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8 2008-09-02   804

[동향 5] 제주 영리법인병원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것


제주 영리법인병원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것


 


김아현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간사


일단의 승리, 그 이후


 간절히 바랐지만 예상은 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1100명의 제주도민을 상대로 이틀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의료민영화 및 제주영리법인병원 반대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예상을 뒤엎었다. 찬성 38.2%, 반대 39.9%로 반대의견이 1.7%p 높게 나온 것이다. 제주도를 넘어 전국적으로 의료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여론조사’라는 카드를 꺼내든 도정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고서라도, 도지사 스스로 ‘반대가 찬성보다 단 1%라도 높게 나오면 추진하지 않겠다’는 공언을 한 바 있기에 더욱 유의미한 수치였다. 오차범위는 논란거리가 되지 않았다. 일단의 승리였다.


 막강한 행정력과 자금을 동원한 제주도의 영리법인병원 홍보에 맞서는 것은, 흔한 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이었다. 각 읍면동장과 의용소방대까지 동원한 관제반상회로, 제주도는 3주도 채 되지 않는 동안 10만 여명의 도민들을 만나는 데 성공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다시피했던 김태환 제주도지사의 공세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농협을 비롯해 유관단체들의 명의로 도내 각 일간지에 영리법인병원 찬성 광고를 게재하도록 종용한 것은 물론이고 공무원의 가족까지 강제적으로 설명회에 참석하도록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권이 정당성을 잃으면 꺼내든다는 반공논리도 이 때 등장했다. ‘의료를 공공재라 우기는 자들은 친북 좌파․반미세력’이라는 주장이 담긴 문건을 홍보시 참고자료로 활용하도록 공무원들에게 배포하기까지 이르렀다.


 이런 공세에 맞서 대책위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도청 앞의 일인시위와 몇 번의 기자회견과 성명 발표, 한여름 땡볕 아래 자전거 홍보, 거리 선전전 정도가 전부였다. 대책위에 속해 있는 단체들이 분담금을 걷어 신문에 삽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늘 모자란 것이 많았다. 활동에 필요한 자금도 모자랐고 지속적으로 일을 전담할 수 있는 인적 인프라도 부족했다. ‘특별자치도가 된 이후 특별히 바빠진’ 제주도내 시민사회단체의 피로감도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거둔 예상치 못한 승리였다. 그러나 ‘이기는 싸움’에 별반 익숙하지 못한 시민사회진영은 보람과 안도감을 만끽하기보다 이 결과에 대한 분석, 향후 대응방안에 대한 논의를 먼저 해야 했다.


현명한 대중의 등장


 행정의 막강한 공세에도 불구하고 내국인 영리법인병원 도입에 대한 반대의견이 더욱 높았던 것은, 2008년 5월과 6월을 기점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현명한 대중의 등장’에 절대적으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그저 수많은 ‘ism’ 중 하나에 그치지 않고 생존을 위협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음을 자각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움직임은, 대기업을 포함한 다국적자본이 자유롭게 시장활동을 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과정이 나와 내 가족의 생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로서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리법인이 병원을 설립해 이윤을 창출하는 과정이 의료서비스의 선진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의 건강권과 복지를 위협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학력과 소득이 밀접한 상관관계를 형성하며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만들어 내는 사회에서, 영리법인이 학교를 설립해 운영해가는 과정은 나와 내 가족의 장기적․잠재적인 행복추구권과 교육 받을 권리, 나아가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음을 대중이 ‘학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회 흐름을 구조적으로 바라보고 행정(정부)과  언론의 프레임공세를 한 번 더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 ‘학습’이 일상화 되었다는 것은 2008년 촛불항쟁이 남긴 유의미한 성과였다. 그리고 그러한 학습의 혜택으로, 제주도發 의료민영화는 일단 부분적으로 중단되었다. 대중은 더 이상 ‘관제반상회’ 혹은 ‘정치광고’에 현혹되는 계몽의 대상이 아님을 보여준 결과라 하겠다. 물론 김태환 도지사식 행정 스타일에 대한 제주도민의 거부감과 염증도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의료민영화, 불씨는 살아있다


