 데자뷰로 떠오른다. 더구나 현재 무력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요직은 군출신과 법조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정치 피로감이 현 대통령에게 엉뚱한 유혹을 불러올 토양이 점점 갖추어지고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제 더 이상 &apos;새(新)&apos; 정치만 갖고 전선을 교란시킬 때가 아니다. 대한민국 시민들은 매번 실력과 신뢰가 있는 정치인을 고대해 왔다. 그리고 지금은 적어도 정치언어 차원에서는 남북한 정권 담당자들의 새(鳥)대가리 같은 무능한 때문에 ― 하늘을 나는 조류분들이여 나의 망언을 용서하시라! 하지만 이 표현은 내가 아니라 경희대 김윤철 교수가 먼저 썼음을 잊지 마시길! ― 남북한 공멸의 기운이 6ㆍ25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지금은 새정치가 아니라 총체적 난국에 빠진 대한민국 시민에게 분명한 지표와 자신감을 줄 깃발이 필요하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민주당에 대한 기대는 그다지 크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밟고 지나가기도 그렇다. 쑥대밭이 된 진보정치권을 저 멀리 두고 돌아가기도 그렇다. 안철수 의원에게 본의 아니게 정치적 기회를 열어준 노회찬 전 의원의 통한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제 &apos;철수 생각&apos;이 아니라 &apos;철수의 말과 실천&apos;이 분명해질 때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임기 시작이 반년도 안 된 신임 대통령을 두고 앞으로 얼추 5년간 우리 유권자들을 또 다시 그 덜 깬 화두로 지치게 하지 말기 바란다. 있다면 지금 당장 발휘해야 할 것이, 억울한 사람 묻어두면서까지 선택해준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신뢰와 실력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blockquote&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apos;시민정치시평&apos;이란 제목으로 &amp;lt;프레시안&amp;gt;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quot;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quot;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apos;시민정치시평&apos;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quot;&gt;http://www.pressian.com/&lt;/a&gt; &apos;시민정치시평&apos; 검색  &lt;br /&gt;&lt;br /&gt;*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lt;/span&gt;&lt;/p&gt;
&lt;/blockquote&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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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평 161] &quot;바지 없이 윗도리만 말쑥한 박근혜式 &apos;맞춤형 복지&apos;&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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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3-04-25T11:31:26+09:00</published>
      <updated>2013-04-25T11:32:43+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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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이담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시민정치시평 161]&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quot;바지 없이 윗도리만 말쑥한 박근혜式 &apos;맞춤형 복지&apos;&quot;&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 폐기 위기에 처한 기초생활보장제&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문진영 서강대 교수&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일반적으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돋보이게 하는 정치적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브랜드화 하는 작업은 정치적으로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소위 시대의 정신을 담은 브랜드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정책적 지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행위는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정권 수뇌부에 의해서 확정된 브랜드는 전(全) 정책의 영역으로 확산되는데, 복지정책도 예외는 아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우리나라의 역대 정권만 하더라도, 국민의 정부에서는 생산적 복지, 참여정부에서는 참여복지,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능동적 복지 등을 주창하여 나름대로 정권의 성격에 맞게 복지정책을 규정해왔다. 하지만 현 정부는 자신의 정권적 속성을 표방하는 브랜드로서 맞춤형 복지를 주창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 틀에 맞춰 기존의 복지제도를 분해하고 해체하여 재구조화하려는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러한 현 정부의 맞춤형 복지의 첫 번째 실험대가 바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주지하다시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헌법에서 규정한 &apos;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apos;를 제도적으로 구현한 최초의 법률로서, 이 법을 통해서 비로소 국민은 정부로부터 최저생활을 보장받게 되었다. 바야흐로 우리 사회에서도 &apos;사회권의 시대&apos;가 열린 셈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한번 누린 권리는 절대 양보하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는 &apos;불가역성의 명제&apos;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고, 지난 14년간 한국 사회 최후의 안전망으로 굳건한 버팀목 역할을 했던 &apos;기초생활의 보장&apos;이 현 정부의 맞춤형 복지에 의해서 흔들리고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현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기존의 저소득층을 위한 급여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한다고 공언했고, 개편을 이끄는 두 개의 축으로 &apos;생활영역별 맞춤형 급여체계 구축&apos;과 &apos;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apos;을 설정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급여체계의 개편에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특히 맞춤형 급여체계가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던 &quot;All or Nothing(수급자는 7종 급여를 받지만 수급자에 탈락하면 아무 급여도 받지 못하는 현상)&quot;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편의 전망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 현실세계에서는 &apos;기초생활의 보장&apos;이라는 대의를 저버리는 매우 왜곡된 형태로 진행될 우려가 짙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러한 우려의 이면에는 &apos;맞춤형 급여체계&apos;와 쌍을 이루는 다른 한 축인 &apos;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apos;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말이 좋아 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이지, 실제로는 기초수급자를 근로능력 유무 기준으로 구분하여, 근로능력자는 생계급여 대신 자활급여 등만 지원하는 별도의 급여체계가 될 공산이 매우 크다. 이러한 우려는 인수위에서 근로능력자를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테두리에서 보호하지 않고 별도로 &apos;(가칭) 빈곤예방 및 탈출을 위한 저소득층 자립지원법&apos; 제정을 추진한다고 공언하면서 현실화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근로능력 유무와 상관없이 기초적인 생계를 보장하는 최후의 소득안전망으로 기능해왔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대는 막을 내리고, 전통적인 노동 불능자들만을 최소한으로 보호했던 생활보호제도의 시대로 후퇴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정부의 맞춤형 복지제도와 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은,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해도 결국 핵심은 근로능력이 있는 가구원이 포함된 빈곤한 가구에게 최저생계를 영위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고, 이는 결국 전근대적인 생활보호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게다가 인수위의 제안대로,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생계, 주거, 교육, 의료급여별로 독자적인 선정기준과 지원내용을 가진 &apos;맞춤형 개별급여 체계&apos;로 전환할 경우, 이 과정에서 현행 기초생활 수급자 중 일부는 수급을 박탈당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 사회에서 &apos;국민의 기초생활 보장&apos;이라는 대의가 부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초생활의 보장이 부정된 맞춤형 복지제도는 &apos;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apos;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마치 아랫바지는 제대로 입지 못한 채, 윗도리만 맞춤형으로 멋있게 갖추어 입은 꼴불견의 형상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 앞으로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하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 논란을 지켜보면서 드는 더욱 큰 우려는, 개편의 내용보다도 그 방식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한국 복지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이렇게 중대한 제도적 변화를 염두에 두고 있으면서 국민들을 상대로 공청회 한번 개최하지 않은 것은 책임 있는 정부의 태도가 아니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는 온갖 오해와 왜곡의 온상이 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현 정부는 맞춤형 복지제도로의 개편안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밝히면서, 이해를 구할 것이 있으면 구하는 소통의 자세를 갖기를 바란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blockquote&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apos;시민정치시평&apos;이란 제목으로 &amp;lt;프레시안&amp;gt;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quot;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quot;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apos;시민정치시평&apos;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quot;&gt;http://www.pressian.com/&lt;/a&gt; &apos;시민정치시평&apos; 검색  &lt;br /&gt;&lt;br /&gt;*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lt;/span&gt;&lt;/p&gt;
&lt;/blockquote&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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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평 160] FTA 시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title>
      <id>http://www.peoplepower21.org/1015062</id>
      <published>2013-04-22T11:36:46+09:00</published>
      <updated>2013-04-22T11:43:54+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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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이담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시민정치시평 160]&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 style=&quot;font-size:large;&quot;&gt;FTA 시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lt;strong&gt;: &apos;좋은&apos; FTA를 위하여!&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한성안 영산대 교수&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제도는 필수적이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인간은 로빈슨 크루소처럼 홀로 살지 않고 집단을 이루며 생활한다. 여기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조정하기 위해 인간은 다양한 장치를 설계한다. 물론 그러한 장치가 합리적일 수 있지만 비합리적인 것도 적지 않다. 대략 이를 &apos;제도&apos;라고 부르는데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에게 제도는 필수적인 존재다. 누군 자연이나 무정부 등 &apos;제도적 진공상태&apos;를 동경하나 제도 없이 인간은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그 때문에 그루치(A. Gruchy)는 인간을 제도적 존재(Homo institutionalis)로 부른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대표적인 제도적 장치로 국가를 꼽을 수 있다. 그것은 법, 정치체제 등 &apos;형식적&apos; 제도를 마련한다. 국가는 강력한 권위와 폭력으로 사회를 유지한다. 하지만 모든 제도가 이처럼 형식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습관, 세계관 등 문화는 형식화되지 않는 제도다. 진화경제학자 소스틴 베블런(Th. B. Veblen)은 경제생활에서 차지하는 문화와 같은 &apos;비형식적&apos; 제도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문화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사회구성원을 결속시켜 준다. 국가와 문화는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필수적인 제도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제도는 국민적으로 다르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그런데 역사적 경험과 기술적 조건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문화는 국민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로써 서로 다른 국민적 문화가 등장한다.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된 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국가의 경우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동일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도 집단 간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일어난다. 그러한 갈등의 해결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국가도 국민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사는 방식이 같지 않는 것과 같이, 그 나라에 특수한 갈등해결방식이 다른 나라의 그것과 같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특히 문화적 코드가 작용할 때 더욱 그렇다. 국민문화와 국민국가, 곧 국가 간 상이한 제도가 형성되는 동시에 그것의 변화가능성도 극히 제한되는 것이다. 이로써 한 국민국가의 제도는 &apos;경로의존적으로&apos; 진화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한미 FTA는 나쁜 제도를 강요한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제도는 인간의 행동을 제약하거나 촉진한다. 그것은 교역과 같은 경제적 상호작용방식은 물론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독과점금지제도처럼 형식화된 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면 대기업의 불공정거래관행이 제약을 받게 되고 비형식적 제도 중 사회적 연대의 문화가 지배적이면 시민들은 조세납부에 적대적이지 않게 된다. 아무도 이러한 제도들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그것을 &apos;좋은&apos; 제도라고 부를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물론 모든 제도가 이처럼 공정성과 사회적 연대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와 달리 지난 이명박정부의 제도처럼 오히려 그것을 훼손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제도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사회생활을 짐승의 무리로 변질시킨다. 그것은 인류의 지성들이 고민해 오고, 많은 사람들이 피 흘려 건설하고자했던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apos;나쁜&apos; 제도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제도는 자연법칙에 의해 생성되었거나 외부주체에 의해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행위자의 조형물이다. 따라서 한 나라가 좋은 제도를 취할 지 나쁜 제도를 취할 지 여부는 그 나라의 집단적 행위자들의 문화적 습성과 정치행위에 좌우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같은 자본주의라도 제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OECD 국가들에 관한 제도경제학자들의 실증연구결과들은 최대 여섯 가지의 국민적 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데 가장 간단하게 2개의 제도구조로 구분할 수 있다. 예컨대, 유럽에 지배적인 &apos;조정시장경제&apos;와 미국을 필두로 하는 &apos;자유시장경제&apos;가 그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유럽식 조정시장경제는 자유시장이 적지 않은 결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 위에 서 있지만, 미국의 자유시장경제는 자유시장이 완벽하다는 철학 위에 서 있다. 미국식 제도는 공공성의 영역을 끝없이 시장관계로 편입시키고 국가의 역할을 축소시키고자 한다. 그것의 결과는 민영화와 제도의 공동화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유럽사회에서 사람들은 비교적 평등하게 산다. 반면 미국의 불평등도는 OECD 국가 중 가장 후진국에 해당하는 멕시코, 터키 등과 함께 가장 높다. 유럽에 살아보면 알겠지만 그곳은 사회보장은 물론 의료와 교육의 측면에서 가난한 사람들도 비교적 살 만한 곳이다. 약 20년 전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나는 당시 돈으로 한 학기에 약 2만5000원의 학비만으로 독일대학의 석·박사과정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지방의 한 작은 대학에서 불우한 환경 때문에 올바른 공부경험을 해 본적이 없는 학생들에게 학문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그것만이 그 제도에 보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미국사회의 의료보험제도는 형편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병을 고치기보다 참아야 한다. 