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7 2017-05-01   999

[동향1] 무엇이 재무회계를 불투명하게 만드는가?

무엇이 재무회계를 불투명하게 만드는가?

 

 

홍원표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국장

 

 

 

 

무서운 팩스를 받다

 

얼마 전 사무실 팩스로 같은 내용의 성명서가 반복적으로 들어 왔다. ‘장기요양백만인클럽 공공정책시민감시단 회원 일동’ 명의로 된 성명서는 ‘불합리한 위헌성 장기요양기관 재무회계규칙 결사반대 범장기요양시민운동 시작’을 알렸다.

 

‘회원 일동’은 재무회계규칙을 정하는 것이 ‘도에 지나친 규제이며 억지로 꿰어 맞춘 졸속 행정’이며, ‘민간장기요양기관에게 재무회계규칙을 의무화 시키려면 공익 사회복지법인과 똑같은 재정적 지원의무를 다하’든가, 재정 지원을 하지 않으려면 ‘공익적 재무회계규칙과 민영회계규칙을 분리하여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요구안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보건복지부의 사회주의적 민영화 기관 밀살 작업을 결사반대’할 것과 ‘장기요양위원회 해체’ 투쟁에 나설 것임을 엄중히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발단은 1년 전 통과된 장기요양보험법이다. 작년 5월 29일 통과된 법은 ‘장기요양기관 재무·회계 규정’ 조항을 신설했고, 올해 5월 30일부터 시행하도록 정했다. 내용은 단순하다. ‘장기요양기관의 장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재무·회계에 관한 기준에 따라 장기요양기관을 투명하게 운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1년 전 통과된 그 법은 보건복지상임위원회를 통과하고 나서 법제사법상임위원회에서 2년 동안이나 계류해 있었다. 통상 법 개정 여부의 타당성과 필요성에 대한 판단은 해당 상임위가 하고, 법사위는 다른 법과의 충돌 여부나 법조문 체계나 형식의 타당성 정도를 다루는 게 일반적이다. 법사위가 해당 상임위에서 통과시킨 법을 내용적으로 문제 삼아 2년 넘게 계류시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며 그리 적절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기관을 투명하게 운영’하라는 주문은 자세히 따져보지 않으면 자칫 ‘사회주의적 말살 작업’이라 불릴 만큼 혁명적 요구가 될 수도 있는 일이며, 상임위 통과 후 법사위 2년 계류라는 통상적이지 않은 사건 역시 이 법조항이 가진 혁명적 파급력(에 대한 저들의 통찰력)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슨 혁명인가?

 

반짝이는 것은 시야를 흐린다. ‘기관을 투명하게 운영’하라는 더없이 투명해 보이는 법조항 역시 마찬가지다. 투명함이 가리고 있는 실체를 보려면 반짝이는 곳이 아니라 그 주위를 살펴야 한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시장이다. 시장은 재화를 사고파는 곳이며, 재화를 구매하는 자는 마땅히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장기요양제도는 재화를 구매하는 사람이 돈을 내지 않는다. 서비스는 필요한 사람이 받지만 그 구매 비용은 사회구성원 전체가 나눠서 부담한다.

 

소득이 있는 국민은 매달 건강보험료의 6.55%를 장기요양보험료로 낸다. 직장인 기준 2017년 건강보험료는 소득의 6.12%다. 그러니까 2017년 직장인은 자기 소득의 0.40086%를 사업주 반, 노동자 반으로 나눠서 낸다. 예를 들어 월 200만 원 버는 노동자는 약 4,008원을 장기요양보험료로 내고 있다.

 

이렇게 전국민이 보험이라는 이름으로 부담을 나눠지면서 정작 서비스 구매자와 비용을 지급하는 자가 불일치하게 된다. 노인장기요양법은 ‘노후의 건강증진 및 생활안정을 도모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도록 함을 목적’으로 이러한 제도를 도입했지만, 구매하는 자 돈을 내라는 시장의 신성법칙을 깼다. 혁명의 씨앗이 뿌려진 셈이다.

