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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20
  • 2020.10.01
  • 141

(히포크라)테스옹! 의사단체가 왜 이래

 

이조은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 선임간사

   

의사단체의 집단휴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명언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였던 히포크라테스의 말을 오역하며 생긴 명언이다. 맥락상 ‘의술’로 번역되어야 할 ‘art’를 ‘예술’로 오역하면서 의도치 않은 명언이 탄생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저서 <잠언집> 머리말에 실린 원글은 예술이 아니라 의사의 의무를 말한다. "인생은 짧고, 의술의 길은 길며,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경험은 불완전하고, 판단은 어렵다. 따라서 의사는 올바른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환자와 간병인, 외부인 모두가 협조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코로나19 시기에 특히 와닿는 의무다.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의사의 의무는 오역된 명언만큼 널리 알려진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함축되어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의료의 윤리적 지침으로, 현대 의사들이 의사가 될 때 하는 선서다. 1948년 세계의사회 총회에서 현대적 관점으로 개정된 선서에는 다음의 내용들이 담겼다. "의료직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 데 내 생애를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이다."

 

<사진 1-1> (히포크라)테스옹과 히포크라테스 선서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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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9월 한국에서, 히포크라테스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만한 일이 발생했다. 의사단체의 집단휴진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심각한 코로나19 확산세에도 불구하고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등 의사단체는 응급실·중환자실과 같은 필수의료까지 손을 놓았다. 응급환자들이 응급치료 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사망하고, 수술 연기로 생명이 위급해지는 중증환자가 생겼다. 의사단체는 분명 선을 넘었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응급환자까지 돌보지 않겠다는 의사들을 보고, 히포크라테스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부여당과 의협이 의정협의체를 구성하여 보건의료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합의하면서 집단휴진 사태가 일단락됐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국 보건의료의 미래를 의사단체와 정부에게만 맡길 수 있을까? 무덤에서 일어난 (히포크라)테스옹은 일갈할 것이다. 믿고 맡길 수 없다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종이쪼가리로 생각하는 의사단체는 의료정책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히포크라테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소크라)테스옹도 무덤에서 일어나 덧붙일 것이다. 집단휴진 과정에서 드러난 의사집단의 비민주성을 보라고. 민주주의를 모르는 이에게 의료공공성을 맡길 수 있겠냐고.

 

집단휴진 사태로 드러난 의사단체의 민낯 

치료비를 낼 수 있는 사람만이 치료받을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 의료정책 설계는 기본적으로 공공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의사집단이 보건의료 정책을 설계한다면 의료공공성은 철저히 무시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집단휴진 사태로 여실히 드러난 의사단체의 민낯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림1-1>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9월 1일 페이스북 공식 계정에 올린 카드뉴스 (출처 : 의료정책연구소 페이스북 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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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초,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차별과 편견이 담긴 카드뉴스를 배포해 큰 논란이 일었다. 정부의 공공의료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제작된 카드뉴스는 독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예시답안을 제시한다.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둘 중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르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가 예시답안으로 제시됐다. ‘전교 1등’이 표상하는, 성적과 학력을 의료 행위의 유능함과 동일시하는 모습에서 뿌리 깊은 엘리트주의, 특권의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심지어 카드뉴스에는 여성혐오 표현까지 나온다. “둘 중, 건강보험 적용은 누구에게 되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는 “면역항암제가 필요한 폐암 말기환자 A씨”와 “생리통 한약이 필요한 B씨”가 예시문으로 제시됐다. 예시문과 함께 삽입된 그림에는 눈물을 흘리는 남성과 웃고 있는 여성이 있다. 다분히 여성혐오적 표현이다. 누리꾼들이 카드뉴스에 담긴 차별적 내용을 강하게 비판하니, 의료정책연구소는 사과와 함께 수정된 카드뉴스를 올렸다. 수정된 카드뉴스에는 ‘전교 1등’ 표현만 빠지고, 여성혐오적 요소는 그대로 담겼다. 뭐가 문제인지 제대로 모르는 거다. 누리꾼들의 비판이 다시 거세지자 의료정책연구소는 SNS에서 카드뉴스를 아예 내렸다. 의사집단 전체가 이렇다고 일반화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의사집단을 대표하는 의협 구성원들은 엘리트주의-특권의식에 젖어있고, 젠더감수성이 결여됐으며 사회적 차별에 둔감하다.