하지만 질병의 고통은 인간에게 평등하다. 유학시절 내 아들은 갑작스런 사고로 거의 죽을 뻔 했다. 하지만 가난한 우리는 최고 수준의 국립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아들은 지금 훌륭한 시민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출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노력의 결과를 사회에 환원하고자하는 생각이 투철하다. 사회적 연대의 혜택을 톡톡히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불된 치료비 액수가 너무 작아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는 독일의 이런 제도를 매우 &apos;좋다&apos;고 생각한다. 이런 좋은 제도에 비하면 미국의 국민적 제도는 매우 나쁘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FTA를 거부할 수 없다면 &apos;좋은&apos; FTA를 설계하자&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최근 몇 년간 국가간 자유무역협정(FTA)이 활발하게 체결되고 있다. FTA는 문자 그대로 국가간 교역의 자유화와 확대를 표방한다. 하지만 FTA는 교역의 자유화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한 나라의 산업구조, 산업조직, 작업방식은 물론 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FTA는 교역보다 오히려 제도의 변화와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의 FTA 논쟁은 지나치게 교역규모의 측면에 치중하고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한미 FTA는 국가의 약화와 제도의 공동화를 강하게 요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우리의 제도를 미국식 제도에 대해 맞추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식 제도는 &apos;나쁜&apos; 제도다. 그러한 제도는 인간에게 좋지 않다. 이런 사정 때문에도 우리는 FTA를 특별히 제도적 관점으로부터 조명할 필요가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국가간 교역이 이루어지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자연스런 현상이다. 나아가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그 규모가 증가하는 것도 거의 법칙적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apos;이후 단계&apos;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교역의 자유화를 막기도 힘들 뿐 아니라 막을 필요도 없다. 2012년도 세계무역규모 8위를 차지하는 한국이 그러한 흐름을 거역하는 것은 별 설득력이 없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경제활동의 최종 대상은 사람이며, 최종 목적은 사람들의 좋은 삶과 존엄이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나쁜 삶으로 몰아가며, 궁극적으로 그 존엄을 모욕하는 미국식 제도가가 우리의 좋은 삶을 실제로 위협하고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하지만 상이한 국민적 제도가 반드시 같아질 필요는 없다. 뿐만 아니라 그것의 경로의존성 때문에 같아지기도 어렵다. &apos;벤치마킹&apos;은 더 큰 조정비용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제도는 인간의 산물이다! &apos;국민적 행위자&apos;들의 문화와 정치행위가 전제되는 한 그들이 미국식 국민제도에 순응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미국의 나쁜 세계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가능성도 희박하다. 마지막으로 미국식 FTA가 지향하는 &apos;제도적 진공상태&apos;는 제도적 존재로서의 인간본성과도 어긋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교역의 효과는 FTA의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듯이 법칙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교역의 자유화로 인해 우리 제도가 미국식 나쁜 제도로 될 수 있지만 유럽의 좋은 제도로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도 국민건강보험제도와 같은 좋은 제도가 있지 않는가! 그리고 스웨덴, 네덜란드 혹은 독일처럼 개방경제와 좋은 제도가 공존하는 나라들도 많다. 이러한 나라들의 경제는 매우 개방화되어 있다. 하지만 적극적인 교육정책과 직업훈련정책으로 노동시장의 안정을 유지할 뿐 아니라 노동자의 혁신역량도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또 복지정책으로 사회안전망을 마련해 주고 있지 않은가. 개방이 필연적으로 국가역할의 약화와 제도의 공동화, 나아가 나쁜 경제로 이어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개방과 좋은 제도, 좋은 정부 그리고 좋은 경제는 양립할 수도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제 무작정 반대하기보다 &apos;좋은&apos; FTA를 생각해 봄이 어떨까? 좋은 FTA! 그것은 FTA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하는 좋은 경제로 만들 의지를 우리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좋은 FTA는 시민들의 성찰과 국가의 제도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시민들이 깨어 있지 못하고 국가의 제도적 장치가 훼손될 때 그것은 나쁜 FTA로 진화하여 공동체구성원들에게 나쁜 삶을 얼마든지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blockquote&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apos;시민정치시평&apos;이란 제목으로 &amp;lt;프레시안&amp;gt;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quot;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quot;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apos;시민정치시평&apos;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quot;&gt;http://www.pressian.com/&lt;/a&gt; &apos;시민정치시평&apos; 검색  &lt;br /&gt;&lt;br /&gt;*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lt;/span&gt;&lt;/p&gt;
&lt;/blockquote&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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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과 세계》를 소개합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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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3-04-01T14:19:13+09:00</published>
      <updated>2013-04-25T14:24:30+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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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이담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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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008080;&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시민과 세계》&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참여사회연구소는 2002년부터 반년간 학술잡지 《시민과 세계》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시민과 세계》는 시민사회의 진보적 공론지로서 시민적 진보와 시민민주주의를 기치로 한국사회의 현재 위치와 시대정신을 분석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며, 시민운동의 생생한 동향과 전망을 소개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민과 세계》는 참여사회연구소의 주된 공적 관심사인 시민정치, 시민민주주의, 공적 연대(공공성) 등의 주제에 대해 학자와 활동가,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는 공간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008080;&quot;&gt;《시민과 세계》 편집위원회&lt;/span&gt;&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편집인 : 이병천, 홍윤기&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편집주간 : 장은주&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편집위원 : 김윤철, 신정완, 신진욱, 양정무, 윤홍식, 이양수, 이항우, 장지연, 전창환, 정준호, 정태석, 조흥식, 최현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객원편집위원 : 구갑우, 권혁범, 김상봉, 안병진, 이상호, 홍일표&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lt;/span&gt;&lt;/p&gt;
&lt;div&gt;
