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기철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얼마 전 한 언론사와 함께 영구임대단지에서의 빈곤과 주거실태에 대한 현장조사를 기획하여 진행한 바 있다. 해당 언론보도를 통해 그 사회적 배제의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지가 지적되었다. 영구임대주택 프로그램은 주거복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수단이지만 거주민들의 생활상은 적절한 복지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려웠다.
▢ 우리나라 주택정책과 영구임대아파트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에게 주택은 가장 비싼 소비재이다. 물론 어느 나라에서나 주택은 필수재이면서도 그 가격이 높으면서 또한 탄력적 공급이 어려운 토지와 밀접히 결합되어 있다. 때문에 이를 시장에만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공공정책의 영역으로 취급하고 있다. 정부가 주택에 대해 어떤 정책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는가하는 점은 국민의 주거생활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간 우리나라의 주택정책은 기본적으로 주택건설의 촉진과 주택시장 활성화에 초점이 두어져 있었다. 낙수효과를 전제하면서 주택의 건설이 전 사회 구성원의 주거상황을 개선시킬 것이라 보았다. 이 과정에 투기자본이나 건설자본의 부적절한 초과이득도 용인 혹은 조장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절대적 주택량이 모자란 상태에서는 건설과 개발 중심의 주택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주택보급률이 어느 정도 이상 달성된 상태에서는 주택건설 자체로는 사회구성원의 주거상황 개선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이와 같다. 뉴타운 재개발 등은 실제로 저렴주택의 멸실을 많이 유발하고 있고, 설혹 토지소유자에게 이득은 될지언정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서민(세입자와 원주민)들에게는 주거위기를 가져오기 일쑤이다. 이와 관련된 이해당사자들의 갈등이 ‘사회적 참사’로 발현되는 경험도 많다. 대도시 지역 저렴주거의 부족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주택정책이 오히려 주거취약계층을 양산하는 기제라는 말은 이제 어느 정도 정설로 일반화되고 있다.
주택과 토지를 소유하기 어려운 주거취약계층에게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기제로서 공공임대주택의 활용은 많은 나라에서 일차적으로 활용하는 정책수단이다. 우리나라가 자가보유율이 서울 등 대도시 지역에서 5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공임대주택은 서구 국가에서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서는 공공임대주택의 확충이 중요한 이슈가 되곤 하였다.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프로그램은 국민임대, 50년임대, 영구임대, 10년임대, 다가구매입임대, 전세임대, 전월세형임대, 중대형 임대, 비축용 장기임대 등이 있다. 최근 들어 건립이 아니라 기존주택을 매입하여 임대하는 방식이 추가되었으며 이 사업에 대한 입주민의 만족도는 비교적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재고는 최근 10년 사이에 두 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표 1> 공공임대주택 재고율
(단위:%)
|
구분 |
한국 |
영국 |
스웨덴 |
네덜 란드 |
덴마크 |
독일 |
미국 |
프랑스 |
일본 |
OECD |
E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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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08 |
‘06 |
‘04 |
‘03 |
‘03 |
‘00 |
‘05 |
‘03 |
‘03 |
'05 |
'05 |
|
재고율 |
4.1* |
17.7 |
21 |
34.6 |
20 |
20 |
1.2 |
17.5 |
6.6 |
11.5 |
13 |
주 : 1)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총 주택에서 공공임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함.
(2007년 주택수는 1,379.3만호, 공공임대주택수는 133.5만호임).
2) National Board of Housing, Building and Planning. Housing Statistics in the European Union 2004, Sweden; 미국의 주택수는 2000년 센서스 기준, 인구는 2006년 기준, 공공임대주택 재고 수는 2005년 기준(Schwartz, 2006); 영국 2005년 주택조사 결과; 한국의 주택수는 2007년 기준, 공공임대주택수는 영구임대, 50년임대, 국민임대주택 재고 46.1만호 기준.
3) *은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 비율임.
출처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지표로 보는 우리나라의 사회현황과 사회정책의 실태와 동향(2009)』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10% 정도이다.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는 장기공공임대주택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약 4% 수준이다. 서구에 비할 경우 매우 낮은 수치이다.
공공임대주택 중 영구임대주택은 매우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우리국민 모두가 영구임대아파트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시기적으로는 20년이 더 되어 나름대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정부 정책이다. 영구임대주택은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약 19만호가 건설되었다. 빈곤층에게 저렴한 주거를 제공하고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는 사회복지관 등을 건립하여 이들에게 적절한 사회복지 안전망과 자활을 도모하겠다는 계획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중요한 주거복지증진의 수단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상당기간 동안 영구임대아파트의 공급은 중단되어 있었다. 다행히(?) 이제 다시 관련 프로그램을 재개하겠다는 움직임이 있다.
▢ 20년이 지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의 모습
영구임대아파트가 건립되어 입주가 이루어지고 20년이 지난 지금,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서의 생활은 빈곤층에게 희망을 제공하고 있는가? 빈곤문제에 잘 대처하여 정책목표를 달성하였는가?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는 평가에 더 무게가 두어지곤 한다.
