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1999-08-15   1011

[09호] [서평] 환경정의를 위하여 ― 환경파괴의 구조와 엘리트주의

토다 키요시의 {환경정의를 위하여}를 읽고 서평을 쓰기로 한다. 나의 이야기를 벽두에 쓰게 되어 미안하게 생각한다. 나는 일개 의사로 미나마따병 문제에 깊숙히 관계했다. 그러면서 국가와 기업과 전문가가 마나마따병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그 재해를 확대시켰는데도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여 피해보상을 지연시켜 모든 피해를 몽땅 사회적 생물적 약자에게 떠넘긴 사실을 확인했다. 나는 "이 세상, 차별이 있는 곳에 공해가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일본 국내는 물론 외국 특히 아시아 각지를 방문 조사했다. 권력층과 서민층, 중앙과 지방, 도시와 농촌, 자본가와 노동자, 건강한 사람과 병약한 사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다수민족과 소수민족 등 ― 이들 사이에는 구조적인 차별이 형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또 지구상에는 강자가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약자가 피해를 뒤집어쓰는 불공정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나는 사회주의가 내세우는 평등주의에서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그것은 환상으로 끝이 났다고 생각한다.

토다 키요시의 {환경정의를 위하여}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흡사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내듯이 세계사회의 복잡한 관계를 말끔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된다.

제1부는 환경파괴의 발생(원인)을 국가엘리트, 기업엘리트, 전문가엘리트의 책임으로 돌렸다. 제1장에서 현대자본주의를, 제2장에서 국가관리주의(현존했던 사회주의)를, 그리고 제3장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관계를 논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기업엘리트는 대기업의 의사결정중추를 장악하는 사람들이고, 국가엘리트는 고급관료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기업엘리트에 의한 생산력(경제력) 발전을 위한 [수요창조활동]과 [불변자본 충용상의 절약]은 자원과 에너지의 낭비 그리고 환경파괴를 가져왔고 한편 시민은 라이프스타일의 변용을 강요당하고 마침내 시민도 현상적으로 가해자가 된다. 국가엘리트는 기업에 의한 수요활동을 조성하여 기업과 하나가 된다. 전형적인 예가 바로 [교통체계], [정보조작]에 대한 대책인데 정부나 국제기관의 관여가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국가관리주의에 있어서는 생산업적만을 제고하여 출세주의적 당관료(이 때 국가엘리트는 기업엘리트이다)의 지배로 인해서 환경파괴가 진행된다.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북의 엘리트가 주도하는 [자유시장, 자유무역, 국제분업, 수출진흥에 따른 경제성장]은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이러한 불평등한 국제경제질서는 개발도상국의 빈곤과 비민주주의와 지구규모의 환경파괴를 낳는다. 더구나 다국적 기업엘리트들은 국제기관까지 지배하여 지구를 위기로 만들었음을 풍부한 사례를 인용해서 논했다.(이 장이 가장 재미있었다.) 저자는 환경파괴의 원인을 다방면으로 밝혀냄으로써 [지구인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는 총 참회적인 환경론]에 대한 반론을 폈다. 이에 대해서 물론 나도 찬성한다.

제2부에서는 환경파괴의 영향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파급되는 게 아니라, 고령자, 어린이(태아), 장애자, 여성, 저소득자, 노동자(일용노동자와 부정기노동자), 민족적 약자, 지역 등이 불평등한 영향을 받는데 그리고 이러한 일은 환경파괴에서만 그런 게 아니고 노동재해, 교통사고, 약물공해, 중독증, 범죄와 사형제도, 전쟁, 암발생 등 모든 측면에서 나타난다 (제4장, 제5장). 나아가서 환경정책 차원이나 환경운동 차원에서도 이렇게 엘리트 중심으로 대처하면 약자의 관점에서 대책이 세워지지 않기 때문에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제6장). 이 책을 읽으면 [환경보전]이니 [지속가능한 사회]니 하는 개념에는 대단히 위험한(오히려 역행하는) 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지구온난화방지대책으로 핵발전소를 추진하는데 이런 것이 전형적인 예가 된다.

제3부에서 저자는 지속가능한 사회로 이행하는 데에 대한 자신의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제1부 제2부에서 풍부한 실례를 토대로 [환경보전을 위해서 환경정의가 추구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산업사회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로 이행하려면 국가엘리트, 기업엘리트, 문화엘리트(과학자)의 권력과 권위를 상대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려면 시민자치의 영역을 확대하는 일이 필수적(참여민주주의)이고, 자치관리체제를 지향하는 영속적인 사회변혁을 추진해야 한다], [정당성을 독점한 유일한 사회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3세계의 에콜로지운동, 에코페미니즘 운동 등은 영속적 사회변혁에 있어서의 중요한 전략이다], [국경을 넘는 참여민주주의, 국제화(國際化)가 아니라 민제화(民際化, interpopola)가 필요하다] 등은 저자가 제안하는 구체적 전략의 일부라고 하겠다. 나로서는 인용구가 많아서 어느 부분이 저자의 참신한 주장인지 분간이 안되어 어려움이 많았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겠지만, 인용된 단어 하나 하나도 어려웠다. 예를 들면 이 책의 이름에서 [환경적 공정(公正)] [엘리트주의]도 그렇고 좀 더 쉽게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라다 마사즈미(田正純) / {환경과공해} 제24권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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