&lt;object style=&quot;width:800px;height:600px;margin-left:auto;margin-right:auto;&quot; width=&quot;100&quot; height=&quot;100&quot; data=&quot;http://static.issuu.com/webembed/viewers/style1/v1/IssuuViewer.swf?mode=embed&amp;amp;layout=http%3A%2F%2Fskin.issuu.com%2Fv%2Flight%2Flayout.xml&amp;amp;showFlipBtn=true&amp;amp;documentId=130418051638-4bf2941a835a4c84a90518a1380146d5&amp;amp;docName=sise&amp;amp;username=pspd&amp;amp;loadingInfoText=%EC%8B%9C%EB%AF%BC%EA%B3%BC%20%EC%84%B8%EA%B3%84&amp;amp;et=1366262287764&amp;amp;er=89&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param name=&quot;allowScriptAccess&quot; value=&quot;never&quot; /&gt;&lt;param name=&quot;allowNetworking&quot; value=&quot;internal&quot;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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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평 159] &quot;정몽준, 국민 3분의 2가 핵무장 찬성한다고?&quot;</title>
      <id>http://www.peoplepower21.org/1013772</id>
      <published>2013-04-18T11:24:51+09:00</published>
      <updated>2013-04-18T16:20:36+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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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이담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시민정치시평 159]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lt;strong&gt;&quot;정몽준, 국민 3분의 2가 핵무장 찬성한다고?&quo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lt;strong&gt;: 개구리와 전갈이 함께 강을 건너는 법&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strong&gt;좌세준 변호사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4월 1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세계군축행동의 날(Global Day of Action on Military Spending)을 알리는 기자회견과 퍼포먼스가 있었다. 참가자들은 모두 &quot;총 대신 꽃&quot;, &quot;남북 모두 총을 내리자&quot;라는 손팻말을 들었다. 유난스레 여러 날 계속되는 꽃샘추위 속에서도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은 화사하게 피었다. 손팻말을 든 사람들의 웃음은 꽃보다 더 화사하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apos;세계군축행동의 날&apos;은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세계 군사비 현황을 발표하는 4월 15일에 맞추어 진행된 이날의 평화행동이 여느 해보다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지금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이 맞고 있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때문이다. 이날 발표된 시민사회-국회 공동성명은 &quot;한반도의 높아져가는 전쟁의 위협 속에서 평화의 목소리&quot;를 전하고 있다. 공동성명은 &quot;북한의 즉각적인 핵무장 중단&quot;을 촉구하고, &quot;그 누구의 것이든 핵무기를 탑재한 무기들이 우리의 영토, 영해, 영공에 배치되어서는 안 된다&quot;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그런데 지난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조성된 고도의 긴장상태 속에서, 난데없는 &apos;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론&apos;이 제기되고 있다. 1991년 11월 &quot;이 시간 이후 우리나라 어디에도 단 하나의 핵무기도 존재하지 않는다&quot;는 노태우 대통령의 발표와, 같은 해 12월 31일 남과 북이 판문점에서 합의한 &apos;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apos; 이후 철수된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자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의 선두에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이 있다. 정몽준 의원에게는 &apos;전 대표&apos;라는 호칭이 항상 따라붙는다. 정 의원은 현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의 전 대표였다. 고로 본인의 의사 여부와 무관하게 그의 주장에는 힘이 실린다. 일부 언론이 박자를 맞추고, 새누리당 안에서 동조하는 목소리가 등장했다. 심재철, 원유철 의원은 약속이나 한 듯 정몽준 전 대표가 주장한 &apos;제한적 핵무장론&apos;까지 들고 나온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사실 정몽준 의원의 &apos;전술핵 재배치&apos;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몽준 의원은 2011년 2월 2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quot;북핵이 폐기되는 순간까지 최소한 전술핵무기의 재반입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quot;라는 주장을 한다.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정 의원의 질문에 대해 &quot;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정부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quot;고 답변한다. 공교롭게도 김관진은 현 정부의 국방부장관이기도 하다. 정몽준 의원은 대정부질문 한 달 후인 2011년 3월 29일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강연을 한다. &apos;한국의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apos;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정 의원은 &quot;저를 포함한 일부는 한반도에 전술핵무기의 재도입을 요구하고 있다&quot;는 말로 전술핵 재배치를 다시 주장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최근 정 의원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 제한적 핵무장론도 2년 전의 패턴을 그대로 닮았다. 지난 2월 19일 아산정책연구원이 개최한 &apos;아산핵포럼 2013&apos; 개회사에서 정 의원은 2년 전과 같은 주장을 한다. 정 의원은 4월 9일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이 워싱턴에서 주최한 &apos;2013 국제 핵 정책 콘퍼런스&apos; 기조연설에서 &quot;핵무장한 불량국가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당하는 한국&quot;에 대해서는 전술핵재배치는 물론 NPT를 탈퇴하고 제한적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연설 제목은 &apos;한반도에 대해 생각할 수 없는 것 생각하기&apos;(Thinking the Unthinkable on the Korean Peninsula)였다고 한다. 연설 한 달 전인 3월 8일에 있었던 북한의 &apos;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apos; 파기가 정몽준 의원에게 생각할 수 없는(Unthinkable) 것을 생각하게(Thinking)했던 것일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정몽준 의원은 4월 14일자 &amp;lt;조선일보&amp;gt;에 기고한 &apos;북핵 해결할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apos;라는 제목의 글에서 &quot;국민의 3분의 2가 전술핵이나 자체 핵무장에 찬성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습관적으로 핵 보유나 핵무장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quot;라고 썼다. 정몽준 의원이 말한 &apos;국민의 3분의 2&apos;가 어떤 자료에 근거한 것인지 모르지만, 나는 나머지 &apos;3분의 1&apos;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말한다. 정몽준 의원이 기고한 글의 제목에는 100% 동의하지만, 내용은 한마디로 &apos;시대착오&apos;적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 글에서 &apos;전술핵 재배치&apos;론의 허구성이나 무모함을 구구하게 재론할 필요가 있을까. 누구보다도 미국 정세에 밝다할 수 있는 정몽준 의원이 현 오바마 행정부의 &apos;핵 없는 세계&apos;라는 외교정책의 모토를 모를 리가 없다. 전 세계에 배치되어 있는 전술핵의 전향적 감축, 동맹국에 대한 확장억지수단으로 전술핵보다는 전략핵을 활용하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확고한 입장은 워싱턴 정가의 상식이 아니던가(물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apos;잠복한 매파들&apos;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철수된 전술핵무기가 한반도에 재배치될 경우 발생할 중국에 대한 자극이나, 북한이 적대적 핵무장 강화의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 등은 생각해보지 않았단 말인가. 혹시라도 &apos;공포의 균형&apos;을 통해 대북 핵 억지력을 위한 목표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것이라면, 무기라고 하는 것, 그것은 본질적으로 &apos;공격용&apos;이지 &apos;방어용&apos;은 없다는 사실과, 전술핵무기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1960년대 초반에 이미 이를 간파한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던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요컨대 핵 &apos;억지력&apos;의 논리는 완전히 비논리적이다. (중략) 철통같은 핵 격납고와 지하 방공호가 여기저기 늘어가기만 하는데, 이것은 적으로 하여금 우리의 방위능력이 탁월하다고 판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한 무기로 우리 편을 공격하도록 자극하는 결과를 빚게 된다. -(&amp;lt;머튼의 평화론&amp;gt; 토마스 머튼, 조효제 옮김, 분도출판사. 