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현장의 목소리 - 박근혜 정부에 바란다2 [공공부조 분야]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근로능력수급자

 

송현정 l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 정책팀장

 

‘공공부조’는 근로능력이 없어 생활을 유지할 수 없거나 근로능력이 있더라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국민에게 최저생활을 국가가 보호하는 사회보장제도이다.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 3항은 ‘공공부조’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하에 생활 유지 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보장하고 있는 법이 2000년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다. 그러므로 한국사회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 국민의 최종사회안전망으로 정의할 수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1961년 제정되어 38년간 시행되었던 생활보호법과 확연한 차이를 지닌다. 생활보호법이 근로능력을 구분하여 차등지원을 한 것에 반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가구의 소득으로 수급여부를 정하고, 가구원수에 따라 최저생계비를 지급한다. 매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감안하여 최저생계비를 정하고 3년에 한번 계측조사를 통해 실질반영을 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 금액이 개개인에게는 적은 금액이라, 때마다 ‘최저생계비로 한 달 살기’ 체험프로그램들이 진행되어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예산에 국한된 금액이라 삶의 질을 담보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고, 확대율에 비해 여전히 부족한 복지예산 비율은 복지국가를 표방하기엔 부끄러운 수준이다. 하여튼 무엇보다 두 법의 큰 차이는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정되는 대상자에게도 자활을 조건으로 수급을 인정하는 부분인데, 당시 배경에는 IMF 경제위기가 있었다. 이 일로 구조조정을 감행한 국가는 늘어난 실직자에 대한 대책으로 실업극복운동과 도시빈민생산자공동체를 조합하여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담아내면서 자활을 제도화하게 되었다. 제도화 이후 12년간 자활기업(공동체)을 비롯해 사회서비스 확대, 사회적기업법 제정 등 다양한 정부와 사회적일자리가 늘어났으며 취약계층의 고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곧 새로운 정부가 국가운영을 맡게 된다. 당선인은 공약에서 내세운 대로 부처개편안을 단행하고 있다. 이렇게 당선인 공약대로 추진한다고 할 때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에 있어서는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 일단, 인수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내용이 철저히 차단되고 있는 점이 그러하고, 인수위 위원들이 최근 2-3년 내 발표한 자료로 추측한 내용이 또 그러하다. 포털사이트에 간간히 뜨는 언론보도 기사 내용들은 이를 뒷받침 하고 있으며, 기사들의 골자가 유사함을 확인 할 수 있다.

 

현재 통합급여 방식이기 때문에 최저생계비내에서 수급자는 7가지 급여 혜택이 가능하나, 수급을 벗어나는 즉시 혜택에서 제외되는 문제점을 개별급여로 개편할 것은 빈곤문제를 고민하는 여러 시민단체들이 주장해온 바이다. 그런데 이제껏 모두 공감하는 문제임에도 개편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번번이 예산 확대 문제와 개별급여 지급대상자를 확인해야 하는 업무시스템 구축이 되어 있지 않은 한계에 부딪혀 왔기 때문이다. 개별급여 도입자체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결국 개별급여는 일괄적으로 지급되던 생계급여를 일정정도 줄이고 교육, 주거, 의료 급여가 필요한 계층에게 맞춰 지급하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생계급여를 줄이는 대상이 누가 될 것인지 궁금증이 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상은 근로능력수급자가 아닐까 싶다. 박근혜당선인 대선 공약을 다시 찾아보면 ‘자활급여’가 빠져있고, 고용계획쪽에 근로빈곤층을 포괄하겠다는 내용에서 자활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선인은 지역자활센터와 고용지원센터가 같은 대상을 두고 이중으로 일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음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자활사업 대상자를 복지대상자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으로 여겨진다면 과한 우려일까?