 대책위가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안도만 할 수 없었던 것은 이 싸움이 내년, 내후년에 다시 반복되리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이번에 도입이 좌절된 영리법인병원은 2009년 4단계 제도개선 과정에서 또다시 논의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김태환 지사는 ‘도민 여론이 성숙하면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 이미 현명해진 대중에 5공식 관제정치 공세를 벌인 도정 스스로의 개혁 의지와 판단능력을 상실했다는 점 △ 사안의 본질에 대한 도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성숙하지 못한’ 도민 탓으로 돌렸다는 점 등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게 일었다. 또한, 전문가들은 ‘내국인 영리법인병원’ 도입만이 무산되었을 뿐 의료민영화의 불씨는 여전히 특별자치도 제도개선 과제에 살아 있다고 지적한다.


 제주는 2단계 제도개선을 통해 외국인 영리법인의 병원설립 및 운영이 이미 허용된 바 있다. 이번 3단계 제도개선 과정에는 외국의 영리법인이 운영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도록 하는 독소조항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는데, 의료기관의 개설 등에 관한 특례 등을 통한 △의료기관의 방송광고 허용 △외국인 영리병원 전문의 수련기관 지정 허용 △외국의료기관 의약품 수입허가 기준 개선 등이 그것이다. 의료기관의 방송광고를 (제주도에 한해) 허용할 경우 광고비가 의료서비스 수요자의 의료비 상승을 부추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예상 가능한 면이 있음에도, 외국 의료기관의 설립유치와 투자유치라는 명분으로 제주도가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외국 의료기관을 전문의 수련기관으로 지정 허용한다는 조항 역시 논란거리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의사는 공성을 생명으로 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핵심 인력이다. 영리병원은 주식회사 병원으로 돈벌이가 목적인데, 여기서 행하는 의료서비스는 대부분이 영리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고도의 상품이므로, 이러한 병원은 전공 의사를 전속으로 교육하고 훈련하는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다.


 또한 ‘도지사는 외국의료기관이 수입하는 의약품, 의약외품,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및 의료기기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수입품목의 허가기준, 신고기준 및 절차 등에 관한 사항을 완화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통해, 의약품 수입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을 비전문가(행정)의 손에 맡기는 결과를 초래하려 하고 있다. 마약류를 포함한 의약품의 관리와 유통은 국가공동체 차원의 중차대한 문제이므로 국가가 이를 엄격히 관장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명박 정부의 변두리 전략


 전국차원으로 시행하고자 각종 정책들에 대한 반대여론을 무마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변두리 전략’이다. 지방에서 작은 규모로 일단 먼저 시작하는 것이다. 대운하 건설이 반대에 부딪히면 꺼내드는 경인운하, 의료민영화론이 저항에 직면하자 시도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영리법인병원 설립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의료분야는 그 시스템이 복잡하고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인상이 매우 강한 탓에, 의료관리 혹은 복지를 전공하지 않거나 관심이 부족한 일반인의 정보접근과 학습욕구가 낮은 편이라 할 수 있다. 노골적으로 ‘의료민영화’라는 카드를 꺼내들지 않으면서 작은 규모로, 변두리에서부터 출발하는 전략에 더욱 긴장하고 주목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의료와 교육, 복지 등의 공공서비스 기반이 한 번 무너지면 다시 되돌리기 매우 어렵다.  공공서비스를 구성하는 어느 한 분야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다른 분야들의 기반도 잠식당할 것 역시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의료민영화는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며 또한 의료분야에 국한된 문제만도 아니다. 무수한 독소조항을 포함한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를 반드시 통과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나,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 대한민국 국회가 그러한 시도에 제동을 걸어주리라는 기대 또한 근거가 희박해 보인다. MB정권의 변두리 전략을 막아내려는 전국적 차원의 연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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