 

원칙도 없다. 공공의대 신설 정책을 반대하고 나선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정작 공공의대 신설과 공공의료 인력 확충 방안을 만든 당사자인 게 드러나기도 했다. 2013년 12월 서울대 의과대학이 발표한 <의료 취약지역 및 공공의료분야 의사인력 양성방안 연구 보고서>와 2015년 10월 보건복지부 연구용역을 받아 '서울대 산학협력단(서울대 의대 교수 3명 등 11명이 연구진으로 참여)'이 연구한 <공공의료인력 양성을 위한 기반 구축 방안 보고서>는, 모두 공공의대 설립을 통한 공공의료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자기 주장을 호떡 뒤집듯 뒤집는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반대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해온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은 지난해 12월 언론 기고에서 “의사 증원과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의 안덕서 소장은 작년 7월 언론 칼럼에서 "의사는 경찰관과 군인의 파업을 허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응급의료와 일부 필수의료 영역에 대해서는 그 현장을 절대로 이탈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의협은 집단휴진 과정에서 응급실과 중환자실까지 비웠다.

 

젊은 의사집단은 민주주의부터 다시 배워야 

기성의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의사집단은 의학기술을 배우기 전에 민주주의부터 다시 배워야 할 지경이다. 의대생들이 집단행동으로 국가고시 거부를 결정하는 과정은 비민주적이고 전체주의적이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이하 의대협)는 국가고시 거부에 찬성한 의대생 비율이 90%에 달한다며 정부정책 항의의 수단으로 국가고시를 거부했다.

 

하지만, 언론 취재에 따르면 의대협이 진행한 설문조사는 집단행동 찬성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집단행동 참여 여부를 묻는 문항은 '찬성'과 '반대'가 아니라 ‘△참여율과 무관하게 참여, △전 의대생 50% 이상 참여 시 동참, △전 의대생 70% 이상 참여 시 동참, △참여 의사 없음’으로 선택지가 나뉘어있었다. 의대협은 ‘50% 또는 70% 이상 참여 시 동참’이라는 선택지를 선택한 의대생을 모두 집단행동 찬성으로 포함시켰다. 단체행동 동참 90%라는 결과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심지어 집단행동에 반대하고 불참한 의대생은 마녀사냥당했다. 학교·학년별 투표율과 찬성자 비율이 공개됐고, 집단행동에 반대한 의대생 일부의 신원이 유출됐으며, 집단행동 반대자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러한 비민주성과 전체주의적 속성은 의대생만이 아니라 전공의 집단에서도 드러났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 정책에 반발해 강행한 집단휴진을 지속할지 정하는 투표결과가 과반수에 미달해 안건이 부결됐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재투표를 진행해 집단휴진을 계속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미 부결된 안건을 뒤집은 거다. 찬반을 묻지 않고 성명서에 전공의들의 이름이 올라가거나, 전공의 사직서가 강제적으로 작성되고 있다는 제보까지 나왔다.

 

<사진1-2> 9월 중에 진행된 ‘밀실합의 철회·공공의료 강화·시민참여 보건의료개혁 촉구’ 시민캠페인 (출처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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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건의료의 미래, 노동·시민·정부로 구성된 협의체에서 논의되어야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환자의 생명까지 볼모로 삼는 극단적인 집단이기주의, ‘전교 1등’인 의사들만이 의료와 의료정책을 제대로 알고 행할 수 있다는 천박한 엘리트주의와 특권의식, 의사집단 내부 의사결정과정에서 반복해서 드러난 반민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모습을, 우리는 보았다.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의사들의 외침은 소수의 목소리로 철저히 묻혔다. 한국 보건의료의 미래를 의사단체에게만 맡길 수 없는 이유다.

 

의사단체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부 또한 문제가 많다.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려는 의협의 비윤리적 행태에 굴복한 것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정부의 책임을 망각한 행위였다. 의료공공성 강화 정책을 국민을 배제한 채 의협과 밀실에서 야합한 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무엇보다, 참여연대를 비롯해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주장해왔듯이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추진방안>은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많다. ▲사립의대-민간병원만 혜택 볼 미흡한 '지역의사제', ▲의료공공성에 역행하는 '산업체 의사 양성 계획', ▲양질의 지역 공공병원 확충계획 부재 등의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완하고 수정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하려면 결국, 보건의료정책을 시민사회와 함께 만들어가는 길밖에 없다. 보건의료정책은 시민의 건강과 안전 보장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사회정책이다. 필수의료 공백을 어떻게 막을지, 지역의료 격차를 메꿀 공공의료인력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 의료정책의 이해당사자인 시민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 검찰개혁을 검사집단이 주도해서는 안 되고, 정치개혁을 국회의원들이 주도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을 코로나19가 안정화될 때까지 중단하고, 의정협의체를 통해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한 정부와 의협의 합의는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보건의료정책은 노동⋅시민⋅정부로 구성된 협의체에서 논의하고, 추진해야만 한다. 테스옹들이 무덤에서 뛰쳐나올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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