69쪽.)&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정몽준 의원은 지난 2월 19일에 한 &apos;아산핵포럼 2013&apos; 개회사에서 &apos;개구리와 전갈&apos;의 우화를 인용하며 전술핵 재배치론과 핵무장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정 의원이 인용한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color:#808080;&quot;&gt;시내를 건너가려던 전갈이 있었습니다. 헤엄을 칠 수 없는 전갈은 개구리에게 자기를 업어서 시내를 건너가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하지만 개구리는 전갈에게 &quot;너를 등에 업고 가면 날 찔러 죽일 거잖아&quot;라며 거절했습니다. 전갈은 &quot;내가 왜 그렇게 하겠어? 네가 죽으면 나도 빠져 죽는데&quot;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말을 믿은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태운 채 헤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내 중간에 이르렀을 때 전갈은 개구리를 찔러 죽였습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면서 개구리가 소리쳤습니다. &quot;왜 그랬어? 우리 둘 다 죽게 됐잖아!&quot; 전갈이 대답했습니다. &quot;나도 어쩔 수 없어. 그게 내 본능이야.&quo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개구리가 남한이고 전갈이 북한이라면, 정몽준식 우화 인용법에 따른다면, 개구리와 전갈은 영원히 함께 강을 건널 수 없다. 전갈의 &apos;본능&apos;이 개구리를 독침으로 찔러 죽이는 것이라는데 어찌하겠는가. 허나, 같은 우화를 어린이집을 다니는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quot;개구리와 전갈이 함께 강을 건너는 법&quot;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아마도 이런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color:#808080;&quot;&gt;시내를 건너가려던 전갈이 있었습니다. 헤엄을 칠 수 없는 전갈은 개구리에게 자기를 업어서 시내를 건너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개구리는 전갈을 업고 시내를 건널 때 전갈이 등을 찔러 죽일까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개구리는 꾀를 내어 전갈에게 잠자는 약을 먹인 다음 전갈의 꼬리에 있는 독침을 나뭇가지로 묶어 전갈이 등을 찌르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개구리들을 불러모아 전갈의 날카로운 집게발 두개도 꽁꽁 묶었지요. 개구리는 잠이든 전갈을 등에 태운 채 헤엄치기 시작했습니다. 시내 중간에 이르렀을 때 잠이 깬 전갈은 개구리가 자신을 떨어뜨릴까봐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개구리는 전갈을 업고 시내를 건넜지요. 개구리 덕분에 무사히 시내를 건넌 전갈은 개구리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개구리와 사이좋게 살았다고 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정몽준 의원이 쓴 글의 제목처럼 북핵을 해결할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 본성만을 탓하면 개구리와 전갈이 함께 강을 건너는 것은 영원히 생각할 수 없는(Unthinkable) 일이다. 이 땅에서 우리들 세대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개구리와 전갈이 함께 강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야만 한다. 남과 북은 이미 작은 시내를 함께 건넌 적이 있다. 20여 년 전 &apos;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apos;, 이후 두 차례의 남북 정상의 만남에서 이루어졌던 &apos;신뢰&apos;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apos;한반도 신뢰프로세스&apos;에 담겨야 할 내용은 바로 이런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 화사한 봄날 피어난 꽃보다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라. &apos;핵무기&apos;, 그건 영원히 생각해서는 안 될 물건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lt;br /&gt;&lt;/span&gt;&lt;/p&gt;
&lt;blockquote&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apos;시민정치시평&apos;이란 제목으로 &amp;lt;프레시안&amp;gt;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quot;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quot;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apos;시민정치시평&apos;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quot;&gt;http://www.pressian.com/&lt;/a&gt; &apos;시민정치시평&apos; 검색  &lt;br /&gt;&lt;br /&gt;*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lt;/span&gt;&lt;/p&gt;
&lt;/blockquote&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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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평 158]    &apos;산재사망 벌금&apos; 한국 50만 원 vs 영국 7억 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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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3-04-15T13:19:22+09:00</published>
      <updated>2013-04-18T16:21:01+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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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이담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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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시민정치시평 158]&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lt;strong&gt;&apos;산재사망 벌금&apos; 한국 50만 원 vs 영국 7억 원 &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lt;strong&gt;: &quot;일 하다 다치고 죽는 건 어쩔 수 없다&quo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작년과 올해 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사업장 사고가 연달아 터지고 있어 노동자는 죽어나가고, 시민은 불안에 떨고 있다. 2001년부터 2011년 까지 산재사망 노동자는 2만7370명이다. 해마다 2488명의 노동자 즉, 하루에 7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고 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수많은 노동자 죽음이 매일 매일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OECD 산재사망 만인률 1위를 고수하고 있고, 교통사고 보다 산재사망 만인률이 높다. 지난 10년간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도 154조1383억 원이다. 2011년에도 약 18조1000억 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는데, 이는 연봉 2000만 원 노동자를 90만 명이 넘게 고용할 수 있는 금액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더욱이 정부 산재통계는 산재보상 통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산업안전공단의 &amp;lt;2012 응급실 기반 직업성 원인 조사 연구&amp;gt; 보고서에 의하면 산재 사망노동자 중에서 34%만이 산재보험으로 처리했다는 보고도 있어, 그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산재보상에서 제외되는 퀵 서비스, 건설기계, 화물운전자등 특수 고용노동자 산재사망이나, 직업성 암등 직업병인지도 모른 체 죽어가는 산재사망까지, 그야말로 현재의 산재사망 통계조차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한국 산재사망의 심각성은 전근대적인 사고이며, 산재사망이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되고, 반복적인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2년 전 10만 원짜리 안전펜스 미설치로 용광로에 빠져 청년 노동자가 사망한 것처럼 대부분의 사고가 이런 기본조치가 안 되어 발생하는 전근대적인 사고이다. 글로벌 기업 삼성이나, 대림산업에서 1000건, 2000건의 산안법 위반이 적발되었다. 글로벌 대기업이지만 안전관리는 3류 기업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둘째, 위험은 전가하고, 책임은 빠져나가는 구조에서 발생하는 재벌 대기업 원청사에의 하청 노동자 산재사망이 많다. 산재사망 중 건설업의 90%, 조선업의 65%가 하청 노동자 산재사망이다. 지난 10년 동안 643명이 산재 사망한 건물청소관리업 등 서비스업 하청도 심각하다. 원청 업체 관리자 대상 조사에서는 하청을 주는 이유의 40.8%가 유해위험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원청은 산재예방이나 산재사망의 책임에서 자유롭다. 셋째, 같은 기업,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대우조선해양은 2009년 6명, 2010년 5명의 산재사망이 있었는데, 작년 연말부터 최근 4개월 동안 또 다시 3명이 사망했다. 현대제철 당진 현장에서는 최근 7개월 동안 6명이 사망했다. 