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주거 2021-04-05   677

서울은 세입자의 도시다 ⑥ 연남동 사회주택에 계속 살고 싶은 세입자

안녕하세요, 저는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사회적 주택에 다섯번째 월세를 낸 20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입니다.

 

그런데 요즘, 오세훈 후보의 공약을 보고 저의 주거 안정이 흔들리고, 앞날이 깜깜해진 기분입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오세훈 후보는 ‘협동조합형 아파트’ 등의 사회주택 정책들을 폐지할 수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관련기사: “오세훈 후보 사회적경제 정책 폐기·수정 계획 철회해야”)

 

세입자를 위한 주거정책은 어디 있나요?

연남동 사회주택에 계속 살고 싶은 세입자

 

모두가 삶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복지운동을 하고 싶었던 저는, 이제 오세훈 후보가 말하는 “폭력적인” 철거반대투쟁의 당사자가 되어야 하는지 싶습니다. 사회주택에 살게 되면서, 더 좋은 사회주택을 만드는 것에 희망을 갖게 되었는데 이번 선거로 그 꿈이 밟히지 않을까 매일 걱정이 됩니다.

 

사회주택에서 찾은 주거안정, 뒤흔드는 서울시장 선거

사회주택에서 살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저렴한 보증금이었습니다. 저는 대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바로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 공부와 연구가 제 본업이었고 버는 족족 학비로 돈이 나가느라 목돈을 모을 수 없었습니다. 활동가로 일하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달에 30만원 이상씩 지출되는 교통비를 보며 독립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이 나라에서 저같은 청년들이 방과 주방이 분리되고, 거실이 있는 집을 구하기는 ‘당연히’ 어려웠습니다. 서울에선 원룸조차 보증금 마련이 어려워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거복지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았고, 비교적 낮은 보증금과 시세 대비 80% 정도되는 월세를 낼 수 있는 사회주택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살게 된 집은 셰어하우스형 사회적 주택입니다. 개별방과 개인 화장실이 있고, 주방과 세탁실, 거실 등을 공유하는 형태입니다. 처음보는 사람들과 한 집에 살게 되었지만 분리수거를 함께 하고 마주치는 순간들을 통해 나름의 친밀감을 형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부동산 광풍이 불고 있는 지금 땅값 비싼 연남동이라는 공간에서 보증금 300만원에 한 달에 약 50만원 정도를 내며 사는 제가 싫은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것도 낑낑대며 지불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나’같은 사람들이 사는 집을 모조리 허물고 땅값 오르는 건물들을 짓고 싶어 목빠지게 기다리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집을’ 사는 일보다는 단지 ‘집에서’ 살고 싶을 뿐입니다.

 

주거대항권, 달로법을 아시나요

사회주택에 살게 된 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최민아의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파리는 전 세계의 기업인과 관광객이 모여들어 물가와 집세가 비싼 도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슈퍼마켓 점원이나 학생, 예술가인 프랑스 국민도 함께 이 도시에서 생활한다. 이들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정작 이 도시를 생기 있게 만들고 작동하게 하는 사람들을 생활 터전에서 몰아내는 꼴이 된다. 그래서 프랑스의 도시들은 더 많은 사회주택을 지어 파리 시민들에게 안정적이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주려 노력하고 있다. 연대하고 지속 가능하며 함께 사는 도시는 사회주택에서 시작한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프랑스는 전체 주택 중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20%가 넘으며, 대부분 주택조합, 비영리 부문에서 운영하기도 합니다. 물론 프랑스도 2000년대 초반엔 불안정한 거처, 적정하지 못한 주거에서 수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국일고시원 화재사건 처럼 노후된 주택에서 불이 나고 대피로와 소화기가 설치되지 않아 참사가 벌어지는 일도 몇차례 발생했습니다. 이후 ‘돈키호테의 아이들’이란 사람들이 모여 도시를 점거하였고 두 달 만에 프랑스는 ‘달로법’이 제정되었습니다. 한국에는 주거대항권으로 알려져 있다는 이 법은 ‘주거 환경이 열악한 사람들에게 정부가 임시로 거주지를 제공’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무주택자, 집에서 쫓겨난 사람, 그럴 위험이 있는 사람, 적정 주거기준에 벗어난 공간에 사는 사람, 어린이나 장애인과 함께 적정하지 못한 공간에 사는 사람 등을 보호하는 법으로, 이 법을 통해 2008~2018년까지 10년 동안 16만7천 가구가 살 수 있는 집을 얻었다고 합니다.

 

한국도 홈리스, 쪽방촌,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여인숙 등에서 화재를 비롯한 참사를 계속 경험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이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코로나19 라는 대감염,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과 혹한이 반복되는 시대를 살아가며 개인이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하고 독립적인 공간이 매우 필요한 것을 인식하게 되었음에도 우리의 ‘주거권’은 늘 ‘나중에’가 되어왔습니다. 집을 제공하는 것이 사람들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첫번째 요건으로 두는 국가들과 달리 한국에서 집은 자산이고, 돈을 벌 궁리하는 것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집을 갖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소중한 이들을 위한 공약은

이제 한국도 사회주택을 비롯하여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높이는 것에 정치권이 힘을 모아야 하며,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 시민들의 생존권과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집 걱정 없는 도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모두의 삶을 지키는 지금 시대의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집 때문에, 집에서 죽지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말입니다.

 

저는 새 집, 내 집에 살고싶은 것이 아닙니다. 기후위기 시대에서 매일 가속도가 붙어 심각하게 벌어져 가는 격차 속에서 공존과 생존을 가치로 두고 집 걱정없이 안전하게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물론 여전히 한국엔 최저주거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화장실을 포함하여 3평 남짓한 작은 방에 살고 있지만 이마저도 빼앗길 수 있다는 서러움에 이 글을 남깁니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그 1인 가구들이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은 저마다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충분히 휴식을 누리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갖는 것은 서울의 시민으로서, 국민으로서 갖는 인권이자 권리입니다.

 

주거권을 보장받고 싶은 20대 사회주택 세입자

 


오는 4월7일 서울시장 재보궐선거가 치러집니다. 집값과 전월세 문제에 대한 서울 시민들의 들끓는 민심에, 보궐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앞다투어 부동산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사실상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부동산 선거’입니다. 하지만 자가 소유 주택에서 거주하는 자가점유율이 42.7%로 전국 최하위에 그치고, 세입자 가구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서울에는 ‘부동산 선거’ 이상의 선거가 필요합니다.

 

지난 3월 3일, 서울지역 세입자들과 주거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집걱정없는 서울만들기 선거네트워크’(‘집걱정없는서울넷’)가 출범했습니다. “서울은 세입자들의 도시”라는 선언과 함께, 각 후보들의 주거·부동산 공약을 평가하고, 부동산을 넘어, 주거권이 보장된 서울을 위한 시민들의 요구를 함께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한겨레>와 ‘집걱정없는서울넷’은 ‘부동산 선거’에 소외된 세입자들의 주거권 보장에 대한 목소리를 7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한겨레 원문보기

 

① 임대인 꼼수에 쫓겨나는 월곡동 쌍둥이 아빠

② 공공임대 살고 싶어도 못 사는 취약계층 

③ 방이 아니라 집에 살고 싶은 청년 세입자

④ 전셋집으로 사기 당해 본 깡통전세 피해자

⑤정부보다 “센” 집주인에게 주거 안정 위협받는 홈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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