 

일반수급자와 조건부수급자를 결정하는 근로능력판정은 2012년 12월부터 국민연금관리공단 장애인지원센터에서 담당하고 있다. 근로능력판정 의뢰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고 하며, 의뢰된 대상자의 대부분은 근로능력이 매우 취약해서 근로무능력으로 판정되지만 일부 근로능력 있음으로 판정된 대상자는 지역자활센터로 의뢰된다. 전반적으로 근로능력 취약자가 자활근로에 참여하는 것이다. 즉 강화된 근로능력판정업무와 지자체 근로유지형(취로사업) 자활근로 인원수(전체 자활근로의 20%이내)를 줄이면서 상당수 근로능력과 의욕이 취약한 대상자가 지역자활센터 자활근로에 참여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한편 취약계층에 대한 고용지원프로그램은 취업·창업을 목표로 교육훈련지원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이다. 일정기간 안에 지원이 끝나면 일반시장에 취업을 해야 한다. 근로능력이 취약한 참여자에게도 동일한 프로그램만으로 지원체계를 가져간다면 공공부조의 사회보장기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일반시장에서 배제된 근로능력과 의욕이 단기간의 지원으로 목표하는 바가 이뤄지기엔 지금의 고용시장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질 낮고 불안정한 일자리와 영세한 자영업이 난무하는 일반시장에 그들을 그대로 노출하기엔 현재의 고용프로그램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이고,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최종안전망으로 두어야 하는 것이 기초생활보장제도인데 이마저도 이들을 배제하거나 축소한다면 사실상 한국사회에서 빈곤에 대한 안전망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절망감이 든다. 자활·사회적기업·협동조합 등 협동사회경제가 단시간 안에 구축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을 수 있으나 일정 취약계층들을 포괄할 수 있는 구조들이 만들어지는 기간 동안 일반시장으로 밀어내는 방식의 고용전략, 그리고 이를 복지정책으로 오인하도록 하는 개편은 위험할 수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선후보기간에 자활협회에서 보낸 자활공약 질의서에 공식답변을 보내온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자활사업 대상자를 현재 차상위계층인 최저생계비 120%에서 150%미만으로, 다시 150%이상으로 점증적 확대를 하겠으며, 이들에 대한 자활사업 목표를 탈수급·취창업 이외 사회통합지표를 개발 적용한다는 내용을 밝혔다. 그리고 자활급여가 최저임금으로 적용되도록 하는 질의에는 자활급여의 성격이 공공부조란 점과 예산을 감안하여 신중을 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바 있다. 답변을 종합해보면 공약과는 달리 자활급여를 공공부조로 규정하여 사회적경제 일자리 내에서 종합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취지가 엿보이지만, 인수위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시점에서 후보공약과 자활공약에 대한 답변은 약간 혼돈스럽다.

 

지금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여러 문제와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국민에게 일괄적으로 최저생활기본선을 정하고 그를 보장하려는 데 의의가 있다면, 조금 나아가 생계비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개별 욕구에 적합한 급여를 도입하려는 단계에 와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절대빈곤층 180만중 140만 수준밖에 담고 있지 못하는 현재 예산 실정과 충분한 예산이 수반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개편안이 적용되는 것이 자칫 기존 수급자에 대한 지원축소가 있는 것은 아닌지 놓치지 말고 살펴봐야 한다.

 

통계상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불안 수치 즉, 상대적 빈곤 수치와 사회양극화를 나타내는 수치, 증가하는 생계형 범죄와 자살률 등 10년 전 보다 더욱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10여 년간 이뤄놓은 기초보장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서비스가 완충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개인적 소견임을 밝힌다. 어쨌든 보이는 사회적 불안 수치들은 제도의 불충분한 보장과 한정된 예산에 따른 지원 대상자의 협소함으로 인해 복지의 확대를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끊임없이 배제하고 있는 사회시스템 탓이 더욱 크다고 생각된다. 공공서비스가 턱없이 부족하고, 노동조건의 질은 갈수록 떨어지지만 노동자의 요구는 처참히 짓밟히는 구조, 경제활동 인구의 고연령화,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청년실업 등은 기득권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관계자들만의 개편안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과 400만 근로빈곤층의 일자리 정책 수립은 충분한 재원마련과 함께 세밀한 연계망으로 구축된 각종 공공서비스가 수반 되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절차적인 공론화과정을 거쳐야 지난 과오를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발 새 정부가 복지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지 않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