한 달에 한 명씩 같은 현장에서 노동자가 죽어나가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현장에서 노동자는 불안에 떨고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전근대적이고, 반복적인 산재사망의 가장 큰 원인은 새털 보다 가벼운 처벌이다. GS건설은 2006년 9명, 2010년 14명의 산재사망으로 두 번이나 시민사회단체가 &apos;살인기업&apos;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GS건설은 2012년 경복궁 미술관 폭발 화재사고로 또 다시 4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했다. 하지만 GS건설이 받은 벌금은 200만 원이다. 2008년 화학물질 관리 방치로 유증기가 폭발한 이천 냉동창고 사고도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사업주 벌금은 2000만 원으로 1명당 50만 원 꼴이다. 2012년 이마트에서 대학 등록금을 벌기위해 알바를 했던 청년 노동자를 포함 4명의 노동자가 질식사 했다. 그러나 이마트는 벌금 100만 원에 그쳐, 1명당 25만 원 꼴이다. 2012년 8월 LG화학 청주공장에서 다이옥신 폭발로 8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다, 사고조사에서 설계변경을 하면서 안전한 바닥재 도색을 하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3명의 구속영장 신청에 검찰과 법원에서 각각 1명씩 영장 기각으로 결국 말단의 재료팀장 1명만 구속되었다. 최근 3년간 중대재해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송치되어 처리된 2045건 중 무혐의, 각하 등으로 사업주 처벌이 없었던 건이 32%에 달한다. 몇 십, 몇 백만 원 수준의 벌금형이 64%이고, 징역형은 62건으로 0.03%에 불과한데, 그나마 실형은 없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산재사망에 대한 처벌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 가고 있는 가운데, 외국의 처벌 제도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산재사망을 기업에 의한 살인행위로 보고 관련법을 제정한 국가는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이다. 캐나다는 웨이스트레이 광산에서 26명이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apos;NO MORE WESTRAY&apos; 캠페인이 벌어졌고, 2003년 &apos;단체의 형사책임에 대한 개정안&apos;이 제정되었다. 호주의 수도 캔버라가 있는 준주는 건설노조를 중심으로 법 제정 투쟁이 전개되어, 2003년에 &apos;산업 살인법&apos;이 도입되었다. 두 법안 모두 법인인 기업뿐 아니라 기업의 최고임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했고, 적용 대상 노동자도 제한이 없어, 다단계 계약이 존재할 경우 원청 사업주를 처벌 할 수 있다. 또한, 호주의 경우에는 공공부문의 산재사망에 대해 주무 장관이나 수상도 기소가 가능하고, 벌금의 최고액은 60억에 달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천 냉동창고 사고에서 건설노동자 1명 사망에 부과한 벌금은 50만 원이지만, 영국의 건설노동자 산재사망에 부과한 벌금은 6억9000만 원이다. 매년 600~700명으로 영국보다 11배나 많은 건설노동자 산재사망의 이유이다. 건설업 자체의 산업적 위험도가 이유가 아닌 것이다. 영국이 7억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고, 산재사망 만인률이 한국보다 14배가 적은 이유는 2007년에 제정된 &apos;기업살인법&apos;이다. 영국도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 조항이 있고, 벌금 부과도 많지만, 최고 책임자를 처벌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영국의 기업살인법 적용 대상은 기업과 정부기관, 기업의 최고 경영층이 대상자이다. 법 위반 시 벌금의 상한선이 없는데, 의회 지침에 의하면 기업의 1년 총 매출액의 5%를 하한선으로 대략 10% 범위 내에서 부과된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에서는 벌금 부과 상위 랭킹 업체 10개를 발표했는데, 1위가 BP Products North America로 약 226억9000만 원이고, 2위는 IMC Fertilizer, Angus Chemical로 약 124억2000만 원이다. 2008년 미국의 안전보건 감독 실시 사업장 121개에 부과한 벌금도 업체당 1억1100만 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천국이라고 하는 미국은 이마저도 미흡하다고 판단,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노동자 보호법안 (PAWA)을 제출했다. 이는 고의적 산안법 위반 노동자 사망 시 10년 형, 반복 위반 시에는 20년형을 부과하는 법안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 66조의2에는 산재사망에 대한 처벌을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정해져 있다. 외국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그나마 현실에서는 이마저 무용지물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갖는 법리적 한계 때문에 그 법의 형량을 높이는 것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것이고, 그것이 외국의 기업살인법 제정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quot;일하다가 다치고 죽는 것은 어떨 수 없는 것 아닌가&quot;라는 산재사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영국, 호주, 캐나다의 기업 살인법 제정이 중요한 것은 산업안전보건법 처벌 조항의 한계를 넘어선 강력한 처벌 조항이 도입되어 실제 산재 사망을 낮추는데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 제정의 과정에서 전개된 &quot;산재사망은 기업에 의한 살인행위&quot;라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현재의 산재사망에 대한 정부나 법원 검찰의 인식은 참으로 안타깝다. 2012년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2011년부터 2012년 7월까지 1298명의 산재사망에 대하여 노동부가 사업주를 구속 기소 의견으로 낸 건은 단 한건도 없었다. 산재사망 처벌 관련하여 32%의 사업주에 대해 무혐의 등의 처분을 내리고, 0.03%만이 징역형을 선고한 것은 법원과 검찰의 산재사망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물청소를 하지 않아 분진과 가스가 가득 찬 사일로로 용접 작업을 지시받고 들어가야 했던 여수 산단 건설노동자. 불산 안전 교육은 원청만 받고, 불산이 누출된다는 보고를 계속 했지만 원청 작업지시가 늦게 떨어져서 밤새 몇 번이나 보수작업을 하다가 결국 사망한 삼성 하청 노동자. 이들의 사망은 결국 기업에 의한 살인이다. 산재사망에 대한 처벌 강화 이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lt;br /&gt;&lt;/span&gt;&lt;/p&gt;
&lt;blockquote&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apos;시민정치시평&apos;이란 제목으로 &amp;lt;프레시안&amp;gt;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quot;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quot;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apos;시민정치시평&apos;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quot;&gt;http://www.pressian.com/&lt;/a&gt; &apos;시민정치시평&apos; 검색  &lt;br /&gt;&lt;br /&gt;*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lt;/span&gt;&lt;/p&gt;
&lt;/blockquote&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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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평 157]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apos;색깔론&apo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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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3-04-11T12:13:43+09:00</published>
      <updated>2013-04-11T12:39:33+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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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지렁이이</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시민정치시평 157] &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나는 민주당의 노랑-초록이 싫다 &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apos;색깔론&apos;&lt;/span&gt;&lt;/strong&gt;&lt;/p&gt;