이번에 언론사와 함께 이루어진 조사기획은 최초의 영구임대단지인 서울시 한 지역을 통해 이러한 우려가 실제인지를 현장에서 확인하고자 한 시도이었다. 영구임대단지를 통해서 빈곤문제의 현 주소를 가늠해본다는 것은 단지 빈곤층이 모여 있는 곳을 취재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정부의 빈곤정책 ‘대상’으로 표적화된 지역과 프로그램 상에서 빈곤문제를 재확인한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최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빈곤문제에 대한 접근에 협조적이지 않고 오히려 적대적인 상황이다. 조사거부율이 높을 것을 예상해야 했다. 조사지역인 영구임대단지 내 모든 가구를 2회 이상 복수로 접촉하는 소위 전수조사과정을 통해서 120여 가구에 대한 설문조사, 20가구의 심층면접이 이루어졌다. 공공의 협조가 없는 상태에서 언론과 민간이 심층조사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이 기울여진 현장자료수집이었지만 전체의 절반 이상에게서는 자료수집이 거부되기도 했다.
조사에서 발견되는 사항들은 영구입대아파트 입주 20년의 경험이 탈빈곤과 복지증진으로 연결될 수 없었고, 오히려 슬럼화와 사회적 배제의 심화가 농축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고 있었다.
전체 응답 가구의 3/4 가까운 72.7%가 한 달 100만원 미만의 가구소득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 금액은 당연히 공공부조 급여 등을 포함한 것이다. 가구원 수는 가구당 평균 2.6명 가량이었다. 실제로는 행정적인 이유나 수급권 박탈 등의 우려로 함께 사는 가구원 수를 숨기는 경우도 꽤 있었다. 2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85만원 가량, 3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112만원 가량임을 감안하면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이 대부분이다.
소비지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주거비로 20-30만원 정도의 관리비나 임대료가 가장 큰 부담임을 호소하고 있었다. 영구임대아파트의 제공이라는 주거제공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여전히 주거비 부담의 문제는 과도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사대상 가구원의 절반 이상인 50.2%가 60세 이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구 유형도 노인단독가구나 노인부부 가구가 30%이다. 장애인이 있는 경우는 47.%이다. 1급에서 3급에 해당하는 장애가 전체의 57.6%를 차지하고 있다. 근로를 통한 자활유도의 패러다임이나 도덕적 해이의 논란은 부적합해 보였다. 공공의 돌봄이나 방문복지서비스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사례가 많았다.
자주 이용하는 복지시설에 대해서는 사회복지관이 10.7%, 경로당 5.8%, 동사무소 5.8%, 종교단체나 사회단체가 4.1%라고 응답하였는데 오히려 아무 곳도 이용하지 않는다가 37.2%, “관심없다 모르겠다”는 응답이 33.9%에 이르렀다. 영구임대아파트단지를 조성하면서 사회복지관 등을 건립하고 복지서비스를 연계하도록 영구임대아파트 건립당시에 기획하였지만 적어도 수요자 관점에서는 이 기획과 프로그램이 체감으로 와닿고 있지는 못한 실정이었다.
조사대상자 중 20년된 입주자가 59.5%이었다. 영구입대아파트단지 조성 당시부터 계속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면접 설문조사나 심층면접을 통해 나타난 바로는 영구임대아파트에 대해 입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이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곳으로부터 퇴거당하는 것에 대한 큰 두려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나가서 살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빈곤의 세대적 전승에 대한 우려도 현실이 되었고 청소년들은 외부 지역과의 비교와 소외감과 낙인에 대한 인식이 내면화되는 양상을 보이곤 했다. 의료의 취약성, 장애와 돌봄 취약성의 문제 등 복합적인 사회적 배제는 자살이나 생명의 문제마저도 빈곤에 따른 계층화를 나타내고 있었다.
▢ 영구임대단지와 주거복지
주택과 주거문제에 대해 공공성과 복지성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지역운동적 차원에서, 혹은 심지어 국가나 보수적인 공기업에서도 주거복지라는 용어를 점점 더 많이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에서 주택문제나 주거복지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사실상 주거복지는 사회복지 영역 외부에서 제기된 개념이라고 보아야 한다.
주거복지가 (극빈에 시달리는)노인, 아동, 장애인에 대한 선별적 복지급여의 한 종류로 취급되는 것과 주거욕구에 대한 사회적・공공적 대응으로 인식되는 것은 다르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체계에서는 주거욕구 자체를 복지의 대상으로 인식해오지 않았다. 복지욕구가 인정되는 복지대상자에게 주어지는 급여의 한 종류로 (기초생활보장제도 급여의 한 형태로)주거급여나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입주권 우선순위가 부여되는 식이었다. 그러다보니 사회복지현장 실천체계나 심지어 교육체계에서도 주택, 혹은 주거에 대한 공공성 접근에 대한 내용의 고민이 거의 없다.
