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했던 2000년 보건의료계

2000년 한 해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역사상 가장 힘들었던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보건의료와 관련한 가장 큰 사건은 누가 뭐라 해도 의약분업의 실시와 의료대란이라고 할 수 있다. 의약분업의 실시와 의료대란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정부의 무능력, 전문가의사집단의 부족한 사회성과 소아적 집단행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견제능력의 한계 등 많은 것들을 목격했다.

또한 지난 해는 우리나라 사회보장사의 큰 역사로 기록된 의료보험 통합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으로써 새로운 문제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특히 재정위원회활동을 중심으로 전개된 일련의 활동은 향후 새로운 운동의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과정 중에서 지역의료보험 국가부담금의 지원확대와 보건의료 예산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였으며 이와 관련한 보험료납부거부 서명작업 등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2000년은 또한 보건의료부문에서의 소비자 권리를 확보하려는 움직임들이 구체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병원경영 투명성확보와 환자 알권리 확보와 관련한 일련의 활동들이 가시화 되기 시작하고 있으며, 이 중 하나인 제왕절개술 자료의 발표와 활동은 그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이렇게 전체 사회부분에서 보건의료부문이 실제적으로 또는 상징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커지면서 우리 사회는 "건강연대"라는 조직을 만들어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건강연대"가 비록 의료통합의 주축이 되었던 의보연대회의의 후신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이른바 시민, 사회, 노동단체가 "건강권"이라는 것을 목표로 연대한 최초의 연대조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건강연대"뿐만 아니라 "의료개혁시민연합", 의료보호법의 올바른 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 등 건강문제를 중심활동과제로 설정한 조직적인 활동들의 출현은 우리 사회에서 "건강권"의 문제가 점차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들 조직들은 지난 한 해동안의 활동에서 보여 준 그 역할의 한계(시민의 참여부족, 설득부족, 기술적 문제로 축소화되는 경향에 대한 적극적 대처미흡 등)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문제를 관료와 전문가의 손에서 사회적 공론의 공간으로 이끌어내고 정책결정 과정에 국민들의 참여공간을 확대시켰다는 데에는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건강보험 재정과 의약분업제도 안정화가 쟁점

결론적으로 2001년 보건의료부문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정부는 의약분업 도입 이후 벌어진 의료계 파업사태 이후 더 이상의 의료개혁에 대한 의욕을 상실했으며, 조정력의 부재도 확인되었다. 전체 사회나 의료계 내부에 변화를 주는 보건의료 정책의 시행에 매우 부정적이다. 의료계는 파업종료 이후 일부 강경파가 의협 민주화를 내걸고 투쟁하고 있으나, 의협 지도부가 주도권을 회복한 상태이다. 의료계 파업을 합리적으로 정리하지 못해서 파업 당시에 비해 힘이 약화되기는 하였지만 이번 파업을 통해서 자신의 강한 영향력을 확인하였으며, 향후에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협 민주화 및 시민과의 연계활동 등 일정정도 발전된 사회성을 기대할 수 있으나 단기적으로는 의미 있는 변화를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의약분업과 의료계 파업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힘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물론 재정운영위원회 대응에서 노농공대위와 시민사회단체가 결합하여 대응하였으나 아직 건강보험 문제 등 사회보장문제에 대한 대응수준은 낮은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01년 보건의료분야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이 심각하게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건강보험재정과 관련한 문제이다.

지역의료보험재정의 소진, 재정통합, 보험료인상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은 자칫 우리나라 사회보장체계와 보건의료체계 전반을 흔드는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둘째는 의약분업의 실시와 관련한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될 것이다.

의약담합과 주사제 포함여부, 환자보관용 처방전발급, 의약품물류센터의 설치 운영 등 의약분업제도의 시행과 관련한 지속적인 문제제기들이 보건의료계를 시끄럽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민들의 의료기관운영의 투명성과 환자권리의 확대를 위한 움직임을 점차 조직적이고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과 합리성 증대 필요

보건의료부문의 궁극과제는 현재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과 합리성 증대시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의료서비스의 남용을 억제하고 서비스 질을 향상시키며, 포괄적이며 안정적인 의료보장체계의 구축, 보건의료체계의 건전성, 투명성 확보하며, 이를 위해 보건의료체계 내 국민들의 참여를 통한 권리의 증대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들 달성하기 위해 국민의 건강권을 지켜내기 위한 시민, 사회, 노동단체의 역량들을 집결해내고, 무엇보다도 사회적 합의기전의 틀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최근 진행되고 있는 대통령직속 의료제도개혁위원회, 의료보험관리공단 재정위원회, 건강보험조정심의위원회, 기초건강보장조정심의위원회와 관련한 활동들에서 시민, 노동자, 농민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적 성격을 확보하고, 제한적 조건 하에서나마 보건의료체계의 개혁을 위한 장으로 활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합의기전의 확보 없이는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과 합리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들(예를 들어 "적정수가-적정급여-적정보험료"로 대변되는 "빅딜"모형, 공공보건의료의 대폭확대 등)의 시행도 불가능하며 국민건강권이 확대를 위해 주장되었던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 등의 정책들이 초기의 정책목표를 훼손시키지 않고 결실을 맺게 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사회적 합의기전의 창출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올해는 경제침체기를 맞이하여 이른바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을 지켜내기 위한 공공보건의료체계의 강화, 의료보호제도를 포함한 기초건강보장제도의 확대 등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에 더욱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과 함께 우리는 국민, 피고용자 및 노동자의 입장에서 스스로의 건강권을 찾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이러한 활동에서 "의료기관의 경영투명성과 알권리의 확보"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이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시민, 노동자, 농민들의 참여와 연대의 장을 넓혀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이상과 같은 보건의료 개혁활동들을 사회전반의 개혁들(조세개혁이나 언론개혁 등)과 다양한 방식으로의 연계를 맺어나가야 한다.

건강권 확보를 위한 연대

오늘날 한국 보건의료체계가 당면하고 있는 의료보장제도와 보건의료체계의 위기는 한국사회의 위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건강권"이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와 관련이 있다. 건강은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아름다운 사회 속에서만 완성될 수 있는 것이며,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지향하는 아름다운 사회 역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한 이들이 살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 건강권을 위한 일련의 활동들이 여타의 부문과 결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며, 사회의 모든 부문이 국민의 "건강권"에 주목하고 연대해야 하는 이유이다.

신영전 / 한양의대, 건강연대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