&lt;p&gt; &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lt;/span&gt;&lt;/strong&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나는 빨간색을 싫어한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빨간색을 싫어한다. 좀 오래된 통계이지만 1998년 &amp;lt;전국민 색채의식 조사&amp;gt;에서 빨강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색으로 공인되었다. 당시 좋아하는 색깔을 묻는 색채 선호도 조사에서 빨강은 6위였지만, 싫어하는 색을 묻는 색채 혐오도 조사에서는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일반적으로 빨간 색은 젊음과 정렬의 색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지만, 이곳 한국에서만큼은 유독 인기가 없다. 물론 그 이유는 빨강이 이념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적색, 붉은색, 빨강은 곧이어 &apos;빨갱이&apos;를 연상시킬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2002년 월드컵 응원단 붉은 악마 열풍 덕분에 빨간색에 대한 국민적 혐오도는 다소 누그러졌다는 통계도 있지만, 6.25를 겪었거나 유신 치하에서 반공교육을 받은 한국의 중장년층 에게 붉은 색에 대한 거부감은 몸 속 깊숙이 내재된 것으로, 하루아침에 떨쳐 버릴 수 없는 그런 것이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이같이 위험한 사상과 혁명을 상징하는 빨간색이 한국의 보수정당을 대표하는 새누리당의 색채이다. 작년 2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당명을 &apos;새누리당&apos;으로 개정하면서 로고와 심볼의 기본색으로 빨간색을 선택했다[도표1]. 보수의 색채인 파란색을 버리다니 의외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한국의 보수정당을 대표하는 새누리당은 민주정의당부터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개명해왔지만 기본색은 언제나 파란색이었다. 새누리당이 빨간색을 당의 색깔로 선택하면서 &apos;보수=파랑&apos;이라는 공식이 30년 만에 깨진 것이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lt;img src=&quot;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665/894/e3eee1cee75147bf8f4e54b6fe638067.JPG&quot; alt=&quot;[도표1] 한국 보수 정당계의 로고 변천사&quot; width=&quot;737&quot; height=&quot;170&quot; style=&quot;width: 737px; height: 170px; display: block;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quot; /&gt;&lt;sub&gt;[도표1] 한국 보수 정당계의 로고 변천사&lt;/sub&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한나라당이 새로운 당 로고의 기본색으로 빨간색을 선택한 것에 대해 두 가지 답이 가능할 것이다. &apos;뭐든지 할 수 있다&apos;는 자신감의 표출이거나 &apos;이렇게라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apos;는 절박한 자기변신의 제스처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빨간색을 선택할 당시 한나라당의 위기적 상황을 생각한다면 자신감의 발로로 빨간색을 선택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19대 총선에서 패배가 거의 확실시되자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하면서 당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바꿔나가던 때였기 때문이다. 젊음과 정렬의 정당으로 당의 컬러를 바꾸고 싶은 생각도 일견 있었겠지만, 민주정의당 때부터 내려온 파란색의 전통을 버려야 할 만큼 당시 한나라당의 변신의 몸부림은 절박했고, 그것이 당 색깔의 급진전 변화를 이끌어 냈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그러한 노력 때문인지 새누리당은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총선에서 크게 압승했고, 그 여세를 몰아 대선까지 승리했다.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역발상에 가까운 당 색깔의 대변신이 완전히 성공한 셈이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작년 초 새누리당이 보여준 보수 정당의 색채 정체성을 뒤엎을 만한 변화의 힘은 이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3월 22일 청와대는 새로운 로고를 발표했다[도표2]. 이번 새 청와대 로고의 특징은 과거 정부에서 섞어 쓰던 여러 종류의 국·영문 로고를 각각 1개로 통합하면서 동시에 통일감을 주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직전인 이명박 정부와 비교해도 그렇고, 기존 청와대 로고와 비교해 봐도 좌우로 폭을 넓히고 선을 좀 단순화시킨 것 외에 두드러진 차이는 없어 보인다. 원형의 기본틀이 타원형으로 변하면서 선이 단순해졌지만, 형태가 좌우로 퍼지면서 단조로운 선 때문에 좀 빈약해 보이기까지 한다. 청와대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분위기 쇄신의 차원에서 청와대 로고가 바뀌고 있는데, 나아지기는커녕 더 어정쩡해지기만 하는 이런 디자인 사업에 국민의 혈세를 쓰는 게 결코 올바른 일은 아닌 것 같다. 새로운 정부의 비전은 정책과 인사로 드러나야 한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lt;img src=&quot;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665/894/cc1b325f49cb9d7f04094e9e3b6f89d0.JPG&quot; alt=&quot;[도표2] 청와대 로고 변천사&quot; width=&quot;648&quot; height=&quot;154&quot; style=&quot;width: 648px; height: 154px; display: block;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quot; /&gt;&lt;sub&gt;[도표2] 청와대 로고 변천사&lt;/sub&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이제 새누리당의 카운터파트인 민주당의 색깔도 한번 살펴보자. 민주당하면 떠오르는 색은 물론 노란색과 녹색이다. 지난 십 수 년 간 민주당은 이 두 색을 고수해 왔다[도표3]. 노란색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6대 대선 캠페인에서 앞세운 색이었고, 이후에는 열린우리당의 기본색이 되었다. 열린우리당이 2007년 대통합민주당으로 통합되면서 민주당의 색깔은 녹색이 되었다. 녹색은 잘 알려진 대로 심리적 안정을 주는 색채이다. 98년 색채의식조사에서 국민이 선호하는 색으로 꼽혔던 노란색과 함께 안정감을 주는 녹색도 좋은 색임에는 분명하지만, 변화와 개혁을 앞세우는 민주당의 정당 컬러와 그다지 일치하지는 않는다. &lt;/span&gt;&lt;/p&gt;
&lt;p&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lt;img src=&quot;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665/894/d001175303ab6efdb6eeac7962af5ced.JPG&quot; alt=&quot;[도표3] 한국 민주 정당계의 로고 변천사&quot; width=&quot;721&quot; height=&quot;181&quot; style=&quot;width: 721px; height: 181px; display: block;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quot; /&gt;&lt;sub&gt;[도표3] 한국 민주 정당계의 로고 변천사 &lt;/sub&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현재 민주통합당의 기본색은 노란색과 녹색의 혼합이다. 기존 민주계 정당의 색채를 골고루 계승한다는 의미가 달렸다고 본다. 물론 지난 대선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적극적으로 내세운 색채는 노란색이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직설적 선택이었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북한발 위기가 고조되는 어수선한 시국 속에도 5월 4일로 예정된 민주당의 전당대회 일자는 목하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이제 후보도 마감되었고 대선평가위원회가 작성한 대선평가보고서도 발표되었다. 4월 9일 발표된 대선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민주당의 대선패배 요인은 총 6 가지로 △사전 준비와 전략 기획 미흡, △당 지도부의 책임의식과 리더십 취약, △계파정치로 인한 당의 분열, △민주당에 대한 국민적 신뢰 저하, △방만한 선대위 구성, △문 전 후보의 정치역량과 결단력 유약 등이라고 한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여기서 6개의 대선 패배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 &apos;계파정치에 의한 당의 분열&apos;이라는 대목은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또다시 재연될 여지가 있는 요소로 눈에 들어온다. 사실 지난 몇 년간 민주당은 전당대회나 경선에서 예상답안을 뒤집은 의외의 결과를 내놓은 적이 거의 없다. 아마도 2002년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당내 기반을 앞세워 낙승이 예상되었던 이인제 후보를 신예의 노무현 후보가 꺾은 것이 민주통합당이 쓴 마지막 대반전의 역사가 아닌가 한다. 2등이 1등이 될 수 있고, 꼴찌도 노력하면 언제든 1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당이 민주통합당이었고, 그러한 도전자적 정신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그러나 지금껏 민주통합당은 변화와 혁신을 수없이 외쳐 오면서도 언제나 &apos;정통 야당&apos;이라는 명분을 앞세우며 &apos;도로 민주당&apos;으로 귀착되어 왔다.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 보다는 이번 대선평가보고서에서도 인정하듯이 당내 기득권층의 지분 유지가 앞선 부분이 적지 않았고, 그것이 지난 총선과 대선의 패배 요인이 되었다. 이제 또다시 자기혁신을 멈춰 버리고, 계파의 이익을 앞세운다면 민주통합당에게 더 이상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새누리당은 수십 년간 유지해 온 당의 고유색인 파란색을 버리고 빨간색을 당의 색깔로 과감히 선택했다. 이처럼 대지를 가르는 대전환은 원래 정통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트레이드 마크여야 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우물쭈물하다가 이러한 변화의 동력까지도 지금 여당에게 빼앗겨버리고 있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실기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변화의 기운이 깃든 새로운 도전이 이번 민주당의 전당대회에 분명히 담겨야 한다. 이것이 곧 우리나라의 정치를 좀 더 다채로운 희망의 정치로 만드는 길이며, 그래야 국민들의 잿빛 희망도 조금이나마 더 다채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lt;/span&gt;&lt;/p&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서너 주 앞으로 다가온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그간 패배를 거듭해오던 민주통합당이 일신의 기회를 잡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재창당을 불사하는 결연한 의지 속에서 당의 색깔도 한번 바꿔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새로운 민주당의 색깔은 어떤 것도 될 수 있겠지만, 더 이상 녹색이나 노란색은 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br /&gt;&lt;br /&gt;&lt;/span&gt;&lt;/p&gt;