 

모든 씨앗이 뿌리를 내리는 건 아니다. 비록 서비스 이용자 직접 지급 원칙에는 금이 갔지만, 투자자 수익이 보장된다면 어쨌든 시장은 유지된다. 우리의 장기요양제도는 2007년에 도입됐다.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제도를 시작하면서 많은 논란이 오고 갔지만, 결과를 요약하면 ‘공공 재정, 민간 공급’으로 정리됐다. 재원은 보험을 통해 같이 부담하되, 서비스 제공은 시장 즉 민간 기관에 맡긴다는 것이다. 2015년 현재 등록된 장기요양기관은 모두 17,936개에 달한다. 이 중 지자체가 직영 또는 위탁으로 운영하는 공공 장기요양시설은 276개소로 전체 시설 대비 1.5%에 불과하다. 뿌려진 씨앗이 함부로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토양으로 밭을 갈았다.

 

구매하는 자 돈을 내라는 제1시장법칙의 파기는 역설적으로 투자하라 돈이 되리라라는 제2 시장법칙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다. 국민 모두가 나눠 부담하는 보험의 도입은 지금까지 돈이 없어 요양서비스를 이용하지 못 하던 이들에게 서비스를 구매할 힘을 주었고, 장기요양 시장은 커졌다. 제도 도입 8년 만에 17,936개소로 늘어난 장기요양기관 수가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이용자가 직접 돈을 지급하지 않자 공급과 수요가 만나는 곳에서 가격이 결정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손 대신 장기요양위원회라는 기구가 매년 가격을 결정했다. 당연히 돈을 덜 내려는 (보험) 가입자와 돈을 더 받으려는 공급자들이 매년 수가 결정을 놓고 날카롭게 대립했다.

 

첨단의 대립 지점은 언제나 인건비였다. 돌봄 노동이라는 장기요양 서비스 특성상 사람의 노동이 가장 중요하다. 돈을 덜 내려는 가입자도 질 좋은 서비스를 위해 적정 인건비는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돈을 더 받으려는 공급자도 인건비 지급이 빠듯하니 수가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매년 오고가는 첨예한 대립 끝에 결국 서비스 수가 중 인건비를 얼마나 책정할 것인지 합의에 도달했다. 장기요양 서비스 유형 및 시설 유형에 따라 적게는 노인요양시설은 수가 중 57.7%를, 공동생활가정은 53.5%를, 주야간보호는 46.3%를, 단기보호는 55.8%를, 방문요양은 84.3%를, 방문목욕은 49.1%를, 방문간호는 57.9%를 인건비 비중으로 정했다. 이 인건비 비중에는 사업주가 부담하는 사회보험료(임금의 9.36%)와 퇴직적립금(임금의 8.33%)이 포함되어 있다. 인건비 비중이 100%가 아닌 것은 기관 운영에도 돈이 들고, 각종 간접비용도 필요하며, 기관장에게도 월급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수가에는 기관에 돈을 투자하고 직접 운영하는 기관장에 대한 보상까지 포함된 것이다.

 

급여유형

노인요양시설

공동생활가정

주야간보호

단기보호

방문요양

방문목욕

방문간호

인건비비율(%)

57.7

53.5

46.3

55.8

84.3

49.1

57.9

<표1-1> 장기요양병원 인건비 지급비율(안)

 

 

하지만 시장이라는 게, 허용되는 한 가장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것을 미덕으로 하는 곳이다. 시장에서의 허용 한도란 팔릴만한 가장 높은 가격과 유지될만한 가장 낮은 비용을 말한다. 수가가 결정되는 ‘장기요양위원회’에서 가입자와 공급자 사이의 치열한 협상은 이 ‘팔릴만한 가장 높은 가격’에 대한 욕구 실현의 과정이었다.

 

작년 8월 정기적 수가 및 보험료율 결정 이후에도 공급자들은 ‘팔릴만한 가장 높은 가격’을 높이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12월에는 촉탁의 비용 직접지급 제도 도입에 따른 추가 수가 인상을 요구하였고, 올 2월에는 재무회계 기준 도입을 대가로 수익금 중 일부를 공식적으로 투자자 이윤 보장에 쓸 수 있도록 하는 전출금 항목 설치를 요구했고, 일부를 관철시켜 냈다.