물론 사회복지체계가 아닌 다른 체계에서 이러한 접근을 도모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우리나라의 주택정책은 사실상 물리적인 재개발이나 주택건설, 혹은 이와 관련된 금융정책 등에 초점이 두어져 있다. 사업의 수익성이나 주택시장의 측면에 초점이 두어져 있다. 주거욕구나 공공성에 대한 관심은 빈약하다. 사업 수익성에 기반한 재개발이나 추첨방식에 의한 분양 등은 전국을 대규모 아파트 건설현장 후보지로 만들곤 하고, 전 국민을 ‘로또 당첨’과 같은 주택정책 편승 투기자로 몰아가곤 한다. 이번 영구임대단지 조사에서 만난 면접자의 경우도 20년 전에 영구임대아파트에 들어오지 않고 어떻게든 철저상황에서 분양입주권이나 마련되는 집을 사고 팔기를 반복했으면 훨씬 더 형편이 좋아졌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중요한 점은 조금씩 논의되기 시작하는 주거복지의 논의가 주택과 주거에 대한 전반적 공공성에 대한 논의(보편적ㆍ사회적 욕구로서 주거권에 대한 논의)로 자리잡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일부 선별적인 복지수급자층에 대한 급여의 한 종류로 인식되어서는 공공임대주택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20년 전 혁신적인 주거복지정책으로 시작된 영구임대아파트 현장의 모습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탈빈곤 정책의 실패를 목격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이는 영구임대주택 프로그램이 불필요한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양한 공공임대주택 프로그램은 오히려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짚어보아야 하는 것은 정부의 공공임대주택정책이나 빈곤정책의 파편성과 비연속성이다. 총체적인 사회적 배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적인 정책을 추진하여야 한다. 그런데 영구임대아파트사업만 보아도 처음 몇 년간 건립사업을 진행하다가 내팽개치다시피 중단되었다. 매번 이전 정부와는 다른 선전문구의 프로그램을 전시적으로 내어놓다 보니 정책의 연속성도 떨어지고 일관성도 없다. 영구임대주택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주거복지 프로그램이었음에도 다른 사회보장체계와 연결되지 못하여 슬럼과 낙인의 상징이 되어버리고 있는 점에서 우리는 향후의 정책을 위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빈곤과 사회적 배제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공성 확보에 투입되는 자원의 양을 늘려야 한다. 지체된 저발달의 복지체계를 조속히 정상화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공공성의 확충이 필요하다. 여기서 총체적인 접근의 필요성은 기본적 전제이다.
주택과 주거욕구, 공공성의 논의를 전면에 제기하는 주거복지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전의 주택시장에 아주 부수적인 일부 영역으로 비전형적이고 자선적인 주거복지를 설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주거복지의 보편화를 위해 흔히 이야기되곤 하는 정책과제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영구임대를 포함한 공공임대주택의 확충이다. 지속적인 건립이나 매입임대 등 방안이 확충되어야 하고, 배제와 고립을 막기 위한 ‘사회적 혼합’의 이슈도 이제는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공공임대주택정책은 중장기적으로 지속성과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영구임대아파트와 같이 일시적인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지고 중단되는 양상이 나타나면 공공임대주택의 고립양상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두번째는 다양한 주거비 보조 프로그램의 활성화이다.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하는 것이 유연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기 어려우므로 임대료 보조 등의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주거품질제고를 위해 민간 임대주택 소유자에 대해 보수비용을 금융지원하고 임대료 급변이나 인상을 통제하는 조건을 통해 간접적으로 임대료를 지원하는 방식 등도 활용될 수 있다. 전세가 많은 상황에서는 금융융자의 다양화도 방안이 될 수 있다.
세번째는 주거복지서비스 인프라의 제고이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건립된 사회복지관이 일반 사회복지관과 달리 주거복지서비스 측면에서 어떤 활동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침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주거복지서비스의 내용에 대해서 기존의 사회복지 인프라는 역할 모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주거복지서비스의 내용을 보급하고 이를 수행할 인프라에 대한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사회복지체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서울지역에서 노숙인의 수가 3,000명 선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하지만 비전형 주거를 전전하는 홈리스는 서울에서도 수 만명 이상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급이 모자라다 보니 쪽방과 고시원의 이용비용은 그 품질에 비해 너무 비싸다. 이 비용을 부담하지 못해 길거리를 택해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 이웃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다른 한편에서는 시민의 세금이 투입된 SHIFT 임대주택에 억대 연봉자들이 외제차를 몰고 입주하고 있다. 공공임대주택의 다양화나 보편주의화는 공공자원의 역진적 사용과는 분명히 다르다. 공공임대주택과 사회복지서비스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참고문헌>
한겨레 21, No.803, 804, 805, 806.
이태진 외(2009), 『지표로 보는 우리나라의 사회현황과 사회정책의 실태와 동향)』, 한국보건사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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