&lt;blockquote&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apos;시민정치시평&apos;이란 제목으로 &amp;lt;프레시안&amp;gt;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quot;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quot;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apos;시민정치시평&apos;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quot;&gt;http://www.pressian.com/&lt;/a&gt; &apos;시민정치시평&apos; 검색  &lt;br /&gt;&lt;br /&gt;*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lt;/span&gt;&lt;/p&gt;
&lt;/blockquote&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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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평 156] 김능환 전 대법관이 일하는 편의점은 안녕하십니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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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3-04-08T13:16:08+09:00</published>
      <updated>2013-04-10T10:30:18+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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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이담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시민정치시평 156]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br /&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김능환 전 대법관이 일하는 편의점은 안녕하십니까?&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large;&quot;&gt;: 불공정한 편의점 가맹계약의 비밀에 대해&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lt;strong&gt;김철호 변호사&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최근 김능환 전 대법관이 편의점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 보도되어 가슴 따뜻한 이야기로 회자된 바 있다. 그런데 만약 그 편의점의 매출이 다소 저조한 편이라서 하루 매출이 100만 원 정도 된다면 김능환 전 대법관은 돈을 얼마나 벌까? 2011년 기준으로 25.8%의 편의점은 하루 매출이 100만 원 이하라 하니 전혀 엉뚱한 상상도 아닐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편의점 물품의 마진율은 27% 정도로 알려져 있으므로, 이 편의점의 하루 매출이익(매출액-납품원가)은 27만 원이다. 여기에서 편의점 가맹본부는 매출이익의 35%를 가맹수수료로 받아가므로 가맹본부가 매일 받아가는 가맹수수료는 9만4500원(=27만 원*35%)이다. 그리고 편의점주는 나머지 17만5500원을 가지고 임대료, 인건비, 전기요금 등의 경비를 모두 부담해야 한다. 이 편의점주가 한 달 동안 편의점을 운영하면 가맹본부는 매출이익 중 35%인 280만 원의 가맹수수료를 받아가고, 편의점주가 가지는 매출이익은 520만 원 정도이다. 그런데 월말이 되어 임대료 150만 원을 내고, 알바생 급여 350만 원(2013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4860원이므로, 24시간 알바급여는 11만6640원, 한 달 급여는 349만9200원)을 주고, 전기요금 20만 원, 세무 대리 기장료, POS사용료 등을 내고나면 적자가 나게 된다. 편의점주는 고민에 빠져 들게 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다른 편의점주들처럼 최저임금을 무시하고 시간당 4000원만 알바생에게 주고 말까? 김능환 전 대법관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 평생을 법을 지키라고 판결을 해 온 내가 법을 위반할 수는 없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24시간 전부를 알바생을 쓰면 돈을 한 푼도 벌수가 없으니, 내가 직접 일을 해야 하겠다고 결심한다. 그 다음 달엔 하루에 8시간을 직접 일을 해보았다. 하지만 점주가 가져가는 돈은 시간당 최저임금에도 미치지를 못하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내가 뭐 하러 편의점을 운영할까, 다른데 가서 알바나 하는 게 낫겠네. 점주가 이렇게 고민을 하고, 어려움에 처해도 가맹본부는 280만 원의 가맹수수료를 받아가고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그래서 심야 시간에는 장사도 잘 안되고 하니, 가맹본부에게 심야에는 문을 닫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를 해본다. 그러면 가맹본부는 이렇게 답을 할 것이다. 편의점 하면서 24시간 영업해야 한다는 걸 모르고 가맹계약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24시간 영업은 편의점 영업의 핵심이니, 24시간 영업을 반드시 지키세요. 안 지키면 점주의 의무위반으로 가맹계약 해지하고 위약금을 물리겠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점주가 알바생을 대신해서 야간 근무를 하는데 지쳐서, 편의점 문을 닫으려고 한다. 그런데 편의점 가맹계약에는 점주가 일방적으로 폐점하는 경우의 위약금 규정이 있다. 위약금은 크게 가맹본부의 기대수익상실분과 인테리어잔존가로 구성된다. 기대수익상실분은 점주가 폐점해서 가맹본부가 앞으로 얻을 가맹수수료를 받지 못하게 되므로, 가맹수수료의 10개월분을 물어내라는 것인데, 위 사례를 기준으로 보면 2800만 원이 된다. 인테리어잔존가는 초기에 가맹본부가 무상으로 제공한 인테리어(3000만 원 상당)와 설비·집기(3000만 원 상당)에 대해 감가상각한 나머지 비용을 물어내라는 것이다. 가맹계약 5년 중 1년을 영업을 하다 문을 닫았다면 6000만 원의 5분의 4를 물어야 하므로 인테리어잔존가 배상액은 4800만 원이 된다. 그러니 합계 7600만 원의 위약금을 물어내야만 편의점을 폐점할 수 있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복잡하게 보이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편의점 가맹본부는 점주가 돈을 벌든지 말든지 매출만 발생하면 무조건 매출이익의 35%를 무조건 받아가므로 이익이고, 손해가 나면 이는 모두 점주에게 돌릴 수 있는 계약구조에서 모든 문제가 파생한다. 개별 점포의 이익은 떨어지더라도 24시간 영업을 강제할수록, 근접출점을 늘릴수록 매출 자체는 늘게 되므로 가맹본부는 이익을 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전국의 편의점수는 2008년 1만1802개에서 2012년 2만3687개로 두 배 가까이 늘었고, 가맹본부의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매년 10%에서 40%씩 큰 폭으로 성장하였다. 같은 기간 개별 편의점의 매출이 떨어졌음은 당연한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앞에서 하루 매출이 100만 원이 나는 편의점을 예로 들었지만, 그 이하의 편의점수도 전체 편의점의 4분의 1 가량이 된다. 폐점을 하고 싶어도 폐점위약금 때문에 폐점할 수 없는 편의점주가 전체 편의점의 4분의 1은 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와중에 거제도에서 청년 편의점주가 자살한 일도 발생한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4월 임시국회가 4월 8일부터 열린다. 이번 국회에서는 여야 합의로, 지난 대선기간의 공통공약이었던 민생법안을 처리하겠다고 한다. 위와 같이 24시간 영업강제로, 근접출점으로, 과도한 해지위약금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편의점주들을 살리기 위해 국회에서 최우선 과제로 불공정가맹거래를 근절하기 위한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처리해 주기를 간곡히 바랄 뿐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가맹사업법 개정을 통해 24시간 영업강제를 금지하고 점주의 선택에 따라 영업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영업지역 보호가 가맹계약에 따라 배제할 수 있는 임의규정으로 되어 있지만 영업지역 보호를 강행규정으로 개정해야 한다. 편의점처럼 가맹점 폐점시 가맹본부의 기대이익상실분까지 물어내도록 하는 과도한 해지위약금은 금지해야 한다. 그리고 가맹본부의 거래상 지위 남용을 막기 위해 가맹점주들이 단체를 구성하여 가맹본부와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medium;&quot;&gt;김능환 전 대법관도 불공정한 편의점가맹계약으로 고생하고 계신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드는 건 기우일까?&lt;/span&gt;&lt;/p&gt;
&lt;p&gt; &lt;/p&gt;
&lt;blockquote&gt;
&lt;p&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apos;시민정치시평&apos;이란 제목으로 &amp;lt;프레시안&amp;gt;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quot;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quot;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apos;시민정치시평&apos;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808000;&quot;&gt;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quot;&gt;http://www.pressian.com/&lt;/a&gt; &apos;시민정치시평&apos; 검색  &lt;br /&gt;&lt;br /&gt;*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lt;/span&gt;&lt;/p&gt;
&lt;/blockquote&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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