 

유지될만한 가장 낮은 비용에 대한 쟁투는 보다 은밀한 곳에서, 하지만 공식석상의 그것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치열함으로 진행돼 왔다. 수가에 포함된 종사가 인건비와 기관장 임금, 기관 운영비 비중은 표준 모델을 전제로 한 것이며 어디까지나 ‘권고’ 사항이었다. 기관 규모나 지역 수요 등에 따라 이 정도를 기준으로 하라는 내용이다.

 

기관을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른바 경영효율화를 통해 관리 비용을 줄이면 좀 더 많은 기회가 생긴다. 아주 간혹, 시장의 미덕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석하게도 권장 인건비를 지급하지 못(안) 하거나 서비스에 필요한 제반 비용, 예를 들어 서비스 이용자 식비를 효율화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는 제도 본연의 목적인 서비스 질을 하락시킬 가능성도 있어 매우 조심스러운 줄타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기관을 투명하게 운영하라’는 법 조항과 함께 인건비 지급비율 준수 의무가 도입되면서 줄타기의 난이도가 높아졌다. 아니 균형이 무너진 것이고, ‘유지될만한 가장 낮은 비용’을 통해 투자자에게 수익을 보장하라는 시장의 제2 신성법칙도 무너질 위험에 처했다. ‘장기요양백만인클럽 공공정책시민감시단 회원 일동’이 작금의 사태를 ‘사회주의적 민영화 기관 말살’ 책동으로 규정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무엇이 재무회계를 투명하게 만드는가?

 

그런데 과연 재무회계를 투명하게 하라는 것이 사회주의적 혁명 책동인가? 무릇 돈은 계산이 맞아야 한다. 특히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돈을 기록하는 재무회계 투명성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바로 돈을 투자한 사람들이고, 그들이 모여 있는 시장이다. 돈의 기록이 불투명해지면 당장 몇몇은 이득을 볼 수도 있겠지만, 시장의 기능은 떨어진다. 개정된 장기요양법에 따른 재무회계 시행규칙은 사회주의적 말살 정책이 아니라 지극히 친시장주의적 정책이다.

 

개정 장기요양법의 시행은 5월 30일부터다. 개정법 시행 이전에 재무회계 시행규칙이 마련되어야 하고, 거기에는 예산원칙, 회계원칙(회계구분 및 단식부기 회계방법), 적립금 특별회계, 기타 전출금(기관 설치·운영자 수익 보전) 등을 포함한 수입·지출 세부 관항목 정의, 예·결산 보고 방식 및 의무(지자체 연 1회 보고)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법 개정에 따라 수가 중 인건비 지급 비중을 고시하고 준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재무회계가 얼마나 투명해질 수 있을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질문해야 한다. 무엇이 재무회계를 불투명하게 만드는가? 재무회계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은 앞 서 장황하게 설명했듯이 가능한 많은 이익을 남기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이다. 재무회계 규칙은 이 욕구를 사후적으로 검증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물에 걸리는 고기가 호수의 모든 고기일 수는 없다. 물론 우리는 좀 더 촘촘하고 튼튼한 그물을 고를 수도 있다. 단식부기보다는 복식부기를 도입하고, 인건비 지급 비중 준수 의무를 좀 더 강화하는 것이 그러한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본질적인 해결은 재무회계 불투명의 근본적 원인을 줄이는 것이다. 재원의 대부분을 공적 보험으로 조달하면서 이윤 추구의 속성을 버릴 수 없는 민간 기관에 공급의 98.5%를 의존하고 있는 한, 그물을 벗어나고자 하는 그들의 욕구를 막기는 어렵다. 공공서비스인 장기요양제도에 걸 맞는 공공 장기요양기관의 대폭 확충이 필요하며, 빠른 추세로 고령화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이 때, 새 정부의 우선 추진 과제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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